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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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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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하나의 사건 평점9점 | s*****l | 2022.09.07 리뷰제목
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 출발점에 따라 간절함이나 논리의 구체성이 달라진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작금의 세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자기 객체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타자화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분별과 객관화 작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
리뷰제목

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 출발점에 따라 간절함이나 논리의 구체성이 달라진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작금의 세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자기 객체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타자화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분별과 객관화 작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의 비판과 문제의식이 없다면 사회를 지배하고 이끄는 정치인과 소수 엘리트 계층의 자각과 반성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정희진 작가의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는 여성학 연구자인 작가가 자신이 읽었던 책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과 애씀의 흔적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것은 자신의 말과 글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자 학자로서의 보편적 당위성을 지키는 분투의 과정이기도 하다. 약자로서 여성의 입장을 좀 봐 달라는 식의 구걸의 언어가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지이자 동등한 지위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평등의 언어를 희망하고 있다.

 

"극복, 사랑, 혐오......, 목적이 무엇이든 상대를 알기 위해 "벼랑까지 걸어간" 적이 있는가. 나는 한국 사회에서 학문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주류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약자만이 지닐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의문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인식론적 특권, 끝을 보고야 마는 것은 최고의 저항이다.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끝을 보려는 이들은 비교나 절충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 끝을 보고야 만 사람의 씁쓸함. 진실은 달콤하지 않다."  (p.39~p.40)

 

스스로에 대한 어정쩡한 타협이나 적당한 선에서의 물러섬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의 특징은 결과론적인 외로움에 직면한다는 점이다. 게으름에 천착하는 보편적 인간상에 대한 경멸이나 기피로부터 자신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경멸하는 다수의 편에 서서 그들과 화해하고 그들의 습성을 십분 이해하노라, 마음에도 없는 말로 그들을 다독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끝을 보고야 만 사람의 씁쓸함'을 곱씹을망정 게으름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편적 인간의 대열에 서기는 죽기보다 싫은 것이다.

 

1장 '몸에서 글이 나온다', 2장 '우리는 타인을 위해 산다', 3장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를 통해 작가가 읽고 정리했던 60여 편의 작품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주장을 리뷰 형식으로 피력한 책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는 작가의 주관적 견해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할 만큼의 완벽한 논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물론 독자의 성향이나 이념적 기울기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글은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다. 앎이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지식을 다르게 배치하는 것이다. 지식이 자료에 불과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진보(進/步)의 방식은 계속 걷기고, 보수(保/守)의 도구는 과거를 지키는 익숙함(진부함)이다. 쉬운 말은 지배자, 사기꾼, 게으른 이들의 언어다. 한국 사회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곳에서는 선호될 수밖에 없다. 생각은 엄청난 노동이기 때문이다."  (p.165)

 

삶의 범주는 대개 세 가지로 분류된다고 나는 믿는다. 자신의 삶을 목표로 하는 어떤 지향점을 향해 채찍질하고 이끄는 극기의 삶, 사회적 관습이나 사회 구성원의 시선으로부터의 해방 또는 자유를 추구하는 풀어짐의 삶, 모든 사회 구성원과의 관계를 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을 유지하는 도피 혹은 은둔의 삶이 그것이다. 인간은 대개 상황에 따라 세 유형을 번갈아가며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하나의 유형을 선택하고 그 방식을 극단적으로 고수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풀어짐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 곁에 조력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제반 지식을 팽개친 채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만 몰두하는 영화감독이나 우주 연구에 매진하는 천체 물리학자 혹은 카사노바처럼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곁에서 그들의 생존을 돌볼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어떤 삶을 선택하든 필연적으로 후회와 번민을 안게 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끝없이 곁눈질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이다.

 

"홍준표의 '돼지 흥분제 사건'으로 나는 두 가지 진리를 다시 확인했다. 국가 안보를 내세워 표를 얻으려는 사람, 정확히 말하면 국민 안전을 대국민 협박용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사실과 이 땅에서 오래 살려면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p.242)

 

추석이 코앞이다. 그러나 태풍 '힌남노'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사람들은 명절이 그저 즐겁지만은 않을 터,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인간도 하나의 동물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뿐인 명예를 놓으려 하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삶도 죽음도 하나의 자연 현상에 불과할 뿐 특별할 게 없지 않은가. 정희진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것이 추석 전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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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내 글을 쓰려고 읽는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l*****j | 2021.03.14 리뷰제목
그럴 때가 있다. 읽고 싶은 분야가 있어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읽고 있을 때. 관심 분야가 없을 때, 읽기 편한 책들 혹은 베스트셀러들, 아니면 누군가 읽었다는 책을 검색하기도 한다. 주관 없이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쓸 때도 읽을 때와 다르지 않다. 책이 주연이고, 나는 조연이거나 엑스트라다. 내 생각이 글을 이끄는 게 아니라
리뷰제목

