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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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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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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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9호실로 가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s*****e | 2023.01.15 리뷰제목
1·2차 세계대전의 상흔, 가난했던 유년시절, 그리고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나이나 경험이 사람을 반드시 성숙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지만 도리스 레싱(1919~2013)의 작품엔 그가 겪은 고난이 다양한 결로 드러난다. 레싱의 단편집《19호실로 가다》를 읽.었.다. 11편의 단편을 모두 읽기는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고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는 건 더 어려웠다. 눈이 줄거
리뷰제목

1·2차 세계대전의 상흔, 가난했던 유년시절, 그리고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나이나 경험이 사람을 반드시 성숙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지만 도리스 레싱(1919~2013)의 작품엔 그가 겪은 고난이 다양한 결로 드러난다.

레싱의 단편집19호실로 가다를 읽...

11편의 단편을 모두 읽기는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고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는 건 더 어려웠다.

눈이 줄거리를 따라가는 동안 마음을 차지하는 감정,

불편함.

레싱의 작품에는 보일 듯 말듯 보호색을 띠고 자리 잡은, 애매한 폭력과 불평등이 존재한다. 화내면 속 좁은 사람 될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만만해 보일까봐 피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을 짚어준다. 그래서 고마웠다. 이런 이름도 없는 애매한 불편함을 얘기해줘서.

부족한 문해력과 일천한 지식 탓에 11편이 모두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중 기억에 남는 4편을 골라 소개하려 한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방송국에서 인터뷰 작가로 일하는 중년 남자 그레이엄. 그는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지금은 그 공허함을 새로운 여자를 만나 손에 넣는일로 해소한다.

이번 타깃은 바버라 콜스. 잘 나가는 무대 미술가다. 인터뷰를 핑계로 바버라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이 여자, 그레이엄에게 관심이 없고 그저 일만 한다. 식사를 같이 하자고 추근대고 결국 그녀의 집까지 따라간다. 그래도 반응이 없는 바버라. 그를 남자로 봐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저 귀찮아한다. 열심히 시도하지만 나중엔 성욕도 사라지고 자존심만 남았다. 결국 그녀를 손에 넣는데 실패하는 건가 

그럴 수는 없다.

, 하느님, 이 촌뜨기를 이제 떼어버릴 수 있어!’ 정말 헤픈 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p.59)

 

옥상 위의 여자

어느 여름, 옥상 위에서 젊은 여자가 누워 일광욕을 한다. 마침 근처 건물 옥상에서 세 남자가 홈통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중년의 해리, 새신랑 스탠리, 열일곱 살 톰. 그들의 눈은 모두 여자에게 향한다. 다음날도 여자는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고 남자들은 여전히 그녀를 훔쳐보며 비난한다. 나쁜 년.” 이해되지 않는 말이지만 작가는 친절하게이유를 설명한다. 자기를 지켜보는 세 남자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여자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화가 났다.’(p.68).

일광욕만 할 뿐 그들을 신경 쓰지 않던 여자가 어느 비 오는 날 옥상에 나타나지 않자 톰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하늘이 당신 버릇을 고쳐 놓았군, 그렇지? 아주 제대로 고쳐놓았어.’ (p.80)

 

한 남자와 두 여자

디자이너인 스텔라와 그녀와 친한 화가인 브래드퍼드 부부가 등장한다.

스텔라와 잭 브래드퍼드는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잭의 아내 도로시는 아직 무명이다. 안목 없는 대중이 주는 상업적인 성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고 서로의 예술세계를 존중한다.

방송기자라는 남편의 직업 덕분에 몇 달씩 떨어져 지내야 하는 스텔라 부부와 달리 잭과 도로시는 가난하지만 모든 걸 함께하며 자주 여행을 다니는 행복한 부부다. 그러던 중 도로시가 임신을 하고 그들은 시골에 정착한다.

어느덧 아기가 태어나고 스텔라가 그들을 찾아간다.

아기가 생긴 부부. 더 행복해졌을까 

아기를 낳고 나니 내 안의 창의성이 전부 죽어버렸어. 임신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 도로시가 말했다. (p.119)

태어난 지 6주밖에 안된 아기를 키우면서 창의성 운운하는 엄마라니. 갓난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24시간을 저당 잡힌 삶이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스텔라에게 도로시는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잭이 가끔 어디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밤이고 낮이고 허구한 날 잭이랑 같이 갇혀 있는 것 같아서 숨이 막혀.”(p.123)

10년 넘는 결혼기간 동안 부부가 계속 함께 지내야했던 끔찍함, 남편의 외도를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신경 쓰이는 상황.

무엇이 문제일까 

 

<19호실로 가다

한 남자와 두 여자보다 더 완벽한 부부가 등장한다.

유능한 남편 매슈, 역시 유능하지만 가정을 위해 전업주부가 된 수전.

정원이 딸린 큰 집, 착하고 건강한 네 아이, 파출부, 자동차, 그리고 수많은 책을 읽은 지적인 부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그런데 가끔 수전은 자신이 가진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어서인가. 그녀는 작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도 모두 등교하고 마침내 수전은 자유로워졌다.

