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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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리뷰 총점 9.5 (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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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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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평점9점 | YES마니아 : 골드 s*****e | 2023.02.05 리뷰제목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내 얘긴가 싶어 집어 들었다. 모든 이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다지만 마음껏 표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자유는 있으되 능력을 부여받지는 못한 다수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든, 미술이든, 연기든 표현할 수 있는 재능과 기회를 받은 이들이 부러웠다. 그 중 제일 부러운 건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 작가다. 쓸 기회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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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내 얘긴가 싶어 집어 들었다.

모든 이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다지만 마음껏 표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자유는 있으되 능력을 부여받지는 못한 다수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든, 미술이든, 연기든 표현할 수 있는 재능과 기회를 받은 이들이 부러웠다. 그 중 제일 부러운 건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 작가다.

쓸 기회가 많아진 만큼 근래에는 작가도 많아졌다.

전고운, 이석원, 이다혜, 이랑, 박정민, 김종관, 백세희, 한은형, 임대형.

이 책을 쓴 작가들이다.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기자, 배우, 소설가로 활동하는 분들인데, 영화랑 친하지 않고 국내소설도 잘 안 읽는 (무식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나는 박정민 배우나 백세희 작가 외에는 이름도 낯설다. 아무려면 어떠한가. 이 책으로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다른 데서 이름을 보면 속으로 구면이구나.’ 할 것이다. 여전히 무식하면서.

 

글쓰기가 업()인 사람들.

프로작가가 된 과정을 보니 등 떠밀려 된 사람은 없고 수년간의 노력 끝에 책도 내고 유명세도 얻은 분들이다. 꿈을 이룬 거다. 꿈이 뭔지도 모르고 어영부영 살다가 개학이 사흘 쯤 남은 초등학생처럼 초조해진 내게 이미 꿈을 이룬 자들의 이야기는 투정도 부럽다. 그래도 막상 밥벌이가 되면 힘든 건 오십보 백보인가보다.

아홉 명의 작가 중 작가라서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걸 보면.

 

...설 연휴의 아침 8시 반에 카트 손잡이 하나하나를 닦고 있는 저 사람만큼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 카트를 닦고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가슴이 아팠다. 마치 오래도록 못 본 사람을 우연히 먼저 발견한 것처럼 가슴 중앙이 아려왔다. 연휴에 아무도 관심 없을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저 사람을 나만 보고 있다는 것이 쓸쓸해졌다.

(p.44)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전고운 님의 글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써야하지만 글감이 없어서 음악도 듣고, 간식도 먹고, 책도 읽고... 그래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회의를 하고, 밤을 새고.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그득해서 오늘은 무엇을 뽑아 쓸까?’고민할 것 같은 작가의 글쓰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재능이야 당연히 있지만 아무리 도구를 근사하게 갖춘 요리 명장이라도 재료가 있어야 한정식이든 라면이든 끓일게 아닌가.

소재 부족으로 힘들어하는 건 다들 마찬가지지만 작가를 작가이게 만드는 건 재료를 볼 줄 아는 안목이다. 일반인에겐 그저 돌멩이가 고고학자의 눈으로는 석기 시대 돌도끼로 보이듯 보통 사람의 눈에 공기처럼 흘러가는 카트 닦는 사람이 작가에겐 생생한 글감으로 포착된다.

전고운. <소공녀페르소나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 한다. 둘 다 안본 영화지만 갑자기 호기심이 생긴다. 카트 손잡이 닦는 모습을 이토록 애잔하게 바라보는 감독이 만든 영화는 어떨지.

 

오늘 이것만 다 하고 나면 쓸 수 있겠지, 내일 저것만 하면 그댄 진짜 쓸 수 있겠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글을 쓰는 것인데, 그게 가장 중요하고 급한데, 오직 그 하나를 제외한 다른 일들만 눈에 들어온다.

(p.68~69)

 

이석원.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전 리더이자, 문학인이다. 음악계와 문학계에서 모두 베스트셀러를 남긴 능력자. (나무위키 인용)

 

작가 이름이 낯설어 검색해보니 팔방미인 재주꾼이다.

작가 소개로는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가 쓴 글은 낯설지 않다. 글만 쓰고 싶어서 음악도 그만 두고 작가가 되었지만 밥벌이가 되는 순간 글쓰기는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되었단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이 되면 시험과 관련 없는 모든 것들이 하고 싶었다. 책상 정리도 해야할 것 같고, 소설책도 보고 싶고. 나중에는 같은 교과서라도 시험범위 아닌 곳이 더 재밌어보였다. 학교 밖의 인생은 좀 다를까 했는데 지금도 여전하다. 직장에 제출할 서류가 있거나 필수 교육이 있다면 얼마나 도망치고 싶은지. ‘맞아, 맞아.’계속 맞장구치면서 내가 쓴 글처럼 읽었다.

