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시작은 막막하다.
이 책의 1장 제목이다. 나도 시작이 막막하다. 게다가 언제나 막막하다.
저자는 청와대에서 8년 동안 연설비서관으로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고 그 외에도 글쓰기 관련 일을 30년 정도 한 분이다. 그러니 글쓰기에 국가대표가 있다면 저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한다.
헌데 국가대표급 글쓰기 대가가 책 첫 장부터 글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글은 순서도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더니 ‘누구나 시작은 막막하다’라는 1장의 제목은 나를 저절로 책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글을 써야하는 이유’라든가 ‘좋은 글은 어떻게 쓰나’라는 말로 시작하며 처음부터 뭔가를 가르치려는 책보다 마음이 편했다.
몇 달 전 남의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내 얘기도 하고 싶다는 마음에 블로그를 시작했다. 목표는 일주일에 글을 두 개 정도 올리는 거였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하루에도 여러 편 글을 포스팅하는 분도 있지만 내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퇴근하고 집안일에 치이다 보면 글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몸도 고단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할 때가 적지 않다는 거다. 책을 읽으면서도 쓸거리가 저절로 떠오르기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뭐라도 쓸 수 있었다. 오랫동안 활동하시는 분들이나 블로그에 글 많이 올리시는 분들은 수월하게 하는데 나만 소질도 없고 적성도 아닌 일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싶어 불안했다. 그래도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 커서 힘들 때마다 글쓰기 책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글쓰기 책들의 내용이야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일일이 읽어보지 않아도 내용 중 80퍼센트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다만 실행하지 못했을 뿐. ‘당신도 꾸준하게 많이 쓴다면 잘 쓸 수 있다.’ 모두들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걸 알면서도 다시금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보게 된다.
좋은 글의 특징이 비슷하듯 이 책에서 말하는 글 잘 쓰는 법도 처음 본 이야기들은 아니다.
자신감 갖기. 욕심 버리기. 되도록 단문쓰기. 질문하고 비판적 사고하기. 어휘력 향상시키기. 문법에 맞게 글쓰기. 고쳐 쓰기......
그렇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듯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길잡이는 책마다 다르다.
‘대화를 나눴다’, ‘얘기했다’, ‘언급했다’, ‘표명했다’, ‘피력했다’, ‘강조했다’, ‘희망했다’, ‘설명했다’, ‘밝혔다’, ‘반박했다’, ‘뜻을 같이했다’, ‘토로했다’, ‘설득했다’, ‘공감했다’, ‘주장했다’, ‘권유했다’, ‘호소했다’, ‘합의했다’ 등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말하다’가 들어가야 할 자리마다 준비해 간 유의어를 봤다. 가장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 써넣었다.
(p.152)
저자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준비한 연설 자료의 일부라고 한다. 일단 ‘말하다’와 비슷한 말이 이토록 많다는 게 놀라웠다. 아울러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이 한 문단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순접: 게다가, 더욱이, 더구나, 아울러,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런 점에서, 어쩌면, 하물며, 이처럼, 이같이, 바로
역접: 하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반면에, 도리어, 오히려, 반대로
인과: 따라서, 그러니까, 그리하여, 그렇기 때문에, 그러면, 그러니, 급기야, 마침내, 왜냐하면
전환: 다란 한편, 그렇기는 해도, 다만, 바꿔 말하면
보완: 즉, 곧, 말하자면, 예를 들면, 일례로, 사실상, 예컨대, 덧붙여, 구체적으로, 왜냐하면, 이를테면, 다시 말하면
종결: 끝으로, 결국, 결론적으로, 마지막으로, 요컨대, 결과적으로, 분명한 것은, 종합하면
(p.185~186)
글 쓸 때마다 적당한 접속부사를 못 찾아 힘들었는데 책에서 보물을 찾았다.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단어들이다. 상황에 따라 적확한 단어를 찾아 쓸 수 있고 같은 단어의 반복도 피할 수 있어 무척 유용해 보인다.