그녀는 정말 자유로워졌을까? 이상하다. 수전은 집안 어디에 있어도 혼자일 수 없었다. 욕실, 빈 방, 매슈가 정해준 지붕 밑 엄마의 방에서조차도.

저는 몇 시간 동안 혼자 있고 싶어서 이 호텔을 찾아왔어요. 내가 있는 곳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어서요.”(p.305)

혼자만의 방이 필요한 수전이 찾아낸 곳은 어느 허름한 호텔의 19호실.

집안의 모든 공간이 그랬듯 그곳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찾아온다. 수전의 19호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한 남자와 두 여자는 여자를 같은 인간으로 대할 줄 모르고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찌질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행동은 분명 폭력이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남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 여자가 등장함으로써 그나마 위협도 못되는 찌질함으로 그려진다.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찌질남들은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여자들이라고 해서 존중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세상의 여자는 오직 두 종류가 있을 따름이다.

나쁜 년과 헤픈 년.

 

한 남자와 두 여자와 표제작 <19호실로 가다역시 비슷한 결로 묶인다.

완벽한 가정의 그녀들은 왜 불행할까 

 

내가 생각하는 첫째 이유는 경제력이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등장인물들은 상업적인 성공을 무시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돈이 숨어있다. 도로시는 남편과 늘 함께하는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가 싫어하는 건 남편과 함께 한다.’는 그 자체보다 남편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한 그녀는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삶의 형태 또한 남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는 그녀의 독립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19호실로 가다의 수전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서 남편은 일에, 아내는 가정에 집중한다. 남편의 수입이 넉넉하고 부부의 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수전은 허름한 호텔의 숙박료 몇 푼마저도 남편에게 일일이 받아야하는 처지다. 물론 지적이고 성실한 남편이 아내에게 돈의 용도 따위는 묻지 않지만 이것은 배우자의 지성이나 인성 문제가 아닌 헤게모니의 문제다.

 

 둘째 이유를 들자면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

아이가 딸린 도로시에게도, 모든 물리적 노동에서 벗어난 부유한 주부 수전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은 필요하다.

흔히들 남자에겐 동굴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동굴은 남자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은퇴한 부부가 갈등을 빚고 황혼이혼을 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 남자들이 집안일을 할 줄 모르고 아내의 보살핌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더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조건으로 1년에 500파운드라는 고정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난다. 글을 쓰는 데만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겠는가. 모든 인간에게는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작가도 <19호실로 가다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수전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다고 말이다. 그런 그녀가 남편에게 19호실로 가는 이유를 말할 수 없어서 외도를 핑계대는 부분이 너무 안타까웠다. 19호실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대신 19호실로 가는 수전을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었을까. 남편으로 대표되는 세상 사람들의 이해와 상관없이 (심지어 작가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수전은 자유로운 존재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을 납득시켜야만 했다. 그것 또한 수전에게는 참을 수 없는 폭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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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9호실로 가다 평점8점 | k******5 | 2018.07.27 리뷰제목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노란 문과 커튼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 여인은 노란색(봄, 시작, 희망)을 보는 걸까, 그 너머를 보는 걸까.침대에 앉은 뒷모습이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책은>서평모집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도리스 레싱 ---발췌하다Doris May Lessing작가 도리스 레싱은 현대의 사상·제도·관습·이념 속에 담긴 편견과 위선을 냉철한 비판 정신과 지
리뷰제목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노란 문과 커튼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

여인은 노란색(봄, 시작, 희망)을 보는 걸까, 그 너머를 보는 걸까.

침대에 앉은 뒷모습이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책은>

서평모집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도리스 레싱 ---발췌하다

Doris May Lessing

작가 도리스 레싱은 현대의 사상·제도·관습·이념 속에 담긴 편견과 위선을 냉철한 비판 정신과 지적인 문체로 파헤쳐 문명의 부조리성을 규명함으로써 사회성 짙은 작품세계를 보여준 영국의 여성 소설가이자 산문 작가이다.

본명은 도리스 메이 테일러(Doris May Tayler)이다. 1919년 이란의 케르만샤에서 태어났다. 레싱의 가족은 1925년, 영국 식민지인 남부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사해 옥수수농장을 했다. 가족이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으나, 레싱은 로마 가톨릭의 여학교를 다녔다. 15살 이후는 학교를 떠나 독학을 했다. 이런 어렵고 고된 유년기에도 불구하고, 레싱의 작품에서 그려진 영국령 아프리카의 삶은 식민지 영국인의 메마른 삶과 원주민의 어려운 삶에 대한 연민으로 채워져 있다. 열네 살 이후부터 어떤 제도 교육도 거부한 독특한 이력은 기성의 가치 체계 비판이라는 그녀의 작가 정신과 태도의 일관성을 잘 보여준다.