 

그토록 쓰기 싫어하는 사람이 또 있다.

배우이자 에세이 작가인 박정민.

그는 방 좀 치우라는 엄마 말에 요 핑계 조 핑계 대는 아이처럼 아예 쓰고 싶지 않은 서른두 가지 이유를 나열한다. 주섬주섬 둘러대는 변명들을 듣다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는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싶은한 가지 이유를 댄다.

하지 마, 공부하지 마. 공부하기만 해. 아주 공부만 했다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p.140)

그의 어머니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고, 청개구리 아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우등생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자신의 글을 보고 싶으면 이렇게 말해달라고 독자들에게 부탁한다.

너 쓰지 마. 쓰기만 해. 아주 쓰기만 했다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p.141)

예예, 박정민님. 글 쓰시면 안 됩니다. 제발 글 좀 쓰지 말라구요. 쓰기만 해봐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백세희 작가의 푸념도 만만치 않다.

쓰고 싶지 않다. 쓰고 싶지 않다. 쓰고 싶지 않다... 하며 두 페이지 이상을 깜지로 만들었다. 시작 전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무방함 이라고 친절히 설명해줬지만 넘어가도 무방한 부분을 왜 쓴 거야?’ 하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래도 컨트롤 씨와 컨트롤 브이를 쓰지 않고 한 글자 한 글자 최선을 다해 쳤단다.

쓰기 싫어 죽겠다지만 읽기만 하는 나는, 그냥 다 재미있다. 더구나 윌리를 찾아라처럼 깜지 속에 진심을 숨겨놓았다니 그렇게 정성스런 글을 어찌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아홉 명의 작가 중 쓰고 싶어서 쓴다. 쓰는 게 즐겁다는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인다. 누가 더 쓰기 싫은지, 누가 더 쓰기 어려워하는지 경쟁하는 것 같다. 그래도 쓰기 싫다는 투덜거림조차 근사한 에세이가 되니 역시 프로는 프로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책을 엮자고 기획을 한 걸까? 화려한 무대 뒤 대기실의 민낯을 보여줄 생각을 어떻게 한 건지. 아이디어만으로도 재미는 보장이 아닌가.

이 책은 기획이 다 했다.

 

잘 나가는 작가들의 글 뒤에 숟가락 얹어 열 번째 꼭지를 쓰는 마음으로 리뷰를 쓰고 있다. 유일하게 쓰고 싶지 않다고 몸부림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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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십삼 년 전 오늘의 미래는 평점8점 | s*****l | 2022.05.23 리뷰제목
어떤 재미있는 일도 취미가 아닌 직업이 되는 순간 재미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반감되게 마련이다. 심지어 웬만한 아이들이라면 쉽게 빠져드는 인터넷 게임도 취미가 아닌 업으로 변하는 순간 흥미를 잃게 된다고 한다. 그도 당연한 것이 수십,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가 자신의 책임을 망각한 채 설렁설렁 취미인 양 임한다면 그를 고용한 구단에서도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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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재미있는 일도 취미가 아닌 직업이 되는 순간 재미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반감되게 마련이다. 심지어 웬만한 아이들이라면 쉽게 빠져드는 인터넷 게임도 취미가 아닌 업으로 변하는 순간 흥미를 잃게 된다고 한다. 그도 당연한 것이 수십,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가 자신의 책임을 망각한 채 설렁설렁 취미인 양 임한다면 그를 고용한 구단에서도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처하게 됨은 물론 자신 역시 발전된 기량을 통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애초에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볼 때 글을 쓰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아마추어 작가일 때는 다른 무엇보다도 좋아하던 글쓰기가 시간과 돈에 의해 제한되는 업으로 변하는 순간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원고 요청을 제법 잘 거절하지만 여전히, 나를 원한다는 이유로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글이 있다. 또는 일이기 때문에 쓴다. 내가 쓰고 싶다는 이유로 시작하는 글을 내가 원한 대로 지키기는 늘 어렵다. 내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p.92 '이다혜' 중에서)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는 어쩌다 보니 글쓰기가 업이 된 9명의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가벼운 책이다. 전업 작가가 된다는 건 어쩌면 대단한 특권이자 적지 않은 노력의 결과물임은 분명할 터, 작가 지망생들이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로 읽힐 수도 있는 쓰고 싶지 않은 마음들은 대체로 마감을 앞둔 극도의 긴장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아마추어 작가일 때는 쓰고 싶은 순간에 자신이 쓰고 싶은 주제로 원하는 분량만큼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돈을 받고 쓰는 글에는 그와 같은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글의 주제나 분량도, 마감 시한도 전적으로 의뢰자의 사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토록 좋아하던 글쓰기 작업도 '의무'라는 무게에 눌려 압사 직전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진 나의 머릿속에서 '자, 이제 준비기 되었으니 글을 써볼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더 할 일이 없는 건지, 정말 지금 완벽하게 글을 쓰기 위한 상태가 된 것이 맞는 건지 지뵤하게 묻고 있다는 걸. 그리하여 마침내 생각도 못했던 다른 할 일을 '녀석'이 기어이 찾아내는 걸 보면서 나는 알았다. 그동안 나는 쓰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게 아니라 오로지 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기만 했었다는 걸. 그게 두려움이나 권태든 다른 무엇 때문이든 간에 나는 이 일이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또 하기 싫어졌다는 걸."  (p.70 '이석원' 중에서)