그럴 때가 있다. 읽고 싶은 분야가 있어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읽고 있을 때. 관심 분야가 없을 때, 읽기 편한 책들 혹은 베스트셀러들, 아니면 누군가 읽었다는 책을 검색하기도 한다. 주관 없이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쓸 때도 읽을 때와 다르지 않다. 책이 주연이고, 나는 조연이거나 엑스트라다. 내 생각이 글을 이끄는 게 아니라 책 내용에 내 생각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그러면 재미도 없고 내 것 같지 않은 글이 된다. 자기 생각을 풍성하게 담아야 글에 힘이 실린다.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저자는 독후감에 대해 말한다. 작가가 "쓰고 싶은 독후감은 다른 시각으로 읽음으로써 '없는' 내용을 만들어내는 방법" 이라고 썼다. 정희진의 독후감은 책을 읽고 쓴 글이지만 작가의 생각이 주를 이룬다. 독후감이면서 책에 '없는' 내용들을 더 많이 만난다. 작가 자신의 생각, 관점, 철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책을 읽지 않아도 내용을 몰라도 글이 흥미진진하고 힘이 있다.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고 같은 형식으로 쓴 책을 이어서 읽었던 이유다. 모두 책에 대해 쓴 책들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이다.(246쪽)

 

재미있는 글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이 담긴 글이다. 흔히 만나는 책리뷰를 읽을 때도 책에 담긴 이야기보다 글쓴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그 때문에 소개한 책에 호감이 간다. 이 책은 60여 권의 책을 이야기 하는데도 내가 아는 책이 거의 없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다른 견해를 기대하고 독후감책을 보는 데 이 책은 아니다. 작가 생각을 읽는 것만으로 흥미롭다. 작가의 생각 때문에 몇 권 구입해놓기도 했다. 책을 읽고 지축을 흔드는 충격을 나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독후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책 자체라기보다는 독자의 처지와 조건이다. 어떤 이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책이 어떤 이에겐 지축을 흔드는 충격을 준다. (<정희진처럼 읽기>, 305쪽)

 

이 책과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두 권을 같이 읽고 있다. 차례대로 읽을 필요가 없으니 눈이 가는 대로 읽는다. 독후감이지만 사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제목만 봐도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렇게 활용한다. 내 글을 쓰기 직전에 이 책을 읽는 것이다. 글쓰기 직전에 읽은 글 때문에 내 글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경험을 가끔 한다. 글쓰는 스타일이 미세하게 바뀐다. 글에 줏대가 없어 그렇다. 이 책을 읽는 이유가 줏대 있는 글을 쓰고 싶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정희진처럼 말이다.

 

나는 "글은 곧 글쓴이다.(I am what i wrote 혹은 'All that me")라고 생각한다. 아니, 글만큼 그 사람 자체인 것도 없다.(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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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나를 알기 위해서 읽는다! 평점10점 | a*******5 | 2020.09.15 리뷰제목
저자는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서 읽는다. 글쓰기에 너무 게으른데다 그나마 코로나 19로 인해 자투리 시간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을 읽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미처 모르고 지나친 과거 어느 순간의 내 감정과 생각의 단편들을 만나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건 끝없이 새로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저자의 독후감
리뷰제목

저자는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서 읽는다. 글쓰기에 너무 게으른데다 그나마 코로나 19로 인해 자투리 시간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을 읽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미처 모르고 지나친 과거 어느 순간의 내 감정과 생각의 단편들을 만나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건 끝없이 새로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저자의 독후감을 모은 이 책은 페미니즘의 사유로 통하는, 내가 알거나 몰랐던 책들과 우리 사회와 내 주변 사람들, 나의 위치와 감정을 깨닫게 하거나 배움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글들로 알차다. 리뷰를 쓰기가 어려워 포기하려다 이 책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내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 특히 마음에 와 닿은 글들을 남긴다.

