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기억의 시차가 맞추는 시간
[ .. 종로구 청운효자동.. ]
어머니는 꼭 이맘때쯤,
그때로 치면 통행금지 시각이 아슬아슬할 때에야 돌아오셨다.
어릴 때는 그게 퍽 속상하고 서러웠는데
어른이 돼서 이 골목에 서 있자니
그저 사무치게 그리운 기억이다.
풀벌레소리! 밤의 소리다.
밤이 깊어질수록 한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귓가에 선명해진다.
작은 풀
2021_035
읽은날: 2021.04.24~2021.04.30
지은이: 유희열, 카카오TV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들어가며~
이 책을 왜 선택했을까? 무엇때문에 끌렸던 걸까? 생각해보았다.
연예인들이 쓴 책은 잘 읽지않는데(특히 돈주고 구입까지 한다는건...) 그리고 유희열(그룹 토이)의 팬도 아닌데 말이다.
4월한달 아니 3월부터 컨디션이 좋지않고 몸도 아픈날이 많고
뮤지션이면서 음악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안테나’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유희열의 산문집이다. 주로 퇴근 시간의 밤거리를 소재로 얘기를 만들어 나간다. 다니는 길이 기억과 더불어 다가오고 멀어져 가는 모습을 언어로 담아가고 있다. 한 폭의 그림처럼 그의 언어가 섬세하게 길을 걷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언어를 만나고 있는 사람들도 같이 길거리를 돌아다닐 듯하다. 서
뮤지션이면서 음악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안테나’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유희열의 산문집이다. 주로 퇴근 시간의 밤거리를 소재로 얘기를 만들어 나간다. 다니는 길이 기억과 더불어 다가오고 멀어져 가는 모습을 언어로 담아가고 있다. 한 폭의 그림처럼 그의 언어가 섬세하게 길을 걷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언어를 만나고 있는 사람들도 같이 길거리를 돌아다닐 듯하다. 서울의 밤거리가 친근하게 다가들며 저자의 섬세한 개성이 길을 통해서 잘 드러남을 만난다.
<나에서 안부를 묻는 시간>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심야 산책을 통해 하루를 회억해 보고, 지난 시간들을 찾아본다. 그 시간들이 녹아 흐르는 현재도 만난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시공간을 거닐면서 만나는 것은 삶이다. 유려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기억들과 함께 오밀조밀하게 다가든다. 그것은 추억이고 희망이며 사랑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저자는 거리를 정해 두고 거닌 내용들을 언어화하고 있다. 그가 만난 거리는종로구 청운 효자동, 용산구 후암동, 중구 장충동, 중구 명동, 홍제천, 관악구 청림동, 동대문구 천장산 하늘길, 행촌동-송월동, 강남구 압구정동, 성동구 응봉동, 송파구 방이동, 성북구 성북동, 종로구 종로, 종로구 창신동, 홍대입구-합정동, 영등포구 선유도 공원등이다. 다양한 공간, 다양한 길, 그의 추억이 함께하는 길이라면 그 길은 언어가 된다. 감성의 노래가 된다. 삶의 청량한 청량제가 된다. 그 몇 공간의 이야기들을 담아 본다.
대로를 걸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골목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낮게 늘어선 집들,
그 골목을 덩그러니 밝히는 가로등
여전히 내 마음속 행정구역 그대로다
여기는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친구가 살던 옛 집도 아직 그대로 남아 있고,
나도 여기에 돌아와 서 있는데
함께 뛰놀던 친구만 없다.
감성 뮤지션 유희열의 세계다. 그의 음악적 근원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감성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릴 적 놀던 공간에 다시 왔다. 그것도 밤, 그 공간을 거닌다. 그 자체로만도 아늑하고 따뜻하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옛 공간에 서 있지만 옛 친구들은 없다. 친구들만 없겠냐만, 그대로 있는 집들, 거리 등을 보고 있노라니 사라진 친구들만 마음에 진하게 남는다. 아마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지니고 있으리라, 유년이 추억이 되는 것은 그 속에 있었던 모든 이들이 그만큼 새로운 모습이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랴. 변화는 시간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찾아드는 것, 밤을 걷는 걸음에 지난 기억들이 새록새록 찾아든다. 그것이 아린 기억이 되고 언어가 되어 쌓인다.
‘명동’하면 서울예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동엽이 형, 재욱이 형, 재석이......./ 내 친구도 많이들 다녀서 자주 놀러 오곤 했다./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 골목은/ 돈 없는 청춘을 위해 싸게 장사하던 술집이 아주 많았다//30년 만에 다시 찾은 명동은 많이 아기자기해졌다/ 건물 간판이며 벽이며 조금의 빈틈도 없이/ 만화 캐릭터 조형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추억의 캐릭터들로 특화되어 있는 이 거리의 이름은/ ‘재미’있는 거리, ‘재미로’다.
