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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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리뷰 총점 9.5 (10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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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 여성/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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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인간의 권리에 도전한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평점9점 | e******s | 2016.05.29 리뷰제목
얼마 전 한 남자가 아무 이유 없이 모르는 여자를 죽이는 살인사건이 있었다.우연히 당시 읽고 있던 책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이었다.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은, 이 책이 도전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농축된 듯 한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읽혀졌다. 어떤 사회구조가 그 남자로 하여금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저지르게 했는가?
리뷰제목

얼마 전 한 남자가 아무 이유 없이 모르는 여자를 죽이는 살인사건이 있었다.

우연히 당시 읽고 있던 책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이었다.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이 책이 도전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농축된 듯 한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읽혀졌다. 어떤 사회구조가 그 남자로 하여금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저지르게 했는가? 정신병이 있다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페미니즘의 도전이 말하는 바에 입각하여 생각해보자. 그녀를 죽인 건 한국사회나 마찬가지이니까 말이다.

 

여혐, 즉 여성혐오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다른 낱말들에 붙는 모든 혐오와 마찬가지로 여성에 붙는 혐오라는 말도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타자를 혐오한다는 건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상 누구든 정당한 이유없이 타인을 혐오하여 죽일 수 있는 권리는 없다. 국가라도 말이다. 그런데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할머니와 누이와 딸이라고 하는 모든 존재를 혐오할 수 있다는 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짓이다.

 

여혐은 무너진 가부장제 권력의 밑바닥에서 과거의 권좌를 아직도 그리워하는 남성들이 스스로의 얼굴에 내뱉는 침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변해(수많은 여성들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여성이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성취를 하는 세상이 왔는데, 문제는 남자들의 생각의 수준이 그걸 못 따라간다는데 있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한나 아렌트(전체주의 비판자이며 참여 민주주의 옹호자인 유대인 출신의 엿어 정치철학자)가 말했듯이, 사유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여성주의라고 하면 일부 극단적인 기센 여자들이 여자의 권력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는 선입견만으로 세상 모든 여성주의를 재단하는 당신이라면 당신은 틀렸다.

여성주의란 양성 평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여성주의를 공부해서 손해볼 일은 없다.”(11p, 저자 서문에서 발췌)

 

그렇다. 우리가 모두 여성주의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제까지 잘 들으려 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는 혼란이 아니라 다양성과 창조력의 원천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결국 여성주의란, 그동안 비장애인이며 이성애자인 백인남성의 시선에서 벗어나 장애인, 비이성애자와 백인이 아닌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어보자는 것이다.

책의 저자인 정희진마저도 강의 도중 장애인을 배려하지 못한 말로 난감한 상황에 빠졌던 경험이 있듯이, 우리는 나 중심의 시각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배제하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배제가 모이고 모이면 혐오가 될 수 있다. 일베는 익명이라는 도피처에 배제라고 하는 무기를 들고 경멸이라는 유희를 즐기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비주류, 소수의견은 씹고 뜯고 죽여야 할 고깃덩어리다.

 

이 책이 얘기하는 것 중, 아니 여성주의가 주장하는 것 중 가장 논쟁적인 두 부분은 '2부 가정폭력의 정치학'과 '3부 성매매를 둘러싼 차이의 정치학'일 것이다. 글의 도입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성폭력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일이라고 무시하기 일쑤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다가 죽이는 것은 과실치사지만, 아내가 정당방위로 남편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가정폭력이 범죄가 아니라 일상이며, 일탈적 사건이 아니라 규범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살해당한 여성들의 42퍼센트는 이전 또는 현재의 파트너에 의해 죽는다고 하니, 통계조차 없는 한국의 경우는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맞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아내일 때에는 예외이다. 그 인간이 여성이라면, 맞지 않을 인간의 권리보다 여성으로서 참아야 할 도리가 더 강조된다. 여성은 너무도 쉽게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가정폭력 방지법으로 고소당한 폭력 남편들은 “(사람이 아니라) 집사람을 때렸을 뿐인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억울해한다.(140p)

가정폭력이든 성폭력이든 여성은 공(()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분되어 지고, 여성에게 행해진 폭력은 사적인 영역으로 분리되어 인권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적인 영역에서는 폭력과 강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매매를 둘러싼 문제는 좀더 첨예하다.

