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공유하기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리뷰 총점 9.6 (672건)
분야
에세이 시 > 에세이
파일정보
PDF(DRM) 116.11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300건) 회원리뷰 이동

종이책 구매 또 한명의 명랑한 은둔자_074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평점8점 | w*****y | 2021.11.14 리뷰제목
“저는 약속이 취소되면 마음속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가끔은 그게 나라는 인간의 본질인 것 같다. p.15      친구도 좋고 피자도 좋고 노래방도 좋은데 어째서 친구와 피자를 먹고 노래방에 가기로 한 약속이 깨지면 미안할 정도로 기쁜 걸까? 원하는 만큼 충분히 혼자 있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톨이가 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리뷰제목

   “저는 약속이 취소되면 마음속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가끔은 그게 나라는 인간의 본질인 것 같다. p.15

 

   친구도 좋고 피자도 좋고 노래방도 좋은데 어째서 친구와 피자를 먹고 노래방에 가기로 한 약속이 깨지면 미안할 정도로 기쁜 걸까? 원하는 만큼 충분히 혼자 있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톨이가 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모순이 궁금했다. p.16

 

날이 궂은 것도 아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싫은 것도 아닌데 약속이 취소되면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는 대목을 읽으며 얼마 전 읽은 캐롤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떠올렸다.

 

   저녁 약속이 일주일 뒤로 다가온다. 마음 한구석에선 가고 싶으면서도, 나는 빠져나갈 계획을 짠다. p.15 

<명랑한 은둔자(캐롤라인 냅)> 중에서

 

외롭지만 혼자 있고 싶고, 혼자가 좋다 하면서도 사람들의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하지만 왠지 알것만 같은 그 느낌. 캐롤라인 냅의 글에서 나의 모습을 엿보았던 순간이 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그리고 문장을 읽는 순간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하현 역시 명랑한 은둔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듯 하다(어쩌면 내가 가장 늦게 합류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행복하게 혼자이고 은둔하는데 명랑한, 외톨이가 아닌 채로 혼자일 수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서로 닮았다 한들 모임을 만들기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

   이 말을 다시 들어보라. 산뜻하고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p.41

 

   행복하게 혼자라고? 은둔하는데 명랑하다고? 그런 모순이 어딨어! 그건 불가능해! 안타깝게도,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p.41

<명랑한 은둔자(캐롤라인 냅)> 중에서

 

   외톨이가 아닌 채로 혼자일 수 있는 사람.

   약속이 취소되면 나는 함께라는 가능성을 가진 채로 기쁘게 혼자가 된다..(중략)..친구도 피자도 노래방도 좋지만 그게 조금 더 좋을 때가 있다. 그 안전한 고립감이 너무 달콤해서 들키지 않게 조용히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창밖은 푸르고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어느 맑은 날에. pp.18-19

 

하현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어딘가 눈에 익는다 생각했는데, 몇 해 전 달의 조각으로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글을 읽으며, ‘조금은 과한 감성과 건조함이라는 상반된 느낌을 준다 적어두었었는데, 다시 만난 그녀는 좀 더 담백하고 편하게 말을 건네온다.

 

   이 책은 내게 조금 과한 듯한 감성과 건조함이라는 다소 상반된 느낌으로 남아있다. 한껏 넘칠 듯한 감정에 오글거리려는 두 손을 꼭 쥐어야 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 냉정한 시선으로 돌아와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보듯 이야기를 건넨다.

달의 조각을 읽고 남긴 글http://blog.yes24.com/document/11270440 )

 

그간 그녀의 글이 바뀐 것인지 내가 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둘 다 변한 것일 수도) 이왕이면 둘 다 조금은 좋은 쪽으로 단단해져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건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자꾸만 그녀의 글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거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고요해질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p.33

 

   이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보다 스스로의 유일무이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 더 두렵다. 내 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든, 그들이 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든 내가 되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어떤 아픔과 슬픔은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고, 어떤 문제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p.79

 

 

   그래서인지 친구를 사귀는 일에 서툴렀다. 필사적인 노력 끝에 어찌어찌 무리에 섞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지내다 보면 묘하게 겉도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묘하게 겉돈다는 건 무엇인가. 공적인 친분을 사적인 친분으로 확장하는 능력 혹은 의지의 부족.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에서 내가 생각한 겉돌다의 정의는 그랬다. p.136

 

비가 많이 내렸던 여름밤, 낯선 곳에서 만난 이 책은 친구와의 대화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오랜만에 만난, 조금은 변한 모습의 친구와 그간의 일을 가볍게 수다 떨 듯 나눈 기분이었다.

