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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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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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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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잘 써보자고 읽고 있는 책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l*****j | 2021.05.02 리뷰제목
늘 쓰는 글이 책을 읽고 떠올린 생각이다보니 다른 사람이 책을 읽고 쓴 글에 조금 유별난 관심을 갖는다. 기존에 있던 책들을 주제로 쓴 책들이다. 그 중 특별히 좋아하는 책이 따로 있다. 작가의 생각이 풍부하게 담긴 책. 작가의 주장이 뚜렷한 책을 좋아한다. 게다가 글을 잘 쓰는 작가라면 금상첨화다.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뻐하며 한편 한편을 아껴가며 읽는다. 이런 책을 좋아하
리뷰제목

늘 쓰는 글이 책을 읽고 떠올린 생각이다보니 다른 사람이 책을 읽고 쓴 글에 조금 유별난 관심을 갖는다. 기존에 있던 책들을 주제로 쓴 책들이다. 그 중 특별히 좋아하는 책이 따로 있다. 작가의 생각이 풍부하게 담긴 책. 작가의 주장이 뚜렷한 책을 좋아한다. 게다가 글을 잘 쓰는 작가라면 금상첨화다.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뻐하며 한편 한편을 아껴가며 읽는다. 이런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그런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지루한 글이 아니라 새롭고 자극이 되는 글을 쓰고 싶어서다.

 

정희진 작가의 책이 그 중 하나다. 처음 만났던 책은 정희진의 독후감, <정희진처럼 읽기>다. 제목은 '읽기'지만 내용은 독후감이고 에필로그에도 독후감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는 의도로 생각 된다. 작가만의 독후감 방식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독후감 쓰는 방식, 그리고 잘 쓴 독후감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작가는 말한다. 좋은 독후감, 작가 자신이 쓰고 싶은 독후감은 다른 시각으로 읽음으로써 '없는' 내용을 만들어내는 방법, 즉 지면을 투사(透寫)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희진의 독후감이 흥미진진한 이유가 <정희진처럼 읽기>에 나온다. 작가의 글에는 책 내용 요약이 없다. 온전히 작가 자신의 생각으로 도배되어있다. 소개하는 책이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는데 작가가 하는 말은 분명하다. 메시지가 뚜렷하다. 이 점 때문에 작가의 독후감 책을 쭉 이어서 보고 있다. 이 책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를 최근 한편 한편 아껴 읽고 있다가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가 나온 걸 알고 바로 구입한 이유도 이런 작가의 독후감 방식 때문이다. 글쓰기 책이 아닌데, 내 글을 쓸 때마다 참고한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16쪽)

 

글을 쓸 때도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우선이다. 진정성이 느껴지고, 공감이 가는 글을 쓰려면 그래야 한다. 습관이 된 생각들을 풀어놓기보다 삶에서 길어올린 솔직한 글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글과 일상의 간격이 커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면 글쓰기가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만드는 것이 된다. 글을 쓰기 전과 후가 같을 수가 없다. 책을 읽을 때도 글을 쓸 때도 이런 전후 변화를 목표로 삼으면 읽고 쓰기가 무척 유익한 활동이 된다. 정희진의 책을 읽고 나면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글이 읽히지가 않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지은이를 알고 읽으나 모르고 읽으나 차이가 없는 글이다. 문장력 문제가 아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만큼 격렬하고 특이한인생도 없을 텐데, 저자의 경험과 캐릭터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글쓴이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나오는 전형적인 글이다.(78쪽)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를 사놓고 보니, 독후감 시리즈 첫 책인 이 책에 대해 리뷰랍시고 쓴 글이 없어서 꺼내봤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을 섣불리 건드리기 쉽지 않아서 쓰지 못했던 것 같다. 정희진 작가의 책에는 주례사 서평으로 접근하면 글로 뭇매를 맞을 것 같은 분위기의 글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어느 하나 진지하지 않은 글이 없다. 작가의 글을 읽어야 할 때라고 생각이 날 때마다 읽다보니 <나를 알기 위해 쓴다>도 아직 다 못 읽었다. 그러고 보니 다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한 글을 오늘 또 쓴 셈이다.

