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인간 (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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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간 (개정증보판)

리뷰 총점 9.0 (2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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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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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매 『쓸 만한 인간』솔직한 그의 글이 매력적이다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 2020.09.24 리뷰제목
배우 박정민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게 영화 <동주>이지 않았나 싶다. 그 전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찌질한 전남친으로 잠깐 나왔지만 말이다. <동주>에서 나는 배우 박정민의 연기에 반하게 되었다. 이어 <그것만이 내 세상>과 <변산>을 연이어 본 것 같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면서 놀란 게, 물론 영화 <동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쩌면 그렇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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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민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게 영화 <동주>이지 않았나 싶다. 그 전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찌질한 전남친으로 잠깐 나왔지만 말이다. <동주>에서 나는 배우 박정민의 연기에 반하게 되었다. 이어 <그것만이 내 세상>과 <변산>을 연이어 본 것 같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면서 놀란 게, 물론 영화 <동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쩌면 그렇게 연기를 잘하느냐 였다. 특별히 잘생긴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장애인으로 나와 마치 실제 천재 피아니스트처럼 피아노 연주를 하는데 놀라웠다. 


그렇다고 그가 출연한 영화를 다 본 건 아니다. <변산>에서 김고은과 연기 합을 맞춘 것도 좋았고, <파수꾼>에 이은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에서의 아주 짧은 출연 또한 반가웠다. 그렇게 좋다던 <파수꾼>은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에 개봉하기 얼마전에 관람했었다. 


배우나 연예인이 쓴 글을 챙겨 읽는 편이 아니다. 아마 누군가의 도움으로 쓰여졌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인 것이 없잖아있었다. 박정민 배우의 책이 나왔다는 것도 처음부터 알았지만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개정증보판이 나왔다는 걸 보고 구매하게 되었다. 가볍게 읽어보자는 의미에서였다. 


책의 첫장을 열어 첫문장을 읽는데 느낌이 새로웠다. 박정민 배우가 직접 쓴 문장으로 아주 심플하면서도 위트가 있었다. 그만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배우로서, 아들로서, 서른즈음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속엣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 겪어온 이야기들, 느껴온 감정들이었다. 그래서 기분좋은 마음으로 계속 읽어갔던 듯 하다. 


무엇보다 글을 참 맛깔스럽게 썼다. 그가 쓴 글을 한번 살펴보자. 


누구나 할 수 있는 진부한 말일지 몰라도, 중요한 건 상이 아니고 상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것일 테다. 만 원 남짓한, 그 피땀 흘려 번 돈을 내고 영화관에 들어오는 관객들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배우가 되는 것일 테다. 진실된 눈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것. 마치 양조위처럼. 그래서 내가 지금 어디냐면.  (35페이지)


연기에 대하여 고민하는 흔적들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영화 촬영이 끝나면 그 인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여행을 다녔다. 에세이의 초반엔 주로 홍콩을 방문했던 것 같다. 영화를 찍을 때 하나의 팀을 이루게 된다. 그는 동료들을 믿고 지금 하고자 하는 일들 모두 이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동주>를 찍으며 느꼈던 감정들, 함께 찍었던 배우들과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를 있게 해준 가족이야기를 빠트릴 수 없다. 엄마를 표현한 부분에서 툴툴거리지만 마음 속에 든 감정들을 슬며시 표현하는 부분도 좋았다. 


듣는 것에 인색한 사회다. 어쩌면 그런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듣기보단 말하는 것에 익숙한 시대. 들리는 것을 듣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 이곳에서 듣고 싶어 듣는 행위는 사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 죽고 싶어

지랄하지 말고 술이나 먹자.   (186페이지)


남자로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남다르다. 아버지와 많이 닮은 그는 학창 시절에는 원망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근성' 덕분에 쓰러지지 않았다고 말이다.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가 아버지의 근성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가족은 애잔한 것같다. 


