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다. 하지만 맞는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고정된 것을 좋아한다. 고정돼 있으면 편안하다. 그 고정성에서 오는 만족감이란 게 있고 때로는 그런 고정된 것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 내는 것으로부터 심미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 나는 보수주의자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이 30년을 살아보니 있다. 그 고정된 것으로부터 나오는 폐쇄성. 그리고 그 폐쇄성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억압할 때, 나는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나아가 나는 그동안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절대 아름답지 않았음을 느끼기도 한다. 이 감정은 뭐랄까. 이것은 내게 있어 엄청난 모순이다. 그동안 편안하던 것이,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이었다니.
동생이 결혼할 때 아빠랑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는 잔치가 벌어진다고해서 여자들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결혼을 한 남자들의 경우에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젓가락으로 그리고 이쑤시게로 찍어 먹었지만, 너무 어리지도 혹은 결혼을 하지 않은 남성들 같은 경우에는 함께 전을 붙였다고 한다. 특히, 환갑과 같은 일이 있을 때는 수십명이 배부를 만한 것을 만들어야 했기에, 며칠밤을 새가며 부쳤다고 한다.
이 책 <어제 그거 봤어>를 보면서, 나는 미디어 속에서 그려진 여성들의 모습을 봤다. 그동안 내가 편안하게 생각했던 것들이며, 나아가 바라던 여성상이기도 했다. 물론, 나는 저자의 의견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여성성과 남성성. 여성이 여성성을 부정하는 것이 그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며, 남성이 남성성을 부정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강요의 단계에 이르고, 이것이 그 사람을 꼭꼭 묶어 두어서 힘들게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여성 또한 자신의 성역할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만족을 느끼고 있고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만이 재생산되고, 나아가 강요된다면, 그리고 그런 강요를 하는데 있어 긴장감마저 사라진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어제 그거 봤어>
미쓰백〉은 이런 식으로 멤버들의 근황만큼이나 그에 대한 주변 반응을 대등하게 강조해서 보여준다. 반응이라는 것도 의외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당사자를 대신한 분노와 그의 평온을 기도하는 조언으로 채워나갔다. 스폰서 이야기가 나올 때엔 래퍼 나다가 “미친놈”이라는 욕을 내뱉었고, 가영의 길고 검은 원피스를 보고 송은이는 잘못한 사람을 대신해 사과했다. “오늘 첫 만남이고 화사하게 보이고 싶을 거 아니야. 처음엔 ‘취향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영상을 보고 나니까 너무 미안해져. 내가 인생의 선배고 어른으로서, 어른의 자격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젊은 시절이 너에게 잊고 싶은 시간이 됐다는 게 너무 미안해.” - 「상처를 연출하는 방법」
이 책 <어제 그거 봤어>는 TV에서 재연되는 여성들에 대한 비평서다. 솔직히 나에게는 조금 불편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말 “어제 그거 봤어!”라며 사람들이 할 말들이다. TV에 나오는 것들이니 말이다.
사실 나는 TV가 없기에 이 책에 나온 콘텐츠를 다 볼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하이킥 시리즈처럼 내가 그동안 봤던 프로그램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그려지고, 이것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러한 재연들이 현재는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응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선을 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가령, 이전에 황진미 평론가가 <나의 아저씨>를 원색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 글 같은 경우에는 남성들에 대한 적당한 긴장감 또한 없이, 그냥 비난만 한 것 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솔직히 남자 입장에서도 많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책 이었다. 오히려 동조하고 공감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동료 시민들이 어떠한 고난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조언하는 남자, 서장훈이 부럽다’와 같은 글을 읽을 때에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나 또한 저자의 의견에 많이 동조했다. 서장훈은 그럴 위치에 있다는 것은, 그가 잘난 캐릭터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사회경제적으로 그 위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주의 관련 그리고 그들이 쓴 미디어 비판서를 읽으며 이렇게 동조했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간만이 공감이 되는 책을 읽은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한국의 TV 프로그램을 챙겨본 일이 없다. 그래서 이 책에 거론된 대부분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첫째는 한국의 TV 프로그램 속 여성의 역할이나 여성에 대한 묘사가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러나 여전히 한계가 있으며 발전 가능성 또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챙겨보고 싶은 작품도 생겼다. 신세경, 차은우 주연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에는 조선 시대 여성들이 과거 시험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전까지 사극 드라마에서 여성이 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궁녀가 되거나 남장을 하는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 구해령은 스스로 과거 시험을 봐서 합격해 최초의 여성 사관으로서 궁에 들어간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기발하고 통쾌한 상상인데, 이 드라마는 구해령을 포함해 여성 사관이 된 사총사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사관들은 당하지 않는 고초를 당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고. 결말도 만족스럽다고 하니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TV로는 안 보고 OTT 서비스로 본 작품이 있어서 반가웠다. 바로 <여고추리반>이다. <여고추리반>은 기존의 추리 예능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출연자가 전원 여성이며(박지윤, 장도연, 재재, 최예나, 비비), 여성들 간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범인을 맞히는 과정을 재미있으면서도 스릴 있게 보여주었다. 만약 출연자가 전원 남성이었다면 이런 식의 전개가 가능했을까. 보나 마나 기싸움, 편 가르기, 약한 사람 갈구기 등으로 재미없고 허풍만 가득한 전개가 이어졌을까. 여자 출연자가 한두 명 정도 있었다고 해도 분명 예쁘면 꽃, 안 예쁘면 병풍 취급하면서 성희롱이나 했겠지. 아아, <여고추리반> 시즌2 너무 기대된다. 얼른 방영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