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yY379vveAw
저자는 30대 젊은 공장노동자였습니다. 저자는 친구가 단 한명도 없고 연애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퇴근 후 그는 인터넷 공포게시판을 놀이터삼아 복날은간다는 아이디로 재미나게 놀다보니 어느 날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600편 이상의 이야기를 줄기차게 만든 것을 보면, 현실이 아닌 그 가상공간에서의 소통이 얼마나 신났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이 제일 무섭다는 주제의 이야기를 창작했지만 정작 인간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저자로의 변신은 불가능했을 듯합니다. 공장노동자에서 저자로 변신한 것은 저자의 표현대로 마법같은 이벤트였습니다.
저자 김동식은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온라인 저자 특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주일만에 사랑할 수 없다]라는 자신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의 강의는 세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30대 저자의 자립이 기특해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e북 구매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게임과 만화를 즐겼고 중학교를 중퇴했지만 30대에 근사한 자립에 성공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저자의 자립은 기립 박수감이었습니다.
저자는 하루 종일 벽을 마주보고 앉아 단순노동을 하면서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와 낮에 상상했던 이야기를 짧은 글로 옮기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창작의 기쁨과 스릴을 알게 된 이후, 지루한 고역이었던 낮 동안의 노동시간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자는 인간이 부품으로 전락하는 소외 현상을 야기하는 비인간적 단순 노동을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같은 노동을 반복하는 그 시간을 인간 고유의 창조력을 잉태하는 시간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벌써, 퇴근 시간이야 라고 느꼈던 적도 있었다고 하니 그가 이야기를 구상하는 순간을 얼마나 달콤한 희열 속에 보냈을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르르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라고 했지만,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의 저자를 키운 것은 키운 8할은 댓글이었습니다.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 인터넷게시판에서 저자의 승부욕과 인정욕은 불타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댓글로 주목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댓글이 달리기를 욕망하면서 열심히 짧은 글을 지어서 올렸습니다.
댓글에서 알려주는 맞춤법 지적과 글쓰기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여가며 자신의 글을 수정하고 완성했습니다. 댓글 소통이 신나다보니 창작을 멈출 수도 없고, 나태할 수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600편 이상의 글을 줄기차게 쓰다보니 저자에게 글쓰기 조언을 했던 사람보다 일취월장하게 되었고 마침내 청출어람의 산 증인이 되었습니다. 글쓰기 비법은 이론보다 실천이라는 것을 입증한 사람이 저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위대합니다.
저자에게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은 댓글의 충고와 인정과 격려였습니다. 저자에게는 일상의 현실에서 분주한 인간관계나 소통이 없었기에 인터넷상 글쓰기에 성실을 온전히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출간한 이후부터 저자는 현실에서 자신의 책을 홍보하는 강연을 하고, 영상을 찍고, 출판관련 인간관계를 도모해야 하는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저자에게 작품을 구상하도록 만들어준 단순 노동의 그 시간들은 사라졌습니다.
노동자가 아닌 전업작가에게 주어지는 부담감을 저자가 슬기롭게 극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 내용을 짚어보겠습니다. 이 책은 23편의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음집입니다. 각각의 재미난 짧은 이야기들에 저 역시 짧은 의미를 부여해 보았습니다. 놀이를 즐겼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에 재미없는 의미부여는 전적으로 저의 놀이였음을 시인하면서 나열해 보기로 합니다.
1.세상이 멸망해 가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사랑할 수 있고, 인류를 위해 숨겨진 나의 초능력을 찾아보아야 한다.
2.일하는 놈과 노는 놈은 따로 있다.
3.부자는 더 부자가 되려고 한다.
4.대기업의 자식이라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5.늙지도 죽지도 않는 귀신이 늙고 죽는 인간보다 낫다.
6.특별한 추억이 담긴 돈은 예술품이다.
7.‘일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목숨 걸고 일하라‘는 말로 변질될 수 있다.
8.기업이 무료를 제시할 때는 광고와 홍보가 필요할 때다
9.기업의 상술은 멈출 수도 없고 멈춰지지도 않는다.
10.독점기업이 되는 순간부터 비용 상승은 기정사실이다.
11.뛰는 악인 위에 나는 악인 있다.
12. AI에게 위인은 사람을 죽일 수 있도록 원인 제공한 사람이다.
13.우유부단함과 완벽함은 서로 통한다.
14.악마보다도 지도자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15.최면에 걸려들기는 의외로 쉽다.
16.우정과 돈을 맞바꾸는 세태다.
17.인간의 나쁜 정도는 별반 차이가 없다.