서울서 생활한 사람들에겐 명동이 추억의 거리가 될 게다. 시골에서도 서울 올라가면 가장 먼저 명동 거리부터 걷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생각이 난다. 나도 그랬던 것 같고. 명동을 30년 만에 찾았다. 그 거리가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할까? 그 얘기들을 듣고 있다 보면 모든 것들이 음악이 되어 저자의 마음에 울림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웃으면 복이 와요> <남산초등학교> <재미로만화방> <과거 여행길> <남산사진관> 등 팻말도 정겹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추억은 사랑이 되고 사랑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저자의 얼굴에도 이 글과 더불어 웃음이 꽃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독립문 앞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어릴 적 친구들이 많이 살던 동네라 제법 익숙할 줄 알았는데
변해도 너무 변했다.
아파트 단지들을 끼고서 언덕길을 조금 더 오르니
기억 속의 주택가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어느 오래된 골목에 접어들었다.
집집마다 나무들이 어찌나 크고 우람한지
예사롭지 않은 나무들을 올려다보느라 고개가 절로 젖혀졌다
어느 골목 끝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은행나무와 마주쳤다
밑줄기만 해도 대여섯 아름은 되어 보인다.
‘행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둔 권율 도원수 집터’라고
표석에 쓰여 있다.
수령만 해도 족히 460년은 넘었다고 한다.
익숙했던 길에 저자는 다시 들르게 되었다. 유년의 기억들이 가물거린다. 친구들과 뛰어 놀았던 기억, 흙 조금, 돌 하나에까지 추억이 스며있다. 그 길을 다시 걷는다.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을 숱하게 걸었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은행나무, 이제 나이가 드니 세월처럼 다가오는 모양이다.
은행나무가 있는 집은 권율 도원수의 집터였다 한다. 아마 한양에는 이런 흔적들이 곳곳에 산재하리라. 저자가 의식하지 않고, 찾지 않아서 그렇지 이곳에서 500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었지 않는가? 그 흔적이 오죽하겠는가? 은행나무를 보면서 새삼 역사와 유년이 겹쳐 다가온다. 밤을 걷는 걸음, 추억이 함께 하니 그 넉넉함이 한량이 없다. 풍성한 걸음이 책을 읽는 나의 내일로 연결된다.
요즘은 거의 날마다 퇴근을 한다// 적재와 뮤직비디오에 대해 얘기하고,/ 작업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진아와 상담을 하고,/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 쓸데없이 참견 좀 하고 나면/ 어느새 퇴근 시간,// 아직도 불 밝혀진 3층에 세 들어 있는/ 대한민국 3대 기획사 ‘안테나’ 사무실을 나와/ 조금 걸으면 호남식당이 있다./직원들이 자주 이용하는 소박한 백반집이다.// 호남식당에서 좀 더 걸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신사까치공원이 나온다./ 아주 작은 공원이지만,/ 나무도 푸르고 야외운동기구가 몇 가지 있어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가벼워진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나무 아래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고다./ 나의 야외 헬스클럽이랄까.
저자의 집에 돌아가는 길이 눈에 선연하게 들어온다. 한국 3대 기획사 중 하나가 세 들어 살고 있는 현실을 얘기한다. 조금 더 풍요로운 터전이 되어 좋은 음악을 위해 모든 활동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지인들의 생활을 걱정해 주는 기획사 대표의 선한 눈빛이 보이고, 회사 식구들이 밥을 챙겨 먹는 식당은 반갑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다 보면 작은 공원이 보이고, 그곳은 정신적인 안식처다. 몸을 쉴 수 있는 공간도 되고, 하루의 피로를 푸는 장소도 된다. 그런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한국의 유명세를 타는 기획사 대표, 유명한 음악가가 길거리를 쉽게 걸을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보통 공인들은 길거릴 걷는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그만큼 한국의 치안이 잘 되어 있다는 뜻이 될 게고, 그만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 사회라는 뜻도 될 게다. 감사한 일이 많다. 공인이 집으로 퇴근하는 일이 잦을 수 있음도 행복한 사회가 되고 있다는 뜻이리라. 책이 잔잔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그 시작점인 설치미술 앞에서
물 가까이로 내려갔다
빌딩 숲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만으로도
걸음걸음이 절로 느긋해진다
시선을 들었다
양쪽으로 치솟아 있는 빌딩들엔 불 켜진 창이 무수하다
숨 돌릴 틈 없이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청계천 산채로는 잠깐이아나 숨 고를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점심 먹고 산책, 퇴근하고 산책, 한잔하고 산책.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한 일이다.