 

영국인으로서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 로디지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특히 인종차별 문제, 여성의 권리 회복 문제, 이념 간의 갈등 문제 등에 깊이 천착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정치 의식과 사회비판 의식은 전통과 권위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어리석음, 반가치 등의 집단 폭력으로부터 인간 개인의 개성적인 삶과 사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첫 소설인 《풀잎은 노래한다》(The Grass Is Singing)는 1950년 런던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그녀는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11번째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으며, 당시 88세로 역대 수상자 중 최고령의 기록을 세웠다. 이 외에도 서머싯 몸 상(1956), 메디치 상(1976), 유럽 문학상(1982),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상(2001) 등을 수상했다. 유명한 작품으로 『폭력의 아이들』 시리즈, 『황금노트북』, 『생존자의 회고록』, 『다섯번째 아이』, 『런던 스케치』 등이 있다.

그녀는 두 차례 결혼하고 두 차례 이혼했으며,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찰스 위즈덤(Chales Wisdom)과의 첫 결혼 생활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이어졌다. 후에 동독의 우간다 대사를 지내기도 한 고트프리트 레싱(Gottfried Lessing)과의 결혼 생활은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이어졌다. 1999년 영국 정부로부터 CH훈장을 받았으나 DBE 작위는 고사하였다. 2013년 11월 17일 향년 94세, 노환으로 별세했다.

<책읽고 느낀 바>

  그랜드 마더스/를 서평 응모하며 다른책 응모를 철회했건만 교류하는 분들은 여럿 당첨되었음에도 내 아이디는 없었던 책.  시간이 흐른 뒤 토론 거리가 될 수 있었던 그 책을 산 것도 같고 선물받은 것도 같다는 희미한 기억. 도리스 레싱은 이렇게 기억된 저자인데 이제서야 접할 시간이 되었던 모양이다.

 

  단편 11개가 수록되었음에도 방대한 페이지는 아니다. 휙휙 넘어가지 않았다. 보통의 관점에서 보는 소설이 아니다. 예상하기 어려운 전개면서 심리묘사는 섬세하다. 밝고 긍정적인 게 아닌 우수에 젖고 우울도 있는 무미건조하다라고 치부하기엔 서정성도 있다.

 

  11편의 단편 중 3편만 쏙 들어왔고 나머지는 신중하게 읽었으되 모호했다. 조금 난해한 편으로 억지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약간은 추상적인 면을 보는 듯한데  독자몫인가 이해했다. 맘에 든 이 3편만 내 식으로 이해했어도 만족이다.

 

최종후보에서 하나 빼기

한 마디로 말하면 그레이엄 스펜스가 바버라 콜스를 정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이야기.

결혼 20년째인 그는 아내와 이혼 직전까지 갔으나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꿨다. 그 아가씨를 실망시킨 댓가는 아내와의 지속된 결혼 생활로 이어졌고 처음 10년은 치열하고 살벌하게 싸우고, 싸웠으나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 대개가 거기서거기 라고 생각하는 건 자기 자로 남을 재기 때문이다.

 

가난한 청년이 책을 내 첫 권은 성공했으나 두 번째 책은 기억하는 이 없는 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잘하는 게  서평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가장의 책무를 다하며 자신이 맘먹은대로 인터뷰하는 여자들을 요리했고, 요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은 대체로 성공했다. 우연히 본 바버라 콜스를 함락(?)시키기 위해 자연스런 작전을 짰고 계획대로 밀어부친다.

 

보통 여자인 그녀가 수법에 걸리지 않자 당황한다. 끌어안고 격렬한 키스를 퍼붓지만 맘대로 안되자 꽉 끌어안은 채로  온통 여기저기 침만 잔뜩 발라댄다. 승부욕은 정복욕으로 변하고 성취욕으로 치닫는다. 너무 용을 써서 결정적인 순간에 발기가 안되고. 유부녀인 그녀가 수동으로 분출을 시키는 사태를 맞는다. 그녀 입장서 보자면 좋아서가 아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덤빌 것이기에. 결국 그의 참패로 끝나는데 제목이 얼마나 기막힌가.

 

목격자

늙은 남자는 30년째 한 직장에 근무하지만 그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다. 노처녀와 타이피스트 여직원 그리고 남자보다 더 나이 많은 사장님. 노처녀는 일을 잘했고 파워도 세다. 늙은 남자는 앵무새와 개를 키우는데 반려로써보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키운다. 마찬가지로 사무실에서 자신에게 질문을 하면 대답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투명인간 취급이지 그에게 질문은 돌아오지 않는다.

 

10대 여직원이 입사하는데 천방지축 말괄량이 삐삐다. 마니의 사고와 행동은 어이상실이다. 노처녀마저도 일단 관찰하는지 말을 잃었다. 예측불가인 마니는 사장실에 들어가면 나오질 않는다. 마니 아빠와 사장이 친구라서 입사했다는데 믿어야할 지 말 지. 이상한 건 여직원들 말이라면 싫은 기색을 안보이던 사장이 마니만 감싸고 여직원들을 성질나게 만든다. 모두 한 번씩 감정 폭발을 일으키고 마니는 울고 불고 사장에게 하소연하는데. 늙은 남자는 마니를 위로한다.