 

*덧붙이는 글

그렇게 동질감을 느끼던 그녀가 나를 배신(!)한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믹스커피를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는 문장이었다. 아니, ? (커피는 설탕맛으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항변ㅎㅎ)

 

   나는 이제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너무 달고 느끼해서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해지는 느낌이 싫다. 그래도 오늘처럼 어쩌다 한 번씩 마시게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의 첫 커피가 떠오른다. p.200

 


   

*기억에 남는 문장

제 삶은 밑반찬처럼 평범합니다.

 

같은 곳에 살아도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세계를 본다. 집을 찾기 시작하면 집만 보이고, 나무를 찾기 시작하면 나무만 보이는 것처럼. 집을 찾는 사람이 나무를 찾는 사람을 만날 때 세계는 조금 낯설어지고, 꼭 그만큼 넓어진다. p.42

 

그날 그는 내 앞에서 맘충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두 번 사용했다. 그게 몹시 거슬렸지만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왔을 때처럼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서로에게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는 사이는 이토록 깔끔했다. p.48

 

10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20대에는 냉정한 현실을 깨달으며 끊임없이 좌절하고 나를 미워했다. 그렇다면 30대는 평범한 나로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시간이지 않을까. p.90

  

어릴 때는 마냥 무섭기만 했던 어른이 어느 순간 안쓰럽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면 사는 게 덕컥 두려워진다. 나는 아직도 내가 덜 자란 것 같은데 삼촌도 가끔 그런 기분이 들까? p.144

 

몸에도 마음에도 부스럼 나지 않기를, 좋은 손님만 만나기를, 우리의 밥벌이가 우리를 해치지 않기를. 언니들 틈에 섞여 열심히 땅콩을 까먹는 동안에도 나는 예의 그 희미한 슬픔을 느꼈다. 뒤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앞에서 보니 그건 사랑이었다. 사랑인 줄 모르고 사랑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바짓단에 붙은 땅콩 껍질처럼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발견하게 되는 마음이. pp.152-153

 

걱정은 꼭 솜사탕 같았다. 후 불면 날아갈 만큼 가벼운 것도 계속 손에 쥐고 있으면 끈적하게 녹아 여기저기 들러붙었다. p.161

 

나는 적당히의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알맞은 상태. 그 중간 지점에 도달하는 일이 자주 어렵게 느껴진다. p.175

 

 

만약 다음 생에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쌍둥이 언니를 만나게 된다면? 돈을 받고 수명을 팔 수 있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며 사서 고민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지만 재미있다. p.188

 

스스로의 욕망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내게 없던 새로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p.226

 

내가 되고 싶은 건 세상을 구하는 위인이 아니라 나를 구하는 보통의 인간일 뿐이니까. p.226

 

소리에 예민한 나는 녹음에 금방 재미를 붙였다. 막상 해보니 촬영만큼이나 신경 쓸 부분이 많은 작업이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녹음 버튼을 누르면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이상하게 좋았다. p.232

 
1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3 댓글 6
종이책 구매 공감 가는 이야기를 찾는 재미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l*****j | 2021.06.27 리뷰제목
전날 마신 술이 남기는 후유증 몇 가지가 있다. 멍한 머리. 떠오르지 않는 생각. 그리고 희미한 전날의 술자리 기억.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세세하게 떠오르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낀다. 특히 중요한 이슈가 있었을 때. 알코올을 머금은 몸은 그렇게 일상의 한 부분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리거나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 버린다. 아니면 그냥 흘려 버려도 되는 말들이 대부분이라 기억에 없는
리뷰제목

