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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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세계의 여성 17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삶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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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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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증언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b*****3 | 2022.08.17 리뷰제목
나는 휴전한 다음에 태어나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안도 안주에서 혈혈단신으로 내려오신 어머니 때문에, 그리고 1983년 6월 이산가족 찾기 첫날부터 외가 식구들을 찾으면서 이산가족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직접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전쟁에 대한 생각은 늘 피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에서 근무하던 2014년 일어난 예멘 전쟁은 올
리뷰제목

나는 휴전한 다음에 태어나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안도 안주에서 혈혈단신으로 내려오신 어머니 때문에, 그리고 1983년 6월 이산가족 찾기 첫날부터 외가 식구들을 찾으면서 이산가족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직접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전쟁에 대한 생각은 늘 피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에서 근무하던 2014년 일어난 예멘 전쟁은 올 4월에 휴전에 합의한 이래 아직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몇 년은 대낮에 리야드 상공에서 미사일 격추되는 소리가 자주 들려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는 정도가 되었다. 전쟁터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전쟁 한복판에 있기는 한 것이다. 그러니 여느 한국인에 비해서는 전쟁에 예민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전쟁에 예민하게 만든 건 미사일 격추되는 모습이 아니라 신문에 여과 없이 실리는 적나라한 살육현장의 사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끔찍한 현장 사진을 있는 그대로 언론에 보도하지 않는다. 취지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생각이 피상에 머무르는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살육현장의 적나라한 사진을 보면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비록 전쟁터에서는 떨어졌지만 전쟁 소식이 일상이 된 곳에 살았으니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자세가 여느 사람들과 같을 수 없었다. 전황을 챙겨보고 배경에 대한 분석 기사를 찾아 읽었다. 그러다 페이스북에서 윤영호 선생께서 올리는 우크라이나 소식을 만나게 되었다. 윤 선생께서 오랫동안 <런던라이프>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리는 ‘다방면에 걸친 영국의 모습’을 관심을 가지고 챙겨보고 있던 중이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오랫동안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가에서 사업을 해오던 러시아 전문가였다.

 

그렇게 올린 글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윤영호 선생께서 부인이신 윤지영 선생과 함께 우크라이나 여성 17명을 인터뷰한 내용이라고 알아듣고 전쟁의 고통과 전쟁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생각을 날것으로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받아보니 인터뷰 대상에 피해당사자인 우크라이나 여성 뿐 아니라 그들을 돕는 다른 국가의 여성, 전쟁의 영향권 안에 있는 주변 국가의 여성, 그리고 러시아 여성까지 포함하고 있다. 두 분 저자께서 이들의 증언을 통해서, 아울러 러시아가 벌이는 선전선동의 허구를 지적하는 관련 인사들의 진술을 통해서 우크라이나인들이 겪는 고통 뿐 아니라 전쟁의 배경, 그리고 러시아의 논리와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마다 매번 내용을 너무 많이 공개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저자와 출판사에 결례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부담이 있다. 사실 리뷰는 누구 보라고 쓴다기보다는 읽은 것을 잘 이해하고 가능하면 기억하기 쉽도록 정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내용은 빼놓지 않고 담으려고 한다. 아무튼 저자께서 이 책이 팔리는 것보다 읽히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밝혔으니 읽으면서 중요하게 여긴 부분을 편안한 마음으로 정리하고 느낌을 덧붙이려 한다.

 

전쟁의 고통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어머니에게서 피난 내려올 때 이야기를 들으면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아리다. 떠나는 자식도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겠지만 보내는 부모 마음만큼이야 하겠나. 이 책의 주인공들이 집을 떠나올 때도 다르지 않다. 그저 자식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임에도 별일 없을 거라며 다시 만나자는 말로 자식을 다독여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렇게 떠나온 곳이 낯선 곳일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미 다녀간 곳이라고 해도 느낌은 같을 수가 없다. 미혼의 직장인 나탈리아는 런던에 여행 왔을 때 매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지만 난민으로 찾아와서는 한 달이 넘도록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에서 사는 사람을 ‘구명줄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도 있다는데, 여행객도 아니고 난민으로 찾은 외국에서의 삶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고단했겠나. 물론 난민이 되어도 살아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리듬체조 선수였던 리디야처럼 아이폰을 손에 들고 고급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다니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던 사람이 그 삶에 적응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닐 것이고, 짐작할 수도 기대를 걸 것도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들을 옥죄고 있을 것이다.

