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서 올해까지 줄곧 교양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목록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게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올초 이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책이 바로 캐럴 계숙 윤이 썼다는《Naming Nature》였다. 룰루 밀러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쓰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 책이었을 뿐 아니라, 저자 이름에서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일부러 찾아보기도 했는데,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았었다. 나 같은 독자가 많았으리라. 당연히 번역되리라 생각했고, 이렇게 그 책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이 책은 분명 분류학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함께 이 책과 관련이 있는 책은 데이비드 쾀멘의 《진화를 묻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방향성은 상당히 다르다. 《진화를 묻다》가 칼 우즈의 삶과 연구를 중심에 놓고 있다면,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분기학(cladistics)에 이르는 분류학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쾀멘이 진화의 과정과 결과를 탐구하는 분류학의 승리를 이야기한다면, 캐럴 계숙 윤은 분류학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또한 그것이 발전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것의 실패, 혹은 놓치고 있던 것에 더 주목한다.
캐럴 계숙 윤이 짚고 있는 분류학의 여정은 칼 린나이우스(Carl Linnaeus, 린네)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신탁 신관'이라고도 불렸던(그에게 어떤 식물을 들고 와서 물어보면 그게 무엇이라고 척척 맞춰내고 판정해낸다는 의미에서) 규칙성이 없던 분류학의 체계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자연의 질서는 고정되어 있는 거라 생각했고, 자연의 체계를 세움으로써 신의 뜻에 가까이 간다고 여겼다. 린나이우스 다음 주자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다. 그의 진화론은 분류학에 진화의 개념을 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주목하고 집중하는 것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니라, 그를 전문적인 분류학자로서 면모를 갖게 한 따개비 연구다. 따개비 연구를 통해서 다윈은 분류학자가 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또한 진화의 개념도 분명해졌다고 본다. 이렇게 진화분류학이라는 분야가 생기고, 분류학자의 목표가 생겼다. 하지만 사실 현재의 생물을 두고 진화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분류학이 커다란 성과를 낸 것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종의 기원》이 발표되고 다윈의 진화론은 이후 100년 동안 생물학을 바꿨고, 세상을 바꾸었지만, 분류학에는 커다란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정체되어 있던 시기에 등장해 분류학을 일변시킨 인물이 바로 이른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였다. 그는 조류학자였다. 뉴기니에서의 조류 연구로 유명해진 그는 생물학적 종 개념 (biological species concept)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역시 과학적 분류학을 한다고 했지만, 분류의 기준은 '자신'이었다.
그다음은 수리분류학(numerical taxonomy)다. 스니스(Sneath)와 소칼(Sokal)은 수많은 형질을 숫자화해서 생물의 유연관계를 밝혔다. 그들은 분류학의 소양이 없었거나, 눈에 띠는 모양이 없는 세균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면서 생물에 대한 구체적인 상과 직관이 없더라도 객관적인 분류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마이어의 분노를 샀다. 마이어를 비롯한 진화분류학자의 분노를 산 이들로는 화학자인 라이너스 폴링과 칼 우즈도 있다. 라이너스 폴링은 제자인 에밀 주커칸들에게 영장류에서 헤모글로빈의 상동성을 비교하라는 과제를 줌으로써, 화학을 통한 분류의 문을 열었고, 칼 우즈는 RNA 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함으로써 세균이 한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그들은 마이어 등에게 ‘생물학도 모르는 이들’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분자분류학(molecular systematics)는 진화의 여정을 밝히고, 생물들 사이의 유연관계를 밝히는 기본적인 방법론이 되었다.
분류학의 마지막 여정은 분기학에 이른다. 빌리 헤니히(Willi Hennig)는 1950년에 ‘공유된 새로움'(분류학계에선 ‘공유파생형질'이라고 한다)만을 분류의 key로 삼아야 하고, 단계통만을 분류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생각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다가 20년이 지나서야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은 물고기를 죽였다. 물고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친숙한 생물들(정확히 분류군)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우리가 물고기라고 알고 있고, 말하는 것이 분기학에서는 단계통(monophyly)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캐럴 계속 윤이 이야기하는 ‘물고기의 죽음'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고, 이것을 룰루 밀러가 받았다.
캐럴 계속 윤은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 한다. 과학을 앞세워 우리의 직관을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제시하는 개념은 바로 ‘움벨트(umwelt)'다. 사실이 책의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움벨트'다.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저자가 삭막해진 과학적 분류학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도 바로 움벨트다. 독일어로 '환경, 주변 세계'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는 생물학자에게는 '지각된 세계'를 의미한다. 마치 에드 용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를 연상케 한다. 《이토록 굉장한 세계》에서는 다른 동물들의 지각을 다룬다면, 여기서는 인간의 지각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민족 간의 공통되거나 서로 다른, 생물에 대한 지각과 그에 따른 분류. 따라서 “생명의 세계 및 그 세계의 질서에 대한 지각“이라고 정의된다. 우리가 '물고기'라고 했을 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그것, 바로 그것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공유해왔고, 그리고 의사 전달에서 문제가 없던 그런 생물에 대한 상을, 현재의 분류학이 망가뜨려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 그래서 분류학은 일반인들에게는 멀어지게 되었고, 나아가 생물에 대한 우리의 접근성도 사라지게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자연과 생명을 보다 친숙하게 여기게 될 것이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이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캐럴 계속 윤은 스스로 밝히기를 이 책을 그런 의도에서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분류학의 계보를 밝히고, 그 위대한 승리에 대해서 쓰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조사해볼수록, 특히 민속분류학을 들여다볼수록 현대의 분류학이 가져온 삭막함을 깨닫게 되고, 생물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 자체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험실에서 분자분류학 연구로 과학에 발을 들인 저자로서는 의외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런 과정을 통해 과학을 시작했기에 다소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현재 거의 모든 생물학 교과서에 당연한 것처럼 쓰고 있는 분기학의 방법론과 결론을 마치 부정,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쉬움을 표하는 데 조금 반감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과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 무너뜨린 세계 역시 가치가 있다.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고, 또 그랬을 때보다 자연과 생명의 세계에 풍부한 인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취지로 이해한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분기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로 물고기를 죽였다고 하지만, 과연 그들이 물고기를 부인할까 하는 점이다. 어떤 과학자도 과학과 일상은 구분한다. 그러니까 폐어(lung fish)를 연구하고는, 이것은 분류학적으로 ‘어류'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물고기’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계통분류학적으로 저것이 공룡의 후손이라고 여기지만, 여전히 그들도(나를 포함해서) 새에 대한 관념 자체를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분기학자라고 하더라도 움벨트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캐럴 계속 윤이 얘기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것은 움벨트의 복원이 가져오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식의 고양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좀 과장되게 비판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 책은 분류, 분류학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고,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기도 하고, 또한 세계에 대한 인식이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게 읽는다면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