 

프로 작가가 된 후 마감 시한에 맞춰 글을 쓰기 위한 각자의 노력이나 일상 습관은 열이면 열 서로 다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되기 위해 쏟아부었던 열정이나 노력은 글쓰기에 대한 각자의 애정만큼이나 서로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여타의 취미와는 달리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결코 좋아질 수 없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가 선행돼야 하며, 산책이나 명상 등 생각의 파편들을 한데 모으는 작업을 수시로 반복해야 하며,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한 결과물을 다듬고 고치는 일이 지루하다거나 지겹지 않아야 한다. 그와 같은 반복을 통해 더딘 성장을 이룰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글쓰기를 취미로 갖게 되는 것이다. 글쓰기에 투자된 시간과 노력이 항상 기꺼워야 하며, 아깝다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야 한다.

 

"나는 청결하고 질서 정연한 세계 속에서 평화와 안정을 느끼지만, 동시에 저항하고 싶고 그 세계를 파괴해 버리고 싶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가치를 중요시하지만, 내 곁에 항상 올바른 사람들만 두고 싶진 않다. 나는 엘리트주의를 혐오하는 동시에 몰개성적인 다수를 혐오한다. 금욕적인 청교도 정신을 거부하면서 카톨릭 사제를 매력적으로 여긴다. 나는 무신론자이자 기독교인이고, 남성이자 페미니스트다. 나는 발언하고 싶지만 입을 닫고 싶다. 쓰고 싶지만 쓰고 싶지 않다."  (p.241 '임대형' 중에서)

 

오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3주기 추도식이 있었던 날. 검은 상복 속에 숨어든 많은 말들이 세상의 허무 속으로 흩어진다. 대기는 알 수 없는 미래처럼 탁했고, 흘러간 세월만큼 옅어진 슬픔이 잔기침과 함께 툭툭 불거진다. 아무도 막지 못했던 십삼 년 전 오늘의 미래가 세월을 따라 켜켜이 슬픔의 과거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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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쓰고 싶다(feat. 다시 겨울이야) 평점10점 | s********d | 2022.11.24 리뷰제목
독자로서 살다보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도 그런 인연과 닿아있다. 책을 만들고 기획한 분은 나를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 좀 과장되게 표현해서 한 출판사에 청춘을 바친(?)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마음이 있다. 이렇게 능력을 통합 증명해보이다니 반갑고 기쁘다. 책은 모두 각자의 색깔과 방식으로 쓰는 삶과 마음을 전한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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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로서 살다보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도 그런 인연과 닿아있다. 책을 만들고 기획한 분은 나를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 좀 과장되게 표현해서 한 출판사에 청춘을 바친(?)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마음이 있다. 이렇게 능력을 통합 증명해보이다니 반갑고 기쁘다. 책은 모두 각자의 색깔과 방식으로 쓰는 삶과 마음을 전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쓰기 곤란한 글이 에세이(어원: 시도, 실험)다. 흔한 가운데 자기 삶을 녹여내고 자연스러운풍미를 전달해야 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를 드러내고 주목을 받는 일을 힘들어하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남이 쓴 산문에 개방적이고 너그러운 편도 아니다. 소설이나 시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데 수필에는 은근히 까다롭게 군다.

