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구아포, 미 소플레테, 하비비, 나의 카나딤, 나의 하야티.
‘미 구아포’는 ‘나의 멋쟁이’, ‘미 소플레테’는 ‘나의 횃불’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하비비’는 ‘내 사랑’이라는 뜻의 아랍어래요. ‘카나딤’은 아마도 ‘날개’, ‘하야티’는 ‘생명력’을 뜻하는 터키어에서 따온 애칭일 거라네요. 이 모든 사랑스러운 단어 앞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에요.
편지를 쓴다는 행위가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기록되는 걸 두려워했거든요. 영원의 약속이 깨지는 것까진 괜찮아요. 그러나 나 자신이 여러 번 번복되다 보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지죠. 선물할 때 나는 내 이름으로 서명하지 않고 ‘2020년 2월 1일에 당신을 사랑하는 친구로부터’와 같이 적곤 했어요.
어쩌면 영원의 약속을 두려한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실은 이름 없는 이 문장만으로 나를 떠올려주길, 나의 생김새와 나의 표정과 나의 분위기가 당신을 휘감길, 그렇게 영원이 존재하길 바라는 욕심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죠. 나는 언제나 욕심이 많았으니까요.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존 버거의 『A가 X에게』라는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연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소개하기도 했죠. 옛 교도소 73호 감방의 수납 칸에서 발견된 세 개의 편지 뭉치를 엮은 책이에요.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이중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비에르가 수감되어 있던 곳이죠. 사비에르는 그의 연인 아이다가 보낸 파란색 편지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정리해두었고, 편지 뒷장에는 메모를 하기도 했어요. 작가는 아이다가 보내지 않은 편지까지도 비밀의 경로로 구해서 적당한 위치에 끼워두었다고 해요. 그런 편지 말미엔 괄호 안에 ‘보내지 않은 편지’라고 적혀 있어요.
편지 뭉치를 묶은 천 조각에 적힌 글들이 재미있어요. 첫 번째 편지뭉치엔 ‘우주는 기계가 아니라 뇌와 비슷하다. 삶은 지금 말해지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다. 최초의 현실은 이야기다. 이것이 내가 기술자로 지내며 알게 된 것이다.’ 두 번째 편지뭉치엔 ‘우리는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다ㅡ우리는 그것을 지켜 준다.’ 마지막 세 번째 편지 뭉치엔 ‘집 땅'이라는 두 단어가 적혀 있었대요.
처음엔 이 소설을 구상하는 작가를 상상했어요. 편지를 쓰고, 편지뭉치를 흩트리고, 요리조리 배열하는 작가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덧 영국의 중년 남성 작가는 사라지고 아이다란 가명을 지닌 단호한 눈빛의 여인이 앉아 있어요. 오감의 감각을 그림 그리듯 표현하는 여성이죠. 어느새 나는 감옥에 갇힌 사람이 되고, 편지를 쓴 여인을 사랑하게 돼요. 멋진 경험이었어요. 나는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줄 알았거든요.
코기토, 에르고 숨.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라틴어에요. 데카르트가 한 말이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사비에르의 메모 중 이스라엘의 항공보안전문회사 SDS에서 제조한 ‘코기토 1002’가 언급돼요. 몇 가지 질문에 따라 손의 생체반응이 기록되고, 이 사람이 주의인물인지 아닌지 밝히는 기계죠. 이름이 ‘코기토’라는 게 아이러니컬할 뿐, 사비에르는 교도관이 좋아할 기구라고 냉소적으로 말해요. 나는 이와중에 내가 코기토라는 단어를 알고 있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자랑스러웠어요. 넌지시 건넨 비밀스러운 눈짓을 알아챈 기분이랄까요. 당신이 알려준 단어잖아요.
나는 성당이나 절이나 교회나 성스러운 장소에 갈 때면 두 손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시늉을 내며 눈을 감곤 했죠.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와요.
ㅡ부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건 누구일까요? 나는 알고 있어요.
함께 바다에 가고 싶어요.
당신의 Y.