이 외에도 책에서는 다양한 문법지식과 문장 구성하는 법을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책 한권을 100시간짜리 강의 묶음으로 생각하고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면 요긴할 듯하다.
글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다. 이들은 글을 들고 독자 앞에 나선다.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고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고 깨달았다’고 얘기한다. 자신을 드러낸다. 이것이 나라고 외치는 것이 글쓰기다. 관심 받기를 싫어한다면 왜 글을 쓰는가. 정치인과 언론인의 글은 말할 것도 없고 문인과 과학자, 철학자, 연예인 할 것 없이 글을 쓰는 이유는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비겁하다. 관심 끌기에 성공하지 못할까봐 스스로 방어선을 치고 참호 안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격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글로써 무엇인가를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이루고 이바지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투명 인간으로 살기 싫어서다.
(p.285)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밖에서 남의 이목 끌만한 일을 하는 걸 두려워한다. 그런데 저자는 글 쓰는 사람은 관종이라고 정의한다. '내성적’이라는 성향과 ‘관종’이라는 게 양립할 수 있는 걸까.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쓴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동시에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내면을 봐줬으면, 공감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아무리 내성적이라도 안으로만 침잠할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표현을 하고 싶어 한다. 다만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실수할까봐 쭈뼛거리는 사람은 그만큼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는 뜻이니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나는 ‘관종’이다.
‘관종’이라는 단어가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비해 강하긴 하지만 저자가 이런 말까지 쓰는 이유는 글을 쓸 때 독자를 정해놓고 써야 한다는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구체적인 독자를 떠올리지 않고 쓰는 글은 공허해진다고 한다. 되도록 반응을 잘해주는 구체적인 독자를 정해놓고(저자에겐 그런 독자가 아내라고 한다.) 그가 원하는 재미, 효용, 감동을 주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글쓰기 책들은 ‘글 쓰는 건 어렵지 않다’며 ‘이런 저런 것들만 잘 지킨다면’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저자는 처음부터 잘 쓰라고 하지 않는다.
누구나 시작은 막막하다며 아마추어의 입장을 보듬어준다. 잘 못 쓸까봐 걱정하는 내게 못써도 된다고 말한다. 못 쓴 글은 고치면 되고, 혹시 제대로 퇴고하지 못해도 이것이 마지막 글이 아니니 다음의 기회가 있고, 무엇보다 남들은 내 글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해준다. 다행이다.
나는 왜 시작도 막막하고 끝은 더 어려운 글쓰기를 하려할까.
글쓰기를 안 하고 편한 것보다 힘들더라도 하는 게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동안 내가 느끼던 글쓰기가 주는 막연한 행복감을 열 가지로 나누어 구체화한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니 모두 해당되지는 않지만 그 중 다섯 가지는 공감되는 내용이라 내 경우에 맞게 바꿔보았다.
글쓰기로 얻는 행복
* 자기 표현은 쾌감과 만족을 준다.
* 글쓰기에 몰입하는건 힘들지만 즐겁다.
* 호기심이 더 생긴다.
* 알고 깨우친다. 인간의 뇌는 알았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 성장한다. 많이 쓸수록 충만해지고 양적 성장은 질적 성장을 동반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말하는 삶은 내가 본받고 싶은 인생이기도 하다. 삶에 대한 그의 멋진 글을 소개하며 리뷰를 마친다.
나는 오늘도 아는 것이 재미있어 책을 읽는다. 동영상 강의를 듣는다. 생각난 것은 메모한다. 그리고 강의할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된 걸 말한다. 일상이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다. 이 네 가지가 리듬을 타며 나를 드러낸다. 누구의 간섭도 없고, 눈치도 보지 않는다. 날마다 새롭다. 하루하루가 충만하다. 스스로 고양되고 성숙해지는 것을 느낀다. 남처럼 살지 않는다. 내가 나로서 나답게 산다.
(p.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