18.인간은 칭찬에 약하다
19.기부의 이면에는 제멋대로 할 기부자의 무서운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
20.내가 한 말이 나에게 올가미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저자가 썼던 글은 초단편입니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초단편 장르를 개척하고 마침내 그 분야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초단편을 잘 쓰는 저자는 장편도 잘 쓸 수 있을까요? 저자는 장편에 도전했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고 그랬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어렴풋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편을 읽어야 점차 장편을 잘 읽을 수 있게 되고, 장편을 잘 쓸 수 있게 됩니다.
대학원에서 독서지도학을 전공하면서 깨우친 것은, 읽어야 읽을 수 있고, 써야 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읽어야 그 읽은 것들이 배경지식이 되어 그 다음에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합니다. 책읽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독서가 독서를 잘 하게 만드는 비법이며 글쓰기의 지름길인 셈입니다.
저자는 초단편이 아닌 글은 잘 쓸 수도 없거니와 잘 읽을 수도 없습니다. 초단편 외의 글을 읽을 수 있어야 초단편 외의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저자가 읽은 책은 10권이 채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초단편의 전문 저자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초단편을 지속적으로 읽었기에 초단편을 재미나게 쓸 수가 있었습니다.
저자 책의 주독자 층은 중고생들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저자의 재치있고 재미난 발상의 짧은 이야기는 일상의 활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자가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도 했다고 하니, 마법같은 저자의 삶을 보고 희망을 품는 학생들도 있었을 법합니다. 하지만 자립과 생존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은 짧고 쉽고 재미난 글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길고 어렵고 딱딱한 글을 읽은 자의 수단으로 이용당하다가 그들의 밥이 되는 지도 모른 채 그들의 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립을 앞두고 있는 중고생들은 장차 부동산 계약서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은행 대출 관련 서류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읽을 줄 안다는 것을 글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이해하는 독해를 의미합니다. 그런 독해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독서교육현장에서 해야 할입니다. 그래서 [상호텍스트성과 텍스트 이해 교육의 저자] 김도남의 설명으로 저의 노파심을 조심스럽게 표현해 봅니다.
“학생들이 읽는 책은 주로 이야기책이다. 설명이나 설득에 관련된 책은 많지 않다. 학생들은 오직 이야기 담화에만 익숙해 있다. 그래서 과학책은 어렵고 복잡하고 이해가 안 간다고 느낀다. 다양한 영역의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야기 형식이 아닌 책을 읽는 것을 회피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책을 읽는데 필요한 담화 형식은 독서를 통하여 습득되어야 한다. 학생 때 익히지 못한 담화 형식은 어른이 되어도 익힐 수 없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철학이나 종교, 과학 등의 책을 권해 보면, 이들은 권하는 책에 대하여 먼저 어렵다고 거부한다. 어려운 것은 내용에 있지 않다. 형식에 있다. 따라서 독자가 책을 읽기 위해서는 그 담화 형식을 익혀야 한다. 학생들이 이야기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이야기책 담화형식을 익혔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담화 형식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담화 형식의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이야기 글형식에 익숙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들이 혹은 유아원에서 선생님들이 읽어주고 들려준 것이 주로 이야기책이었을 테니까요. 아이들이 문자를 깨우친 이후 스스로 잡는 책도 이야기책입니다. 이미 이야기책이 배경지식으로 자리잡아서 혼자 읽기에 재미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이야기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야기가 아닌 다른 구조 형식으로 된 책도 자꾸 자꾸 읽으면서 배경지식이 축적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나 교사들은 문자를 깨치면 어른으로서의 책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야기책이 아닌 독서는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책 독서 단계에만 영영 머무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은 짧은 이야기도 유쾌하게 읽었다면 긴 문학글을 비롯해 과학, 역사 등의 설명글도 함께 읽는 것이 자립과 생존에 유리합니다.
짧은 이야기책만 주로 읽었던 저자의 자립이 기립박수감이라고 한 것은 짧은 글만 읽고도 자립에 성공한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앞날에 어렵고 복잡하고 긴 글을 읽은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는 낭패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어능력과 사고능력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서민과 약자들을 선동, 획책하는 일을 허다하게 봅니다. 휘둘리지 않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을 읽을 수가 없고 재미가 없는 이유는 내용과 형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이라는 김도남의 견해에 박혜영은 [중등학교 독서 문화 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거들고 있습니다.