전날 마신 술이 남기는 후유증 몇 가지가 있다. 멍한 머리. 떠오르지 않는 생각. 그리고 희미한 전날의 술자리 기억.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세세하게 떠오르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낀다. 특히 중요한 이슈가 있었을 때. 알코올을 머금은 몸은 그렇게 일상의 한 부분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리거나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 버린다. 아니면 그냥 흘려 버려도 되는 말들이 대부분이라 기억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경험상 취중에 나눈 진담이 다음 날로 이어질거란 기대는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술을 마신 사람과 깬 사람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일상을 무심하게 살아내고 있을 때도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내가 한 말, 행동, 마음 가짐을 매순간 챙겨보는 사람은 드물다. 하루 일과를 보내고, 내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으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냈는가를 떠올려보는 것. 이러지 않으면 오늘 하루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 어제와 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 같고, 그런 일상은 머릿속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가끔 어제 점심 때 무얼 먹었는지 떠올리기 힘든 이유도 이런 게 아닐까. 그저 평범했다 퉁쳐버린 일상이라 그런 거다.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의미를 둘 소소한 이야기들이 많을텐데.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 그랬다지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비극일지 희극일지는 내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내가 비극으로 보면 비극인 거고, 희극이라 생각하면 희극이다. 삶의 의미는 내가 만드는 것일 뿐. 약간의 생각 전환이 아하!하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내 생각만 바꾸면 모든 상황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단지 평범하기만 한 내 일상을 다르게 보려 노력만 하면 된다.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차이를 만들고 기억할 일을 만들어내게 된다.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 이 책 제목이 그랬던 순간을 소환해냈다. 별 생각 없이 '그때 한번 봅시다.' 했다가 막상 그때가 되면 왜 그랬을까 후회했던 기억. 그렇다고 모든 약속을 귀찮고 힘들어하는 건 아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더 편하게 여기고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만 같다. 원래 그랬으면서 그런 인간형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 평범한 일상에서도 떠올릴 만한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된 것 같다. 작가의 이야기에 기대어 내 얘기를 찾고 싶었던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동시에 바다 건너만큼 멀 수도 있었다. 허물없이 장난을 주고받고 귓속말로 비밀을 속삭이다가도 돌아서면 금세 데면데면해졌다. 어른이 된 뒤에도 관계는 여전히 골치 아픈 숙제였다.(137쪽)

 

관계 때문에 자주 고민에 빠진다. 아니 관계에 너무 몰입하다보니 주된 고민이 된 것 같다. 산다는 게 '함께'의 문제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그런 고민에 젖어지내다 보면 '나'를 돌아볼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관계에서 오는 문제의 해법도 나를 잘 알고 있을 때 찾아질 것 같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방법,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섬세하게 살피면서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 책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작가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냈듯이 말이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결국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드는 건 아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인 것 같다.(240쪽) 

 

가끔 상상의 세계를 배회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순간을 감지하면 내가 나한테 그런다. '소설 쓰고 있네'. 상상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치면 현실과 무관한 세상으로 가버린다. 그럴 때마다 너무 내 안으로 몰입하지 말자 결심한다. 일이든 관계든 내 생각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알기에. 세상은 철저히 나와 다르게 돌아간다.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은 없다. 그걸 하나씩 경험하고 깨달으면서 나도 조금씩 큰 사람이 되어간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  

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7 댓글 2
종이책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평점10점 | p******0 | 2021.06.25 리뷰제목
p.15 밥을 사 주는 사람보다 약속을 깨주는 사람이 더 고맙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에는 다른 이에게는 말하기 어려워 묻어두기만 했던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말로도 글로도 풀어내기도 어려운 감정이라 그저 날려버렸는데 이렇게 세련되게 예쁘게 표현되다니. 하현 작가의 글에 매료되었다.        화려하게
리뷰제목

CYMERA_20210625_122654.jpg

 

p.15 밥을 사 주는 사람보다 약속을 깨주는 사람이 더 고맙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에는 다른 이에게는 말하기 어려워 묻어두기만 했던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말로도 글로도 풀어내기도 어려운 감정이라 그저 날려버렸는데 이렇게 세련되게 예쁘게 표현되다니. 하현 작가의 글에 매료되었다. 

 

 

CYMERA_20210625_122737.jpg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은 담담한 글이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쉬게 한다. 마음먹으면 단숨에도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다 읽는 게 아쉬워 아끼며 읽게 된다. 그리고 내 다이어리에 글들을 옮겨 적어보게 된다. 제일 마음에 남은 글을 옮겨본다.

 

1.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p.50 그러니까 그건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를 아프게, 슬프게,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지나도 서로의 곁에 남아야 하는 사람들. 좋든 싫든 아직 남이 될 수 없는 사람들. 주고받은 실망을 투명하게 드러내선 안 되는 사람들.