20049월 성매매 방지법 시행 이후 여성들은 모두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성판매 여성들의 거센 저항이 시작됐다. 생존을 위해 자발적인 성판매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개별적인 사항들을 무시하고 금지하는 것 자체가 인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여성이 성매매를 한다는 사실보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이 더 여성 억압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성판매 여성을 바라보는 입장은 가부장제 시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마저 생겨난다. 그래서 작가는 성매매를 반대하는 여성운동이 다양화, 다원화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물론 이런 여성운동의 다원화는 성별 의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성숙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요원하다.

 

남자로서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는다는 건, 오장육부를 다 해체하는 작업과 같았다. 나 하나 편하고자 나도 모르게 저질렀던 수많은 행동들도 가부장제 사회를 지탱했던 것들과 별반 다를 것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라면 이러해야 돼라는 말은 얼마나 수없이 내뱉었던지, 어머니의 희생은 왜 그리 당연한 걸로 생각했었는지, 회사 내 여직원들을 대할 때 난 얼마나 편견 덩어리였는지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성정치학' 말고도 우리 사회에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성정치학'이야 말로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겠다. 성정치학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정치학을 공부한다는 건 여성의 인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권을 공부하고 확보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이야말로, 환경교육과 함께 초등학교에서부터 실시해야 할 전인적인 교육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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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미니즘의 도전 - 세 번째 읽기 평점10점 | a*******5 | 2019.12.26 리뷰제목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전체적으로 내용 이해도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새로운 발견을 했다. 아, 이런 내용도 있었나? 또는 어, 그렇구나! 하며 읽었다. 이 책이 왜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불리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앞으로 이 책은 열 번 이상 더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것 같아 다시 한번 찜해둔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와 닿은 내용과 새로운 발견을 중심으로 남긴
리뷰제목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전체적으로 내용 이해도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새로운 발견을 했다. 아, 이런 내용도 있었나? 또는 어, 그렇구나! 하며 읽었다. 이 책이 왜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불리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앞으로 이 책은 열 번 이상 더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것 같아 다시 한번 찜해둔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와 닿은 내용과 새로운 발견을 중심으로 남긴다.

 

1. 여성주의에 대해

 

 기존의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목소리가 전부라고 믿을 때 우리는 종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대안) 세계가 가능하며 그것이 또 하나의 현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유일(단일)한 것으로 군림해왔던 서구 남성의 기존의 목소리는 급속히 상대화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서구 남성 중심의 사유 방식이라면, 여성주의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라고 믿는다. 여성주의는 차이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구성한다.(53p)

 

 이번에 다시 읽으며 새삼 다가온 것이 여성주의에 대한 이해 방식이다. 여성주의가 저항이라기보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지금의 권력 차이를 조금 더 평등하게 만들자는 협상 수단이라는 점이다. 우리 일상과 가정에서부터 해당하는 말이기에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페미니즘을 알고나서부터 참기보다 일상에서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더 행복해졌고 이해받는다고 느끼고 있다.

 

 

 2. 가부장제의 모성 이데올로기

 

 가부장제는, 가족은, 국가는, 민족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활용·매개 ·동원함으로써만 유지된다. 우리 사회가 여성을 그토록 어머니로 호명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머니로 간주되는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고, 자신의 몸을 가질 수 없다. 그녀의 몸은 남성만이 주체가 되는 가족과 국가의 소유다. (65p)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역할은 생물학적 필연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 시선·해석· 필요· 기능· 환상이다. (66p)

 

  가부장제에서 어머니/여성의 주체성이 무척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동안 헌신적으로 살며 희생해온 어머니로 인해 어머니라는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도는 성인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암으로 투병중이셨는데도 다가오는 명절의 차례 음식 준비를 걱정하셨던 친정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난다. 저자의 조언대로 "딸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투사하지 말고 스스로 욕망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다짐한다.