“ 학생글이 책을 읽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인터넷소설과 만화에 빠져 있는 것은 더 위험한 구석이 많다. 책을 읽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독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쉬운 독서, 재미있는 독서로 인터넷 소설류를 읽히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식의 매우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다”
김도남과 박혜영의 논의를 디지털 시대의 한가운데서 감히 꺼낸 것은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경계하고자 함입니다. 짧은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과 짧은 이야기를 읽기만 하는 사람, 게임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게임으로 놀기만 하는 사람, 만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과 만화만 보는 사람의 삶의 질이 분명 격차가 날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짧은 이야기 책을 즐기면서도 다른 다양한 책에도 열려있자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습니다.
작년에 ‘독서 격차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 토론하는 학회에 가봤던 적이 있습니다. 독서격차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계층을 양분화 시킨다고 학자들은 진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층 계급은 문자를 겨우 익히고 쉬운 글을 읽는 정도에 그치고, 상층 계급은 문화를 향유하는 독서로까지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독서와 신분이 관련 있다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공교육의 독서격차 해소는 참 요원한 일처럼 여겨져 착잡했습니다. 김동식 저자는 쉬운 글 읽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짧고 쉬운 글이지만 그래도 쓰기로까지 나아갔기 때문에, 격차 해소에 스스로 기여한 것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위대합니다.
이해할 수는 없는, 어려운 책들이 세상에 허다합니다. 저 역시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20년이 넘는 동안 초 중 고교생들과 함께 글읽기와 글쓰기를 뻔뻔하게 해왔습니다. 통합논술이 한창 유행일 때, 독서이론을 전공하고 신문사설 읽기관련 논문을 쓰고, 실제 교육 현장의 경험을 이력으로 인정받아 다년간 교사 연수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때 공교육의 교사들에게 감히 항상 공부하고 독서하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늘 미완의 교육일 수밖에 없지만 이론과 실제가 함께 조화를 이뤄나가고자 하는 끊임없는 시도 속에서 교육도 지고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시 ‘학습만화는 트로이목마’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던 적도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화를 아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순발력 있는 재치와 유머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집에는 학습만화가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했다. 중국고전과 서양신화, 세계역사와 과학상식에 대한 단편적 지식을 줄줄이 꿰노라면,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며 찬탄해 마지않았다. 단답형 시험에 강했기에 사람들은 그 아이를 영재라고 불렀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자 더 이상 영재로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 그 아이의 문제는 단 한 문단의 글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글을 쓰면 언제나 단답형으로 혹은 번호를 매겨 짤막하게 나열했다. 그것들을 이어서 표현한 글은 무슨 내용인지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문장이라 할 수준이 못되었다. 만화로 익힌 자신의 많은 배경지식들을 통합해서 글쓰기로 표현하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만화의 구조에만 익숙한 아이에게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배경지식은 텍스트의 내용뿐 아니라 텍스트의 구조와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즉 그 아이는 줄글 구조 형식의 책을 항상 거부한 탓으로 줄글을 읽은 경험이 없다. 그러니 하나의 텍스트구조에만 고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화도 보지만 긴 줄글도 함께 읽어야 한다. 만화를 통해 일단 독서 흥미를 유발하고 나서, 긴 줄글에 대한 독서로 넘어가보려고 하지만 이미 우리의 뇌는 만화 형식이 아닌 모든 독서를 거부하도록 만들어버린다. 만화 중독이 무서운 이유는 만화가 아닌 책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수 없도록 만들고 글쓰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만화는 아이들의 문화다. 굳이 어른들이 애써 권하지 않아도 어디서든 읽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두 마리를 토끼를 잡고 싶은 심정으로 공부와 독서를 모두 잘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학습만화를 권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우리 아이에게 ‘트로이 목마’인 것이다.‘트로이 목마’란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프로그램으로 보이지만 실행하면 악성 코드를 실행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을 끝낸 작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스가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성 밖에 두었는데, 그 속에 무장한 군사가 있었다. 트로이는 거대한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기만 하면 승리할 것이라 믿고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목마 안에서 나온 그리스 군사에 의해 트로이는 몰락하고 만다. 결국 유용한 것처럼 위장한 목마가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학습만화가 바로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책의 추천의 글에서 김동식 소설집의 기획자 김민섭은 ‘김동식 작가의 상상력이 만화와 게임 같은 데서 왔음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드러난다’고 언급했습니다.
김민섭과 김동식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상류층 언어학자가 거리에서 꽃파는 소녀의 사투리를 교정해 상류사회에 소개하는,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이 떠올랐습니다.
저자는 친구도 없고 꿈이 없었기에 딱히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꾸준히 작품을 인터넷에 올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인터넷상에서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기획자 김민섭에게 주목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가 이제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현실의 세상에 뛰어들었습니다. 부담감 갖지 말고 근사한 자립을 이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