 

나탈리아는 직업센터에서 정부보조금을 받으러온 난민 취급을 받으면서 크게 낙심한다. 그것이 사실인 것을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변호사 지망생인 루드밀라는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는 가사도우미 정도라면서 과연 자기가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살 수 있을지 염려한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공포 속에서 지낸다. 루드밀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사이렌은 대피하라는 신호였지만 그 자체로 공포였다고 말한다. 폭탄이 예고 없이 떨어지더라도 차라리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직장에서 휴식 시간에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했지만 전쟁이 시작된 후로 오히려 초조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이 싫었다고도 한다. 내일을 알 수 없다는 초조함과 커피의 평온함이 가져오는 극명한 대조가 싫었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의 조건 없는 도움

 

이들을 통해 접하는 이웃 국가들의 도움은 기대를 뛰어넘는다. 아니, 기대를 뛰어넘는 정도를 넘는다. 우리로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규모가 그저 놀랍다.

 

“폴란드 정부는 모든 난민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대중교통을 무료로 제공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모든 지역에 지원센터가 있어 난민들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며 필요한 옷과 음식을 얻는다. 영국은 영국 정부에서 메일로 보낸 특별입국허가서로 입국할 수 있다. 이후 6개월간 체류하면서 집과 직장을 찾고 정식 절차를 밟아서 3년짜리 비자를 받는다. 런던에 난민으로 도착한 나타샤는 영국 정부로부터 한 달에 200파운드를 받고 나타샤에게 집을 내어준 영국 여성 아만다는 생활지원비로 350파운드를 받는다. 주민이 난민에게 주택을 제공하겠다고 하면 영국 정부가 난민이 거주할 독립공간이 충분한지, 보안은 문제가 없는지, 집주인이 혼자 사는 남자는 아닌지, 난민의 노동력을 착취할 여지가 있는지, 집주인이 범죄기록이 있는지 확인해 이를 통과한 가정에만 난민을 배정한다. 절차가 워낙 까다로워 중도에 지원을 철회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무려 20만 가구나 신청했다. 라트비아는 지금까지 난민을 26,000명 받았다. 1/3은 라트비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숙소를 제공하고 라트비아 정부는 나머지 숙소와 최저생계비를 지원하고, 대중교통도 무료로 제공한다.”

 

“리디아가 파리에 도착하자 모든 교통편이 무료였다. 파리-런던 유로스타도 무료였고 런던 안에서 교통편도 무료였다. 모든 사람이 친절해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영국인은 거주지 증명이 있어야만 개설할 수 있는 인터넷 은행 계좌가 우크라이나인은 여권만으로 개설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Help Ukraine를 검색하면 각 지역마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조직을 찾을 수 있다. 루드밀라는 자기를 받아준 영국 가족이 바르샤바-런던 항공권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는 국가의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시민이 공감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우리에게 난민을 받아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과연 어느 수준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난민이 생긴다면 그것은 북한 주민일 수밖에 없는데, 이들과는 달리 그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늘 통일을 꿈꾸는 형제 아닌가. 당연히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인데, 나는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북한이 남한을 괴멸시키는데 굳이 무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고 그저 난민 십만 명만 내려 보내면 된다는 소리가 들릴까.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법이다. 이웃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왜 우크라이나인가?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NATO가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미국과 러시아 합의사항’의 실체를 파헤친 <Not One Inch>의 저자이자 미국의 정치학자인 ‘메리 엘리스 사로티’ 존스홉킨스대학 교수와 터키의 정치학자인 ‘아나르 소문쿨로’ 하제테페대학 교수를 인터뷰한다.

 

