『스토너』를 만난 것은 책팟캐스트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극찬했기 때문이었다. 대략 5년 전쯤 될 것 같다. 극찬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극찬할 때,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그 느낌이 남아있다. 아무튼 나는 바로 『스토너』를 샀다.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몰입의 독서를 했었다. 역시나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읽는 동안의 집중과 놀라움, 경탄의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초판본 표지로 다시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다시 그때의 몰입감을 만끽하고 싶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그렇게 빠져든 책은 드물었기때문이다. 초판본 표지를 보는 순간! 5년 전의 감동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저건, 가져야 해.
예전 표지보다 훨씬 괜찮았다. 색감, 제목 배치, 그림까지, 뭔가 인테리어용 도서 같은 느낌이었다. 드디어 소장하였다. 표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하였다. 표지를 중시하는 사람이고 그러다 보니 북컬렉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읽지 않아도 배부른 기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초판본을 디자인 하신 분의 서명인 것 같다.-
그렇지만 『스토너』는 안읽을 수 없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 빠져들 게 뻔하므로, 이왕 빠지는 거, 더 철저히 저 밑바닥까지 쌍끌이하는 심정으로 빠져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서의 기쁨에 흠뻑 물들고 싶었다. 마음의 준비는 되었고, 플래그를 책 곁에 둔다. 연필 한 자루를 쥐고 손가락들 마디가 불툭 솟아오르도록 힘을 준다.
자, 전투 준비 완료.
첫 장을 열었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스산한 스토너의 집과 농장 분위기가 빠른 속도로 나를 덮친다.
'맞아, 고요하다 못해 침묵과 인내와 성실의 관습만이 남은 무채색의 스토너의 집이었지.그 묘사만으로 숨이 막혔었지.'
단번에 5년 전의 기분이 떠오른다. 이미 나는 1910년대 컬럼비아 미주리 대학 한복판에 서 있었다.
『스토너』는 스토너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65년 일생을 고스란히, 시간의 흐름대로 서술되었다. 복잡한 장치가 없다. 다양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큰 사건이 있지도 않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정신적인 격변은 겪었다고는 할 수 있겠다. 스토너는 천성도 한몫했겠지만 자라난 환경에서 덧자라게 한, 인내와 절제와 순응의 청년이다. 자신감도 없고, 집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에게 대학을 가 보라고 권유한 것도 어찌보면 아버지가 아닌 군청 직원이다. 순응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스토너는 대학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가라고 하니, 갔을 뿐이다. 열아홉살이었다.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은 그에게 생전 처음 느끼는 고민과 고뇌를 안겨 주었다.(16쪽)
스토너는 ‘왜’라는 질문을 처음 던진다. 곱씹고 생각하고 고뇌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깨닫는 고통과 즐거움도 알아간다. 아처 슬론 교수의 집중포화 속에서 그는 빛을 본다. 물리적인 빛의 알갱이들이 사뿐히 앉는 풍경이 살아나고 몸의 조각들이 반응한다. 순간의 벅참이 일어났다. 그 찰나의 변화가 학생들을 경멸하던 아처 슬론 교수의 눈에도 보였다. 찰나에 슬론 교수의 삐딱했던 시선이 호기심의 시선으로 바뀐다. 스토너의 삶을 쥔 핸들이 급커브 하는 순간이었다.
『스토너』의 문장들은 끊임없이 스토너를 따라간다. 스토너를 만들어간다. 세세하게 묘사해서 장면들이 하나하나 모두 그려질 정도다. 얼굴 솜털에 앉은 빛까지 그려질 정도다. 작가 존 윌리엄스도 영문학 교수이다. 스토너에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지 않을 수 없다. 학과가 굴러가는 시스템이나 보직이 대학내 행사하는 권력의 정도, 영문학과의 교육과정, 전쟁이 대학생들에게 미친 영향 등은 존 윌리엄스의 경험이 바탕되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계속 던진다. 우정, 스승, 전쟁, 늙음, 이별, 중독, 투병, 모든 조각들에 죽음이 서려 있다. 『스토너』가 다루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얼핏 알 것 같았다. 콕 집어 몇 마디 말로 다 할 수 없음은 나의 능력 부족이다. 누군가의 삶을 예로 들 때 우리는 특이한 삶을 살았거나 이름을 알릴 만큼의 업적이 있거나 공공을 위해 희생을 하였거나 등, 당신의 삶의 이력에서 눈에 띌만한 것을 삶을 평가의 중요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스토너의 삶은 어떠했는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를 잘 짓는 법을 배우기 위해 대학을 진학하였다가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꾸고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오직 성실하게, 앎의 욕구를 채울 때까지 파고들며 공부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고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였으며 훌륭한 논문을 쓴 것도 아니었다. 반려자를 보는 눈도 없어서 한 달만에 결혼이 실패했음을 깨달았고 사랑없는 결혼 생활에서 겨우 얻은 딸아이마저 도피성 혼전 임신과 사랑없는 결혼,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 퇴직할 때까지 그는 조교수였으며 주요 보직은커녕 한 사람의 농락으로 초보 수준의 강의만 맡았다. 그런데 왜, 왜 이 재미없는 인물을 다룬 작품에 많은 작가들이 찬사를 보내는 것일까
읽어보면 안다.
