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회 생활에 첫 발을 내딛을 무렵 내 취직사실을 안 한 친척으로부터 축하인사와 함께 이런 말을(조언을) 들었었다. "남 보다 조금은 손해본 듯 일하라."고 말이다. 당시도 그렇고 그 말을 듣고 10여 년을 넘게 지내오면서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이유 없이 꼬투리 잡고 정식 공무인양 퇴근 못하게 잡아두고 개인일 시키고, 심지어 로그인 해달라고(전산망을 통해 문서 송수신이 막 시작될 무렵) 주말에 전화해서 출근하라는 황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말이다. 아마 온갖 일을 겪어 그들의 의도를 예전보다는 더 빨리 알아챌 수 있게된 지금 그 말을 처음 들었다면 아마 딱 글자 그대로 해석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당시 첫 입사했던 회사는 그곳을 내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입사했던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경제사정이 너무 안 좋아 직접 일을 하지 않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목표로 하는 일과는 다른 회사였지만, 문서 다루는 일 등 분명히 후에 참고할 다양한 것을 체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내게 주어진 일에 애정을 갖고 진심을 다하면 그것은 것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 안에 갖고 있는 내 재산이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 버티다 보니 친척이 해준 그 조언이 장기적으로는 내게 득이 되는 조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다양하게도 겪었지만, 친척이 해 준 그 조언을 내 나름대로 지키려고 노력해왔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수록 그 조언에 대한 의문이 커져만 갔다. 지금도 가끔 뜸금 없이 생각나지만, 정말 그 말이 맞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천직이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어진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일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이나모리 가즈오 -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사회 초년생 시절과 쿄세라를 창업해 회사를 키워가는 과정을 보며 "남 보다 조금은 손해본 듯 일하라."라는 이 말이 내 내 떠올랐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과 친척의 조언의 뉘앙스가 너무도 닮아서인 것 같다. 특히 그의 첫 직장이었던 쇼후공업에서의 일화는 여러번 반복해서 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첫 직장을 위해 취업활동을 하던 시절은 경기가 좋지 않아 취직이 어려웠었다고 했다. 대학 내내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지방대학 출신이라 더욱 힘들었다는 그의 말은 50년대내 70년이 지난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 씁쓸하기 까지 하다. 간신히 교수의 추천으로 쇼후공업에 지원해 합격했지만, 폐업 직전일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과 자위대 간부후보생에 지원해 합격하지만, 입사전 제출해야 될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는 바람에 합격이 취소되고, 그 사이에 자신을 제외한 동기들은 모두 회사를 떠난다.
50년대 통신 사정을 생각해 보면 전보 탓을 할수도 있겠지만, 그가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던 것은 지방에서 어렵게 대학졸업 후 입사한 회사가 마음에 안든다고 그만두고 자위대에 입사하겠다는 그의 계획에 화가난 형이 소식을 듣고도 서류를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일을 겪고난 후 그렇게 무너져 가는 회사에 남아야 하는지,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저자는 결국 퇴사 명분을 찾지 못하고,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는다. 그는 쇼후공업에서 최첨단 파인세라믹 연구를 담당했는데, 그 연구는 무기화학 분야를 연구하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했던 그는 완전히 새로운 공부를 해야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연구직이라고는 하나 무너져 가는 회사에 제대로 된 설비는 커녕 자료조차 구비되지 않아서, 그는 퇴근후와 휴일이면 도서관에가 해당 전문서적과 논문을 빌려 읽고, 없는 돈 쪼개 원서를 구입해 늘 영어 사전을 낀 채 공부를 하거나 성에 안찰 땐 아예 자료를 통째로 외워가며 연구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렇게 몰입한 덕분인지 서서히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주위에서 비웃던 이들도 하나 둘 씩 그를 인정하기 시작하고, 회사 역시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몰입을 참 좋아한다. 좋든 싫든 그 일을 하는 동안 잡념 없이 오로지 그 일에 푹 빠질 수 있는 그 시간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있을 때만 가능하다. 저자에게 처음 위기가 왔던 그에겐 연구직이라는 신분이 있었다. 설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진 않았지만, 근무 중에 혹은 퇴근 후에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그에게 허락되었다. 그랬기에 퇴근 후와 휴일에 도서관을 찾고 자비를 들여 자료를 구해 공부한 것을 실험하며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당시는 지금처럼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이러한 환경적 요소는 현재에 꽤 중요한 문제이다.
