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전부터 무척 궁금했었다. 특히나 이 책으로 썸녀한테 고백에 성공해서 연애를 하게 되었다는 어느 독자의 도시전설 같은 후기를 본 이후로 더 그랬다. 그런데 서점에서 실물을 보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그 특유의 감성이 마음에 꼭 들었다.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그가 페이스북에서 ‘김리뷰’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차린 스타트업, 그가 겪은 이별, 제주도에서 당한 부상, 그리고 몇 달 전의 자살 시도...등에 대한 소식들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주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와 왠지 모를 내적 친분마저 생긴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느낌은 내가 생각했었던 사람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훨씬 더 깊고 진지한 느낌이었다.
이 에세이는 “평범하게 사랑하는 연인”인 저자와 그의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나와 책 취향을 달리 하는 어머님이라면 좋아하지 않으셨을 만한 ‘분명한 목적이 없는(?)’ 사사로운 글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환하게 비춰진 창문을 통해서 누군가의 일상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이런 느낌의 에세이가 좋다. 이렇게 말하자면 내가 이상한 사람 같지만,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관음적인 욕구가 있지 아닐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친구는 공교롭게도 나의 계정 이름처럼 ‘연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인듯 싶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발랄한 모습으로 다른 이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그 모습이 꼭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그저 집에서 묵묵히 책읽기를 좋아하는 강아지나 곰(?) 계열에 가까운 사람인 나는 그런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그리고 감정이 예열 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는 격정적으로 달아오르는 사랑의 모습이 조금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책의 몇몇 대목에서는 달달함을 느끼는 한편 ‘아...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책을 본 거지? ㅜㅜ’ 싶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이 책의 연인들만큼 목소리를 높여 싸운 일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주로 혼자서만 속앓이를 하다가 어느날 참다 못해 관계를 포기해 버리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 내 손을 다시 잡아준 소중한 사람들 때문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상대를 오해하고 섣부르게 판단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갈등을 피하고자 혼자서만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버린다면 그런 사실을 자주 간과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좋은 관계란 자주 싸우지 않는 것보다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이 유독 더 마음에 와닿았다.
이 책의 내용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사적이다. 하지만 이 사적인 이야기에는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만한 그 어떤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닌 보편성이 있다. 책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이 특별하게 여겨진다는 것은 아주 평범한 일이다. 그래서 여기서 평범하다는 건 무척 특별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런 평범한 장면들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묵돌님의 필력에 감탄하게 될 때가 많았다. 특히 자전거를 타는 일을 사랑에 비유하는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이묵돌님이 그만의 감성으로 건필하시기를 바래본다.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기대하고 좌절한다. 주체할 수 없이 설레고 답답해한다. 흥분하고 축 가라앉는다. 황홀해지고 우울해진다. 밀어내고 도로 껴안는다. ... 당신이 찾던 답과 다르다면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결국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어떤 사랑을 향해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그 사이의 과정을 삶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사람과 사랑, 딱 그 중간쯤 되는 발음으로. (216-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