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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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분

리뷰 총점 9.5 (3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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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박연준 시인, 시를 읽고 쓰는 마음] 박연준 작가가 시에 대해, 그리고 쓰는 기분에 대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읽어야 할지, 시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나도 시를 쓸 수 있을지 한 번쯤 궁금해했던 우리를 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시인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전하는 시를 읽고 쓰는 기쁨. - 에세이 MD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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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어려우면서 즐거운 쓰기 평점8점 | 이달의 사락 n***8 | 2022.05.21 리뷰제목
나는 읽을 때 묶여 있다가 쓸 때 해방된다.    진정한 자유는 ‘창작 행위’에 있다.  (125쪽)      책 제목인 ‘쓰는 기분’은 어떤 걸까. 나도 책을 보고 쓰거나 그냥 쓰기도 하지만 쓰는 기분이 뭔지 잘 모르겠어. 맨 앞에 쓴 것 같은 걸까. 책을 읽을 때 묶였던 마음이 쓰면 풀려나는 거. 그 말 맞는 것 같기도 해. 그래도 읽을 때도 재미있어. 아니 다 즐거운
리뷰제목

    
 

 

 

 나는 읽을 때 묶여 있다가 쓸 때 해방된다.

 

 진정한 자유는 ‘창작 행위’에 있다.  (125쪽)

 

 

 책 제목인 ‘쓰는 기분’은 어떤 걸까. 나도 책을 보고 쓰거나 그냥 쓰기도 하지만 쓰는 기분이 뭔지 잘 모르겠어. 맨 앞에 쓴 것 같은 걸까. 책을 읽을 때 묶였던 마음이 쓰면 풀려나는 거. 그 말 맞는 것 같기도 해. 그래도 읽을 때도 재미있어. 아니 다 즐거운 건 아니지만. 하나도 모르는 걸 볼 때는 정말 답답해. 아는 게 하나도 없네 하는 생각도 들고. 모르면 알 때까지 보라고도 하는데, 내가 그런 건 해 본 적이 없군. 그때는 몰랐다가 시간이 흐르고 문득 그때 그건 그거였구나 깨닫기도 해. 난 그런 걸 더 좋아하는가 봐. 모르면 그냥 두고 언젠가 알면 좋고 모르면 마는 거지. 이건 글쓰기에 안 좋은 걸지도 모르겠어.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야 쓴다고 하니. 알고 싶어하는 마음 하니, 과학이 생각나는군.

 

 자신이 늘 생각하고 알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는 소설가도 있군. 나도 알고 싶은 거 없지 않아. ‘마음’. 마음을 알아서 뭐 할 건데 하면 대답할 말은 없어. 내 마음도 잘 모르겠고 다른 사람 마음은 더 모르겠어.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더군. 사람 마음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할까.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것 같기도 해. 그런 마음을 쓰면 조금 알 수 있을까. 난 써도 있는 그대로 쓰는군. 은유는 없어. 그런 거 생각하고 쓴 적 있는데. 그건 쓰려고 하기보다 저절로 나오게 해야 할지도. 은유는 어쩐지 폼잡는 것 같기도 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니 그런 거 보면 그리 좋아하지 않는가 봐. 그걸 쓴 사람은 그런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텐데. 난 유머도 없어. 재미없는 사람이야. 많은 사람은 말 재미있게 하는 사람 좋아하잖아. 그렇다고 억지로 웃기고 싶지는 않아. 난 나대로 쓸래. 이런 고집 안 좋을까.

 

 몇해 동안 쓰기는 했지만 발전은 별로 없어. 글은 많이 써 봐야 안다 하지만 아직도 모르겠어. 이 책 《쓰는 기분》에서는 시를 중심으로 말해. 이걸 쓴 사람이 시인이거든. 시집은 못 봤어. 시는 학교 다닐 때 국어 글짓기 시간에 처음 써 봤던 것 같아. 시를 잘 모르고 썼지. 지금도 잘 몰라.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아. 그런데도 시 같지 않은 시를 쓰겠지. 얼마전에 정여울 책 《끝까지 쓰는 용기》를 보고 앞으로는 책 좀 잘 봐야지 했는데, 그건 생각만 하고 만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그대로 될지도 모를 텐데. 잘 안 되어도 책을 잘 보고 쓰려는 생각은 갖고 있는 게 좋겠지. 비록 정여울 만큼 애써서 쓰지 못한다 해도. 이건 게을러서 그렇겠지. 아니 게으른 것도 있지만 난 그렇게 괜찮고 놀라운 생각 못해. 아주 가끔 할 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이라도 하면 좋겠군.