저자의 산책은 생활화되어 있다. 산책을 통해서 느긋함과 휴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청계천이 도시인들에게 얼 만큼의 위안이 되는 공간인가 자세하게 말해 주고 있다. 내가 청계천을 걸었던 기억도 떠올린다. 마포에서 차로 구리 쪽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도시고속도로 비슷한 것을 탔다는 생각이다. 그때는 네비게이션도 지금처럼 많이 사용하지 않고 있을 때다. 차는 어림짐작으로 구리로 빠진다고 빠졌는데, 빠진 곳이 청계천이었다. 그래서 가까이 온 김에 청계천에서 발도 담아 보고 좀 쉬었다 가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고쳐진, 정리된 청계천은 확실히 휴식공간이 되어 준다.
저자는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의 빌딩의 숲을 바라보면서 생각이 많다. 그러면서 걷는 도시의 밤은 그래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걷는 것이 일상화되어 휴식과 건강, 탄력성 있는 삶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 여유와 낭만을 느끼게 한다.
유리 난간에 기대니 야경 위에 내가 서 있는 것만 같다./ 반짝이는 불빛들이 동대문 일대를 더욱 환하게 밝히고 있다./ 낙산공원에서 홍인지문으로 이어진/ 한양도성 성곽도 한눈에 들어왔다.//야경을 완성하는 이 예쁜 불빛들은/ 늦은 시간에도 누군가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또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신동 주택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삶을 생각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저 공간에서 지금도 열심히 삶을 살고 있을 게다. 그것을 멀리서 바라본다는 사실에 감회가 인다. 서울 한양도성의 야경은 언제보아도 멋진 풍광이다. 누구라도 야경을 보려면 이 공간에 들러 보면 어떨까 제의를 해보고 싶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조금씩 쉼도 누려가면서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으랴. 한양도성이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행복한 길을 우리들에게 안내하고 있는 저자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서울의 거리를 감성 뮤지션 유희열과 함께 거닐게 한다. 솔직담백한 언어가 무척 마음에 살갑게 다가와 앉는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면 책의 길을 따라 거닐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저자의 감성어린 시선을 따라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 길들에 녹아 있는 나름의 기억들을 소환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이 책을 들고 서울 거리에 서보자. 멋진 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울의 거리와 야경이 더욱 가까워진다. 감사한 일이다.
<밤을 걷는 밤>
유희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공저
위즈덤하우스/ 2021년 4월
"일상의 쉼표 같은 밤산책! 나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
밤 산책 하기 전
밤산책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흔히 산책을 아침이나 저녁에 산책을 하는 것을 즐긴다. 나 또한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이슬이 머금은 풀내음을 맡으며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산책은 공원이나
밤산책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흔히 산책을 아침이나 저녁에 산책을 하는 것을 즐긴다. 나 또한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이슬이 머금은 풀내음을 맡으며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산책은 공원이나 숲, 산을 하는데, 이 책에서는 특이하게 서울의 동네 구석 구석이다. 그리고 아침도 낮도 아닌 밤이다. 밤산책? 밤에 어떻게 산책이 가능하지? 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이 책의 책장을 펼쳤다. 또한 서울은 나에게 산책할 만한 공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고, 서울에서 지금도 살고 있지만, 서울의 이곳저곳을 밤산책해본 적이 없다. '깜깜한 데 어떻게 산책을 하지?' 그런데 그 모든 나의 의구심을 깨고 서울의 16개의 지역을 밤산책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내용들이 모두 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또한 이 책은 2020년 9월에 시작했던 카카오TV 모닝의 금요일 코너인 '밤을 걷는 밤'에서 소개한 지역을 정리하여 출간된 것이다. 감각적인 밤 산책으로 모바일 속 감성 힐링 타임을 선사하고 도심, 유명 관광지 등 익숙한 공간을 찾아 낮과는 다른 밤 특유의 풍경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오감 힐링 밤마실 예능'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영상들을 찾아서 보았는데 짧은 동영상이지만, 정말 그 영상을 보면서 나도 함께 밤마실을 나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우리 그러면 랜선이지만 청운 효자동부터 합정동까지 밤마실을 함께 가볼까요? 서울의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하며 잊고 지낸 '나'와 '우리'의 안부를 묻는 밤! 그 밤 산책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우리 함께 밤 산책 가실래요?
