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타인과 절대로 공유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비밀이 만약 대중들에게 노출된다면 분명 커다란 충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심지어 그 비밀이 바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 시체를 암매장한 범죄 사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기욤 뮈소의 [아가씨와 밤]은 바로 25년 전에 벌어졌던 그 끔찍한 비밀을 소재로 하고 있는 스릴러이다.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아가씨와 밤]은 기존에 내가 읽었던 그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물론 다작으로 워낙에 유명한 기욤 뮈소이기 때문에 이전에도 [브루클린의 소녀], [센트럴파크]와 같은 스릴러도 있었지만, 나는 그 작품들을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기에 이 작품은 내가 만나는 기욤 뮈소의 첫 번째 스릴러인 셈이다.
실질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2017년 봄에 프랑스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코트다쥐르의 생택쥐페리고교에서 발송한 안내문으로부터 비롯된다. 학교 측에서 오래된 체육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첨단시설을 갖춘 초현대식 다목적건물을 짓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더불어 1992학년도 졸업생의 25주년 졸업 기념식도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열린다는 이 안내문은 뉴욕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토마에게 전해진다.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기에 25년 전에 졸업한 그 졸업생을 위한 기념 행사가 언뜻 반가웠을텐데, 토마는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바로 1992년 겨울 토마는 끔찍한 범죄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도 그 범죄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 채로 25년이 흘렀지만, 이제는 학교에서 추진한 사업으로 인하여 세상에 공개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시신을 당시 공사중이던 그 체육관에 유기하였는데, 그 체육관이 이제 곧 새로운 공사를 위하여 허물어질테니 말이다.
25년 전 토마는 빙카 로크웰이라는 동급생을 무척 사랑하였다. 그러나, 빙카는 토마와의 관계에 대하여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내 철학 선생인 알렉시 클레망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에 휩싸이게 된다. 토마는 빙카가 자신에 비하여 더 성숙한 철학 선생에게 빠져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1992년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두고 토마는 빙카의 호출을 받게 된다. 방학이라서 학교에는 거의 사람들이 없는 상황에서 토마는 빙카가 있는 기숙사를 찾아가게 되고, 거기에서 빙카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철학 선생인 알렉시가 강제로 빙카를 임신시켰다는 사실을. 그로 인하여 토마는 분노에 휩싸이게 되고, 철학 선생을 찾아가서 실랑이 끝에 싸움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철학 선생으로부터 제압당하는 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그의 절친인 막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철학 선생은 막심의 타격으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막심의 아버지인 프란시스는 이 사실을 알고, 체육관 건설 현장 감독과 함께 시체를 체육관에 유기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에 토마는 빙카가 종적을 감추었음을 알게 되고, 다수의 목격자가 빙카가 철학 선생인 알렉시로 보이는 남자와 코트다쥐르를 떠났나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그것이 자신과 막심을 보호하기 위하여 꾸며진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빙카의 행적을 수소문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그로부터 25년간 별다른 소식없이 시간이 흘러갔던 것이다. 하지만 체육관이 허물어지면 막심과 공모한 범죄가 탄로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제 토마는 졸업식 행사를 참석하여 그 문제에 대하여 막심과 만나서 상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토마에게 자신과 막심, 막심의 아버지 프란시스와 현장 감독만이 알고 있었던 그 사실을 누군가가 알고 있으며, 그 사건에 대하여 복수를 하겠다는 메세지를 받게 된다. 자신을 비롯하여 관련된 사람만이 간직하고 있던 이 비밀을 정체를 알 수 없는 제3의 인물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이내 글 곳곳에서 이 작품이 기욤 뮈소의 작품이라는 흔적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삽화를 통하여 생텍쥐페리고교의 건물 배치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굳이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배경에 대한 묘사는 물론 현재와 과거의 흔적을 찾는 여정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에 대한 묘사 역시 군더더기가 없다. 읽는 입장에서 간결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그 특징을 각인시킬 수 있는 표현들은 다양한 인물의 등장과 사건의 발생, 여기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 속에서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 매진할 수 밖에 없게끔 하고 있다. 그래서, 25년이라는 시간적 갭은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 마치 1992년의 그 끔찍한 사건이 2017년에도 곧바로 이어지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야기의 시작은 분명 토마와 막심의 범죄에 대한 비밀에서 비롯되었지만, 다양한 인물들의 비밀이 오히려 노출되면서 새로운 긴장감을 형성하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단추 하나로 수프를 끓일 수 있다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지독한 구두쇠로부터 결국 다양한 수프 재료를 얻어서 결국 맛좋은 수프를 만들었던 동화처럼 [아가씨와 밤] 역시 토마와 막심의 은밀한 비밀이 주재료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기실 이 책을 읽는다면 이들을 제외한 타인의 비밀이 오히려 토마와 막심이 마주하는 진실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작품의 후반부에는 토마가 간직하고 있던 비밀조차 온전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도 다양한 반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인물들의 비밀이 1992년 겨울의 그 끔찍한 악몽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애초 토마가 간직한 비밀이 사건의 진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는 점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또 다른 진실을 곳곳에서 터뜨리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더하여 그 과거의 사건으로 토마와 막심을 협박하는 인물의 등장과 더불어 그로 인하여 발생되는 또 다른 살인 사건은 이 작품이 그저 과거의 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과거의 사건은 2017년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진행형으로 또 다른 범죄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이야기 초반에 등장하는 토마의 비밀이라는 암시로 인하여 우리는 결말 부분에 다다르면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반전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도 바로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아가씨와 밤]은 기욤 뮈소의 수많은 작품에서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 스릴러이다. 그러나, 장르는 달라도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기욤 뮈소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그가 말하는 스릴러의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