 

 

 3. 화학적 거세? 또다른 남성 이데올로기

 

 문제는 성범죄의 원인이 성별 권력 관계의 불균형 때문이지, 남성 호르몬 과다로 인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화학적 거세'는 문제를 왜곡하면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이 경우에는 매우 질 나뿐 맥거핀(속임수나 미끼)이다.

 '섹스'는 뇌로 하는 것이지 성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발기는 혈액이 조직을 채우는 것인데, 이는 뇌의 역할이고 그 기능을 가능케 하는 '자극'의 내용은 철저히 사회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화학적 거세'는 과학적 근거도 없고 실제 효과도 없다. (125p)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한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효과가 없음이 스스로 드러났나보다. 아직도 남자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독서모임에서 한 여성이 그런 말로 남성의 입장을 옹호했다가 비판받았다. 평소에는 이성이 남성의 전유물인 듯하다가도 성과 관련해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인 양 비이성적인 태도로 나오는 남성들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내용이 새롭다.

 

 

4. 여성주의 사유 방법의 출발  

 

 여성주의 사유 방법의 출발은 "그들이 말하게 하라"였다. 우에노 치즈코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서화된 역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여성의 역사가 출발하다 보니, 그동안 역사는 남성에 '의해' 여성에 '대해' 쓰여진 문서나 재현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남성들이 쓴 것은 여성에 대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는가와 관련된 남성들의 관념을 웅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남성이 생산한 여성에 대한 지식은 남성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 (213p)

 

  유사 이래로 여성은 가정과 육아에 제한되고 공적 참여와 교육에서 배제돼 오면서 여성에 대해 말하고 판단하는 존재는 늘 지배층 남성들이었다. 남성들의 말과 글에는 한계가 명백했고 성차별적 내용들이 종종 사실인 듯 전해졌다. 이제 여성들은 스스로 말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다운 삶과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 앞장서 온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다.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수용한 내용들을 다시 생각해보며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날 때다.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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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미니즘의 도전]을 다시 읽고 평점10점 | a*******5 | 2017.06.25 리뷰제목
지난달 초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있었다. '현실문화'가 예스블로그에서 진행한 댓글 이벤트에 당첨돼 신촌에서 [코드걸]이란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를 공짜로 보는 행운을 누렸다. 최근 관심을 갖게 된 페미니즘이 여러 모로 내게 다가와 기뻤던 일 중 하나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댓글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이 당첨자 수보다 미달이어서 이상하다 싶었다. 홍보 부족인지, 페미니즘이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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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있었다. '현실문화'가 예스블로그에서 진행한 댓글 이벤트에 당첨돼 신촌에서 [코드걸]이란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를 공짜로 보는 행운을 누렸다. 최근 관심을 갖게 된 페미니즘이 여러 모로 내게 다가와 기뻤던 일 중 하나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댓글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이 당첨자 수보다 미달이어서 이상하다 싶었다. 홍보 부족인지, 페미니즘이나 여성영화에 대한 관심 부족인지... 생각해 보니 서울 지역 외의 사람들이 배제된 행사라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언론에서 비판의 말로만 듣던 '서울중심주의'가 이런 것인가. 그러니까 내가 누린 행운은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받은 '혜택'이었던 셈이다.