(보내지 않은 편지)
A가 X에게 쓴 편지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되었다. X는 73호 감방의 마지막 수감자였다. 그는 반정부 테러조직 결성 혐의로 이중 종신형을 받았다 (죽어서도 생애 나이만큼 시신이 감금된다.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탈출할 수 없다는 것). X가 복역 중 받은 편지 뭉치는 날짜순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 의해 섞여있었는데, 그 편지들을 발견한 작가 존 버거는 책의 서문에서 이 편지 뭉치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수록했음을 밝힌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독자는 생각하게 된다. A와 X,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실재했고 편지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사실인 것일까, 하고. 존 버거는 뚜렷이 밝히지 않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허구와 진실이 만나는 지점, 날짜가 뒤죽박죽인 편지 한 장과 한 장 사이의 이야기를 메꾸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편지글 형식은 이제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유독 특별한 것은 한 쪽으로 전해진 편지만을 담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교도소 안에서 편지 뭉치를 발견했다는 서문 (이야기의 테마)에서 기인한 듯 보여지는데, 이런 형식이 오히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편지 뭉치 속의 A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다. 그러나 X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A의 편지글 마지막에 남긴 작은 메모뿐이다. 게다가 메모는 A에게 전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세계를 비판하는 독백에 가깝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일방적으로 한쪽에 전해지는 편지를 보고 있으나, 편지는 우리 눈앞에서도 계속해서 진심을 담아 ‘답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침묵은 언제나처럼 압도적이죠. 내가 받는 것은 당신의 응답이 아니에요. 있는 건 항상 나의 말뿐이었죠. 하지만 나는 채워져요. 무엇으로 채워지는 걸까요. 포기가 포기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걸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두려움도 없을 거예요, 야 누르, 사랑해요.”
소설로 씌어진 편지 속엔 두 연인이 함께 했던 추억과 사랑의 언어들이 아름답게 춤추고 있다. 잊을 수 없는 문장을 한가득 담다보니, 작가가 쓴 언어들이 놀랍도록 달콤해서 순간 그들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잊어버릴 정도였다. '부재는 무가 아니'고 '당신과 나는 연결되어 있다'며 굳건하게 상황을 견디는 A의 모습은 가슴을 벅차게 만들고, 뒤이어 튀어나오는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들과 대비되어 감정을 극대화한다. 세계화와 자본주의, 가난과 불평등, 국가의 폭력과 압제에, 그들은 사랑으로 저항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강력하다.
특히 편지 속에서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함께 그 세계를 견디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바라보고, 눈앞에서 국군에게 총탄을 맞고, 함께 노래하고 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A와 X처럼, 저마다의 추억과 사랑과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하여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과 손을 잡으며 비극을 헤쳐나간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부수고, 수색하고, 탐문하고, 경고하고, 명령하는 세력들이 탱크를 몰고 공장으로 쳐들어왔을 때, 모두가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강철판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탱크를 몰아내는 장면. 거리에선 총소리가 들리고, 달아나던 누군가가 살해를 당한 것을 짐작하지만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는다.
잊을 수 없던 문장과 장면의 여운이 옅어질 때쯤, 이 책을 또다시 읽겠다고 다짐했지만 아마도 오랜시간이 걸릴 것 같다. 여운은 좀처럼 옅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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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영원한 것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옳아요. 영원한 것은, 독방에 갇힌 당신과, 여기서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당신에게 피스타치오와 초콜릿을 보내는 나를 필요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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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당신에게 이중종신형을 선고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은 믿지 않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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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가 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거기에 대해선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가끔씩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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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죠, 마치 코끼리들이 긴 코로 물을 뿌리며 서로를 씻어 줄 때처럼요. 우리는 멈추지 않았고, 점점 더 미친 듯이 과장된 소리를 질렀어요. 왼팔을 긴 코처럼 내젖는 두 마리의 코끼리! 그러는 동안, 우리 둘은 각자의 수감 시절을 떠올렸고, 그 시절 농담과 함께, 우리가 연기(演技)하고 있는 건 해방의 꿈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맞아요, 미친 거죠. 무엇보다도 그 광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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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 갇힌 당신은 거리를 뛰어넘을 수 없죠. 아주 짧은 거리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생각할 수 있고, 온 세상을 가로지르며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고, 그렇게 거리를 뛰어넘는 것이 내 인생의 일부예요. 당신의 생각과 나의 여행, 그 둘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죠. 생각과 확장은 똑같은 무언가의 부분들이에요. 하나의 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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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는 동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모든 고통은, 어느, 시점에는, '아니요'라는 단어로 흘러갔다가, 다시 계속돼요. 마찬가지로 모든 즐거움은 '네'라는 단어로 흘러갔다가 계속되죠!
당신에게 나는 '네'라고 말해요.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 삶에 대해 나는 '아니요'라고 말하죠. 하지만 나는 그 삶이 자랑스럽고, 우리가 한 일이 자랑스럽고, 우리가 자랑스러워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제삼자가 돼요, 나도 당신도 아닌, 그리고 당신도 똑같이 제삼자가 되죠. 그 어떤 '네'나 '아니요'를 넘어선 곳에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