2013년부터 매거진 <topclass>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3년 동안 쓴 칼럼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3년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나온 책이다. 배우 박정민의 손글씨와 일러스트가 실려 있다. 그가 다시 글을 썼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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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쓸 만한 인간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g********r | 2019.09.09 리뷰제목
서점으로 가서 그 어떤 책도 좋으니 잘 읽힐 만한 책을 한 권 사서 집으로 오길 권한다. 그리고 머리맡에 놔두시라. 그럼 언젠가는 읽게 될 테고 당신의 내일이 조금 더 영리한 하루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p.59) 아마 그가 여기에서 “영리한 하루가 된다”라고 썼다면 나는 이 책을 그만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영리하게도 “느낌을 받을지도” 라고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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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으로 가서 그 어떤 책도 좋으니 잘 읽힐 만한 책을 한 권 사서 집으로 오길 권한다. 그리고 머리맡에 놔두시라. 그럼 언젠가는 읽게 될 테고 당신의 내일이 조금 더 영리한 하루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p.59)






아마 그가 여기에서 영리한 하루가 된다라고 썼다면 나는 이 책을 그만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영리하게도 느낌을 받을지도라고 그가 앞 장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던 열린 결말을 주며 독자들을 낚는다. 사실 책이라는 소재에 대해 매우 민감한 누나(?)인데다, 텔레비전은 거의 보지 않는 터라 그가 나오는 것은 동주밖에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낚여주기로 했다. 일단 그의 순박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고, 깔끔하게 이어지는 문장들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표지가 너무 잘생겼다. (, 정우성 작가님의 책에서도 한 말이지만, 저 잘생긴 얼굴 하나보고 책을 읽어요. 저 아무래도 얼굴 밝히나 봐요. 결혼 전에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       투수가 공을 맞아도 그라운드에는 그 공을 잡아줄 여덟 명의 야수가 있는 것처럼, 그 팀원들을 위해 믿고 간다는 것, 굉장히 멋진 일이다. (p.136)


-       훗날 마흔이 되었을 때, 내가 예상한 마흔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난 그 다음을 또 기약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그대들을 위로하는 말도 용기를 가지란 말도 아니다. 그저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나 같은 것도 말이다. (p.201)


-       떠나 보내는 것이 힘들어 다시 너의 이름을 묻고 싶다. (p.248)


-       여행을 다니며 아이처럼 신기해하던 시선은 한 과학자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이유를 궁금해하기 마련이기 말이다. (p.286)





이 책의 3분의 1정도 읽었을 무렵, 한 인친의 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중간 좀 못 읽었는데 너무 좋아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끝까지 다 읽으시면 더 좋으실 거에요.”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의 말은 정말이었다. 진짜 편안한 문체라 순식간에 읽어버렸는데, 아쉬워서 다시 읽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영상물을 잘 보지 않다 보니 영상 속의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의 문장은 마치 작가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매끄럽다. 수식어가 매우 자연스럽고, 전혀 매끄러울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을 잘 연결하여 매끄러운 문장으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의 문장에서는 노력이, 일상이, 꾸준함이, 충실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문장이란 이런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지만, 그 글을 통해 많은 위로를 얻었다. 오늘 바보처럼 하루 종일 고민하고 흔들려 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를 얻었다. 나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나를 전혀 모르는 이가 말해주는데 정말 내가 그런 사람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나를 들여다보며 걸어가야지. 나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니. 그리고 정말 쓸만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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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멋진 찌질함을 가진 배우 박정민 산문집 평점10점 | d********1 | 2019.10.13 리뷰제목
개인적으로 작가들을 우러러보는 편이다. 작가들의 글부터 글에서 묻어나는 생각, 태도, 깊이까지 읽을수록 우러나는 울림을 느껴봤기에 작가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글을 쓰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글과 씨름하며 고쳐내려갔을까. 생각할수록 넘볼 수 없는 자리이자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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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작가들을 우러러보는 편이다. 작가들의 글부터 글에서 묻어나는 생각, 태도, 깊이까지 읽을수록 우러나는 울림을 느껴봤기에 작가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글을 쓰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글과 씨름하며 고쳐내려갔을까. 생각할수록 넘볼 수 없는 자리이자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함부로 책을 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창작의 욕구는 자유라고 할지라도 상업적으로 독자들에게 판매가 이뤄지는 품목이기 때문에 글의 작품성과 수준이 높아야 한다. 쉽게 글을 쓰고, 쉽게 제작하고, 시장에 나오는 책들은 글쓴이의 개인 성취감만 높일 뿐, 독자들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서점의 종수만 넓혀, 독자들에게 선택의 혼란만 줄 뿐이다.

