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을 만드는 책
― 박연준 산문집 『쓰는 기분』 (현암사, 2021)을 읽고
2004년 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박연준 작가는 시집 4권과 산문집 4권을 출판한 이력이 있는 베테랑 작가다. 주문한 책을 받자마자 다섯 시간 만에 완독 한 특별한 책이다.
누구나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책 읽기와 쓰기를 부드러운 어조로 용기를 주면서 작가가 되라고 부추긴다. 글쓰기에 대해 중요한 내용들이 너무 많아 밑줄 긋고, 접고 또 접어놓았다. 모든 순간에 글쓰기를 생각하고, 가볍게 쓰기를 시작하라고 이른다. 글쓰기 강좌를 이끌기도 해서 그 내용도 실려 있다. 자신이 글쓰기를 하는 방법과 효과적인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1부 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매일 시를 쓴다면 - 19편의 에세이 수록.
(시에 대해 궁금한 마음은 있지만 친해지는 건 어렵다고 느끼는 자에게 건네는 말이다.)
2부 작업실 ? 11편의 에세이 수록.
(글쓰기와 삶에 대해 쓴 소소한 산문들을 엮었다.)
3부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 3편의 에세이 수록.
(등단에 대하여, 태어나는 일, 순진하게 사랑하는 법)
4부 질문이 담긴 과일 바구니 ? 8편의 질의응답 수록.
시인으로 태어나려는 사람(혹은 쓰는 사람)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편지, Q&A 형식으로 썼다.
부록으로 글쓰기 모임 작가들의 글모음 3편과 시인과의 대화가 있다. (임솔아 작가와 대화)
이야기가 펼쳐지고, 시가 나온다. 시가 나오고 생각들이 펼쳐진다. 설명하듯 이야기하듯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글쓰기에 도전하라고 속삭인다. 시를 쓰는 사람의 자세나 시를 쓰는 행위, 시작법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아 장마다 밑줄이 그어졌다.
「밤, 촛불, 시, 비밀」에서 “시를 쓰는 사람은 문장을 믿는 사람입니다. 지우면 사라지고 마는 문장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달려 나가는 문장을. 넘어지는 문장, 피가 나는 문장, 괴물처럼 뭉개지는 문장을요. 시를 쓰는 사람은 문장에 진실을 올려두고 아슬아슬 서 있는 그것을, 바라보려는 사람입니다.” 이 문장 다음에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이라는 책에 실린 글을 인용했다. 어떤 시인이 “촛불이 꺼지자 자기 고양이의 눈빛에 기대 시 쓰기를 계속”했다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박연준 시인은 위의 문장 앞에서 얼어붙을 뻔했다고 적고 있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에서 “시를 대하는 태도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시는 ‘이해받고 싶어 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시를 앞에 두고 이해하고 싶어 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면, 아예 처음부터 다르게 접근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시를 앞에 놓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빵처럼 커피처럼 즐기라고 말하고 있다. 시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감각’해야 한다고 알려 준다. 젊은 작가들의 시를 접할 때마다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한 문장, 한 단어들에 너무 마음 쓰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느낌을 받아들이며 읽는 연습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시를 읽는 방법」에서 “시의 언어도 들여다볼수록 눈과 귀가 뜨일 거예요. ‘다르게 말하기’를 시도하는 게 시인들이기에 조금은 다르게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시의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가 아니니까요. 그보다 언어로 공중에 머물기, 말 뒤에 숨기, 말을 이용해 다른 몸으로 가기. 이런 쓸데없지만 아름다운 시도를 하는 게 시라는 장르이고, 시인들입니다.”라고 말하며 읽을 때, 이해에 초점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이고 있다.
「칼처럼 빛나는 한 줄」에서 “시는 ‘감정 탐구서’이자 세상 이치를 새롭게 들여다본 ‘관찰기록’입니다. 탐구하고 관찰하며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은 시인의 특기이죠.”라고 적고 있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 정답이 없는 것에 골몰한다고도 썼다. 다르게 보는 연습을 통해 관찰하고 탐구한 내용을 다르게 보여주기의 방식으로 기존의 생각이나 방식에서 벗어나 낯설게 시 쓰기를 하라는 말로 이해되었다.
「눈이 하는 일」에서 “누군가 시인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좋은 눈. 그게 시의 시작이자 전부일 수 있다고요. 좋은 눈이란 무얼 알아보는 눈,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냥 알아보는 눈 말고, 다르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적고 있으며 세심한 관찰과 상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쓸 수 없는 순간들」에서 “아름다운 문장은 독자를 감동하게 만들지만, 정확한 문장은 독자를 상처받게 한다. 살리기 위해 내는 상처다. ‘그 장면’을 쓰려 할 때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동요, 허기, 절박함, 떨림, 슬픔의 이유를 알았다. 고발이 아니라, 표현 욕구가 아니라, 나는 떨어내고 싶어서 쓰고 싶은 거다. 쓴다는 건 벗어나는 일, 변태 후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프고 힘든 주제도 한 편의 글로 써내고 나면 내면의 아픔이 덜어지는 순간들을 경험하기에 공감이 많이 가는 대목이었다.
「순진하게 사랑하는 법」에서 “시를 매일 쓰면, 내면의 코어가 강해져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겨도 그것을 시의 세계로 데려와 해부하고 언어와 상상을 버무려 문자로 바꿔놓으면, 잠시 동안 세상이 종이 한 장만큼 작아지는 기분이 들지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아름답게 비틀린 사건들, 불행들, 아픔들, 그것들이 내 두 팔 아래에서 사그라들고, 다른 모양으로 숨을 쉬지요.” 매일 쓴다면, 미친 듯이 시를 사랑하고 미친 듯이 쓴다면 이미 시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임솔아 시인과의 대화에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것, 창작 열정을 잃지 않는 것, 문학을 낭만에 기대게 하지 않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자기답게 내는 것, 더 더 프로페셔널해지는 것이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삶이에요.”라고 작가로서의 자신이 원하는 삶의 자세를 밝히고 있다. 시와 산문을 주로 쓰는 작가가 글쓰기에 대해 깊이있는 생각하고, 펼치는 사유가 얼마나 자유롭고 분명한지를 보여 주는 보물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