한 문장 한 문장, 그냥 쓰여진 문장이 없다. 높은 밀도로 차작차작 한발작씩, 스토너처럼 우직하게 나아간다.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밑줄 긋다가 밑줄 안그은 문장보다 밑줄 그은 문장이 더 많아서 밑줄 긋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다. 스토너가 강의를 준비하며 자료를 들추듯이(감시 스토너와 비교해서 뭐하지만) 나도 포스트잇을 붙이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었으며 여기저기에 플래그를 붙였다. 문장의 화려함이 아니라 물흐르듯이 이어지는 문장들 속에 생의 고단함과 환희들이 담긴 일상의 모습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묘사한 작가의 필력에 쉼없이 놀라며 감탄한다. 비단 존 윌리엄스의 솜씨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 말로 옮긴 김승욱 번역가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스토너의 삶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읽으면 읽는 대로 선명하게 장면들이 그려진다. 이게 나의 상상력 덕분인지 작가의 필력 덕분인지 구분이 안되는 것 같아도, 나는 나의 상상력 수준을 알기 때문에 이게 다 작가의 필력 때문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소설가들 사이의 바이블로 추앙받는 소설일 것이다.
작년에, 내가 좋아하는 편혜영 작가님이 남해까지 강연을 하러 오셨다. 안타깝게도 출장이 겹쳐 직접 만나 뵐 수 없었던 나는, 내 옆자리 앉은 어린 동료 선생님께 꼭 가 보시라 권유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셨지만 편혜영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한 부탁이라 참 미안했다. 그나마 국어 선생님이어서 내가 소장한 작가님의 책 몇 권에 모두 사인을 받아주시기까지 하는 정성을 보이셨는데 뒷날 출근 하자마다 책을 건네주며
“선생님 『스토너』 읽어 보셨어요?” 라고 묻는 것이다.
“네,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왜요?”
“아! 편혜영 작가님이 책을 두 가지 추천해주셨는데 그 중 하나가 『스토너』였어요. 저는 처음 듣는 책이었거든요. 작가들 사이에 바이블 같은 책이라며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추천해 주시더라구요.” 라며 수줍게 말하였다. 그렇게 나는 몇 년 만에 『스토너』를 떠올리게 됐다.
이번에 받은 초판본 띠지에는 유명한 작가들이 뽑은 인생소설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번에는 역으로 작년의 그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작가도 뭐도 아니지만, 『스토너』는 내게도 인생소설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마 내가 꼽을 수 있는 최고의 책 5권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이런 작품을 내가 살아있을 때 만날 수 있었다는 게, 그것도 두 번이나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고 축복인지 모른다. 문학의 힘이다.
연속선상의 줄기만 보면 스토너의 삶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연속을 이어주는 마디들을 얇게 저미며 들여다보면 스토너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았는지, 뼈있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삶을 다 들여다본 독자들은 스토너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것은 존경의 의미도 있지만 고마움의 마음도 크다. 나도, 당신도 그러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평범한 각자의 삶을 살면서 내 삶의 위에서 아등바등, 최선을 다하고, 나름의 원칙을 고수하며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너의 삶에서 내 삶을 응원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다.
이 책은 내가 꼭 필사해보아야 할 책이다.(‘필사 해보고픈 책’ 수준을 넘어섰다.)
...
젊은이나 나이와는 상관이 없고 현실과도 유리된, 호기심 많은 학자의 열정으로 그는 아직까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은 유일한 삶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절망의 순간에도 자신이 그 삶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309쪽)
...
책을 다 읽고 예전 책과 이번 책을 비교해보았다. 어디에서 줄을 긋고 표시했는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비교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