 

쓸 만한 인간을 처음 받았을 때도 부정적인 인상이 강했다. 영화배우 박정민이 쓴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이미 연기는 모든 사람이 다 알 정도로 잘하고, 나 또한 그가 나오는 영화를 믿고 보는 편이지만 그게 글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혹여나 몇몇 배우들처럼 자신의 성취감을 위해 책을 내고, 인기에 편승해 책 판매가 이뤄지진 않을지 미리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책을 넘기자마자 쓰여있는 글귀를 보며 순식간에 우려에서 믿음으로 바뀌었다.

 

이 세상 모든 작가님들에게,

그들의 품위에,

그들의 고됨에,

넘볼 수 없는 존경을 표한다.

 

책을 내면서 자신을 치켜세우기보다, 작가에게 존경을 표하는 태도. 글 하나에 드러난 겸손과 진심이 책을 펴보나 마나 멋진 글이 담겨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엇나가지 않았다. 이 책은 시종일관 찌질함과 하찮은 재미, 소소한 감동과 연기를 향한 진심이 담겨 있다. 이 모든 게 합쳐져 인간 박정민을 이룬다. 찌질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에피소드, 배우라는 직업에 취해 숨기기보다, 편하게 이야기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에서 다 보여주지 못했던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다. 박정민이란 배우를 대중에게 알린 파수꾼부터, 확실하게 각인시킨 동주>, 이후 많은 작품까지. 영화 전후 에피소드를 박정민 식 찌질한 개그로 보여주지만, 연기에 임하는 자세는 진지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쉽게 연기하지 않고, 가볍게 임하지 않으며,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지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 읽을수록 다시 박정민의 작품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진다.

 

글이 수려하지 않아도 진심이 담기면 좋은 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괜찮은 에세이. 스타들의 뻔하디 뻔한 에세이보다 훨씬 읽을 만하다. 그리고 박정민이 제목처럼 쓸 만한 인간이란 것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다음 책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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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쓸 만한 인간 -박정민 평점10점 | b******o | 2020.10.07 리뷰제목
저자가 몇년간에 걸쳐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다듬어 낸 책이었다. 역시나 글솜씨가 부럽다. 최근 장기하씨도 그러고 박정민씨의 산문집까지 읽고나니 책 제목마냥 내가 언제 가장 쓸만한 인간이었음을 느꼈을까 생각해보며 비슷한 글 한꼭지를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게 한두번이 아니었던지라 이번엔 나도 하나 써봐야겠다고 결심! 그런데 마땅한게 없다. 주제와 플롯이 중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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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몇년간에 걸쳐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다듬어 낸 책이었다. 역시나 글솜씨가 부럽다. 최근 장기하씨도 그러고 박정민씨의 산문집까지 읽고나니 책 제목마냥 내가 언제 가장 쓸만한 인간이었음을 느꼈을까 생각해보며 비슷한 글 한꼭지를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게 한두번이 아니었던지라 이번엔 나도 하나 써봐야겠다고 결심! 그런데 마땅한게 없다. 주제와 플롯이 중요하다는데 깊게 생각할 여력도 능력도 없고 일단 만만한게 누구나 그렇듯 재미없는 군대이야기라 이 때의 기억을 반추해보며 끄적여보는 걸로 갈음해볼까 한다. 사실은 주제선택에 있어 마침 보았던 방송프로그램에서의 이장면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군입대를 신경도 안쓰고 펑펑 놀다가 뒤늦게 카투사를 알게 되었으나 영어 점수가 터무니 없이, 하지만 너무 솔직하게 나와서 포기, 해군이나 공군은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나온 입대 영장에는 10월 4일 306보충대로 올라고 쓰여있었다. (인구가 줄어서 인지 현재는 없어졌다.) 논산 훈련소에서는 각종 특기병들로 많이 차출된다던데 306 보충대는 나처럼 특별한 기술이 있는것도, 체격도 보통인 사람들이 근처 사단으로 배치받아 일반 보병으로 대부분 배치받게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군복을 포함해 각종 보급품을 지급받고 며칠간 그곳에서 머무르다가 배치받은 곳은 경기도 어딘가 위치한 모사단 신병교육대. 