 

  이번에 독서 모임 추천 도서로 선정돼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삼 년 전 처음으로 읽은 페미니즘 책인데 이제야 페미니즘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겠다. 폐미니즘은 뜻 그대로 여성주의지만 여성만을 위한 '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하의 계급 모순 철페를 외치는 마르크스주의조차 페미니즘 안에 포함될 만큼 넓은 인식론이자 세계관이다. 그동안 성소수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반대에 왜 페미니스트들이 목소리를 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여성은 가부장제 아래서 진행된 성차별의 직접적인 피해자이자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혐오감의 발판이 된 역사적 타자다. 따라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은 남성중심 가부장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연대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어느 면에서는 사회적 약자이기에 연대가 가능하다.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몇 가지 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공감한 부분이 무엇인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앎과 삶의 불일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모성/어머니 예찬과 아줌마 혐오 담론의 차이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지, 포르노그래피가 표현의 자유인지 아니면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인지, 성판매는 근절돼야 하는지 성판매 여성의 생존권을 위해 부분적으로 허용해야하는지 등이다. 논제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나쳐온 것들이다. 페미니즘 책 한 번 읽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건 무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페미니즘이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저항운동이라기보다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라는 데 공감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은 것은, 가부장제 사회에 만연한 왜곡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차고 넘쳐서 놀랍다는 점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데는 그럴 만한 수준의 인식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남성되기' 문화와 성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위안부 누드' 모델이란 발상도 가능한 기가 막힐 일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페미니즘을 알아야 하는 게 아니다. 의미 있는 삶, 자기성찰적인 삶을 살기 위해 누구나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두 번 이상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는 어느 저자의 말을 나는 평소 책 읽기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페미니즘의 도전>이야말로 두 번 세 번 읽어도 생각할 거리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맑고 깊은 울림을 준다. 칼 융의 책들과 함께 앞으로 또 다시 읽고 싶은 책이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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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여성주의를 만나다 평점10점 | a*******5 | 2014.10.19 리뷰제목
이렇게 괜찮은 책이 리뷰 하나 달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슬프다. 물론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좀 괜찮다 싶은 책들이 YES24에서 리뷰를 수십 개씩 달고 있는데 비하면,  이 책은 제 가치를 올바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얼마나 작고 종종 무시되는지, 페미니즘이라는 언어 자체를 얼마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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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괜찮은 책이 리뷰 하나 달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슬프다. 물론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좀 괜찮다 싶은 책들이 YES24에서 리뷰를 수십 개씩 달고 있는데 비하면,  이 책은 제 가치를 올바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얼마나 작고 종종 무시되는지, 페미니즘이라는 언어 자체를 얼마나 기피하는지 잘 반영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와 '어머니'라는 말처럼 같은 대상(중년 여성)을 모순되게 일컫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아줌마' 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억척스럽고 뻔뻔하다는 것이다. 아무런 성적 매력도 없는 나이 먹은 여자의 주책스런 행동 정도로 인식되곤 한다. 반면에 '어머니'라는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신성에 가까운 언어가 또 있을까. 자식과 남편의 앞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 상은 우리 사회에서 변치 않는 궁극의 이상향이다. 하지만 아줌마와 어머니는 같은 여성이고 한 여성이다. 단지 남성 중심 사회에서, 특히 젊고 예쁜 여성만을 선호하는 한국식 가부장제 사회에서 차별받는 나이 든 여성의 두 얼굴일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직장에 다니는 모성은 자신의 사회 생활과 가정의 충실이라는 두 가지 짐을 홀로 지고 헉헉 거리며 바쁘게 살고 있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가정 살림에 충실하지 못하면 비난 받는 쪽은 어머니지 아버지가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여성에게 가정은 또 하나의 일터이고, 남성에게는 휴식처가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날로 증가하는 이혼률로 그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된 여성주의 세계관, 즉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입장은 참으로 신선하고 충격에 가깝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여성주의 세계관이야말로 인류의 평화와 공존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중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들은 오천 년 이상 건재해온 남성중심적 세계관에서 배태된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관점에서는 진정한 사회와 성 모순의 해결이 불가능다는 한계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꿈 꾼 마르크스 철학이 빛을 보지 못한 것도 결국 소유와 지배 중심의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데 실패한 것이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성이 다른 성에 종속적인 사회는 불행하다. 민주사회에서 우리는 누구나 기회와 자유의 평등을 보장받고 싶어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면 거리가 멀다. 성과 장애, 동성애자 등에 의한 차이가 종종 차별로 둔갑하고, 나이로 들이대는 취업 제한은 남성에 비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승진과 임금에서도 성 차별을 받는다. 가정에서는 살림과 육아에 시달리면서, 문제 제기나 스트레스 성 발언을 하면 폭력으로 대우받는 현실이 한국 여성의 현주소가 아닌가. 잘 나가는 연애인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남편의 구타와 폭력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신세로 전락하는 여성이 한둘이 아니다. 수 년째 맞으면서도 참고 살아오다 죽음 직전에 병원에 실려가며 이혼 소송을 했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되곤 하는 사례는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한 때는 사랑한다고 믿고 결혼한 남자로부터 맞는 구타는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폭력을 행사한 남편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여성주의 세게관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동시에 반영하며, 모든 폭력을 거부한다.

