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밀레니얼세대의 저자는 이 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한 명의 시대인으로 증언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가 경험하며 절실하게 느끼고 바라는 이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부드러운 어조로, 최대한 균형적 시각으로 전하고자 노력했다.
책 제목만 봐서는 단지 #인스타그램 에 대한 부정적인 면들을 다룬 내용일 거라 예상할 수도 있지만 주 내용은 크게 청년, 젠더, 개인주의와 공동체 3가지로 나뉜다.
저자는 삶을 눈앞에 놓인 여러 문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공간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인생관이라고 하며 밀레니얼세대를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인 세대, 이상과 현실의 가장 극적인 분열을 겪는 환각의 세대라 일컫는다.
SNS에 치장되어 있는 온갖 화려한 이미지에 속하길 바라며 그러한 환각적인 이미지에 제때 도달해야만 안심을 한다.
#블루보틀 이 국내에 상륙한다 했을 때 그 이미지에 서둘러 닿고자 하는 욕망을 폭발시켰고 그 현상에서 우리는 삶에서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고 그 이미지에 대한 즉각적인 접촉의 욕망이 삶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사실 우리 삶이 실제로 놓여 있는 대부분의 시간들은 사진으로 찍었을 때 그렇게 화려하지 않으며 어떤 이미지로 전시된 자신에 대한 흡족함은 결코 지속 가능한 행복이나 기쁨을 주지 않는다. 그는 실제 삶과 이미지의 간극은 일상화되면서 절망, 우울, 분노가 극적이게 되어갈 수 있다고 염려한다.
이런 형태의 삶과 문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잃게 하거나 간과하게 하는지, 혹은 우리로부터 무엇을 앗아가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지금의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현상들과 문제들을 언급하면서도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흔히 근래 청년세대는 회의주의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의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처럼 세상, 사회, 현실 전체의 변혁이나 변화에 대한 믿음을 지녀본 적이 없고 자기의 협소한 삶이나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수만 있어도, 살아남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 믿으며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를 견뎌내고 있다고 말한다.
청년들은 홀로 남아 글을 쓰는 골방의 유령들처럼 각자의 삶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젠더 부분에서 나 또한 의문이 들었던 점은 왜 성욕은 푸는 것이라고 표현하는가? 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식욕, 수면욕, 성욕이 꼽히는데 식욕과 수면욕은 은유 자체가 채우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중 #성욕 에만 풀다 라는 술어를 붙인다고 한다.
영어에도 성욕에 대해 푸는 것과 관련된 어휘는 찾아보기 어렵고 성욕은 충족시키는 (satisfy) 것으로 받아들인다.
스트레스나 과도한 압박감, 부담감 같은 것에 쓰이는 풀어서 없앤다 라는 술어의 사용은 성관계나 성욕 자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 와 관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먹는 것으로 식욕을 풀지 않고 자는 것으로 수면욕을 풀지 않고 그보다는 먹는 것 자체가 나에게 들어와 내 몸을 이루고 채워주는 것이라 느끼며 잠도 우리를 채워주는 것이라 느낀다.
그는 성욕이 만약 채워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더 조심스럽게 대하고 소중히 대하며 우리를 보충해주는 무엇으로 여길 것이다 라고 한다.
상대를 통해 성욕을 푼다는 표현이 아닌 나의 성적인 욕망이 채워졌다고 말하는 것, 당신이 나를 채워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온당한 태도가 아닐까? 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에게 늘 바라는게 있었다면 삶을 정확하게 사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삶을 정확하게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글을 쓴다.
나는 저자의 글에서 세상에 대한 큰 기대는 없을지라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온기를 나우어 가지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접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오늘날처럼 화려한 그래픽은 당연 없었고, 오로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화면이 전부였다. 게다가 엄청나게 그려 터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신기했고, 왠지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그 때만 해도 컴퓨터 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인터넷을 이용할 거라 굳게 믿었건만, 이후 변화는 엄청났다. 오늘날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터넷 없는 삶은 아마 감옥과도 같을 거다. 직접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지 않더라도 꼬꼬마 친구들의 시선을 잠시나마 빼앗는 유튜브 화면 등도 인터넷이 아니라면 구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하철, 버스 등에서 모두가 코를 박고 응시 중인 휴대폰 모니터 속 세상 또한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은 오늘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굉장히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SNS다. 사진을 올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멘트를 함께 다는 방식이다. 해시태그를 이용해 검색이 가능은 하나 자료 관리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그럼에도 인스타그램만의 매력은 분명 존재한다. 저마다 올린 사진을 볼 때마다 난 모방 욕구를 느낀다. 저들이 방문한 장소, 저들이 체험한 레포츠, 저들이 먹었다는 음식 등이 날 유혹하는 거 같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이들의 매순간이 그리 화려한 건 아닐 텐데도 난 타인의 삶을 엿보며 그들과 비슷한 수준을 향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단어에 과도하게 꽂혔던지, 소위 과시하기 좋아하는 혹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실상 간의 간극이 존재하는 현 세대에 대한 일종의 비판 즈음을 기대했다. 물론 그와 같은 내용도 존재하기는 했다. 내면을 다져야 한다는 식의 조언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라는 판단이 설 정도로 오늘날 사람들은 ‘보여주기’를 중시하고 있는데, 인스타그램의 인기몰이는 그와 같은 세태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식의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콘텐츠의 생산 주체 또한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만들어낸 생산물이 곧 자신의 삶 전부는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어느 정도의 소비는 기본이 된 시대인 만큼 하루에 프랜차이즈 매장에 들러 마시는 커피 한 잔 정도는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당연히 감당해야만 하는 일상이 된 지 오래라고 모두가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 약 10년 정도의 시간을 나눠 특정 세대로 구분했던 것과 달리,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태어난 이들의 경우에는 비슷한 성향을 공유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을 사용해 왔기에,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유사한 콘텐츠를 함께 소비하며 성장했다. 진정 같은 세대인지는 잘 모르겠고, 눈 뜨면 세상이 달라지곤 하는 오늘날과는 다소 모순되는 설명이라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그러나 확연히 다른 거 같으면서도 결국 하나의 점을 향해 소실(!)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은 사람들의 삶을 고려한다면 이와 같은 진단도 어느 정도는 유효하지 싶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되었으며 내 관심을 끌었던 이야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저자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의 다양한 분야를 바라본 이야기를 전개했다. 역차별까지 논의되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이 비난 받으며 각종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하는 시대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는 것, 자신의 어머니에게 존재했던 유일한 세상이 가족이었다는 것, 가해자를 향한 분노만으로는 세상을 결코 뒤바꾸기 힘들다는 것 등. 소위 어른들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세상을 고민할 줄 모르며 오로지 개인사에 매몰된 삶을 살고 있다 주장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저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임으로써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 세대를 보여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능력이 부족한 것도, 그렇다고 마냥 나태했던 것도 아니다. 낙오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서도 평균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확인받고자 SNS등을 통해 제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게 바로 우리 세대다. 이미 숨이 가쁠 정도로 속도 내어 달리고 있는 말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한다면 외려 역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청년층에게 혹 그리 굴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