밤 산책 하는 중
그러면 어디서부터 밤 산책을 해볼까? 이 책에서는 청운 효자동부터 시작해서 합정동까지 밤산책을 했다. 그 밤 산책 경로를 서울의 지도에 16개의 지역이 표시되어 있고 각 지역의 랜드마트가 그림으로 잘 표현해놓았다. 또한 책을 구매하면 밤 산책 지도가 부록으로 나오니 나중에 밤 산책 하는데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책 속에 제시된 밤 산책 지도>
첫 번째 밤 산책
- 마음과 기억의 시차를 맞추는 시간-청운효자동
머릿 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을 때 주로 산책을 하곤 한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지 않고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머릿 속을 비울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조용한 밤이 되면 나혼자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그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 된다. 그런 밤 시간에 걷으면서 산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낮의 풍경이 선명하고 쨍한 사진이라면 밤의 풍경은 아름다운 것만 남기고 아웃포커싱된 사진 같은 느낌이다.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것들이 밤이 되면 그 아름다움이 되살아난 것만 같다.
나는 청운효자동을 가본 적은 없지만 이 지역이 저자인 유희열씨가 자란 동네라고 한다. 어렸을 때 그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놀며 자랐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찾아간 그 곳은 이미 예전 그곳이 아니었다고 한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그 곳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만 없는 그 쓸쓸한 밤거리를 거닐어보면 시간의 흐름과 지나온 인생을 생각하지 않을까.
<책 속 사진과 문구를 글 그램으로 구성해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어린 골목을 빠져나오면 최규식 경무관 동상을 마주하게 된다. 기옥 속, 그 황홀한 향기에 파묻힌 채 최규식 경무관 동상 앞에 잠시 앉아본다.
이 최규식 경무관 동상은 1968년 1월 2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수부대인 124군 부대 소속 김신조 및 31명의 무장 공비들이 당시 청와대를 습격해 정부 요인을 암살하려고 남파되자 청와대 바로 옆에서 이를 검문하다가 총격전이 벌어졌고 정종수 경사와 함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최규식은 사후 경무관으로 특진되고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으며 그 근처에 동상도 건립되었다고 한다. (참조: 위키피디아)
늠름하게 서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을 보면 죽음을 무릎썼던 그의 애국심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의 애국심과 용기 덕분에 무장공비를 막고 청와대의 정부 요인을 보호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밤 산책을 하면서 세삼 우리나라의 역사까지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지나온 역사적 시간과 그 흔적을 찾게 되어서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운치있고 감성적인 밤에 시 한 구절이 절로 생각난다. 밤으로 더욱 짙게 그늘을 드리운 녹음 사이, 처음 걸어보는 오솔길로 창위문까지 올라갔다가 윤동주문학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서울시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전경 [출처] - 국민일보
윤동주문학관을 보니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생각이 난다. 모두가 잠든 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윤동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무나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그는 그래도 희망을 발견하려고 했을까. 나 또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읖조리며 그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한다.
시적 감성을 느끼며 감상에 젖어있는데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밤이 깊어질수록 한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린다. 밤에만 들을 수 있는 밤의 소리인 것이다. 작은 풀벌레 소리가 고요한 밤을 쩌렁쩌렁 울려댄다.
감성적인 시와 밤의 소리와 함께 멋진 야경이 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신기하게도 청운 효자동은 이 세 가지 감성 요소를 다 갖춘 곳인 것 같다. 청운 효자동 무무대에서 보는 서울의 야경은 그 어떤 말로도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표현할 수 없다.
무무대에 올라서면 모든 게 사라진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 그리고 이 순간만 제외하고
이곳에서 사랑을 고백받는다면
멋지고 비싼 반지 따위 없어도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토록 고요하고 화려한 순간은...
무무대의 서울 야경 감상을 끝으로 청운 효자동 밤산책은 끝난다. 청운 효자동에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밤산책이 이렇게 낭만적이고 감상적일 줄은 몰랐다.
누군가 나를 위해 준비해둔 보물지도 위를
한바탕 돌고 나온 것만 같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잊고 있던 추억의 조각들을 그러모으며...
참 좋은 거구나,
밤에 걷는다는 거.
나중에 코로나가 끝나면 유유자적하면서 청운 효자동 밤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윤동주 문학관도 보고, 시인의 언덕 오솔길도 올라가보고 무무대에서 멋진 서울 야경을 보고 싶다~^^
두 번째 밤 산책
- 느라게 걸어야만 겨우 보이는 풍경들-용산구 후암동
우리 집에서 용산이 그렇게 멀지 않은데 용산구 후암동은 처음 들어본 동네 이름인 것 같다. 유희열씨도 서울에 살았지만 난생 처음 와본 동네라 낯설다고 하니 이 동네가 서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다음 밤 산책을 하게 되면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
옛날 후암동 84번지에는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을 빌러 가던 동그랗고 두터운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어려운 말로는 후암, 쉬운 말로는 '두텁바우'라고 하는데, 이제는 그 이름만 남아 길이 되어버린 두텁바위로의 밤을 나선다.