사로티 교수는 문제가 된 ‘Not One Inch’ 사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990년 2월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독일 통일에 대해 논의한다. 베이커는 소련이 독일 통일에 동의하고 동독에서 물러나면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고르바초프는 좋은 생각이고 나중에 더 논의해보자고 반응한다. 이는 구두로든 문서로든 합의된 것도 아니고 어느 한쪽의 공식 문서로 남지도 않았다. 베이커는 돌아와 부시 대통령에게 설명하지만 부시는 일언지하에 거부한다. 부시는 필요하다면 유럽 안정을 위해 NATO가 독일을 넘어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국으로서는 소련에서 요청하지도 않은 것을 먼저 약속할 필요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푸틴이 주장하는 전쟁의 명분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문쿨로 교수는 러시아가 흑해에서 지중해로 진출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 때문에 지중해 진출 관문인 보수포루스해협과 다르다넬스해협을 품고 있는 터키가 불안을 느껴 NATO에 가입했고, 정치적으로는 EU에 군사적으로는 NATO에 가깝게 있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압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압박에 무릎을 꿇을 만큼 만만한 국가는 아니었다. 옛 소련 연방국가 중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크고 인구도 러시아 다음으로 많다. 우크라이나에 소련 군수산업시설의 1/3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만한 경제적 문화적 유인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자국이 지향하고자 하는 미국이나 서구의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서구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러시아로서는 경쟁 대신 전쟁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뜻밖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소련연방의 해체가 러시아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니 러시아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소문쿨로 교수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러시아가 소련연방의 해체를 주도했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소련연방이었을 때 (지금은 다른 국가로 분리된) 저개발 지역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러시아인들이 더 이상 그런 역할을 원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들이 소련연방에 착취당했다고 생각하듯 러시아인들도 자기들이 소련연방에 착취당했다고 생각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결코 러시아와 다른 나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고,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다른 국가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터뷰에 참여한 모든 우크라이나인들과 주변 국가의 사람들도 이를 격렬하게 부정한다.

 

“러시아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과 친러세력은 분명히 따로 구분해야 한다. 러시아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돈바스 사람 중에 러시아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크라이나인은 어느 언어를 사용하든 유럽을 동경했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으며 유럽적 가치를 지향한다.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여기고 러시아와 병합을 생각한 사람들 대부분은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진 노인들로 그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다른 역사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 이제 러시아어를 사용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대적으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애널리스트 다리야 마르첸코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이고 러시아는 러시아일 뿐이다. 우리는 전혀 같지 않다. 같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동일 문화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소련 지역에서 러시아어는 세계 곳곳에서 쓰이는 영어와 마찬가지다.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한다고 서로 문화가 같은가?” - 갤러리 관장 리자 게르만

 

“우크라이나는 300년 동안 사실상 러시아의 식민지였다. 그 세월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화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독립된 민족이 아니라 러시아 민족의 일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이것이 300년 동안 지속되어온 프로파간다이다.” - 전직기자이자 저격수 올레나 빌로제르스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별개로 존재하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동의어가 아니다. 서로 잘 이해하고 있는 각각 별개의 슬라브 민족 국가들인 것이다. 비슷한 뿌리와 고통의 역사가 있지만 그것은 역사일 뿐이다. 각 국민들은 자신들의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 벨라루스의 반전시위자 소피아 마로자바

 

“라트비아 인구 25%가 러시아계사람이고 러시아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30% 정도이다. 2012년 러시아어를 두 번째 공용어로 지적할 것인지 국민투표에 붙였지만 반대 75%로 부결됐다.” - 라트비아 올림피언 자네 스쿠지나

 

당사자와 주변국의 전쟁에 대한 시각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것은 푸틴만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인과 친분이 있는 러시아인들도 기회가 될 때마다 푸틴을 옹호하고 푸틴의 논리를 되풀이했다.

 

“러시아 친구들은 내게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국민을 파시즘과 네오나치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라면서 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것을 러시아의 침공이라고 하느냐고 비난했다. 심지어 그들은 너희 때문에 우리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며 오히려 우리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왜 우리 책임인가? 그들은 모두 20대 초반으로 뉴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도 본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서슴지 않는 걸 보면서 어쩌면 저 사회는 처음부터 열린사회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 변호사 지망생 루드밀라

 

그러나 우크라이나 주변의 벨라루스, 라트비아,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물론 러시아 사람마저도 한 목소리로 러시아 침공을 지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증언하며 러시아 침공에 반대하지 못하는 자국 정부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러시아의 위협을 실감하거나 러시아에 대한 생각을 바꾼 이들도 있다.

 

“(러시아 침공에 동조하는) 벨라루스 여권은 일종의 낙인이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벨라루스 여권으로 도움을 청할 수 없다. 나라 안에서는 안전하지 않고 나라 밖에서는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주변에서 러시아 침공에 동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처럼 자신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내세우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은 1,500명이 넘는다. 벨라루스 정부는 정부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전쟁의 공범이 되기를 거부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대통령 뿐 아니라 이런 정부를 선택하고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침묵했던 국민들 모두에게도 있다.” - 벨라루스 반전시위자 소피아

 

“우리 세대는 어머니 세대와 달리 러시아에 나쁜 감정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의 위협을 매우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 - 라트비아 올림피언 자네

 