남들과 더불어 그곳에서 6주간 기초훈련을 마칠무렵 갑자기 잠들기전 조교의 호출로인해 사무실로 불려가 뜬금없는 면접을 보게 되었고, 결과를 듣지 못하고 있다가 훈련소 마지막날 교육을 마치고 같이 훈련받은 동기들 모두가 경기도 및 강원도 곳곳에 흩어진 예하부대로 흩어질 즈음 나는 마지막까지 내무실에 남아있었다. 그렇다, 설마 나를 조교로?는 물론 아니었고 정훈병으로 차출된 것이었다. 당시는 정훈병이 뭔지도 몰랐는데 정치 훈육병을 줄여서 부르는 명칭이라는 설명을 면접관이셨던 정훈장교분께 듣고 살짝 설레었던 느낌이 기억난다. 어쨌건 '착하게 생겼다고' 뽑힌 나는 이후 남들이 들으면 편한 일들'만' 도맡아 하게 되는데...


내 임무는 매일 아침 남들보다 15분 먼저 일어나 기상나팔 방송을 틀고, 국방일보를 가지러 본부대를 다녀오고, 칼럼을 스크랩하고 휴가복귀자들이 반입하는 도서를 검열하고 '검토필' 도장을 찍어주는 일이었는데 정기적으로 보급되던 군중문고를 가장 먼저 받아 읽어볼 수 있었던게 가장 큰 보람이기도 했다. 당시 사상서도 금서였던 지라 누군가로부터 압수했던 체게바라 평전을 정훈실 귀퉁이에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읽어봤는데 오히려 내가 이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까지 챙겨볼 정도로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종종 행정병 업무도 병행하며 무난한 군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날 당시 막 보급되고 있었던 군정보화 사업에 힘입어 만들어진 부대내 PC실을 컴퓨터 좀 만진다는 이유로 인터넷 조교라는 새로운 보직을 맡게 되며  관리하게 된다. 병장들만을 대상으로 운영하면서 전역전까지 인터넷 정보검색사 자격증을 손에 쥐어주는 것을 목표로 교육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당시는 사이버방이라는 용어가 없었고 나는 인터넷 조교로서의 자격을 위해 순식간에 정보검색사 2급과 1급 자격증을 땄다. 물론 온라인 시험으로만 주어지는 민간자격증이었고 지금은 온국민의 사이버 전사화로 인해 완전히 사장되었다.)