두텁바위로의 밤 후암동에 들어서면 높디 높은 계단에 고개가 절로 젖혀진다.
'저건 뭐지?' 와! 계단이 엄청 높구나. ' 두 개의 고층 건물 사이를 가로지른 계단의 끝이 까만 밤하늘에 묻혀 아스라하다. 하얀 불빛이 드문드문 밝히고 이는 계단 가운데로 역시 하얀 불빛을 달고서 오르내리는 해방촌 108계단 경사형 승강기가 보인다.
'목멱산(남산) 아래 우리 마을 해방촌'이라는 글씨와 정다운 벽화가 그려진 해방촌 계단엔 네 개의 계단참이 있다. 승강기도 계단참마다 멈춰서고, 계단참에서 또 작은 계단들을 샛길로 앙증맞게 쌓아 올려 작은 집과 가게가 구석구석까지 골목으로 이어져 있다. 그렇게 구석구석 골목까지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헐렁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단란한 가족이 자그마한 두 아이를 앞세운 채 이야기꽃을 피우며 올라간다. 저 가족은 어느 골목에서 일상적인 발걸음을 돌릴 테지만, 나는 자꾸만 그 어귀를 기웃거리게 된다.
저 작은 계단을 올라 다음 모퉁이를 돌면 어디로 이어질까? 익숙한 길이라면 쉬지 않고 추억을 더듬겠는데 낯선 길 위라서 끊임없이 탐색하고 탐험하게 된다.
어느 길로 가야되지? 이 길로 들어서려다가 다시 저 길로 접어들고, 또 다시 다른 한 갈래 길로 성큼성큼 걸어보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이 길로 저 길로 접어들기를 반복하고 나니 두텁바위로에서는 갈림길이 또 다른 갈림길로 자꾸만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발길이 닿는 대로 만보할 수밖에
길을 잃어버리는 것도 여행의 한 벙법이니까.
후암동 두텁바위로는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완벽한 코스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비탈길로 올라가면 남산이 있고,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도시가 있다는 사실뿐이다.
문득 길 잃은 기분이 드는 밤엔 해빙촌 산책을 추천한다.
내내 미로 같다가 보물지도로 남은 이 길처럼
당신의 밤도 그러하기를...
후암동을 걸으면서 밤 산책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밤은 낮의 화려함에 가려져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위해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듯하다.
세 번째 밤 산책
- 비 오는 밤, 성곽길을 걷게 된다면-중구 장충동
비오는 밤에 하는 밤 산책은 어떤 느낌일까? 중구 장충동 편에서는 비오는 밤 산책이었다. 가로등에 비치는 빗줄기가 제법 굵게 느껴진다. 바닥은 빗물에 젖어들어 지상의 불빛이 그 길을 따라 빛의 강으로 흐르는 것 같다.
유희열씨는 장충체육관 앞을 매일같이 지나다녔다고 한다. 나 또한 어렸을 때 장충체육관 이름을 참 많이 들어본 기억이 난다. 상당히 규모가 큰 체육관이라 대규모 행사는 그 체육관에서 열렸던 것 같다.
장충체육관은 1963년 2월 1일 국내 최초 실내경기장으로 개관, 아마추어 농구를 비롯해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 경기, 12대 대통령 선거까지등 수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체육관이다. 그런 장충체육관이 50년 만에 고품격 ‘복합 문화체육시설’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렇게 중구 장충동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다. 1960년대보다 더 먼 과거로 가볼까.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조선시대로 가보자. 한양 도성 순성길을 걸으면서 조선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 성곽길은 조선 시대 태조, 세종, 숙종, 고종이 축조, 수축, 개축을 통해 시간으로 켜켜이 축성한 한양도성 바깥길이다.
비오는 날 성곽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우산 아래로 빼곡히 들어차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성곽의 시간을 세며 돌길을 찰박찰박 내딛는 소리, 그 소리소리마다 귀가 열린다.한밤엔 귀에 닿는 모든 소리가 새삼 감미롭게 느껴진다.
비 오는 밤, 성곽길을 걷게 된다면
모든 감각을 밤의 소리에만 열어보기를
비와 숲과 내가 만나는,
짙은 풀 내음을 닮운 그 감미로운 소리에.
비와 숲이 만나는 그 감미로운 소리를 들으며 국립 극장 아치 길을 지나면 3.1독립운동기념탑과 유관순 열사 동상을 마주하게 된다.