 

인터뷰를 하게된 저자. 인터뷰어의 입에서 나오는 거슬리는 단어들. 딱히 그 사람에게 실망했다던지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단어가 가까운 이의 입에서 나왔을 때 너무나 불편하고 참담함 기분까지 들었다고 한다. 저자의 에피소드와 글이 너무나 와닿았다. 지나가던 남이나 딱히 기대도 없는 이의 말에는 그래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인가보다 하며 넘기지만, 가까운 이들의 말들에는 너무나 예민해지고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고민되고 실망스럽고.. 

이처럼 복잡한 감정들을 덤덤하게 에피소드와 함께 정리한 문장들이 너무나 좋다.

 

CYMERA_20210625_122804.jpg

 

2. 지킬 것이 많은 사람

 

p.108

지킬 것이 많아 걱정할 일도 겁낼 일도 많겠지만 소중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이 결정적인 순간 그들의 용기가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면접에서 '자신의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은 저자. 가족이라는 대답 후 우물쭈물. 같이 면접 본 다른 이는 가족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야구선수의 친필 사인볼까지 이야기 할 정도로 지킬 것을 줄줄 대답한다. 지킬 것이 많다는 말이 꼭 가진 것이 많은 것처럼 들려 배알이 꼴리기도 했던 저자. 

 

하지만 p.107 몇 개의 시절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배웠다. 지킬 것이 많다는 게 꼭 가진 것이 많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사람은 아주 많은 걸 가지고도 아무것도 지키려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거의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도 아주 많은 걸 지켰다.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말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CYMERA_20210625_122815.jpg

 

3. 밥을 위해 휴식을 포기하는 이유

 

p.149 일을 하며 느끼는 언니들과 나의 가장 큰 차이는 밥이다. 나는 휴식을 위해 밥을 포기하고, 언니들은 밥을 위해 휴식을 포기한다.

 

일을 하면서 너무 바쁠 때는 밥보다는 휴식이 더 간절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 다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일이 생기면 그게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챙겨준다고 건내는 음식들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그게 반대로 느껴질 때가 있어 저자의 이야기에 너무나 공감이 같다. 밥 자체 보다 밥을 함께 먹는 이들이 주는 위로가 너무나 포근함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

 

p.150 먹을 것을 나누는 일에는 어딘가 애틋한 구석이 있다. 동료들의 몫까지 넉넉하게 싸 온 음식을 나눠 먹는 언니들의 뒷모습을 보면 뭐랄까, 마음이 든든해지는 동시에 희미한 슬픔이 찾아온다. 

 

저자가 너무나 힘들었던 날. 밥보다는 쉬고 싶었던 그녀이지만 언니들은 정월대보름이라며 집에서 해온 오곡밥을 먹이고, 땅콩까지 챙겨주며 나쁜 기운이 도망갈 것이라 위로한다. 

 

p.152 뒤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앞에서 보니 그건 사랑이었다. 사랑인 줄 모르고 사랑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바짓단에 붙은 땅콩 껍질처럼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발견하게 되는 마음이. 

 

이 글을 읽고나니 나를 조용히 챙겨주던 이들이 스쳐지나갔다. 야단스럽게 티내지 않고 그저 밥 같이 먹자고, 차 한 잔 하자며 함께 하던 이들. 그들의 사랑이 새삼 떠올라 눈물이 핑돌았다. 먹는 게 뭐가 중요해서 이 순간에 밥이냐고 참 세상 철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 지기도 하는 글이었다. 또, 나도 상대가 모르더라도 그런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도 해 보았다.

 

CYMERA_20210625_122844.jpg

 

어찌보면 누구나 겪고 살았던 이야기이고. 성공 스토리들이 채워져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글빨로 넋을 놓게 하지도 않는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하지만, 누군가 올해 상반기 가장 좋았던 책 한 권만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하겠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책이기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5 댓글 4
종이책 우리, 만나요! 평점10점 | b****e | 2021.06.29 리뷰제목
종종 에세이를 읽다보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그러면, 마치 대화를 하듯, 각각의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를 더하게 되고, 책이 끝날 무렵, 물리적인 책의 두께에 더해, 내가 읽은 책의 부피는 심리적으로 두배가 된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라니,서로 어울릴 수 없을텐데, 제목이 너무 오버아냐,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난 이 도
리뷰제목
종종 에세이를 읽다보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그러면, 마치 대화를 하듯, 각각의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를 더하게 되고, 책이 끝날 무렵, 물리적인 책의 두께에 더해, 내가 읽은 책의 부피는 심리적으로 두배가 된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라니,
서로 어울릴 수 없을텐데, 제목이 너무 오버아냐,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난 이 도서명이 주는
느낌을 알기에, 작가의 말에 내 말을 보탠다.