 

벌레 보듯 했는데 위로를 받아서인지 고분고분 자신을 따라온다. 늙은 남자의 집에 갔다가 기겁을 하며 나온다. 어차피 잠시 머무는 집이라 남의 집에 자신의 물건은 새와 개 그리고 침대. 인터넷 구매한 사진들뿐. 애초에 남의 사진도 도배된 상태였거늘 변태취급당한 게 늙은 남자는 부끄럽기도 하고 억울한 맘도 든다. 한번만 더 술 취해 출근하면 해고라는 경고도 받았건만 그렇게 출근에 이른다. 빼꼼이 열린 사장실 문틈을 들여다보니 마니는 사장 의자에 앉아 있고 사장은 연신 마니를 핥느라 정신이 없다.

 

목격자라서 해고를 당한 건지, 술 취해 출근해선지 늙은 남자는 알 수 없으나 열불이 난다. 마니에게 사장은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다고 말해 주지 못한게 걸린다.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한 여직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적응한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그들에게 인사를 못한 게 아쉽다. 자신을 궁금해할 사람 한 명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사장은 그랬었다. 누군가 복이 통째로 굴러 들어와 복 터진 사람이 있다고. 마니인 줄 알았더니 사장이었네 라는 뒤늦은 깨달음. 목격자 라는 제목도 환상이다.

 

19호실로 가다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 라고 밝힌다.

매슈는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 수전은 광고회사에서 일했는데 둘다 벌이가 좋았다. 둘은 달콤쌉싸름한 사랑도 서너 번의 경험이 있고, 친구들이 결혼을 일찍해 아쉬워하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잘 어울리는 커플로 20대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서로가 지성으로 대화하고 사랑했으며 자녀들도 아들, 딸, 쌍둥이 남매를 환상적 조합으로 낳았다. 육아에 있어서 헌신하는 수전과 가장의 책무를 다하는 매슈는 여전히 애정전선에 이상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서-어쩌면 조금씩 빈둥지증후군이 발발하는 것 같은- 수전은 새로이 일을 시작해도 되는 상황. 일해 주는 분도 성실했으나 수전의 응답을 늘 들어야하는 사람인게 조금 피곤한 일. 굳이 말하자면 사건의 시작은 매슈가 잠시 바람을 피웠다고 고백하는데 수전의 가슴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 매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어찌 분노나 배신감 나아가 질투가 나지 않을까. 수전은 그게 이상하고 이상했다. 그러면서 마음 속이 텅 빈 듯한 불안이 자리한다. 그걸 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체가 없지만 있다고 느끼는 적 말이다.

 

육아 우울증이라고 보기엔 과도할만치 수전은 불안해하고 허전해한다. 자신만의 방이 필요하대서 정해주지만 그 안에서 더 갑갑증을 느끼니 그 방은 있으나마나.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남편에게 돈을 받아서 먼 곳의 남루한 호텔 19호실에서 쉰다.  시간제를 써도 종일요금을 낸다. 지배인은 지극히 사무적이라 편안했고 19호실이 대실일 때는 기다렸다 머문다. 수전은 그 남루한 방에서 오로지 의자에 앉아있다만 나온다. 19호실만이 그녀의 숨통이다. 그 안에서만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자신의 집으로 와도 자신을 19호실에 두고 왔다고 여겨진다.

 

모든 것들이 귀찮아서, 시시각각 챙겨야하는 것들에서 벗어나고파 젊은 보모를 고용한다. 보모는 안주인 역할을 잘 해내고 가족들도 적응하는데 수전만 불안하다. 자신이 있어야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왜 집에서 편안함을 얻지 못할까.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하는 것도 아닌 상태.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느껴지지 않는 상태. 광고일을 시작하면 될텐데 그것도 아니고. 정신과상담 같은 건 아예 등장하질 않는다. 그저 그녀가 말라가는 과정이 있다. 그러다 안식을 찾기에 이르는 결말에서 화가 났다. 추리소설도 아니건만 반전이다.

 

* 이 리뷰는 문예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3 댓글 26
종이책 19호실로 가다 - 여자들이 사는 방식에 대해 말하다 평점10점 | a*******5 | 2020.02.25 리뷰제목
요즘 저자의 소설들을 찾아 읽고 있다. 여성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편안함이다. 그건 주제나 소재가 편안해서가 아니라 인물 묘사가 자연스러운 데서 오는 편안함이다. 많은 남성 작가가 묘사하는 여성 인물들에겐 어딘가 찜찜한 구석과 의혹이 남는데 반해 여성 작가가 묘사하는 여성과 남성 인물에는 그러한 의혹이 남지 않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어 좋다. 이 책에는
리뷰제목

요즘 저자의 소설들을 찾아 읽고 있다. 여성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편안함이다. 그건 주제나 소재가 편안해서가 아니라 인물 묘사가 자연스러운 데서 오는 편안함이다. 많은 남성 작가가 묘사하는 여성 인물들에겐 어딘가 찜찜한 구석과 의혹이 남는데 반해 여성 작가가 묘사하는 여성과 남성 인물에는 그러한 의혹이 남지 않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어 좋다. 이 책에는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를 비롯해 196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쓰여진 11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최종 후보 명단에서 하나 빼기]

다소 재미있는 제목의 이 단편은 유명한 여성을 상대로 모험심이 발동해 한번 쓰러뜨려보려는 욕망을 품고 접근하는 그레이엄 스펜스와 그의 잠자리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바라라 콜스의 밀당 이야기다. 재작년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 딸아이의 선생님 한 분이 "너희는 나중에 남자가 사주는 술 절대 먹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이 "그 남자들이 왜 너희한테 술을 사주겠니?"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갈 데까지 가게 된 바라라 콜스가 취하는 차선책은 아마도 경험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겪는 대처법이 아닐까 한다. 여성을 대하는 많은 남성들의 머릿속에 '그것'밖에 없다는 건 참으로 슬픈 가부장제의 현실이다.

