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주는 잠,
매일의 삶을 마감 짓는 잠, 힘든 노동 뒤의 샤워,
상처받은 마음의 향유, 위대한 자연의 두 번째 과정,
인생의 향연의 자양분을. 』
- 맥베스(열린책들, 2010) p160
셰익스피어도 잘 아는 잠의 중요성과 소중함이라니 그런 잠을 왜 여태 등한시 해왔던 걸까?
어릴 때, 나는 잠이 참 많은 아이였다. 저녁 밥만 먹고 나면 꾸벅꾸벅 졸았고 어느틈엔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완전히 잠들어버려 아침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깬 적이 없었다. 그건 수능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야간 자율 학습이 시작되고 교육방송을 틀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앞자리에 앉은 친구는 방송이 시작되고 뒤돌아볼 때면 내 얼굴을 볼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방송을 쳐다보아야할 얼굴이 자꾸만 책상을 향해 갔기 때문이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잠에 취해있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헌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응용력이나 기타 등등의 능력은 정말 부족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으나 나름 '기억력'만큼은 좋았던 게 바로 '잠' 덕분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치만 정말 그런 걸까? 암튼 그런 잠에 대한 모든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 책을 만났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
하루 중 단 몇 시간이라도 꼬옥 차지하고 있는 '잠',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라도 반드시 해야하는 게 있다면 잠을 자는 것일 테다. 그것도 잘~ 자야한다. 행여 조금만 잔다거나 중간중간 깬다거나 하면 다음날 일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 바로 잠이다.
그런 잠이지만 그 시간조차도 아까워 네, 다섯 시간만 잤던 적도 있었다. 분명 다음날 너무 힘들기는 한데 단, 몇 시간이라도, 사소한 거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 모를 정도로 열심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다음날,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자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보기도 하고 주말에 늦잠을 실컷 잔 적도 있는데 그닥 개운한 느낌을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뇌는 빼앗긴 잠을 결코 모두 되찾을 수가 없다. p422
은근 소름끼치고 무서운 말이 아닌가? 저자는 매일 꼬박 8시간은 기본으로 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시간은 아무리 나중에 조금 더 잔다고 해도 보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만성 수면 부족 상태에 놓이게 되고 계속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놓쳐버린 잠은 어찌할 수 없다해도 지금부터라도 일정한 시간에 꼬박꼬박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건데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울까 싶다.
그랬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신경 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이며 UC버클리 교수인 저자가 임상 실험을 통한 다양한 연구 결과와 여러 과학자들이 내놓은 수면과 관련된 연구들을 만나보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밤샘이 해보고 싶었고 '자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잔소리처럼 여겨져 싫었었는데 '네! 앞으로는 잘 자겠습니다!'라고 해야할 것만 같다. 그만큼 잠, 즉 수면은 매우 대단히 엄청 많이 중요하다. 그 중요성에 대해 언급된 몇몇 부분을 인용해보면...
수면은 무한히 더 복잡하며, 대단히 더 흥미롭고, 우려가 될 만치 건강과 더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p17
잠은 건강을 돕는 무수한 혜택을 제공하며, 24시간마다 되풀이 되면서 당신을 회복시키는 처방전이다. p17
수면 부족은 비만을 위한 완벽한 요리법이다.
열량 섭취는 더 늘고, 열량 소비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p254
이밖에도 24시간 체내시계인 시교차상핵이라는 것의 존재와 잠을 잘 때 분비되는 멜라토닌을 비롯한 여러 호르몬, 비행 시차가 잠에 주는 영향, 임산부의 수면 부족이 불러오는 문제, 잠과 카페인(커피), 알코올의 연관성, 암과 심장마비, 치매에 걸릴 위험성,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는 꿈을 꾸는 잠 등 몹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았는데 가장 와닿은 것은 고속도로를 지날 때면 반드시 보게 되는 '졸음운전'과 관련된 것이었다.