 

 

 * 단도직입적으로 여성주의만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학문은 드물다. 아니, 글쓰기와 여성학의 인식론, 방법론은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학은 언어의 역사이고, 여성주의는 언어의 역사가 형성된 과정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자명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개입된 권력 관계를 질문한다면, 기존 여성주의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언어는 상대화와 붕괴(의미의 다변화)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주의와 글쓰기 공부는 별개의 실천이 될 수 없다. 여성주의는 하나의 분과 학문(국문학, 영문학 ...)이 아니라 평화학이나 탈식민주의나 생태학처럼 일종의 인식론이다. (15-16쪽)

 

 

 * 나는 누구인가. 모든 사람이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물음은 내 경험과 사회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을 때, 타인이 멋대로 나를 규정할 때 솟아난다. (26쪽)

 

 

 * 용서를 하든 복수를 하든 진짜 피해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그 사건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31쪽)

 

 

* 가장 문제가 되는 외면화는 자기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남의 문제라고 굳게 믿는 '네 탓으로 인한 나의 고통'이라는 고착 심리다. 이들은 완벽주의자로서 자기를 스스로 정한 기준과 동일시한다. ... 타인에게 자기 기준(이라지만 일관성은 없다)에 맞춰 살라고 요구하고 상대가 부응하지 못하면 분노하고 경멸한다. (55쪽)

 

 

*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 나는 조금 태평해지기로 했다. (62쪽)

 

 

* 자본주의와 의료 기술의 발달은 가난한 사람에겐 모순이다. 일하는 시간은 짧아졌고 평균 수명은 길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에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64쪽)

 

 

* 시인(김수영)은 도둑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양계를 집어치우지 못하는 이유가 도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철조망을 넘어온 도둑(양계를 시작한 시인)은 그만두고 싶지만, 그리고 본인이 넘어온 길을 알지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라고 물으며, 모르는 척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 그대로, 양계 변명이다. (70쪽)

 

 

* 고전은 무식의 면죄부다. 아무 때나 인용하고 표기 그대로 오해해도 된다는 허가증이므로, 고전으로 간주되는 책들은 태생부터 반동적이며 동시에 해방구다. (85쪽)

 

 

* ... 알튀세르, 푸코, 라클라우나 스피박, 무페, 버틀러 같은 일군의 페미니스트는 보완이든 비판이든 상호 비판이든 마르크스의 길을 연결한 공신들이다.

 이들의 요지는 해석과 변혁은 분리되지 않으며, 다르게 해석하는 행위가 곧 변혁이라는 것이다. 신앙을 포함해 모든 철학은 변화를 위한 것이다. 해석이 곧 실천임은 당연한 이야기고 문제는 누구의 해석이냐, 그것을 누가 대표로 말할 수 있는가다. 또한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소통 과정에서 변형된다. 투명한 언어는 없다. 사실 인간은 언어로 말하지도 않는다. 소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율은 3~7퍼센트, 나머지는 몸이 말한다. (87쪽)

 

 

 * 인생이 지옥이고 죽음이 천국이라면, 연옥쯤에 해당하는 것이 은둔 아닐까. (89쪽)

 

 

*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의미다. 돈과 권력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다. 최고의 의미는 내가 타인의 앎의 노력 대상이 된다는 것(사랑받음), 그리고 상대를 알려는 노력이다(사랑). (102쪽)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이를 사랑한다. 인생의 절정은 성별, 계급, 나이, 심지어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상호 성장을 위해 자잘한 것(권력, 돈, 명예) 혹은 자기 알던 유일한 세계를 포기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이 그런 경우다. 좋은 인간관계에도 <세한도> 같은 걸작처럼 다른 형태의 권세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105쪽)

 

 

* 독서는 타인의 삶을 사는 행위다. 자기만의 사고와 태도, 시각은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다. (121쪽)

 

 

* 다짐해도 다짐해도 금세 잊혀지는 내 좌우명. "지구에 머무는 동안 타인과 자연에 민폐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자." (136쪽)

 

 

* 인간의 보편적 상황이란 무엇일까. 나는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랑. 사랑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고 상대방이 대단해서는 더욱 아니다. 사랑의 상태만이 의식주처럼 사람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사랑의 범위는 대단히 좁다. 행복한 중산층 기혼 이성애자가 얼마나 되겠는가(여기서 또 남녀로 나뉜다). 그들의 행위만 규범으로 간주된다. 그러니 계급, 성별(동성애), 인종, 나이 같은 궤도 밖의 조건으로 인해 힘든 사랑이 얼마나 많겠는가. (142쪽)

 

 

* 요즘은 새롭고 다양한 동화도 많고 권정생 같은 작가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동화나 우화는 순수한 이야기로 포장되어 '아동에게 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시키는 도구'였다.