 

인간은 평생 자기 생각에 다다르지 못한다. 생각은 몸의 배신자. 늘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희망 사항)만 '앞서'간다. 오히려 사는 대로 생각해야 한다.  모든 망상, 이데올로기, 거대 관념이 무너질 것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아니라 삶 자체를 사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데 몸이 안 움직이는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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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그렇게 문득 평점8점 | s*****l | 2020.04.19 리뷰제목
블로그에 글을 쓴 지  꽤나 오래되었다. 책을 읽고 간단한 소회를 남기는 게 주목적이었으나 때로는 넋두리나 한탄에 가까운 글을 남기기도 하였고, 언론에 떠도는 온갖 잡다한 소식들에 대한 편향적인 찬사나 울분을 표하기도 하였고, 불현듯 떠오르는 추억이나 세상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그야말로 무익한 생각들을 두서도 없이 늘어놓은 적도 있다. 한마디로 글을 쓴 당사자인 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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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쓴 지  꽤나 오래되었다. 책을 읽고 간단한 소회를 남기는 게 주목적이었으나 때로는 넋두리나 한탄에 가까운 글을 남기기도 하였고, 언론에 떠도는 온갖 잡다한 소식들에 대한 편향적인 찬사나 울분을 표하기도 하였고, 불현듯 떠오르는 추억이나 세상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그야말로 무익한 생각들을 두서도 없이 늘어놓은 적도 있다. 한마디로 글을 쓴 당사자인 나조차도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듯한 잡글들의 나열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전보다는 글을 쓰는 횟수도, 쓰고자 하는 열정도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아무튼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는 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목적으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을 아니할 수 없다. 그에 대한 마땅한 대답은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말이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중 그 첫 번째인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는 여성학 연구자인 저자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끝없이 고민했던 흔적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가 주업이 아닌 나와 같은 일반인은 '나는 왜 쓰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 수는 있으나 내 앞에 놓인 다급하고 산적한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그와 같은 질문은 그저 뜬구름처럼 여겨지기 일쑤이고, 그런 까닭에 몇 날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하는 경우는 숫제 없지 싶은 것이다.

 

"나는 글쓰기의 '세 요소'가 정삼각형 같은 형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상호보완적이거나 대립하지 않는다. 핵심은 윤리다. 소재에 대한 태도와 글쓰기 방식이 정치적 입장과 미학을 결정한다.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의 핵심은 재현의 윤리이다." (p.15)

 

소위 글쓰기의 '3대 요소'라고 하는 정치학(입장), 윤리학(방법), 미학(문장)에서 저자는 글쓰기의 윤리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글을 쓰는 이의 자세와 맞닿아 있다. 자신이 '나쁜'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글을 쓰는 과정이 자신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고, 글쓰기는 곧 자신을 끝없이 성찰하는 검열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일종의 취미이자 유희인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글쓰기의 윤리는 다른 무엇보다 앞서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대답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한 인간의 됨됨이는 윤리라는 보편적 논쟁 앞에서 언제나 자의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 간의 소통이 sns를 통한 문자의 영역으로 전환된 요즘, 글쓰기는 몇몇 특정인의 영역으로 국한되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좋든 싫든 모든 이에게 강요되는 대중의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는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바로 문자화하는 이른바 '문자화 된 말'로서의 기능으로 전환되었다. 글을 쓰는 자신도 오타로 인한 웃지 못할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고, 잘못된 문장 구성으로 생각지도 못한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소통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글쓰기가 음성언어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끝없이 속도를 추구하다 보니 빠른 글쓰기의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기도 하고, 과거 글쓰기의 장점이었던 깊이 있는 사고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1장 '윤리학과 정치학은 글쓰기의 핵심이다', 2장 '당사자의 글쓰기는 혁명의 꽃이다', 3장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의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김형경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필두로 제러미 리프킨의 <생명권 정치학>,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 기형도의 <기형도 산문집>, 켄트 너번의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크리스토퍼 레인의 <만들어진 우울증>, 일연의 <삼국유사>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책들은 주제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하게 인용되고 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눈에 띄었던 <기형도 산문집>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희망을 부숴야 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여행기는 "희망에 지칠 때까지 지치고 지쳐서 돌아오리라"였다. 흔히 회자되는 루쉰의 말도 희망에 대한 긍정이 아니다. "땅 위에 길이 없는 것"처럼 원래 희망도 없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면 길이 만들어진다는 실행의 고단함을 강조한 말이다. 희망은 삶에 대한 특정한 사고방식을 집약한다. 미래 지향, 긍정, 바람… 사람들은 이 말을 편애한다. 희망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표현 그대로 생각하면 절망(切望)이 희망적이다. 절망은 바라는 것을 끊은 상태, 희망은 뭔가 바라는 상태.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 (p.93)