 

[옥상 위의 여자]

"자기를 지켜보는 세 남자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여자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화가 났다."

아파트 옥상에서 수영복 팬티 차림으로 선탠을 하던 여자는 건너편 옥상에서 일하는 세 남자에게 발견된 후 자신의 선탠을 계속하기 위해 '나쁜 년'이 된다. 그 후 연령대가 다른 세 남자가 보여주는 반응은 각기 다르다.  10대 소년 톰은 낭만적 환상에 빠져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아마도 20대인 스탠리는 길길이 날뛰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발광하고, 가장 나이 많은 아버지뻘인 해리는 그냥 내버려두자고 한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반라의 여성을 바라보는 세 남자의 시선을 통해 조마조마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으며 성폭행 당하고 살해되는가.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자신의 인생에서 귀한 10년을 가져간 두 남자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던 여성이 고통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꺼낸 이야기다. '그 세월 동안 내내 사랑하며 두근거리던 물건'을 막상 꺼내보니 당혹스럽고 보기 흉했는데 손에서 떨어지지 않아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만난 미친 여성에게 동정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품자 심장이 어느 순간 떨어져나가며 홀가분해진다. 오로지 자신 안에 갇혀 있던 슬픔과 고통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며 사라지는 건 마음의 진실이다. 지금 너무 괴롭고 슬프다면 타인의 삶에 등 돌리고 내 안에 갇혀 지내는 건 아닌지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두 도공]

작가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꿈꾸는 사람과 꿈꾸지 않는 사람." 나 역시 꿈꾸는 사람이고 한발 더 나아가 융심리학을 통해 꿈해석과 상징에 관심이 많기에 이 작품이 매우 흥미로웠다. 작가의 지인인 현실 속의 도공 메리 토니시와 작가의 꿈속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늙은 도공의 이야기를 통해 꿈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꿈에 나오는 늙은 도공은 창작자인 작가의 창조적인 아니무스 상인 듯하다. 황무지에서 도기를 만드는 늙은 도공은 태초에 진흙으로 인간을 비롯한 세상의 피조물을 창조한 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신으로 상징되는 창조성을 부여하는 특별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와 남자 사이]

한 대학교수의 아내와 정부로 지낸 두 여성 페기와 모건이 만나 술을 마시며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여성연대 이야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성끼리의 단결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 깨진다'는 속담이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에는 여성의 단결과 목소리를 가로막는 남성 중심 사회의 두려움이 들어있다. '남자와 남자 사이에서' 분열돼 왔던 여성들, 엄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올케가 연대할 때 달라지는 건 이 세상이 좀더 평등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거다.

 

[19호실로 가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

이 단편을 다 읽고 맨 앞으로 돌아와 다시 읽어보니 이러한 첫 문단으로 시작한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현모양처를 이상향으로 꿈꾸며 결혼생활을 시작할까. 그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결혼생활과 양육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회의하며 발버둥치는가.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지인의 이야기라고 느끼며 공감한 이야기다. 결혼 생활 10여 년이 흐른 뒤 작고 더러운 호텔방을 찾아가며 자신을 찾으려 애쓰던 수전의 마지막 선택을 존중해야겠지만 가장 바라지 않던 결말 앞에서 슬픔이 넘친다. 가정에 종속된 여성의 삶과 이성중심 사회에 울리는 경고의 종소리 같다.

 

