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민지형
나비클럽/2019.5.24.
sanbaram
세계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다. 그런데도 여성이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미국이 건국되며 마련된 연방헌법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 헌법이 생긴 후 100년이 지나서야 노예해방으로 흑인 남자의 권리와 자유가 인정되었고,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에야 백인여성과 흑인여성이 선거권을 갖게 되는 평등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굳어진 가부장제는 그 기세가 여전하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는 이러한 우리의 사회현상을 알리기 위한 소설이다. 저자는 2015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조선공무원 : 오희길 전>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한 편의 소설집과 에세이를 펴냈고, 웹소설을 썼으며,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와 한경대학교에서 강의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소속 성폭력예방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는 취업을 위해 함께 공부하다 연인이 되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취업에 성공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해 미국지사 근무를 떠나며 헤어졌다. 4년 후 페미니스트 시위 현장을 지나다 우연히 전 여자친구를 만났다. 주인공 승준은 마스크와 색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빤히 쳐다보다 쫓아오는 기미를 느끼고 도망칠 정도로 소심하다. 서로 사랑했지만 미래를 위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헤어진 여자 친구를 그렇게 재회하였지만, 그녀는 열렬한 페미니스트가 되어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추억에 젖은 승준은 여자 친구의 상처를 보듬고 자기의 노력으로 옛날의 여자 친구로 돌려놓고 결혼하기 위해 다시 반년 정도 교제를 하지만 사사건건 부딪친다. 현실의 여성 불평등을 고치려는 여자 친구를 자기의 생각대로 유도하여 결혼하려 시도하다가 반년 만에 포기하고 다시 헤어지게 되는데…….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회사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퇴직금은 받았지만, 기대했던 실업급여는 받을 수 없었다. 실업급여 처리를 받으려면 앞으로 절대 그 작가와의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고 했단다. 조폭도 아니고, 뭐 그런 양아치 같은 놈들이 다 있나? (p.199)” 출판사의 편집 일을 하는 여주인공이 유명 작가의 성추행에 시달리다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데, 회사와 직장 상사는 같은 여성임에도 직원의 편이 아닌 작가의 편을 드는 상황에서 반발심을 키우게 된다.
“첫 만남부터 여기 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보신각 앞 집회나 핑크색 자위기구가 숨겨진 그녀의 방, 페미니즘 책을 읽어야만 했던 카페처럼 그녀의 세계로 끌려다녔던 것 같다. 하자만 뜻밖의 일들을 계기로 조금씩 그녀를 끌어당겨 왔고, 드디어 내가 원래 살던 평범한 세계의 문턱에 온 것이다.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었다.(p.262)” 그러나 승준은 자기의 생각만 관철하려 할 뿐 여자친구의 의견은 번번히 묵살한다. 그러다 페미니스트 활동에 대해 언급하자
“착각하지 마, 그건 그만하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냐. 난 절대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아.”
승준은 자기가 그렇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노력했는데, 그녀가 여기까지 와서 기어코 내 희망을 확인 사살하듯 무참히 밟아버렸다고 일방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을 포기한 게 아니라, 내 삶을 선택한 거야!”
그녀역시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뭐라 토를 달 수도 없이 똑 떨어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사실을. 참 뒤늦게도 깨달았다.
“너 진짜 이기적이다.”
반박할 말이 없어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뻔한 말들을 그냥 막 뱉어냈다. 그러자 그녀가 헛웃음을 짓더니 오래 참았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너는 니가 되게 로맨틱하고 자상한 줄 알지? 니가 사랑하는 방식, 이뻐하는 거, 여자 취급 하는 거, 지켜준답시고 구속하는 거, 사람들 앞에서 옷 차려 입고 식 올리자고 조르는 거. 나는 그런 거 원하지 않는다고. 근데도 계속 니 방식만 강요하잖아. 그게 얼마나 숨 막히는지 알아? 진짜 이기적인 게 누군데 그래?”(p.274)
이런 대화가 오고 가게 되 것을 작가는 ‘어떤 날은 비혼, 비연애, 비섹스, 비출산의 구호를 되뇌며 지금의 이 공고한 가부장제에 절대로 편입되지 않게 사는 강한 이성이 나를 지배하지만, 또 어떤 날은 너무나 쓸쓸해서 함께 인생을 나눌 누군가가 없다면 이 고되고 힘든 삶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되지 않을 것만 같은 치명적인 고독에 사로잡힌다. 솔직히, 진짜로 믿고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와 삶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는.(p.314)’ 이라고 말하며 현실적인 고민과 방황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려보고자 한 것이 바로 이 소설이라고 한다.
“그럼 한 번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지. 니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남들이 원하는 거 말고 니가 원하는 거.” 여자 친구가 승준에게 한 말이다. 왜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 하느냐 진정 자기의 삶을 살 생각을 하라면서 주인공의 정체성을 찾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옛날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여주인공의 말을 곰곰이 생각할 필요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페미니스트의 유무를 떠나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