 

나는 예전의 어느 글에서 '희망'은 '생명이 유한한 자의 조급함'이라고 쓴 적이 있다. 용어에 대한 정의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이지만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영원히 산다고 믿는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는 단어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 아닌가.'라고 썼던 기형도 시인의 정의와 '시는 어쨌든 욕망이었다.'는 그의 고백은 29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던 시인의 입장에서 충분히 표현 가능한 정의이자 고백이었을 터, 삶은 이렇게도 다채롭다는 걸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읽었던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밀린 숙제처럼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무한반복의 질문지가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길을 걷고 있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며 카페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어느 시인의 산문집에서 읽었던 모호한 의미의 문장을 떠올리면서 나는 문득 '나는 왜 쓰는가?' 하고 생각할 뿐이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그 시간 동안 행복했었다는 고백을 댓글에 쓸 거라는 기대는 애시당초 없었지만 내 글로 인해 생각할 거리를 얻었다거나 내 글로 인해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고백은 듣고 싶기도 하다. 비가 내리는 초저녁의 바깥 풍경을 보면서 오히려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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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 정희진 평점8점 | c****s | 2020.05.31 리뷰제목
책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지만, 책 제목이 기왕에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인 만큼, 나는 왜 쓰는지에 대해 너무 진지하지 않은 정도로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전에 읽었던 조지오웰의 책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글을 쓰는 이유 네 가지를 말한다. 어떤 형식이든 모든 글쓰기의 목적은 이 네 가지 범주에 다 들어간다고 보면 된단다.  그 네 가지는 돋보이고 싶은
리뷰제목

책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지만, 책 제목이 기왕에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인 만큼, 나는 왜 쓰는지에 대해 너무 진지하지 않은 정도로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전에 읽었던 조지오웰의 책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글을 쓰는 이유 네 가지를 말한다. 어떤 형식이든 모든 글쓰기의 목적은 이 네 가지 범주에 다 들어간다고 보면 된단다.

 

그 네 가지는 돋보이고 싶은 욕구, 미학적 열정, 무언가 남기려는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다. 정치적 목적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돋보이고 싶은 욕구와 미학적 열정은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 무언가 남기려는 충동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조지오웰이나 또는 그의 글을 <표현의 기술>에서 소개했던 유시민은 그들 자신도 인정했듯 정치적인 목적의 글을 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의 저자인 정희진 작가의 글도 정치적이다. 그가 책에서 그리고 책의 제목에까지 붙인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는' 의도나 행위 모든 것이 조지오웰이 언급한 정치적 목적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나처럼 독서 후 감상 정도를 쓰는 사람은 아무리 마음이 있더라도 '정치적 목적'의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글이 노출되는 정도나 글쓰기 기술과 능력이 한참은 모자라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는 말 그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쓰기 능력이 있어야 하고 정치적 신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수반되어야 가능한 영역이다.