 여성 작가의 인물 묘사가 편안한데다 익숙한 소재라고 해서 편하게 읽으면 자칫 작가의 문제의식을 놓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편안해보이는 여성의 일상 속에 스며있는 여성혐오와 성폭력의 위험과 공포, 길을 가다가도 낯선 남성의 이상한 눈빛을 마주치고 불현듯 느끼는 위기 의식이 그렇듯이 말이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통해 만나는 페미니즘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이러한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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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내가 심장을 잃은 사연 평점8점 | g******1 | 2018.07.30 리뷰제목
<최종명단에서 빼기>는 여성독자들이 사랑했지만 남성들 또한 좋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레싱이 직접 밝힌 소설인데, 나 역사 이마를 딱 치며 아 이거다 싶게 유쾌했다. 이 소설집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 또한 좋아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건 이 남자가 홍상수 영화에나 나옴직한 전형적인 찌질남이고, 유명 여성과의 섹스를 통해 정복력과 성취감을 금메달처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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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단에서 빼기>는 여성독자들이 사랑했지만 남성들 또한 좋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레싱이 직접 밝힌 소설인데, 나 역사 이마를 딱 치며 아 이거다 싶게 유쾌했다. 이 소설집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 또한 좋아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건 이 남자가 홍상수 영화에나 나옴직한 전형적인 찌질남이고, 유명 여성과의 섹스를 통해 정복력과 성취감을 금메달처럼 전시하는 남성의 심리를 통쾌하게 조롱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법적 규제나 안전 장치가 부족했던 시대에, 남녀의 섹스라는 행위가 남성에게는 정복, 여성에게는 굴복이라는 프레임 속에 위치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만일 이 소설을 100년 쯤 후에 읽는다면 이게 무슨 뜻인지, 무슨 맥락에서 이런 소설이 나왔는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상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물리적으로 보나 행위적으로 보나 두 사람이 서로 같이 몸을 만지고 뒹굴고 그러다보니 생기는 자연스레 욕정을 해소하는 행위를 남성은 갖는 것으로, 여성은 주는 것으로 느끼고 표현하던 이상한 관습적 사고를 예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파괴한다. 쉽게 섹스하는 여성을 헤프다며 질타하던 시기에 쓰여졌다는 걸 감안할 때 다욱 파격적이다.


요즘도 성범죄의 책임을 여성들의 지나친 노출로 몰고가는 몰상식한 여론을 접할 때가 가끔 있다. 여자들이 치마를 짧게 입는게 성범죄를 조장한다는 논리는 여성에게 부르카를 씌워 아예 여성의 실존 마저 지우고자 하는 이슬람 세계의 논리와 오십보백보다.  <옥상 위에 여자>는 어떤 문화적 변화 속에서도 집요하고도 끈덕지게 여성에게 집중되게 덧씌워지고 강요되는 성윤리에 대한 웃지 못할 풍자극으로 읽힌다. 무더운 날씨에 옥상에서 작업하는 세 노동자들은 반대편 건물에서 반나로 일광욕 중인 여성에게 각기 다른 마음을 품는데, 한 명(스탠리)은 휘파람을 불고 조롱하고, 한 명은 그런 그녀를 동료로부터 지켜줘야겠다는 망상과 그녀와 다정한 관계가 되는 착각을 한다.  결국 남자들이 도달한 감정은 그녀를 향한 분노다. 조롱과 욕설 혐오 등 그녀를 향한 온갖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랑곳없이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음에 더더욱 혐오와 분노를 표출하는 이 가엾은 남성들은 길거리의 모든 여성들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잘보이려고, 섹스하려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일베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자기를 지켜보는 새 남자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발가벗은) 여자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화가났다 6 8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에 대해 도리스 레싱은,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이 어떻게 비쳤는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작가가 좋아한 이유를 독자인 내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서사에만 관심을 두고 읽다보니 여성의 심리에 대한 문제 의식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서사는 고골의 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피가 뚝뚝 흐르는 심장이 몸 속에서 밖으로 빠져나와 손에 달라붙어 다니는 모습은 코가 달린 부분이 평평하게 변한 우스꽝스런 모습에 비해 다소 괴기스럽다. 레싱의 작품으로는 처음 접했던 <다섯번째 아이>부터 일관되게 레싱의 작품 속에는 이런 그로테스크함이 있다. 순수하게 심리적인 소설 속에서도 이해 불가능해 보이는 괴기한 심리와 미친듯한 행동이 드러난다. 하지만 코보다는 심장이 의미하는 게 보다 명확해 보인다. 


일생을 통해 두 번의 ‘진지한’ 사랑 A, B를 했지만 두 번 다 뼈아픈 실패로 끝났고, 그 진지한 사랑 A와 B 사이에 셀수없는 십 수번의 진지하지 않은 교제가 있었지만 부푼 기대를 품고 다시 진지한 사랑의 후보 C와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여자는 그 두 번의 진지한 사랑이 끝났을 때마다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심장을 기억하며, 다시 핑크빛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손으로 꺼내 버렸으면 하고 소망한다. 그런데 그런 말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C의 만남을 앞두고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자신의 심장이 자신의 손에 걸려져 있는 거다.  원하던 일이었지만 그 선홍색 심장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신체의 일부처럼 붙어 있다.  이렇게 떨어지지 않고 있던 심장을 알미늄에 감싸고 외출을 하는데, 지하철에서 허름한 차림을 한 미친듯한 여자를 만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미친여자는 자신의 드라마에 빠져서 비난, 사랑의 배신, 혹은 부정 같은 개인적 비극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영혼없이 계속 혼자서 떠들고 있다. 모두에게 당혹감과 수치를 느끼게 하던 미친 여자를 보던 주인공은 손가락에서 자신의 그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심장을 그녀 앞에 갖다 놓고, 문제의 미친 여성은 그것을 품에 안고 좋아한다.


지하철의 미친 여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소설집에는 글자 그대로 읽는다면 미치거나 조금 정상이 아니거나,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한 남자와 두 여자>에서 도로시 브래드퍼드는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남편의 외도 그 자체보다는 남편의 외도에 대한 자신의 상관않는 심리에 대해 더 의아해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로시는 자신의 부부를 방문한 스텔라에게 자고 가라 권하면서 자기 남편과 관계를 맺을 것을 은근히 암시하여 실제로 그렇게 될 뻔하게 만든다.