하지만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오히려 상대가 서운해할까 봐 적당히 아쉬운 척 대답한다. 어쩔 수 없지 뭐...... .(아싸!) 괜찮아. 다음에 보자 (안 그래도 나가기 귀찮았는데 고마워!) 그러고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는다.p15

좋아하는 지인들과 약속을 잡을 때, 정말 신난다. 약속 당일, 서서히 다가오는 시간이 기대가 되면서, 한편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무엇을 먹을까, 지레 짐작하다 살짝 지치는 순간, 약속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갑자기,
평온해지며 이 뜻밖의 여유를 어떻게 보낼까?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어쩌다 생겨야 하는 희소성이 가미되야한다.

듀듀는 수능 시험을 준비하듯 보험을 공부했다. 두꺼운 약관집에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열심인 모습이 신기했다. 듀듀에게 보험은 미래의 기능성을 위한 지출이었다. 언젠가 아주 높은 확률로 암에 걸릴것 같은데 그런 불행이 찾아왔을 때 더 크게 좌절하지 않도록 진단금이라도 두둑하게 받고 싶다고 했다. 말이 씨가 되니 그런 소리 말라고 타박했지만 불안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p71

작가님, 친구듀듀님, 저 소개해주시면 안될까요?
리크루팅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네요^^;;

나는 알면서도 열심히 모른 척한다. 하나뿐인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그러나 정말로 알수가 없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방식이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할 때,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쪽으로는 엄마의 자랑이 될 수 없는 나는 꿈에서처럼 거짓말을 하는 대신 얄미울 정도로 솔직해진다. p124

20살때 인생을 시작하는 나이에나 할법한 조언을 여전히
나에게 하시는 엄마의 마음, 자식 나이가 50이어도 나한테는 여전히 보듬어야하는 자식이라며, 잔소리하시는
내 엄마가 겹친다.

처음 만난 작가님인데, 30개의 에피소드가 문득 문득 내 이야기같다. 꿈에 관한 이야기는, 직접 마주하고, 어머어머 하며 맞장구를 쳐도 될것같았다.

덥고 습한, 그런 날을
잊고 싶다면,
한손에 이 책, 한손에 나들이 매트를
들고,
풀밭을 찾아 누워,
턱을 괴고,
읽고싶은 책이다.

<<비에이블에서 제공받은 책입니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종이책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평점10점 | l*****0 | 2021.06.22 리뷰제목
책 제목이 무척 유쾌합니다. 보통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없던 약속도 만들고 싶어 하는데, 있는 약속이 취소되는데 기쁘다고 하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하네요.       저자는 흔히 말하는 '방콕'을 좋아합니다.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즐기는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생활 패턴이 있기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인
리뷰제목
책 제목이 무척 유쾌합니다.
보통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없던 약속도 만들고 싶어 하는데, 있는 약속이 취소되는데 기쁘다고 하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하네요.
 

 
 
저자는 흔히 말하는 '방콕'을 좋아합니다.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즐기는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생활 패턴이 있기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 시간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이 행복 아닐까요?
이 책은 저자가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모아놓았습니다.
 
모든 삶이 특별하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 같아요.
모두가 소중할 수는 있어도 모두가 특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렸거든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평범한 나로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요즘 제가 가장 열심인 일은 이것입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일 것 같네요.
 
나에게는 '소중한 인생'이 남에게는 '특별한 인생'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내 인생을 소중하게 여겨야 겠습니다.
 
몇 개의 시절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배웠다.
지킬 것이 많다는 게 꼭 가진 것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사람은 아주 많은 걸 가지고도 아무것도 지키려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거의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도 아주 많은 걸 지켰다.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이 '지킬 것이 많다'는 것의 필요조건은 아닙니다.
조금 가지고 있어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고, 많이 가지고 있어도 지키고 싶은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난 지키고 싶은 것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까지의 노력은 '지키고 싶은 것'이 아닌 '가지고 싶은 것'이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키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네요.
그것들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당연하다 생각한 것이 미안하네요.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네요.
 
책을 보면서 '혼자 있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결코 외롭거나 고독한 것이 아닙니다.
진솔한 자신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입니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한줄평 (372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9.7점 9.7 / 1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