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잘한 마트료시카들의 준엄한 도열 사이로 이런 나도 주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떠올랐다. 주(酒)류 작가가 되는 것이다..(중략)..술책을 쓰는 술책을 쓰자. p.6
아니, 이런 언어 유희라니, 주류(主流)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술(酒)책을 쓰는 기발한 술책(術策)으로 ‘주(酒)류 작가’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저자는 이렇게 <아무튼 술>이라는 주책(酒冊)을 풀어놓았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나만의 아무튼’이라는 주제로 저마다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당시 <아무튼 술>이라는 책이 이미 발간되었음에 아쉬워하고 심지어 억울해하던 (“나는 정말 쓸 이야기가 많단 말이야!”) 친구들을 보며 아니 ‘술’ 이야기로 할 말이 그렇게나 많다고? 갸우뚱했더랬다.
일단 ‘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각은 ‘쓰다’ 인데다 (물론 드물게 달달한 와인을 홀짝이기도 하지만) ‘술’과 얽힌 기억들은 대부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흑역사와 함께 심한 두통을 선사하곤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껏 내가 마신 술들을 꼽아보면 절반 이상, 아니 절반이 무언가 3분의 2를 넘어서는 시간들이 ‘업무’와 관련된 것임을 떠올려 보면, 정신력으로 버텨낸 (덕분에 회사에서는 나름 주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 기억들에 내 자신을 토닥이고 싶어진다.
술이라면 내가 20년 동안 그 무엇보다도 가장 꾸준하고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해온 게 아닌가. 반평생에 걸쳐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것도, 가장 많이 몸 속으로 쏟아부은 것도 술이었다. p.6
그런 술을 꾸준하고 성실하고 게다가 열정적으로 사랑하기까지 한다는 저자의 고백이 내게 와닿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술’이 사람을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하긴 그런 이유로 술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술자리를 기웃거리거나 안주를 축내며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것일테다.
술은 나를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딴청 피우지 않게, 별것 아닌 척하지 않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채로 받아들이고 들이밀 수 있게. p.7
수능 100일 전의 ‘백일주’로 시작된 이 책에는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술 (과 연관된) 이야기들이 담겨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술’에 진심인 (단순히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 이쯤 되면 나도 한잔 마시면서 책을 읽어야 하나, 조금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술에는 맛도 있고 향도 있지만 소리도 있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술이 내는 소리까지도 사랑한다. 캐럴라인 냅이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책에서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를 사랑한다고 말한 것처럼. p.15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소주병을 따고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소리다.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은 이 청아한 소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까지 맑아진다. p.15
아니, 술을 따르는 그 순간의 소리를 이렇게나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니, 술이 내는(?) 소리까지 사랑한다는 저자의 술 사랑에는 그저 감탄할 뿐이다.
물론 술 이야기에서 ‘주사’를 빼놓을 수도 없는 법이어서, 백일주를 마시고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고백한 이야기(과연 저자는 자신을 ‘무엇’이라 이야기 했을까요 )라든가, 술 마시고 사온 약과를 약이니까 약통에 넣어두었다는 이야기, 노래방 리모컨의 새로운 활용법에서는 나도 모르게 낄낄 거리며 웃음을 토해내고 말았다(자세한 이야기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책에서 직접 만나보시기를 바라며).
자, 이제 술 마시러 나가야겠다! p.69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까지 ‘술’이라는 주제가 책 한권을 제대로 관통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김혼비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중독성 있는 글을 만나고 나니 다시 한번 저자의 글을 만나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아무튼 술>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살짝 알딸딸하게 그녀의 글에 취한 듯 싶다.
*기억에 남는 문장
나는 어려서부터 힘내라는 말을 싫어했다. 힘내라는 말은 대개 도저히 힘을 낼 수도, 낼 힘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서야 다정하지만 너무 느지막하거나 무심해서 잔인하게 건네지곤 했고, 나를 힘없게 만드는 주범인 바로 그 사람이 건넬 때도 많았다..(중략)..힘내. 힘들겠지만 어쨌든 알아서, 힘내. 세상헤 “힘내”라는 말처럼 힘없는 말이 또 있을까. p.25
엷은 취기가 몸 전체에 번지는 동안 하늘과 바다 위로 밤이 찾아왔다. 바다는 검은 유약을 바른 도기처럼 빛났고, 하늘은 누군가 허공으로 내던진 목걸이가 구름에 부딪히며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 보석 알 같은 별들로 빛났다. p.28
써 온 글에, 타인의 글을 읽어내는 방식에, 자주 쓰는 표현에, 좋아하는 문장에, 사람들의 성향과 성격이 지문처럼 묻어났다. p.32
공간 전체에 거대한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가 예어낸 것 같은 방이었다. 군데군데 벗겨지고 빛바랜 색깔들이 가득한 방. 유일하게 스카치테이프를 피한 곳은 책장이었다. p.34
문을 닫으면 저편 어딘가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 없다. p.36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가지 않은 미래가 모여 만들어진 현재가 나는 마음에 드니까. p.36
‘가급적’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하지 말라’는 말을 꾸며주는 척 하지만 슬그머니 ‘해도 된다’의 편도 들어주니 말이다. p.38
혹시 나처럼 현실적인 여건이 여의치 않고 통이 크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어떤 세계를 피워보지도 못하고 축소해버리고 마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만큼은 꼭 말해주고 싶다. 살면서 그런 축소와 확장의 갈림길에 몇 번이고 놓이다 보니, 축소가 꼭 확장의 반대말만은 아닌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되었다. 때로는 한 세계의 축소가 다른 세계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확장이 돌발적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축소해야 할 세계와 대비를 이뤄 확장해야 할 세계가 더 또렷이 보이기도 한다. pp.53-54
그러니 작은 통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들이여,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때로는 나의 세계를 좀 줄이는 것도 괜찮다. 축소해도 괜찮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는 않으니까. 감당의 깜냥은 각자 다르니까. 빛내서 하는 여행이 모두에게 다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p.54
그렇게 시원소주 한 병 반과 냉채족발 소짜 한 접시를 말끔히 비우고 일어서며 안 먹고 갔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언제 또 마주칠지 모를 사람들 때문에 언제 또 마주칠지 모를 냉채족발과 반주를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 p.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