[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잠이 들면, 1톤짜리 미사일이 아무도 조종하지 않은 상태로 시속 100킬로미터로 날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p206
졸음운전의 엄청난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 아무리 긴급한 사안이 있더라도 아래 저자의 말처럼 '목숨', 즉 생명보다 소중한 건 없다.
[ 궁극적으로 보면, 어떤 일이든 간에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다. ]p209
그러니 졸리면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고 깨더라도 바로 운전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완전히 깰 동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훈적인 내용도 담겨있지만 진지한 이야기속에 간간히 웃음 나는 이야기도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불면증에 대해서도 원인이라든가 어떤 형태들이 있는지 등 꽤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불면증과 관련해서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자리이동을 하고 나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였는데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서 온 문자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았었다. 신입직원과의 관계에 대한 조언의 문자였다. 오랫동안의 교류로 나에 대해 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배려없고 안하무인의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만한, 내가 오해할 만한 장문의 글을 보내왔던 것이다. 어느 정도의 감정이 해소되고 배제된 지금은 그 사람 입장에선 최대한 배려를 듬뿍 담아서 좋게 표현한 거란 생각이 들지만 그때의 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마냥 무척 슬펐었다. 돌이켜보면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내게도 문제가 있었지만.
암튼 묵혀뒀던 감정을 끄집어내다보니 이야기가 횡설수설 길어졌는데 그때 난, 처음으로 불면증이랄까 그 비슷한 걸 경험했다. 잠이 드는 건 문제가 없었다. 열 시든 열 한시든 잠이 들었었는데 새벽 세 시, 네 시경만 되면 잠이 깼고 아무리 다시 잠들려고 해도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양도 세어보고 할 수 있을 만한 건 다 했는데 무슨 수를 써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머리에 베개만 대면 곧 잠에 빠져들고 자기 바로 전에 믹스커피를 마셔도 잘만 자던 내가 잠들지 못하다닛!! 그런 날들이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3~4주 정도는 갔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을 놓아버렸던 건지 시간이 약이었던 건지 차츰 깨지 않게 되었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 그 시간동안은 정말이지 넘 지루하고 계속 그럴까봐 무섭기까지했다.
그때의 내 상태를 이 책에서 살펴보면 '심리적 스트레스(p347)'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
[ 불면증 환자는 달라진 걱정하고 반추하는 뇌 활성 양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중략)... 감정 프로그램들이 되풀이하여 작동하고, 거기에 과거나 미래에 대한 기억과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름으로써, 뇌가 작동을 멈추고 수면 모드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다. ]p349
불면증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면 꿈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는데 불면증에 걸리면 꿈도 꿀 수 없게 되고 설령 꾼다 해도 온통 부정적인 것들로만 채워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된 것은 불면증을 약물, 즉 수면제에 의지하기만 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불면증은 무척 슬프고 몹시 무섭다.
그때의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을 테지만 내겐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 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지를 절실히 깨달았으니까.
***
이 책 부록으로 담긴 '건강한 수면을 위한 열두 가지 비결'은 어디선가 한 번쯤 꼬옥 들어봤을 법한 내용이 담겨 있어 따로 언급하진 않겠지만 저자가 반드시 강조하는 비결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수면 시간표를 지켜라'
매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라(p489)
지금까진 내키는 대로 잤었는데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잠'에 대해 다시금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되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일정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어야겠다. 늘 궁금했고 왜 그런지 알고 싶었던 내용이 여기 이 책에 다 담겨 있었다. 그리고 꿈을 꾸는 게 깊은 잠을 못 자게 하는 것 같아 꿈을 꾸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도 좀 했었는데 오해가 말끔히 풀렸다. 꿈은 꼭 꿔야한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아주 극히 일부분의 내용은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봐야할 필요성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아주 좋은 내용의 책이어서 잠을 잘 자든 못 자든 모든 사람들이 꼭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고 특히 지금 쉬이 잠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꼬옥 꼭! 권해주고 싶다.
잠이 보약이랍니다~ 모두들 꿀잠 주무시고 행복한 꿈꾸셔요~♡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