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의 나는 에세이를 즐겨읽는 편이 아니다. 그저 기분전환의 개념으로 찾아보는 정도. 그런데 이 책은 제목을 보고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였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그렇다. 평일도 인생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건 그 앞에 붙은 단서때문이였다.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작가님이 그러했듯 나도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꽉 막힌 도로위에서 보내는 시간을 힘들어한다. 그리고 흔히 그런시간을 "버렸다"고 표현한다. 그런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내 사고의 흐름은 '이 시간이면 OO을 더 할 수 있는데' 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건 이런 시간들이 쓸데없이 허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도 내 시간의 일부인데 도착만을 생각하니 그 외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으로 치부되는것이다.
그런데 평일은 그것보다 더 처우가 좋지못하다. 그저 주말이 오는걸 방해하는 벌칙 같은 시간으로 간주되니까. 평일도 인생이라는 말대로라면 나는 월화수목금이라는 내 인생의 시간을 버린다고 표현하며 지우고 살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신이 번쩍들었다. 그 속에 포함된 내 소소한 행복의 시간까지 잊혀지고 버려졌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삶에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도 있다. 기다리거나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p. 97)
평일이라는 이유 하나로 스트레스만 받지말고, 그 속에서 즐길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보는것도 하나의 방안이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매일 나가는 점심 산책을 내일은 또 어떤 코스로 나가볼까 하는 고민도 해보고, 내일은 어디 아메리카노를 마셔보지 등등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내가 꽤나 좋아하는 일들이다.
어떻게 버틸지 고민할게 아니라 내일은 뭘 해보지. 라고 바꿔 생각하기로 하니까 내일 점심 산책이 평소보다 더 기다려지니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당장 내일부터의 평일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시간을 이제 내 인생에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치부하지 않기로 결심한것만으로 큰 의미를 두고자한다.
'학창시절'하면 떠오르는 게 방학의 어느 날이 아닌 친구들이랑 놀던 학교 안에서의 모습이었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평일을 매일 충실하게 보내자고 써둔 책 같지만 전혀 아니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항상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모두가 큰 꿈을 좇으려 할 필요는 없다고
날 좋은 날에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마시려면 역시 열심히 일해야겠어!" 정도의 열심히면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소소한 두세 가지가 있으면, 그걸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황금연휴인데 뭐 하냐고 어디 여행 갈 것 같지는 않은데
라는 친구들의 물음에 이번 연휴에 읽을만한 좋은 책을 찾았다고 제목은 <평일도 인생이니까>라고 대답했다.
다들 뼈 때리는 제목이네라고 같은 반응을 했다.
사실 나도 제목에 흠칫하고 고른 책이기도 하고.
제목이랑 에세이라는 정도만 알고 고른 책이라
무슨 내용일까 배송되는 동안 생각해보다가
도착하고 얼른 목차를 펴봤다.
4개의 파트로 나눠져서 작가의 생각을 엮어둔
어찌 보면 전형적인 에세이
때마침 제목과 같은 파트가 있고,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 파트 2부터 폈다.
내가 버리고 있는 평일에 뭔가 획기적인 게 있나 싶어서, 궁금했으니까.
잎을 다 떨군 나무에게 겨울은 버리는 시간일까?
벚나무는 꽃이 지고 난 뒤 사람들이 무슨 나무인지도 몰라주는
나머지 세 계절을 버리며 살까? 그렇지 않다.
벚나무는 한 철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인생은 수많은 월 화 수 목 금 토 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그 주말 나는 꽉 막힌 도로에서
봄의 한나절을 지켜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적어도 이 제목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이것인듯하다. 그리고 이걸로 왜 주말만 기다릴 필요가 없는지 깨닫게 됐다고 하면 좀 오버하는 것 같기는 한데...
애초에 책 제목에 정곡을 찔린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평일은 주말의 즐거움을 위해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부분만 인생이고, 나머지 시간은 다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평일 안에서도 일을 하기 위해 가는 출근길에서의 시간, 퇴근길에서의 시간.
휴일에 공연장 등을 가기 위해 지하철이나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 등은 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듯하다.
여행을 갈 때는 여행 자체도 즐겁지만 여행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계획을 짜고, 공항에 가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지까지 날아가는 시간마저도 모두 즐겁다. 여행에서 당연시되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좀 더 즐거워질 수 있을 것 같다.
한 달 뒤면 더는 "거기 갈까?" 하고
슬리퍼 차림으로 둘레둘레 찾아갈 수 없는 곳들.
곧 떠나게 될 거라 생각하니,
새삼 이 동네의 모든 것이 애틋해졌다.
이사를 하고 문득 그 동네를 기억해보면, 사실 주말에 놀았던 기억이 아니라 아침마다 들렀던 편의점, 점심에 자주 가던 식당이나 카페, 저녁에 과식하고 나면 가던 나만의 산책코스 등이 훨씬 생각난다.
나는 대학교를 집에서 먼 곳으로 가는 바람에 거기서 6년을 살았었는데, 당시에는 주말만, 방학만 기다렸는데
지금 와서 내 대학생활에 대해 돌이켜보면 주말의 특별한 일은 그다지 생각나지 않고, 내가 좋아했던 카페나 크게 맛집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리 과 사람들한테는 무척 인기 있던 짜장면 집, 터미널에서 자취방으로 가는 버스 같은 게 떠오른다. 물론 당시에는 너무 지긋지긋해서 방학까지, 졸업까지 얼마나 남았나 디데이 설정을 해놓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사나 이직 등의 이유로 당연했던 내 일상의 반복이 끝나게 되면, 그때야 그 일상이 내 기억에 가장 남아있는 애틋한 기억이 되어 내 인생이었구나. 하는 것이다.
나보다 어린 나이의 누군가를 보며
'좋을 때'라고 생각할 때,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 사람의 지금이 아니라,
그 나이 때의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다.
저 좋은 나이에 좋은 줄 몰랐던 나.
일흔의 할머니가 쉰의 아주머니에게 말한다.
좋을 때라고.
하물며 내년의 내가 보면
올해의 나는 얼마나 좋을 때를 보내는 걸로
보일까 싶어졌다.
좋을 때다.
좋을 때는 언제일까 5년 전? 10년 전?
지금이 얼마나 좋은 때 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 하며, 주말만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마흔 살이나 쉰이 됐을 때, 10년 전인 좋을 때의 지금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시간이라는 것.
내인생의 좋을 때인 지금 주말만 기다리면서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는걸.
정말이지 반복되는 평일도 인생이니까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