 산문집을 여는 전고운의 글은 쫄깃쫄깃하다. 그가 허둥대고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데도 읽는 나는 낄낄거리며 창작자의 비애를 진솔하게 받아들인다. 요즘 사워크림어니언맛 나쵸를 연신 씹는 나를 부숴버릴 순 없고, 현실적으로 부숴버릴 수 있는 게필요했다고 대신 설명해준다. 그러니 조금의 거부감 없이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축복하게 된다. 그는 숨어 있는 작은 존재를 구하는 쓰는 일을 다음과 같이 옹호한다.

 

사소한 순간을 누군가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 나를 외롭지 않게 했다.

신문에 쏟아지는 거대 담론들 속에서도

어느 누군가는 이런 사소한 것도 보고 있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46)

 

 다음으로 이석원의 글은 작가의 자의식 과잉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 읽는 내내 아프고 찔렸다. 우리가 선택한 적 없는 조건과 환경에 노출되어 좁은 반경 안에서 선택하고 아등바등하다가 가는gone 삶을, 멀찍이 바라보게 하는 까닭이다. 누군가는 음악에, 또 누군가는 문학에, 또 누군가는 물질적인 가치에 기대어 살게 되는 분절된 상황들이 그려지기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을 스스로 끊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먼저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 “사랑했던 일을 밥벌이로 삼은 죄라면 거의 모두가 수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음악과 헤어진 그가 글과는 이별하는 일이 없기를. 다른 연결점으로 건너가는 거라면 또 모를까.

 이어 이다혜의 글은 쓰는 사람의 삶은 몹시 바쁘고 부단不斷할 수밖에 없음을 있는 힘껏 외친다. 그의 글은 방대하면서도 자유로운자신의 삶의 모습과 닮았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곱씹다보면 수능 보던 날, 부모를 뒤로하고 혼자 마주했던 하루가 떠오르고... 그나마 찐 외로움을 느낀 건 박사논문 심사를 받던 시기였다. 석 박사논문, 이렇게 두 딸을 낳았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몸에서 뭔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 빠져나가 도무지 다시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이 남고 말았다. 그리고 영어영문학에 속한 과목과 범주들은 왜 이리 많은지, 배워보지 못한 채로 소화해 가르쳐야 함이 냉정하게 내던져진thrown 느낌이었다.

 

모든 글을 읽었다.

그러고도 뭐라도 써야 할지를 몰라서 밤을 거의 새웠다.

미쳤지 싶다.

시간 대비 효율로 따지면 비효율의 끝판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더 읽어야 했다. 영화를 더 봐야 했다. (83-84)

 

 멋모르고 딴 박사학위는 한국문학도 모르면서 외국문학을!’ ‘활자만 보지 말고 시각과 음성의 세계로까지 풍부하게 관심을 확장하란 말야!’ 등의 시끄러운 요구와 자기학대를 불렀다. “뭐든 써야 뭐든 된다(92)”는 강박. 글을 쓰는 사람이 마주해야 하는 번아웃과 우울을 비롯해 피하기 힘든 분투를 보면서, 정신과 약을 복용하지 않는 환자라고 나를 규정하던 시절이 겹친다. 결론은 철저히 그냥 나로 지내는 지금 이 시간이 나쁘지 않다..

 이 책을 읽게 된 연결고리가 멀티 아티스트 이랑이다. 일부분 시대적인 흐름이 살아가고 공부하는 방식과 방향을 결정한다. 2000년에나 복수전공과 어학연수 등의 다양한 학습이 활성화되었지 그 전에는 학제간 연계 연구는 뜬구름 같은 거였다. 영미소설 전공자로 지냈지만 만약 희곡과 비평이 주는 부전공의 해방감이 없었다면 퍽퍽해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언제나 의무감으로부터 틀어막힌 숨통을 환기 시킬 창문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랑의 영화, 음악, 글쓰기의 자아를 삼등분하는 전략은 부럽고 흥미롭다. 말은 이리 하지만 내가 소설에 푹 빠져 지금까지 그 사랑을 멈추지 않는 데는, 그나마 삶이 균형을 잃거나 붕괴되지 않은 데는 그것을 빼고의 삶이 지극한 자기 통제로 고요히 흐르고 미니멀 했기 때문이다. 취향도 베이직과 오리지널파라 탐닉이나 소유에 집착하지도, 딱히 싫증을 내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다른 여러 곳으로 눈 돌리지 못하는 성격이 지금의 삶을 여기로 이끌었다. 사랑하면 학업을 이어가지 못할 거라는 섬뜩한 사주를 무시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키보드는 내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다.