며칠 전이 광복절이었다. 문득 3.1 독립운동기념탑과 유관순 열사 동상을 보니 그들의 조국광복을 외치는 만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2021년 광복절에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무사히 한국에 도착되었고 안장되었다. 홍범도 장군은 광복이 되기 2년 전에 우리나라가 아닌 카자흐스탄에서 죽었고, 78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국땅도 밟아보지 못한 채 외롭고 쓸쓸하게 먼 타국의 땅에 묻혀야만 했다. 3.1 독립만세운동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유관순 열사도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의 애국심과 희생이 있기에 우리도 이렇게 살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 고귀한 희생과 애국심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그런 숙연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다시금 길을 재촉해본다. 어느 새 비도 멎고 풀숲, 밤의 그늘에서 다시 들려오는 매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린다. 이 또한 밤의 소리일까.
직접 걸어야만 비로소 그 길을 알게 되고,
천천히 걸어야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는 걸
밤을 걷는 내내 깨닫고 또 깨닫는다.
네 번째 밤 산책
- 엄마에게 걸음으로 부치는 밤편지-홍제천
홍제천이 흐는 이 동네는 유희열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유희열씨의 어머니가 지내시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백일홍과 루드베키아, 코스모스가 만발한 홍제천에서
물이 맑게 흐르는 소리가 올라오고 그 소리가 점점 커져 급기야 콸콸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콸콸 흐리는 물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세차게 쏟아지는 밤의 폭포 소리를 듣게 된다.
서울 주택가 한 가운데에 이런 곳이 있다니, 비록 인공폭포라고 해도 요즘 같이 더울 때 폭포를 바라보고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만 들어도 시원해질 것만 같다.백사실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이 맑은 물줄기는 주택가 땅 밑을 지나 세검정꺼에서 홍제천으로 합수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폭포 소리만 들어도 절로 시원해질 듯한데, 홍제천의 모습을 보면 어떨까. 고요하게 흐르는 홍제천을 보니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없어질 것만 같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 새삼 서울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물길을 따라, 달 따라 걷기를 얼마간 하다보면 건너편으로 너럭바위 위에 세워진 세검정이 보인다. 세검정의 모습을 보니 역사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 듯 하다.
세검정이라는 이름은 ‘칼을 씻는 정자’라는 뜻이다. 광해군 15년 이(李貴), 김류(金?) 등이 광해군 폐위를 의논하고 이곳 홍제천에서 칼을 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세검정은 인조반정을 정당화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출처: 아틀라스 뉴스)
세검정은 요샛말로 조선시대 '핫플'이었을 것이다.비 온뒤 이곳 정자에 앉아 콸콸 쏟아지는 계곡물을 구경하는 것이 선비들의 '핫한' 놀이 중 하나였다고 하니, 풍류 좀아는 '조선 셀러브리티'들이 죄 여기로 모여들었으리라. 달빛 아래 시조도 읊고 술잔도 기울이면서 말이다.
지금은 세검정 인근 주변이 모두 개발되어 옛경치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때 그들을 비추던 달만큼은 여전히 정자 위로 흐르고 있다. 달빛이 비추는 세검정은 옛 풍류를 간직한 채 서 있다.
그리고 유희열씨는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떠오른다. 어머님이 계시는 곳이 홍제천에서 지척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께 드릴 과일을 사들고 그는 그렇게 어머니에게 부치는 밤편지를 쓰듯이 어머니에게로 간다. 마치 아이유의 밤편지가 떠오르는 밤이다.
<아이유 '밤편지'가사 (출처: https://youtu.be/M9CS63PDyJ0) >
아이유의 밤편지를 들으며 랜선 밤산책을 끝내려고 한다. 16곳의 장소 중 4곳밖에 소개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나머지 동네 밤산책은 여러분들이 이 책과 함께 해보기를 바란다.그래서 최종 목적지인 선유도 공원을 끝으로 밤산책을 마쳐보기를 바란다.
밤 산책 하고 나서
걸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삶의 풍경이 너무나 많다. 차를 타고 그 지역을 지나다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직접 걸어서 그 삶의 현장 속으로, 그 삶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알게 된다. 아득한 풀벌레 소리, 수묵으로 그려 넣은 듯한 밤의 능선, 낮에는 보이지 않고 어두워져야만 듣고 볼 수 있는 자연의 풍경들을 말이다. 밤 산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밤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어쩌면 밤은 일상을 마치고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밤 산책은 일상의 쉼표이다.