 

나의 경우에는 조지오웰이 말한 글쓰기 목적 네 가지가 모두 조금씩은 해당된다. 돋보이고 싶은 욕구로 글을 쓰지는 않지만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교해지고, 논리가 풍성해지면서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거기에 부가적으로 미적 욕구와 돋보이고 싶은 욕망, 정치적 목적도 일부 포개지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가장 즐겁고 저릿한 순간이 어느 때인가? 나는 책을 읽을 때 적확한 표현과 문장, 군더더기 없이 맵시 있게 잘 빠진 글을 보면 최고 수준으로 고양된다. 그리고, 그런 문장은 세상의 무엇보다 미적 완성도를 가진다고 느낀다. 나는 그 수준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아주 가끔은 내가 과거에 쓴 글이 나 자신을 고양시키기도 한다.

 

글을 읽고 쓰면서 생각과 태도를 가다듬는다. 글과 행동은 물론 다르다. 글을 쓰게 되면 글처럼 행동하게 될까? 글에라도 정치적 올바름을 표현하며 일종의 행동하지 못하는 죄책감을 덜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작가 은유의 말이 생각난다. 글을 쓰게 되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내가 쓴 글이 나를 행동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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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여성주의 글쓰기의 윤리 평점10점 | a*******5 | 2021.05.13 리뷰제목
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읽는 것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편견을 깨준 책이 저자의 서평, 독후감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새가 없다. 아니, 오히려 긴장시키는 책이다. 만나는 구절마다 기존의 통념을 부수고 우리 사회현실의 빈틈을 헤집어 드러내기 때문이다. 독후감/서평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라는 신선함과 읽는 즐거움, 무엇보다 배울 게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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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읽는 것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편견을 깨준 책이 저자의 서평, 독후감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새가 없다. 아니, 오히려 긴장시키는 책이다. 만나는 구절마다 기존의 통념을 부수고 우리 사회현실의 빈틈을 헤집어 드러내기 때문이다. 독후감/서평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라는 신선함과 읽는 즐거움, 무엇보다 배울 게 많아 좋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도 찾아 읽고 싶고, 이 책도 두고두고 다시 읽으며 나와 우리 사회,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재작년 영화로 보고 나서 궁금증이 들어 책으로 찾아 읽고 다시 영화를 본 소설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집사 스티븐슨은 집사의 자격 중 하나로 품위를 꼽으면서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왜 그리 초라하던지 그가 말하는 품위가 차라리 허세에 가깝다고 느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와 관련하여 품위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로 나를 일깨워준다.

 

품위는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약자에게는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나의 무기는 나에겐 있되’, ‘에겐 없는 것, 바로 글쓰기다. ‘적들은절대 가질 수 없는 사고방식, 사회적 약자만 접근 가능한 대안적 사고, 새로운 글쓰기 방식,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만 보이는 세계를 드러내는 것. …… 그것이 품위 있게싸우는 방법, 글쓰기다.” (14p)

 

 글쓰기라고 하면 흔히 어떻게 하면 잘 쓸까 고민하는 데 그치기 쉽다. 저자는 글쓰기의 ‘3대 요소정치학(입장), 윤리학(방법), 미학(문장)이고, 그중에서 핵심은 윤리라고 한다.

 

핵심은 윤리다. 소재에 대한 태도와 글쓰기 방식이 정치적 입장과 미학을 결정한다.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의 핵심은 재현의 윤리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듣는가. 누구의 목소리가 큰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인가. 사회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이러한 권력 관계의 동학은 교육 현장, 출판 시장, 미디어 같은 구체적인 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글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15p)

 

 그러면서 저자는 윤리적인 글의 핵심은 다루고자 하는 존재(소재)를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며, 글을 쓰는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것이며, “재현 주체와 재현 대상의 권력 관계를 규명하고, 다른 관계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여성주의 글쓰기가 왜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글을 쓰면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내가 변화해야 할 지점을 인식할 수 있고, 재구성할 부분이 생긴다는 것엔 실감한다.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은 한 몸을 이루는 정신과 육체 같아서 글을 쓰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삶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쁜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16)