일을 함에 있어 가져야 할, 저자가 강조하는 마음가짐 자체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던 10여년 전에 읽었다면 정말 감동했을 것이다. 나는 저자의 책을 제대로 읽어 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책 외에 저자의 다른 책들은 그동안 도서관에서 훑어보는 식으로 보았었고, 저자에 대해서는 책 보다는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본 다큐멘터리나 시사 방송으로 주로 접했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폐업 위기에 놓였던 일본항공 JAL을 1년 만에 정상으로 돌려놓는 과정을 다룬 방송이었다. A4 용지와 같은 사무 용품 절약 등 아주 자잘한 것부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회사의 소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그 뒤에 수장으로 있었던 사람이 바로 이나모리 카즈오 였다. 그래서 최근에 일본인 저서의 경영서를 예전에 비해 기피하게 되면서도 저자의 소식은 잠깐 멈춰서 찬찬히 살펴보곤 했다. 이 책을 선택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은 경영자 즉, 리더십에 있지 않다. 주어진 때로는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마음가짐이 핵심이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책의 진짜 핵심 보다는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그의 경험담을 풀어 놓아 책 전반에 걸쳐 자신의 이야기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 보니 이 책을 읽는 동안 핵심이 리더십이라는 측면에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나는 주로 그 때 그 때 마음에 가는 분야의 책을 선택해서 읽는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돌아보니 최근에 미국인 중심의 경제/경영서를 더 많이 읽어왔다. 그 영향 때문인지 알 순 없지만, 미국의 경영자들의 마인드와 이나모리 가즈오의 마인드를 나도 모르게 계속비교하며 읽고 있었다. 그런데, 공통점과 차이점을 칼 같이 나누기는 좀 애매한 점이 없지 않았다. 공통점이라고 느꼈던 것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다. 다만,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우 실수는 한 번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미국 경영자 VS. 이나모리 가즈오] (cf: 책을 읽으며 느낀 철저하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공통점 : 실패를 추궁하지 않고, 성공을 위해 오히려 독려한다.
차이점 : 전략 설정 기간과 최종 목표(목적지)가 다르다.
차이점은 전략의 기간과 대상이 차이였다. 미국 등 서양권의 CEO들은(특히, 벤처에서 시작해 유니콘 이상이 된 기업 등) 자신들의 목표와 전략을 단기적으로 보지 않고 몇 십년 후 등 장기적으로 보고 준비하고, 그 최종 목적지를 세계 1위가 아닌 인류로 본다.(물론 이윤 추구 기업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발견하게 되곤 하지만, 그들은 대게 인간의 삶의 유의성 측면에서 접근한다.) 반면, 이나모리 가즈오는 장기 전략 자체를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종종 기자들에게 중장기 전략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그 때 마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너무 먼 미래를 기간으로 정해 계획을 세우면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쿄세라에서 제작되는 제품 자체가 아주 정밀하고 세심함을 요하는 부품이기 때문에 자그마한 결함이라도 있을 경우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그가 1984년에 휴대폰 사업을 모델로 하는 현재의 KDDI를 설립한 상황을 보면, 과연 중장기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고 하는 그의 주장이 맞는 건가 하고 그의 말에 이의제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
서양인 동양인을 막론하고 소위 성공한 경영자들의 경험담이 담긴 책을 읽어오면서 최근에 드는 생각들이 있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마인드나 리더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인력 운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성공하기 위해 직원들을 몰아부치는 것은 필연적이어야 되는가 하는 문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우버 등 미국의 잘 나가는 기업 CEO의 성공 스토리 뒤에는 항상 근로자의 부당 대우와 관련된 논란이 부록처럼 따라온다. 이나모리 가즈오 역시 그의 이야기에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 다만, 미국기업의 부당 대우를 받았던 근로자들의 소식처럼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관련 소식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저자에 따르면 자신의 그런 업무 수행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 직원들이 분명 있기는 했다.
책을 읽으며 저자는 '장인 정신'이란 것을 아주 좋아하는 듯 하다. 다시 말하면 한 가지 분야를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을 아주 높게 산다. 책 초반에 그리고 말미에 최근의 파이어족을 좋지 않게 보는 듯한 언급이 몇 차례 등장한다. 이 책의 원서가 처음 출간된 시기는 2009년이다. 그리고 12년이 지나 개정된 이 책이 당시의 책을 그대로 번역 등만 다듬어 출간한 것인지, 저자의 최근 생각을 반영해 출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10년은 2009년 이전의 10년간 변화와는 그 속도가 너무나도 다르다. 그리고 그 변화속의 MZ 세대나 파이어 족이 그의 회사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충분히 이해하고, 일은 하는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아주 공감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그의 생각도 융통성을 발휘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번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을 읽는 동안은 그간 경제/경영 서적을 읽으며 그들의 일에 대한 생각이나 전략 등을 접하고 내 스스로도 몰랐던 나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본 게시글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