하루의 끝자락이 문득 쓸쓸하고 외롭다면, 무작정 겉옷을 챙겨서 밤의 거리를 걸어보며
밤 산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익숙하고 가까운 내가 사는 동네를 천천히, 터벅터벅 걸으며 한 바퀴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밤은 언제나 뜻밖의 풍경을 준비해두고 있을 것이다.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다. 그 기준에 대해서는 저마다 할 이야기가 있을테지만, 태어난 곳을 기준으로 하거나 내 생에서 머문 시간을 헤아려 봐도 ‘서울 사람’이라 하기 어렵다. 게다가 ‘서울 토박이’들이 절대(!) 가지 않는다는 63빌딩 전망대 오르기, 여의도 공원에서 자전거 타기와 한강 유람선을 타 본 경험이 있는터라 이런 의미에서 따져봐도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다.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다. 그 기준에 대해서는 저마다 할 이야기가 있을테지만, 태어난 곳을 기준으로 하거나 내 생에서 머문 시간을 헤아려 봐도 ‘서울 사람’이라 하기 어렵다. 게다가 ‘서울 토박이’들이 절대(!) 가지 않는다는 63빌딩 전망대 오르기, 여의도 공원에서 자전거 타기와 한강 유람선을 타 본 경험이 있는터라 이런 의미에서 따져봐도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다.
마음과 기억의 시차를 맞추는 시간 _종로구 청운효자동
느리게 걸어야만 겨우 보이는 풍경들 _용산구 후암동
비 오는 밤, 성곽길을 걷게 된다면 _중구 장충동
우리, 명동 산책 갈래? _중구 명동
엄마에게 걸음으로 부치는 밤 편지 _홍제천
길은 언제나 삶을 가로지른다 _관악구 청림동
산도 인생도, 잘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_동대문구 천장산 하늘길
도시의 혈관이 지나는 골목에서 _행촌동~송월동
산책의 끝은 언제나 집 _강남구 압구정동
빛과 물과 가을이 쉼 없이 노래하는 밤 _성동구 응봉동
모든 뻔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_송파구 방이동
기억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지켜낸 동네_성북구 성북동
옛것과 새것이 뒤엉킨 시간의 교차로 _종로구 종로
각자의 치열함이 빛을 내는 거리 _종로구 창신동
시시한 이야기가 그리운 밤에 _홍대입구~합정동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_영등포구 선유도공원
이 책을 펼쳐 내용을 읽기 전에 내가 가 본 곳이 몇 곳이나 되는지 헤아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이 또한 서울 사람이 아니라는 방증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서울 사람들은 ‘그래? 서울에 그런 곳이 있었나? 다음에 한번 가보지, 뭐.’하며 여유를 부렸을테니 말이다(자, 나와 같이 가본 곳을 먼저 찾아본 당신, 서울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ㅎㅎ).
특히 밤에 걷는 걸 좋아한다. 내가 좀 더 나다워질 수 있고 때로는 어둠 속에 숨을 수도 있는, 비밀스럽고도 반짝반짝한 시간. 한낮의 풍경이 선명하고 쨍한 사진 같다면, 밤의 거리는 아름다운 것만 남기고 아웃포커싱 된 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몰랐던 것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시야는 흐릿한데 감각은 한층 예민하게 깨어난다. 바람이, 나무와 꽃이, 공기의 질감이 거리마다 새롭게 말을 걸어온다. p.4
# 빛나는 줄 몰랐던, 그 시간이 담긴 명동
이삼십 대를 훌쩍 지난 뒤 언젠가,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를 듣다가
갑자기 펑펑 운 적이 있다.
이 노래에는 딱 그 시절 홍대 앞의 낭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청춘이 홍대 앞에서 그런 밤을 보냈을까......
그 애타고 불안한 마음들이 전해지는데
그게 또 그렇게 사무치는 것이다. p.258
유희열이 홍대입구를 회상하며 밤을 걸을 때,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명동을 떠올렸다. 게다가 우연찮게도 유희열이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를 듣고 펑펑 울었다면 나는 크라잉넛의 ‘명동 콜링’을 듣다가 펑펑 운 적이 있다(문득 예전 크라잉넛의 공연을 보고 무대 뒤에서 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긴장해서 이런 말도 못했었는데 말이다^^;).
크리스마스 저녁 명동거리
수많은 연인들 누굴 약 올리나
갑자기 추억들이 춤을 추네
보고 싶다 예쁜 그대 돌아오라
나의 궁전으로
바람 불면 어디론가 떠나가는
나의 조각배야
갑자기 추억들이 춤을 추네
생각해 보면 영화 같았지
관객도 없고 극장도 없는
언제나 우리들은 영화였지
*크라잉 넛 ‘명동콜링’ 중에서
생각해 보면 영화 같았던, 관객이 없어도 그저 우리가 주인공이었던, 반짝이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반짝거렸던 20대의 내 모습이 투영되어서였던 건지, 그저 그때 그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이 보고 싶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는 나를 그 시간, 그 공간으로 데려간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그 시간을 지나온 소위 ‘어른이’가 되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나 너는 지금 반짝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 어이없다는 듯,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기는 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그런 시시껄렁한 시간과 얘기를 나눌 친구가
점점 없어진다는 거다.