 특히 여자 어린이가 주로 읽는 동화는 가부장제의 원형을 주입한다. 어느 사회에나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이유다. 신데렐라, 재투성이 아가씨, 콩쥐팥쥐... 내용이 익숙해서 그렇지 조금만 주의 깊게 읽으면 잔혹하고 여성 비하적이다. 왕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리를 자르고 목소리와 목숨까지 바치는 인어 공주를 생각해보라.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들은 동화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흑설 공주>도 있고, 백설 공주가 왕자와 결혼했는데 가정 폭력범이어서 이혼하고 독립적으로 살았다든가, '일곱 난쟁이'들이 "왜 장애인은 언제나 비장애인 결혼의 조력자인가?"를 주장하는 시위로 끝나는 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50쪽)

 

 

*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권력자다. 자기 충족적 삶은 최고로 힘을 지닌 상태다. 인간은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권력감이 없으면 외로운데, 자기 몰두형 인간은 권력에 무심하다. 사실, 이 행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154쪽)

 

 

* 자기 모순은 언어를 빼앗긴 이들의 운명이다. 이것이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핵심이다. 강자의 삶과 언어는 일치하지만 약자의 삶과 언어는 불일치한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는 누구의 관점인가? 피억압자의 노동을 지배자의 시각에서 정의하는 것, 이것이 가부장제요, 제국주의요, 인종주의다. (165쪽)

 

 

*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상황 중 하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평화적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대화'를 강요받을 때다. (166쪽)

 

 

* 고통의 가치는 오로지 해석에 달려 있다. (174쪽)

 

 

*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 항상 양가감정에 시달린다. 자기 혐오와 연민, 피해의식, 분노가 나를 삼킬 때는 나도 저자처럼 죽고 싶다. (202쪽)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글쓰기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자기 재현이다. 이 책(<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헤릴린 루소)은 내가 아는 자기 이야기 중 최고다. ... 이 책은 장애 여성 관련서가 '아니다'. 몸, 관계, 사회라는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룬다. 인문학 '입문서'의 모델이자 타자 없는 사회라는 인류 최상의 선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빼어난 정치학은 배려, 호기심, 평등(같아지라는 요구)처럼 아름다운 듯 보이는 태도가, 실제로는 얼마나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배제의 정치인가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178-179쪽)

 

 

*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혐오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 혐오다. 고통을 자기 일부로 수용하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때 처음 등장하는 존재는 동물, 자연, 본인의 배설물이다. 남성(인간)에게 여성(인간 아님)은 이 세 가지를 인식하는 시작이자 교집합이다. 이렇듯 모든 혐오의 출발은 자신이다. 자기 내부의 관념에서 나온다. 파시즘이 그 정점이다. 파시스트는 피아, 자아 경계가 없다. 나=세상이다. (182쪽)

 

 

*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동료, 커뮤니티, <사랑받지 않을 용기> 같은 책이 필수다.(207쪽)

 

 

* 시인이자 여성주의 사상가 에이드리엔 리치는 영화 <가스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 사회가 켠 가스등 때문에 자신의 경험과 직관을 부정당해왔다. '미친 여자'는 오로지 남성의 경험에 의해 판정되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미스터리였다니!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보살필 의무가 있다. 여성의 인식과 자신감을 믿자. 서로에게 가스등을 켜지 말자." (231쪽)

 

 

* 마르크스 이론의 결정적 실패 원인 하나는 성별과 인종 개념의 부재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무엇으로? 남성은 미소지니(여성 혐오)로 단결했지만, 노동자는 인종과 성별, 국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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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정희진님 글은 항상 찾아 읽어요 평점10점 | l****s | 2020.08.23 리뷰제목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 철학적 사유의 흔적이 듬뿍 묻어있는 글 입니다. 추천하는 책따로 추천서를 물어보지 않아도 그녀만의 해석을 보면 읽고 싶은 도서 목록이 덤으로 쭉쭉 생기고. 책은 작지만 내용은 아주 알차서 가성비, 가심비 모두 만족합니다정희진의 글쓰기 1,2 모두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정희진님 글은 항상 찾아 읽어요. 읽을 때마다 새롭게 많이 배울 수 있어 여러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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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 철학적 사유의 흔적이 듬뿍 묻어있는 글 입니다. 추천하는 책

따로 추천서를 물어보지 않아도 그녀만의 해석을 보면 읽고 싶은 도서 목록이 덤으로 쭉쭉 생기고.