 

그가 없으면 내 춤은 완성되지 않는다. (110)

 

 무대 체질인 시원시원한 이랑 작가와 달리 나는 입을 떼는 데(예열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고 매사 조심스럽다. 나비랄까. 아주 가끔 이거 다 싶으면 날아가 날개를 포개 오래 머무는^^. 한글도 제법 틀을 잡아 구사하기 전까지 말을 하지 않아 부모의 속을 끓였다고 한다. 그런 내가 언어를 전공했으니 비효율적일 수밖에. 이랑의 글을 읽다가 attraction라는 단어 안의 action을 본다. 이끌리면 움직이게 되어 있구나..

 [시선집중] "앞으로 만들 이야기들도 '하지마'라고 한다면...자기검열 하게 돼" - 이랑 가수 , MBC 221125 방송 - YouTube

 

 다음으로 박정민의 글은 쓸만한 인간을 오디오북으로 읽어서 음성지원이 되어 큭큭 거리며 읽었다.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까다가 어떻게 건드려야 그를 쓰게 만드는지까지 비결을 털어놓는다. “쓰지 마. 쓰기만 해. 아주 했다 봐반골 기질 자극 ㅎㅎ 배꼽 빠질 뻔. 독자 만족을 위해 ‘연기를 해야 해 피곤하지만 씀으로써 봉인되기에 산뜻해지기 위해서는 쓸 수밖에 없다는 그가 무척 귀엽다. 마찬가지로 게으르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히스터리한스타일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고백도 으이그, 머리를 쓸어주고 싶다. “(상대가)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고 (그런데) 마음은 내가 다친다는 표현은 또 어떻고. 그렇다면 더 골려 먹어야지 아주 작가 났네, 작가 났어ㅎㅎㅎㅎㅎ

 그리고 김종관의 글은 홍상수의 시나리오 같이 일상을 스케치한다(홍 감독의 영화에 빠져 지낸 적 있다!). 전개 방식이 스몰토크와 참새방앗간의 쏠쏠한 재미를 묻어 나른다. 그가 굿모닝 팝스를 말할 때 이번 가을, 음악을 다시 듣게 되면서 드는 생각들이 쏟아졌다. 내가 얼마나 소심한지 행여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가 다른 것들과 같이 몰려 올까봐, 혹은 그때 같지 않고 변심했을까봐 두려워 못 듣겠다는 거다. 대신 남이 선곡한 노래 속에 과거와 다른 내 반응을 훔쳐보곤 한다. 과거 같으면 Skylark Wild Flower에 눈길도 주지 않고 도리어 오필리아 환상이냐고, 시체 애호냐며 짜증냈을 거다.

 이어서 백세희 작가의 글을 소개하겠다. 그의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읽은 것 같다(당신도 ). 떡볶이는 나의 최애 음식이자 주식인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먹지 않는다. 맨 떡볶이떡이라면 모를까. 식성도 취향도 이렇게 변한다. 변한 나를 여전한 생성 중의 나로 받아들이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어른이 되는 과정일 테다. 사실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가끔 술을 먹는 척 꾸미지만^^). 진한 커피는 중독이고. 그래서 대부분 각성 상태로 맨 정신으로 살았다고 자부(?)한다. 이 어지럽고 엿 같은 세상에 맞서.

 “가루가 될 정도로 까이는 셀럽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악성 댓글 벌레 하나 상대하고는 날밤을 새며 끙끙 앓는 하루살이 멘탈인 나는. 자기홍보 시대에 인정과 각광은 받아야 하고 욕먹기는 싫음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백 작가는 유려한 글솜씨보다는 솔직하고 재미난 글로 독자를 만나고 싶단다. 잘 나가던 작가들의 슬럼프와 소프모어 신드롬과 붕괴는 너무나 흔하다. 그래서 더 크게 응원하고 싶다, 힘내요!

 그리고 한은형의 글은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고, 반대로 그래서 과하게 피하기도 한다. 오래 전 스치듯 만났던 그가 필립 로스(의 구원 환상)에 대해 자기 확신과 단정의 말을 했었다. 그럴 수도 있는데 나는 발끈해 오픈마이크 타임에 반론을 제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글에서 그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수련형이 아닌 실전형으로 살아온 그가 바라본 특정 작가는 남다를 것이며 자기세계관이 확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래 인용에도 그 신념이 굳건히 발광한다.