 

 “주장할 것이 없는 사람, 주장이 없어도 되는 사람은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안주 상태에서는 참된 문학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그뿐이다.” (90p)

 

 “글과 글쓴이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다정하지 않다. 가까울수록 적대적이다. 외면, 길항, 동일시 ……. 당사자가 자기 현실을 쓰려면 공감받기 어려운, 헤쳐도 헤쳐도 계속 달려드는 칡넝쿨을 쳐내야 한다. 타인의 경험은 보이지만 내 경험은 나조차 믿어지지 않는다.”(116p)

 

“‘이야기는 곧 읽기와 쓰기. 반응하지 않는, 감정 이입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149p)

 

  주변에서 보면 자기 생각과 영혼이 없는 글을 보편적이라거나 객관적이라며 발표한다. 사실 부끄럽게도 그동안 써온 내 글도 그런 축에 속하려 애썼다. 게다가 사적인 이야기는 드러내기 꺼림칙해서 두루뭉술하게 포장하기 일쑤였으니 이래저래 발전이 없다. “무지와 편견의 보호 속에서살아온 시간이 만만하지 않아 글쓰기에서도 나를 소외시키곤 한다. 저자의 글쓰기의 윤리에 대한 관점은 이런 나에게 또 다른 차원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걸 절감하게 한다. 책 속에 좋은 내용과 통찰이 많은데 아쉽게도 글쓰기에 관한 부분만 일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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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괴롭지만 좋은 거 평점10점 | d****4 | 2020.04.20 리뷰제목
괴롭지만 좋은 거지지 않으려는 마음처럼 읽다보면 마음이 가열해진다.읽으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자칫 정신이 풀리면문장의 뜻이 의미로 바로 안 온다.집중해서 읽는다.왜 이렇게 더워지지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분명 설렘은 아닌데즐거움도 아닌데기쁨도 아닌데좋은 거다.다 좋다고는 못해도 좋은 거다.깊이 깊이 가열히옷깃에 스미는 땀이어라[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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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지만 좋은 거
지지 않으려는 마음처럼 읽다보면 마음이 가열해진다.

읽으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
자칫 정신이 풀리면
문장의 뜻이 의미로 바로 안 온다.
집중해서 읽는다.

왜 이렇게 더워지지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분명 설렘은 아닌데
즐거움도 아닌데
기쁨도 아닌데
좋은 거다.

다 좋다고는 못해도 좋은 거다.

깊이 깊이 가열히
옷깃에 스미는 땀이어라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가능성뿐이다. 생사의 갈등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개 제시되어야 할 것은 미지라는 기대가 있는 사회다.]

[마음이 없다? 문자 그대로 말하면 물리적으로는 심장이 없는 죽은 사람이요, 기능상으로 뇌(생각)가 없는 사람이다.]

[초파리가 말했다.
"너희가 볼 때 우리가 똑같이 생긴 것 같지? 우리가 볼 땐 너희도 그래." ]

['좋은' 세상에서는 '나쁜' 사람이 잘 드러나지만 나쁜 세상에서는 '악'을 구별하기 어렵다.]

[희망은 바라는 것이므로 어차피 현재에는 없다.
.....
나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 치유라고 생각한다.]

[안녕과 평화, 그런 것은 원래 없다.]

[공부의 필요와 의미는 스스로 정하는 권리다.
....
장애인이나 여성이 자기 언어를 지니는 것은 지식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전복적인 행위다. 사회적 약자에게 공부는 ...자신의 삶과 불일치하는 기존의 인식체계에 도전하는 무기가 된다.]

[글과 글쓴이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가까울수록 적대적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몸들이다.
몸의 다름이 정치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지은이의 독후감도 독후감이지만
이 문장들이 옷깃에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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