“내 생활 반경 안에서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카자흐스탄인은 보지 못했다. 내 친구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거나 평화를 지지한다. 카자흐스탄 언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크게 보도하지 않는다.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감정을 싣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도한다. 올해 1월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났고 시위 중에 수백 명이 사망했다. 카자흐스탄은 공동안보조약기구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병력을 보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게 고전하자 카자흐스탄에 파병을 요청하지만 카자흐스탄은 이를 거절한다. 공동안보조약기구는 외부 침략을 받거나 내부 소요가 발생했을 깨 공동 대응하는 것이지 회원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했을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명분을 들었을 것이다.” - 카자흐스탄 글로벌기업 회사원 알리야

 

“런던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음악가 다섯 명이 모여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평화음악회를 러시아 문화센터인 푸쉬킨 하우스에서 열었다. 영국에 정착해 안정적인 삶을 살던 러시아인들은 위축되었고 전쟁을 일으킨 조국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안나

 

예상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지쳐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러시아가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난민으로 만들면서까지 얻으려는 것이 돈바스라면 차라리 그곳을 떼어주고 다시 그들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러시아는 결코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와 약속하는 것은 전혀 쓸모가 없다며 평화를 대가로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포기하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설마 돈바스를 포기하자는 것이나 어떤 희생도 감수하자는 주장이 그들의 진심이기야 하겠는가. 더 이상 희생을 지켜볼 수 없다는 말이고, 내 나라 내 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기 다짐이 아니겠는가.

 

러시아 국민의 책임

 

러시아가 국민의 동의를 얻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국민들의 찬반이 어느 정도인지 밝혀진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푸틴 결정에 대한 찬반에 관계없이 러시아 정부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이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많은 사람이 푸틴이라는 한 사람에게만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것은 심각할 뿐 아니라 의도된 잘못이다. 푸틴이 오랫동안 거짓말 하는 것을 방관하고 받아들이고 소비한 러시아 사회 전체에 잘못이 있다.” - 작가이자 정치인 마리아 마티오스

 

“함께 운동했던 러시아 체조선수가 전화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전쟁에 침묵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범자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들과 이야기 나눌 일은 없을 것이다.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과 침묵하는 사람은 모두 똑같다. 러시아 국민 대부분이 푸틴을 지지하든 그 안에 침묵하는 다수가 있든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 리듬체조 선수 리디아

 

“푸틴 독재 아래에서 러시아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전쟁은 2022년 2월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차지했던 2014년에 예고된 것인데, 그로부터 8년간 러시아 국민은 침묵했다. 그리고 푸틴 정권의 독재와 외부 침략에 관용을 베풀었다. 푸틴 혼자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고 지금 푸틴을 만든 것은 러시아 국민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지난 10년간 독재와 싸워 민주국가를 만들었다. 러시아 정부에 항의하지 않고 침묵한 모든 사람은 공범이다.” - 갤러리 관장 리자 게르만

 

러시아 국민에게는 뼈아픈 지적이자 비난이겠지만 그들도 나름 할 말이 있지 않겠나. 런던에서 반전 음악회를 연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안나도 “많은 러시아 국민이 정부의 선전선동에 길들여져 러시아 정부를 옹호하거나 두려워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침묵한다”며 곤혹스러운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그조차도 지난 10여년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독재와 싸워 민주국가를 만드는 동안 러시아 국민들은 뭐했느냐는 지적에는 답변할 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 정부 뿐 아니라 러시아 전체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살피던 중에 매우 독특한 견해를 접하게 되었다. 푸틴의 주장이 러시아 문학의 흐름과 결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러시아 문학이 푸틴의 공범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펼치는 이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는 전쟁과 큰 힘에 대한 숭배, 외국인 혐오, 작은 나라 비하, 러시아 우월성에 대한 찬미가 녹아 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은 인간 중심의 문학이 아니라 제국 중심의 문학이다. 그 속에서 국가는 항상 개인보다 중요하다.” - 작가이자 정치인 마리아 마티오스

 

“러시아 문학은 푸틴의 공범이다. 러시아 문학은 국가로서 러시아가 가지는 제국주의적 야망이 중심이 되고 개인의 존엄과 자유와 책임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문학에도 크건 작건 식민주의적 관점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야망이 쇠퇴한 이후에는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일어났다. 하지만 러시아 문학은 그런 성찰 없이 여전히 국수주의적이고 이웃 국가에 대한 오만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강력한 탈식민주의적 담론을 만들어낼 책임이 러시아 지식인에게 있었지만 그들은 어떤 공헌도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전쟁에 대한 죄책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뿐이다. 러시아 사회는 실질적으로 자율의 경험이 거의 없었다. 러시아 차르의 억압과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푸틴의 독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사회는 가혹하고 부당하며 수직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러시아는 죽을 때까지 자유를 위해 싸우는 대신 새 주인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결국 한 사회가 가져야 할 존엄성과 품격을 갖추지 못했다.” - 부록으로 실린 젊은 남성 작가 루브코 데레쉬

 

문학에 대한 소양이 없을 뿐 아니라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으니 내게 이를 판단할 만한 역량이 없다. 러시아 문학을 연구하고 계신 김희숙 선생께 견해를 부탁드려볼까 싶다.