 

나의 가장 큰 적은 나고, 가장 큰 지지자도 나고,

나를 죽이는 것도 나고, 나를 살리는 것은 나라서 나를 잘 돌봐야겠다고,

나를 잘 돌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굴러가게 되어 있다고. (214-215)

 

 마지막으로 임대형의 글은 좋은 의미에서 난감하다. 아주 일부가 복사한 듯 나와 같으나 여러 부분에서 참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의 혼란이 나를 감싼다. 주제 파악의 선량함으로 말을 아끼고 사회공포증으로 은둔하는 그의 습관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할 말은 또 다 한다. 언어가 버린 자들이 물 마시는 곳이 음악이라고 정의한다.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큰 수성처럼 집착과 괴벽과 모순과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성향도 차분히 객관화할 줄 안다. 쉴 새 없이 다가오는 무례와 몰이해를 견디느라, 냉소와 염세주의 방패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며 자기 위치를 정확히 밝힌다.

 

적당한 도덕적 무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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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결국, 나도 쓰고 싶게 만드는 책 평점10점 | d*****0 | 2022.04.28 리뷰제목
한 번쯤 내 글을 쓰고 싶다,  언젠가 내 책을 내고 싶다,라는 바람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늘 작가님들의 숨은 뒷모습이 궁금했어요. 대체 어떤 생각으로,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까? 그 뒷면이, 바로 이랬군요! 쓰고 싶기도, 쓰고 싶지 않기도  그러나 결국 써내고 마는! 9명 글 쓰는 이들의 처절하고도 열정적인 속내를 읽고 나니 더 존경스러워지고, 더 친근해졌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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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내 글을 쓰고 싶다, 
언젠가 내 책을 내고 싶다,라는 바람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늘 작가님들의 숨은 뒷모습이 궁금했어요.
대체 어떤 생각으로,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까?

그 뒷면이, 바로 이랬군요!

쓰고 싶기도, 쓰고 싶지 않기도 
그러나 결국 써내고 마는!

9명 글 쓰는 이들의 처절하고도 열정적인 속내를 읽고 나니
더 존경스러워지고, 더 친근해졌습니다.

'쓰고 싶지 않다'라고 도배하던 백세희 작가님,
'쓰고 싶지 않은 32가지 이유'를 나열하는 박정민 작가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끝끝내 글을 쓰고,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는 작가님들의 이야기가
마치 잘 해내고 싶어서 끝까지 갈팡질팡하고 머뭇거리는 우리의 모습 같았어요.

특히, 이 책에는 다양한 글쓰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좋았는데...
글쓰기를 밥벌이로 시작했다는 이다혜 기자님이 선배와 나눈 대화는 정말 좋습니다.
글쓰기를 잘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의 제 질문 같아서요!


*
나는 맨날 선배들을 붙들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많이 읽고, 많이 써."
여기서 질문이 끝나면 초심자가 아니다.
뭘 읽어야 하나요? 뭘 써야 하나요? 어떻게 읽고 써요?
내가 같은 질문은 반복할 때 선배들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 일도 잦았는데, 이제는 그 얼굴을 이해한다.
본인들도 잘 모른다. 
글 쓰는 사람들은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읽고 쓰고 안간힘을 쓰면서 원하는 무언가에 가까워지고자 한다.
그들은 답안지를 푼 게 아니라 답이 없는 질문을 붙들고 죽자 살자 매달려왔다.
그러니 지금길을 알려달라는 나의 요구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_ 「쓰지 않는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다.」, 이다혜


그리고 이 책엔 소설, 에세이, 시나리오 등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를 고민하는 9명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그 다양성을 엿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김종관 감독/작가님의 <꾸며진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어요. 이렇게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글이 완성되고, 시나리오가 되고, 영화가 되는구나!
이 흐름을 몰입해서 이해할 수 있었고, 더없이 좋았습니다.


오래간만에, '아, 나도 글을 쓰고 싶다.'라는 숨은 열망을 깨우는
두근두근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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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평점10점 | e****i | 2023.04.28 리뷰제목
총 9명의 저자가 쓴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의 리뷰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는 작가들이 책을 쓰는 직업과 작업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담은 책인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저자분이 참여한 책이라 저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장르는 각각 다르더라도 글을 쓰는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작가님들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서 작업하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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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명의 저자가 쓴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의 리뷰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는 작가들이 책을 쓰는 직업과 작업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담은 책인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저자분이 참여한 책이라 저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장르는 각각 다르더라도 글을 쓰는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작가님들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서 작업하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닌 사람들도 읽으면서 자기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이라 좋은 것 같아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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