<영국 대 영국>에서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인 찰리는 옥스포드 대학을 다니던 중 자신을 위해 가족 모두가 희생하고 있는 광산촌의 집을 방문하고, 정신 분열적인 증상을 경험하고, <두 도공>에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서, 꿈을 통해 타인의 현실을 제어하며, <목격자>에서 부룩은 외로운 알콜중독자이고, <20년>은 20년 전 어긋난 사랑 때문에 헤어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으며, <19호실을 가다> 역시 우울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중 <20년>은 서로 만나기로 한 곳에서 서로가 기다리다가 어긋난 지나간 사랑을 20년만에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상황을 묘사한다. 안타까운 영화같은 설정이지만, 독자도 화자도 두 사람의 기억 중 어느 기억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서로는 약속된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서로를 애타게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결국 서로에게 나타나지 않아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인데, 평행우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한 사람이 날짜를 헷갈렸을 수도 있고, 같은 장소가 두군데 있었을 수도 있고, 수많은 가능성이 있으므로, 누구 한 사람이 반드시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헤어졌어야만 했을까. 오늘날처럼 휴대폰과 인터넷 이런 게 불가능하니 서로의 연락처를 알 수 없었을 수도 있으므로 이런 안타까운 뜻하지 않은 어긋남과 이별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휴대폰 시대에서 우연과 착각에 의한 비극적 요소는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같다.


<남자와 남자 사이>는 <최종면단에서 빼기>만큼 유머러스하게 읽힌다. 새삼 시대적으로 여성에게 경제적 독립이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따져볼 기회이기도 했다. 남자의 정부로서 이남자 저남자 등에 빨대를 꽂아 몸을 가꾸고 먹고 사는 꽃뱀들의 이야기이도 하다. 친구가 목욕탕에 갔다가 거기 출퇴근하는 유한마담들과 안면을 텄는데, 그 중 꽃뱀으로 알려진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뭐 예를 들어 배찌(?)를 한다든지 하며 티를 낸다고 한다. 그 여성과 나름 진솔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기억나는 건 일단 한 남자랑 친해지면 초기에 가방이며 보석이며 마구 선물하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선물이 왜소해진단다. 그러면 그게 이별의 징조이므로 꽃뱀은 새로운 물주를 물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한다고. 


길게 가봐야 몇년 안가므로 끊임없이 정부를 탐색해야 하고, 그래서 몸치장에도 돈이 많이 든다고. 정확하지도 않고 뭐 막 섞이기도 했지만 대략 그런 내용이었는데, 나는 그 목욕탕 뱃찌녀가 자신의 삶의 패턴을 서비스 노동의 가치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 소설속 여성들이 크게 다름없다. 단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요령이 대가의 손에 의해 과장적으로 설정되었음을 주목한다. 잭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꽃뱀 이 붙었는데 그 중 한사람은 정식 부인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정부가 되었다. 정식부인이 되면 계약 상태가 되어, 이혼후에도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데 대신 남편과의 정사는 주로 정부와 이루어진 듯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결혼했던 여성이 이혼했던걸 바로 알아차리는데, 그 이유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혼을 했으니 다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가꾸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은 술을 마시고 대화(인지 술주정인지)를 하면서 둘이서 남자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낸다. 만일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회라면, 정부이든 정식부인이든 꽃뱀이든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이 궁극적으로는 남자를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구석구석 층층히 존재하는 성차별이 특히 성적으로 여성을 취약하게 하는 이유다.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는 이 소설이 왜 표제작인지 외로움과 자유 그 둘은 붙어다녀야 하는 건지, 성공한 가정이라는 따뜻하고 푸근한 울타리의 허위와 그것을 위해 포기된 자유와 속박,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제는 전체 작품에서 계속 반복된다. 가정이 없이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 때문에 그토록 심장을 찔렸으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는 여성(<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처럼, 우리 모두는 한편으로는 자유를 원하면서도 누군가와 꾸준히 사랑을 하고 함께 살기를 원한다. 깨질까 다칠까 조심조심 보살피고 가꾸어온 완벽한 가정 속에서 허위와 불안을 느끼고(<19호실로 가다>, <한남자와 두 여자>), 애정과 결혼 제도에 속박되지 않는 정사를 갈망한다 (<최종명단에서 빼기>, <남자와 남자 사이>). 하지만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은 그녀의 정신 분열적 최종 선택과 관계없이 누구나 느끼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녹여내었다.