지금은 군인들이 이메일도 주고 받고 휴대폰 반입도 되는것 같지만 당시는 MP3 반입도 PC방에서도 웹서핑만 가능하고 보안떄문에 로그인도 원칙적으로 절대 허락되지 않았던시기다. PC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당연히 부대내에서 인터넷을 할수 있다는게 흔치 않은 일이었던 데다가 병장만 출입이 가능했기에 이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던 나는 소위 몰래 로그인좀 시켜달라는 외압아닌 외압을 받기도 했으며 정보검색사 시험을 대신 봐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었다. 덕분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정훈병으로서의 주중 일과가 끝나면 잠겨있던 PC방을 열고 각 중대 병장들의 비호아래(?) 각종 일과에서 제외되기도 했으니 소위 꿀보직으로 인식되어 시기아닌 시기를 받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몇개월 후에는 '착하게 생긴' 너가 적격이라며 기독교 군종병을 추가로 하게 되어 일요일만 되면 부대내 신자들을 데리고 매주 교회를 가서 반나절을 보내고 와야했다. 서울과 멀지 않은 곳이어서였는지, 훈련병들과 함께였기에 나눠주고 남는 초코파이는 원없이 먹어볼 수 있었고 근처 교회에서 위문공연이나 협찬이 오는 경우도 많아 자주 햄버거도 먹을 수 있어 행복했었다. 교회에서 돌아오자마자 PC방 오픈해달라는 요구에(주말에는 종일 개방이었다.) 주중은 물론 주말까지 내무생활을 거의 못해 축구한번 해본적이 없었긴 했지만.


아무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반년정도나 지났을까 어느덧 나도 루틴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나는 불현듯 매일밤 10시에 틀어주는 취침나팔 소리 이후 인기가요를 한곡씩 틀어주면 어떨까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내가 관리하던 PC방에서 당시 인기를 모으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OO뮤직으로 음악을 재생하며 내가 관리하던 더블데크 카셋트에 녹음을 해놓으면 취침나팔 소리에 이어 틀어주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례가 없던 일이라 사전승인을 받았는지 사후승인을 받았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는데 아마도 일단 저질러놓고 정훈장교의 허락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하는데 희열을 느끼는 타입이랄까. 다행히도 특별히 문제될만한 일이 아니었고 몇몇 분들에게는 칭찬도 받았던것 같은데 초반에는 내 취향의 유행곡 중심으로만 틀다가 나중에는 알음알음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기도 했다. 


특이했던건 당시 신병교육대에서는 매일밤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경계근무를 설때 훈련병들을 두명씩 데리고 나가며 경계근무 요령을 알려주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군생활 하신 분들은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같이 나가는 선후임과는 싫든 좋은 대화를 나눌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나는 나랑 같이 나갔던 훈련병들과 90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당연히 훈련병들은 대부분 얼어있고 내가 질문을 던지는 쪽이었다.) 마치 라디오 인터뷰 후에 신청곡을 틀어주는 것 마냥 좋아하는 노래를 알려주면 내일 밤에 들려주겠다며 훈훈한 마무리를 하곤 했으니 나름 사고없는 군생활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은 주제넘는 생각도 든다. 