별일 없이 만나 시시한 얘기 나누며 낄낄거리고
아무 소득 없이 헤어지는, 그런 사이 말이다.
이 밤, 많이 변한 이 거리를 걷고 있자니
시시한 얘기를 나눌 친구가 정말 그립다. p.256
지금 다시 명동을 걷는다 해도 그때의 느낌과는 다른 공간일 것이다. 나는 ‘명동’이라는 공간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때 그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저 좋았던 함께 했던 그들이 그리운 것 같다. ‘명동 콜링’을 들으며 이렇게 글을 적고 있으려니 괜히 코끝이 찡해온다. 아,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했던가
# 초보운전자 진땀 흘리게 만들었던, 남산
아마도 사람들마다 남산에 대한 기억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곳이 평범한 공원, 조깅하며 운동하는 코스,
또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남산은 ‘식물원’이었다.
언제나 어머니 손을 잡고 놀러 왔던. p.42
내게 남산은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 짝 없는 친구들과 함께 찾았던 곳, 수업시간 답사로 당시 데면데면했던 복학생 선배와 찾았던 곳 그리고 케이블카 한 번 타보겠다고 긴 줄에 합류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기억들 모두 나를 웃음짓게 한다면, 또 하나의 기억은 조금 웃픈 표정을 짓게 한다.
내 차가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휴일, 친한 친구에게 드라이브를 제안했다. 우리도 이제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갈 수 있다는 설레임에 정한 목적지가 바로 남산이었다. 한껏 들떠서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고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이런..너무! 정말 너무!! 막히는 거다. 서울시내 모든 차가 다 도로에 쏟아져 나온 듯한 그 느낌. 거대한 주차장이 된 도로 한복판에서 우리는 말했다. “하긴, 우리까지 나왔으니..뭐...”
정작 그날 우리는 남산에 가지 못했고, 야심차게 출발했던 우리의 첫 드라이브는 서글프게 막을 내렸다.
이제는 서로 자차를 이용하는 우리는 종종 그때의 우리를 이야기하며 웃곤 한다. 친구야! 우리 남산 다시 한번 가볼까
#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함께 하는, 선유도
“폐정수장에서 친환경생태공원으로”
한강 중심부에 자리한 작은 봉우리섬 선유도는 예로부터 빼어난 풍광을 지닌 곳으로 예술가와 묵객시인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선유봉의 옛 모습은 사라졌고,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2002년 4월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친환경생태공원으로 재생되었습니다.
예전 모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힌 공간. 지금은 이런 컨셉의 설계를 종종 만날 수 있지만 당시 선유도 공원이 선을 보인 2002년, 그러니까 20년 전에는 그리 흔한 변신은 아니었다. 예전 선유도 공원 설계 개념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반적인 설계 패턴에서 비껴간 공간 재생에 감탄을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런 설계 컨셉을 모르고 들러도 좋은 곳이기도 하다. 폐정수장이라는 자칫 음울해질 수 있는 공간이 여러 사람의 웃음이 함께하는 공원이 된 그 모습, 그래서인지 그 곳에서 저자는 저마다의 상흔을 느낀 듯 하다.
상처가 흉터로 아물면 통증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 가리고 덮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좋은 시간은 좋은 시간대로,
나쁜 시간은 나쁜 시간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 p.273
어디 좋기만 한 것이 있고, 또 나쁘기만 한 것이 있을까. 내가 마주하는 시간들은 좋기도 또 나쁘기도 하다. 그리고 조금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삶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밤길을 함께 걷는 기분이었다. 모르는 곳은 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으로, 또 내가 아는 곳은 맞아, 맞아 그런 분위기가 있지, 맞장구를 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걷는 길은 책 속의 길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아마도 그 공간, 그 시간에 내 옆에 있었던 사람들 때문일거다. 밤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같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 이토록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공간은 각자의 추억 속에서
저마다 새로운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p.42
*나에게 적용하기
겨울 '명동'길을 걸으며 크라잉넛의 '명동콜링' 듣기(적용기한 :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조금 오글거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꼭! (어쩌면 혼자 걷다가 울어버릴지도 몰라ㅠㅠ)
*기억에 남는 문장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풍경도 누군가에게는 거짓말 같은 풍경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지금의 풍경을 부지런히 찰칵, 기억 속의 사진으로 찍어두면 어떨까.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 손 꼭 붙잡고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저장해둔다면. p.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