책은 작지만 내용은 아주 알차서 가성비, 가심비 모두 만족합니다

정희진의 글쓰기 1,2 모두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정희진님 글은 항상 찾아 읽어요. 읽을 때마다 새롭게 많이 배울 수 있어 여러 번 읽게 되는 책입니다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댓글 0
종이책 나의 무기 평점10점 | i*******6 | 2020.05.31 리뷰제목
나이를 먹어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어릴 때는 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자만했는데 나이를 먹어도 그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는 걸 깨닫는다. 이제야 조금씩 내가 어떤 것을 바라보고 따르며 어디에 닿기를 원하는 사는 사람인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을뿐이다. 그래서 나를 조금 더 알기 위해 먼저 한발자국 걸으며 손짓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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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어릴 때는 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자만했는데 나이를 먹어도 그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는 걸 깨닫는다. 이제야 조금씩 내가 어떤 것을 바라보고 따르며 어디에 닿기를 원하는 사는 사람인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을뿐이다. 그래서 나를 조금 더 알기 위해 먼저 한발자국 걸으며 손짓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고 또 읽는다. 그들이 다다른 곳이 내가 찾던 곳에 가까우면 기웃거리다 가끔 이렇게 강하게 잡아당기는 책을 만나면 풀쩍 건너가본다. 정희진 작가는 <나를 알기위해서 쓴다>에서 그녀가 고른 책들에서 외롭고 헤매는 존재들에게 삶의 의미를 더듬어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책을 읽지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것 같은 처절하고 애착에 사로잡힌 책읽기다. 책을 통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사유를 흡수하려는 작가의 탐구욕이 싫지않고 않다. 책의 구절구절을 통해 삶을 관통하는 고통의 정체를 파악하고 가치를 찾는 성찰 과정이 읽는 이를 외롭지 않게 만든다. 읽다가 잘 이해가 안가서 다시 되돌아가서 꼼꼼히 의미를 찾고 수고하게 만들어 곱씹어야 이해되는, 아마도 고민없이 쉽게 쓴 것이 아닐 표현들도 좋았다.

온전히 이해받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나, 편견과 불평등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목소리를 내며 권리를 찾는 여성으로서의 나, 부당한 권력을 지닌 가해자에 의해 휘둘리지 않기위해 불의에 분노하고 응징하는 나, 나이를 먹으며 신체의 노화를 받아들이고 죽음이 곁에 있음을 아는 나, 때때로 외롭고 존재가 고통스럽지만 어렴풋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나, 약자의 슬픔에 공감하며 타인과 더불어 완벽해지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실천해가는 나... 나를 움직이는 책을 읽지 않았으면 꺼낼 수 없었을 것이고, 또 책읽기만 하고 쓰면서 사유하지 않았으면 발견할 수 없었을 수만가지의 나를 만나는 과정을 함께하게 해준다.


장애인 여성의 위인만 읽게했지만 공산주의자이고 사회주의자였던 헬렌켈러의 이야기, 성폭력 범죄자들은 성별 권력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이기때문에 범죄자 실명 공개가 다른 처벌보다 훨씬 효과적인 처벌이라는 것, 임신중 구타가 선천성 기형과 유아사망의 주원인이라는 통계 결과, 여성주의 의식이 없는 상담자가 폭력범이 될 수 있는 위험성 백인 남성노동자가 여성과 유색인종 비하와 추방에 앞장서는 이유, 남성 페미니스트의 정체성, 장애인을 비장애인 결혼의 조력자로 등장시키는 설정에 질문을 던지는 백설공주 다시 보기 등 사회적약자로서의 여성이 직면한 현실을 토로하고 화두를 던지는 3번째 챕터는 여성으로서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듣도보도 못한 책들을 두루섭렵해야 보다 명징한 삶의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회의를 갖게할만큼 작가는 숱한 책을 읽고 공부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녀가 공개한 64권의 책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안되고 소개한 책들도 쉽게 넘볼만한 책들이 아닌 것도 같다만 그중 천천히 몇 권이라도 읽고 그녀가 포착해낸 의미들이 내게도 닿았으면 좋겠다. 사적인 사유와 공적인 담론의 화두를 던지는 자유롭고 거침없는 그녀의 글에서 드러나듯이 계속 공부하고 성찰하며 질문하는 삶을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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