 

 이 책은 여성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만에 하나 첫 술에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기존의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갇혀 살아와서  자신도 모르게 쓰게된 색안경 때문이다. 여성주의 세계관은 탈남성적 새로운 관점이고, 따라서 기존의 관점에서 이동하여 세계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균형있게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처음엔 불편할 수도 있지만 신선하고 매력 있다. 아니,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고도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가 잘 굴러가는 비밀을 밝히고 있어 충격적이다. 더구나 그것이 성을 매개로 한 것이기에.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진실이라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여성주의 세계관을 기꺼이 수용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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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파블17-1월] 페미니즘의 도전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l*****5 | 2020.01.08 리뷰제목
한참동안 책을 못 읽고, 덩달아 리뷰까지 못 올렸다.너무 생소하다. 책을 이렇게 오랫동안 멀리했나 싶을 정도로.그리고 읽어야했던 책도 한 달에 한 권씩 '페미니즘 책 읽기'를 하는데, 그 숙제 해를 넘겼다. 그 시간들 마음이 이래저래 무겁고 힘겨웠던 나날들이었다고 핑게를 대어본다.시간 약속은 못 지켰지만 다른 책들보다 먼저 읽어냈음에 나에게 토닥토닥, 잘 했어 칭찬해주고 싶
리뷰제목

한참동안 책을 못 읽고, 덩달아 리뷰까지 못 올렸다.

너무 생소하다. 책을 이렇게 오랫동안 멀리했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읽어야했던 책도 한 달에 한 권씩 '페미니즘 책 읽기'를 하는데, 그 숙제 해를 넘겼다.

그 시간들 마음이 이래저래 무겁고 힘겨웠던 나날들이었다고 핑게를 대어본다.

시간 약속은 못 지켰지만 다른 책들보다 먼저 읽어냈음에 나에게 토닥토닥, 잘 했어 칭찬해주고 싶다.

페미니즘 책은 읽을수록 더 어려우니 큰 일 났다. 내가 잘 읽고 있나? 싶다.

12월의 페미니즘 읽기 책은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도서관에 없어서 구매를 했다.

구매를 하고도 읽어내지 못했으니 할 말 없음^^;;;;

보통이면 도저히 시간이 걸려 못 읽을 정도면 다른 책으로 갈아타는데, 나는 왜 계속 읽고 있었을까?

이유는 없다. 그냥 읽어야만 될 것 같은 마음 속 부담감 때문인 듯 하다.

나와의 약속과 함께 읽는 분들과의 약속 때문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책 읽기를 하면서 관심이 많아졌다.

몰랐을때는 나와는 아무 관계없는 학문인 줄 알았는데, 페미니즘에 대한 개념을 알아가면서 이것은

더이상 나와 관계없는 부분이 아님을 깨달았다. 내 삶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와 타자로서 무척 민감하며 정치적이었다.