전에 읽은 중장편들(다섯번째 아이, 그랜드마더스)에 비해 압축적이라, 맥락 파악이 잘 안되는 부분이 다소 있어서 읽는 데 시간도 걸렸고 다시 읽어야 한 것도 많았지만, 다 읽고 나서 보니 대가의 작품다운 품위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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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평점9점 | g*******7 | 2018.07.25 리뷰제목
[다섯째 아이]와 [그랜드 마더스]라는 작품으로 만나본 도리스 레싱이 오늘날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문학이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그녀가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품이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황금 노트북]이었다는 점만 놓고 본다면 그러한 생각이 결코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읽었던 작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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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째 아이][그랜드 마더스]라는 작품으로 만나본 도리스 레싱이 오늘날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문학이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그녀가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품이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황금 노트북]이었다는 점만 놓고 본다면 그러한 생각이 결코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읽었던 작품에서 [그랜드 마더스]가 아마도 여성들의 사랑과 심리를 묘사한 부분이 있기에 그나마 레싱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겠지만, 그녀의 단편집 [19호실로 가다]는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성(性)을 소재로 갈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수 있게 된다.

 

 도리스 레싱의 페미니즘적인 성향에 초점을 맞춘다면 첫번째로 등장하는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라는 작품은 여성의 관점 변화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자신의 무능함을 여성과의 잠자리를 통하여 해소하려는 남자와 그 남자의 목표 대상이 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는 사실 불편한 느낌이 든다. 결국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상투적이면서도 전형적인 가부장적 체제에 대한 상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에 대한 사랑 또는 강한 압박에 대한 굴복이 아닌 단지 귀찮고 피곤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남자와 잠자리를 하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다음날 여자는 그러한 남자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에 의욕적으로 매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성관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는 여전히 잠자리를 통하여 여자를 정복하였다는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여자는 그러한 남자와의 잠자리보다는 일을 하는 것에 더욱 큰 가치를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의식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은 바로 [남자와 남자 사이]이다. 평생 여러 남자들의 정부 역할을 하면서 살아온 여자와 남자와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한 여자의 대화는 언뜻 보기에는 남자에 기대어 살아가는 무능한 모습처럼 다가온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과거와 같이 남자들의 정부 역할을 하거나 결혼을 통하여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한탄하는 두 여자의 모습은 도리스 레싱의 페미니즘과는 왠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어찌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내용이 아닌가라는 놀라움마저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도리스 레싱이 페미니즘을 주장하면서도 페미니즘이 남성들에 대한 모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발언을 떠올린다면 이 작품은 그러한 그녀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거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더불어 이 여성들이 앞으로 스스로 자립하기 위한 건설적인 생각에 다다르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레싱이 여성 스스로의 의식 변화를 통한 페미니즘 추구를 말하고자 한 것이라 보여진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19호실로 가다]는 가부장제 체제에서 자신의 의미를 잃어가는 무력감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여성의 모습을 통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필요성과 그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

 사랑조차 삶의 중심이 아니라면, 무엇이 중심이 될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의 훌륭한 인생은 분명 사랑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인생은 확실히 훌륭했다.

 - p. 280 ~ 281 中에서 -

 사랑에 대한 강조를 통하여 하나로 이어진 남녀의 결혼생활은 처음에는 훌륭해 보였다. 심지어 결혼하여 가정을 꾸민 상황에서도 "다른 것은 모두 이것을 위해서."라는 말은 수전으로 하여금 가정에 충실할 수 밖에 없게끔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이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변질되면서 수전은 가정의 중심에서 자기만의 삶이 있는 여성으로 서서히 해방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수전의 해방은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의미와 자유를 만끽하는 소소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이뤄진다. 그러나, 그녀만의 그 소소한 시간은 가부장제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것임을 곧 깨닫게 된다. 남편은 수전을 의심하여 그녀가 머무는 그 호텔에 대한 뒷조사를 하면서 수전을 압박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수전에게 그 싸구려 호텔의 19호실은 평범한 익명의 장소였고, "내가 있는 곳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어서요."라는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가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었기에 남편의 그러한 의심과 압박은 그녀에 대한 통제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수전은 그녀만의 19호실을 찾기 위하여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비로소 자유와 평온함을 되찾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이러한 수전의 행보는 오늘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거꾸로 그것을 호도하여 악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할 수 있다. 수전의 19호실은 바로 오늘날 페미니즘의 지향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9호실로 가다]에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도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색다르게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나는 도리스 레싱의 생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통하여 그러한 부분을 들여다보고자 하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페미니즘 문학으로 느껴졌다. [옥상 위의 여자]에서라는 작품에서 나체로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여성에 대한 남자들의 분노는 역시나 가부장제에 익숙한 남성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졌고, [영국 대 영국]은 당시 영국의 계층간의 갈등을 마주한 한 남자의 광적인 상황이 예의를 지키라는 여성의 외침으로 진정되는 장면이 역시나 여성들이 당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주체적인 입장과 더불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물론 사랑의 관점으로 이 작품들을 마주한다면 같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느낌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몰랐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지만, 도리스 레싱의 행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부분을 알았기에 그녀의 단편들에서 그러한 부분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19호실로 가다]라는 작품이 최근 모 TV 방송에서 언급되었다는 점과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쓴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여성이라는 점은 분명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폭넓게 펼쳐지고 있는 페미니즘과는 분리해서 읽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페미니즘을 자극적이면서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그릇된 행태와 페미니즘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이 난무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도리스 레싱의 작품을 통하여 그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문학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고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있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출판사 문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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