 

마치며

 

인터뷰 대상 18명 중에 부록으로 실린 작가 루브코 데레쉬를 뺀 17명이 여성이고 그 중 8명이 우크라이나인이다. 하지만 성별이나 국가에 상관없이 하나같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고 있다. 인터뷰 중에 러시아를 지지하는 우크라이나인도 있다는 증언이 나오지만, 아쉽게도 직접 그런 의견을 밝힌 사람은 없다. 물론 이 책에 실린 견해가 압도적 다수일 것이며, 이 책이 우크라이나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춘 만큼 이에 반하는 기사는 사족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의 시선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고심 끝에 제외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인터뷰 대상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옮기겠다던 다짐이 무위로 돌아간 것을 무척 아쉬워한다. 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분석해 보고서로 만드는 것이 생업이었던 사람으로서 데이터를 배제하는 것은 늘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밝힌 사례는 감정이 격해져서 옮기기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짐작컨대 책에 수록된 내용은 인터뷰 내용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저자 나름의 선별의 초점과 우선순위가 있었을 것이다.

 

잠깐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내용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라트비아 올림피언인 자네 스쿠지나는 “독일이 국방비를 늘리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언급한다. 나는 독일의 군비강화는 일본의 재무장 시도와 결이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발언이 무심히 넘어가지지 않는다.

 

기회가 닿는다면 저자 내외분께 이런저런 궁금증에 대한 의견을 구해볼까 싶다. 이 책이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의도에 용기를 너무 얻었는지 전례 없이 리뷰가 길어졌다. 논문 하나를 끝낸 기분이다. 그런데 끝까지 읽을 사람이 있기나 하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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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책을 읽고.. 평점10점 | c*****o | 2022.08.19 리뷰제목
책 받아보고 하얀 글자로 된 말들에 울컥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가까운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어서 더 그랬나봅니다.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전쟁을 직접 접하지는 않은 세대이지만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가슴 먹먹해지는 부분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깊숙한 곳까지 손을 뻗어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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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받아보고 하얀 글자로 된 말들에 울컥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가까운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어서 더 그랬나봅니다.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전쟁을 직접 접하지는 않은 세대이지만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가슴 먹먹해지는 부분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깊숙한 곳까지 손을 뻗어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 모두에게 당연한 일상을 돌려주길 바랍니다.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 댓글 0
종이책 구매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평점10점 | m*****5 | 2022.08.22 리뷰제목
북펀딩에서 눈에 띄어서 참여하고 구입하게 되었다. 설마 일어날까 싶었던 전쟁이 일어나고 6개월간 계속되고 있다. 그곳에 사는 여성들, 탈출했으나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성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국의 여성들. 이 책은 여성들의 시선, 일상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본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서 슬프고, 난민들을 받아들여준 이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고, 전쟁을 안고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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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딩에서 눈에 띄어서 참여하고 구입하게 되었다. 설마 일어날까 싶었던 전쟁이 일어나고 6개월간 계속되고 있다. 그곳에 사는 여성들, 탈출했으나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성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국의 여성들. 이 책은 여성들의 시선, 일상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본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서 슬프고, 난민들을 받아들여준 이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고, 전쟁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연민을 갖게 한다. 21세기 현대의 전쟁은 어떻게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파괴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댓글 0
종이책 구매 침묵하지 않는 여성들의 목소리 평점10점 | 7****z | 2022.08.23 리뷰제목
판매 수익의 일부가 우크라이나에 기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작은 보탬이 그들의 안위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머리말에 적힌 '침묵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각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라는 단락이 오랜 시간 마음에 맺혔습니다. 침묵하지 않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연대하며, 저 또한 이 아픈 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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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수익의 일부가 우크라이나에 기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작은 보탬이 그들의 안위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머리말에 적힌 '침묵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각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라는 단락이 오랜 시간 마음에 맺혔습니다. 침묵하지 않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연대하며, 저 또한 이 아픈 현실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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