몰랐을 때는 그냥 오랫동안의 관습이려니 하고 아무 문제의식 없이 넘길 사안들이 페미니즘과 연결되니 자연스레

이건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뿌리깊은 젠더 문제를 촉발시키는  또다른 억압이자 폭력이었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을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해 다각도로 다루고 있다.

항상 읽으면서 느끼는 건 불편하다는 것, 하지만 불편하기에 문제인식을 하는거고 그 문제인식에서부터 페미니즘은

젠더간 경쟁과 정쟁의 수단이 아닌것이다. 어떤 한 편의 목소리가 아닌 함께 내어야 될 목소리란 것임을 느낀다.

젠더를 남녀 간 갈등이 아니라 여성(소수자, 타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사회 구성 원리나 재창조 원칙으로

인식한다면 젠더는 이슈나 소재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이 된다.

젠더를 인식론으로 접근하면, 젠더는 '여성 문제'가 아니라 '남성 문제'가 될 것이다.

 

페미니즘을 남녀에 관한 이슈에 국한하지 않고 삼라만상(인식의 모든 대상)에 대한 새로운 사유 방식, 접근 방식,

논의 방식이라는 인식의 방법으로 이해한다면 ,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젠더 문제를 이슈나 소재로 부풀려 그것으로 페미니즘과 연결시켜 서로를 헐뜯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의 의미도 잘 모르면서 매스컴에서 보이는대로 부정적인 것으로 오해를 한다.

그래서 무지는 위험하고, 근거없는 편견을 만든다. 편을 가르게된다.

한쪽만 보는게 아니라 사회의 모든 현상을 같이 보게 된다면 페미니즘의 바른 정의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젠더 문제를 이분법적(남성과 여성) 구별이 아닌 '인간'이란 인식에 포함시킨다면 간극이 좁혀질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 (p23)

 

남성의 관점으로부터 여성, '나'를 정의하지 말고, 서구(이성애자,백인,비장애인,부자,서울 사람...)와의 관계로부터

'우리'를 정의하지 말자는 것이다.

여성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서구/남성의 대립항으로서 '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누구/무엇과의 관계로부터 설명할 것인가, 그 범주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면서 기존의 억압적인 삶의

양식을 재생산하지 않을 수 있을까가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의제가 되어야 한다.

목소리를 내고, 듣는 것이 페미니즘의 기본이라 생각된다.

다른 목소리는 혼란이 아니라 다양성과 창조력의 원천이라 했다.

조금 신선한 뉴스 기사를 접했다. 결혼식에서 신부는 항상 신부대기실에서 새장의 새처럼 꼼짝 못 하고 앉아있고,

부모님과 신랑이 대신 하객을 맞이했다. 그러나 요즘은 결혼식에서 대기실을 박차고 나와 신랑과 나란히 하객맞이에

나서는 신부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신풍속이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식의 변화 아닐까.

여성의 경제적 지위 상승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말하지만, 남녀 평등 의식이 깔린 페미니즘의 아주 작은 단면이라

말하고 싶다. 신부의 하객맞이, 목소리를 내었기에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첫 단추를 잘 꿴 것 같다.

일상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양성 평등이 누구 중심의 평등인가는 언제나 논쟁거리다.

정의(justice)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same)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rness)을 추구하는 것이다. (p179)

모든 차별과 억압은 어쩌면 공정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거의 모든 사회 문제의 출발점이 아닐까?

'공정함'이란 단어와 페미니즘의 의미와 자연스레 연결되어진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사회가 공정하면 나라가 흥한다는 학계의 정설이 있다고 말했는데, 꽤 공감가는 말이었다.

누구 중심의 평등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공정함으로 따져야 될 부분이 아닌가싶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닿는 부분이었다. 정의(justice)와 공정함(fairness)란 측면에서 페미니즘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게 된다. 늦었지만 의미있는 책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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