신청곡이 없던 어느날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10시에 여느때와 같이 취침나팔 방송을 하고 나서 가요 한곡을 재생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있어 일직사관실로 불려가는 일이 생겼다. 들어가자마자 지금 노래 뭐냐고 버럭, 당장 끄라고 버럭. 하긴 재생버튼을 누르고 끝날때까지 방송실에서 대기하는 동안 조금 떨리긴 했다. 그 노래는 재생시간도 당시 가요로서는 물론 지금도 꽤나 긴 12분짜리 노래였는데 패닉과 삐삐밴드가 함께부른 노래의 제목은 무려 '불면증'이었다. 무려 12분이나 되는 긴 시간인건 차치하고서라도 노래 후반부는 안그래도 싱숭생숭할 훈련병들의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 가능성이 다분했기에 당시 왜 그랬는지 나도 이해못할 일이긴 했다.(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들어보시라.) 이 이후로 하마트면 DJ 생활을 청산할 뻔 했으나 장점이 더 많았던지라 다행히 잘 넘어가긴 했고 내겐 하루를 마감하는 나름의 힐링시간이었으며 간혹 훈련병들의 감사인사를 받으면 더욱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하여간 그 이후에도 나름 책임감있게 군생활은 성실히 했는지 당시 부산아시안게임 당시에는 자원봉사자로 선발되어 중동의 모나라 선수단 서포터로서 활동할 기회까지 얻게 되어 부산에 몇개월간 파견을 나가있기도 했는데 당시 몇명 받지 못했던 봉사단 표창장도 받았고(이때도 나름 재밌는 일이 많았는데 글이 너무 길어졌다.), 제대할때는 행정보급관님께 수고했다며,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소정의 금일봉도 받기도 했으니 (당시에는 얼떨떨하게 받았는데 아르바이트비는 통장으로 받았었고 괴외비 말고 처음 받아보는 봉투라 감동이었다는.) 군생활 동안 '착하게 봐주셨던' 분들의 기대에 나름의 방식으로 부응한,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적어도 '쓸 만한 인간'이었다는 말이었다.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댓글 0
종이책 구매 당신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평점10점 | k*******0 | 2020.07.03 리뷰제목
연예인을 잘 모르기도 하고, 원체 관심이 없다 보니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다. 그런데 책방을 운영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분이 쓴 책이라면 왠지 믿고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아, 물론 믿고 읽는 책을 늘 추천해주시는 분들이 계신 카톡방을 통해 추천받은 책이기도 했고. 영화 같은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이렇게 영화 같은 인생
리뷰제목

연예인을 잘 모르기도 하고, 원체 관심이 없다 보니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다. 그런데 책방을 운영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분이 쓴 책이라면 왠지 믿고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아, 물론 믿고 읽는 책을 늘 추천해주시는 분들이 계신 카톡방을 통해 추천받은 책이기도 했고. 


영화 같은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이렇게 영화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인생도 당신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영화 같은 인생일 것이다. 영화 같은 인생을 사시느라 수고가 많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도 한다. 박정민 배우가 그런 스타일이다. 말도 참 멋지고 예쁘게 한다. 영화 같은 인생 살면서 매 문장이 영화 대사 같은 당신의 책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영화 장르는 얘기 안 함!)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박정민 배우의 작품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박정민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게 <쓸 만한 인간>이라는 책을 통해서였으니, 보통 사람의 루트와는 매우 다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필모그래피가 화려하다. 한국 영화는 잘 보지 않는 나에게마저도 익숙한 영화 제목이 몇 보인다. 그런데 배우 박정민은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얘기한다. 평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걸까. 


관객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배우를 알게 됐다. 작품 하나를 위해 쏟아 부은 그들 모두의 수고, 헌신, 그리고 열정을 보며 감탄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에 부담을 가지고 더 열심히 노력했으나 만족하지는 못하는 배우. 감히 말하지만 이 영화 <동주>는 우리가 세상에 내놓는 당신들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슬플 것 같아서 못 봤다는 말도 이 문장 앞에선 쓸데없는 문장이 되었다. 배우 박정민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이 시대의 영화이기 때문이었구나. 


아니, 책 말고, 그냥 보통 사람들이 살 법한 인생을 보통 사람들도 쓸 법한 문장으로 적은 종이뭉치라 표현한 박정민 배우의 <쓸 만한 인간>. 같은 말이더라도, 똑같은 결말에 뻔한 마무리라도 자기 경험을 녹여내서 완전 색다른 글. 이런 책이 좋고, 이런 작가가 좋다. 앗, 박정민 배우가 작가라고 부르지 말라 그랬는데! 취소. 뻔한 듯 뻔하지 않은 글을 쓰는 사람이 좋다. 이 세상 모든 작가님들에게, 그들의 품위에, 그들의 고됨에, 넘볼 수 없는 존경을 표한다. 박정민 배우의 헌정사. 이 말을 그에게 곧 돌려줄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대충 후속작 기다린다는 말인데……. 당분간 생각은 없으시다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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