 

 

 어떤 일을 오랜 시간 한 사람, 그 일만을 줄곧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일이 삶이 됩니다. 열렬히 써본 사람, 쓰는 재미를 알게 된 사람은 결코 ‘읽는 사람’으로만 머무르려 하지 않을 거예요. 시인이나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그는 ‘쓰는 사람’으로 살게 될 거예요.  (213쪽)

 

 

 시를 쓰려는 사람한테 하는 말도 있지만, 그냥 쓰는 사람한테 하는 말도 있군. ‘열렬히 써본 사람’이라는 말은 조금 찔리는군. 난 그렇게 열렬히 써 보지 않았어. 잘 못 써도 쓰는 재미는 조금 알기도 해. 쓰는 재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워. 이런 물음에 대답이 술술 나와야 할지도 모를 텐데. 쓰는 재미는 뭘까. 쓰기 전에는 쓸 게 하나도 없어도 쓰다보면 쓸 게 조금씩 떠오르기도 해. 많지는 않지만. 잘 몰랐던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생각도 조금 정리되는 것 같아. 다른 것도 좀 정리하면 좋을 텐데. 쓰는 재미를 조금 안다고 말했는데, 내가 아는 건 아주 조금인 듯해. 더 알려면 쓰기말고 할 게 없겠지.

 

 난 작가와 시인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나도 ‘쓰는 사람’이고 싶어. 많은 사람이 쓰는 사람이면 괜찮지 않을까. 안 좋은 생각으로 흐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쓰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할 때가 더 많더라고. 어떤 사람도 많은 사람이 쓰기를 바라던데.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얼핏 들은 거야. 그런 건 적어둬야 하는데, 난 늘 지나고 나서 적어둘걸 하는군. 적어두기 잘 안 해. 마음에 담아두기로 할게. 마음에 정확하게 담아두지 못하면서 이런 말을 했군. 들은 거 잘 기억하지 못하면 또 어때. 내가 이렇다니까. 그래도 쓰는 사람으로 살까 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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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글 쓰는 사람을 만드는 책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c**6 | 2022.10.09 리뷰제목
글 쓰는 사람을 만드는 책 ― 박연준 산문집 『쓰는 기분』 (현암사, 2021)을 읽고   2004년 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박연준 작가는 시집 4권과 산문집 4권을 출판한 이력이 있는 베테랑 작가다. 주문한 책을 받자마자 다섯 시간 만에 완독 한 특별한 책이다. 누구나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책 읽기와 쓰기를 부드러운 어조로 용기를 주면서 작가가 되라고 부추긴다
리뷰제목

글 쓰는 사람을 만드는 책

박연준 산문집 쓰는 기분(현암사, 2021)을 읽고

 

2004년 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박연준 작가는 시집 4권과 산문집 4권을 출판한 이력이 있는 베테랑 작가다. 주문한 책을 받자마자 다섯 시간 만에 완독 한 특별한 책이다.

누구나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책 읽기와 쓰기를 부드러운 어조로 용기를 주면서 작가가 되라고 부추긴다. 글쓰기에 대해 중요한 내용들이 너무 많아 밑줄 긋고, 접고 또 접어놓았다. 모든 순간에 글쓰기를 생각하고, 가볍게 쓰기를 시작하라고 이른다. 글쓰기 강좌를 이끌기도 해서 그 내용도 실려 있다. 자신이 글쓰기를 하는 방법과 효과적인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1부 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매일 시를 쓴다면 - 19편의 에세이 수록.

(시에 대해 궁금한 마음은 있지만 친해지는 건 어렵다고 느끼는 자에게 건네는 말이다.)

2부 작업실 ? 11편의 에세이 수록.

(글쓰기와 삶에 대해 쓴 소소한 산문들을 엮었다.)

3부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 3편의 에세이 수록.

(등단에 대하여, 태어나는 일, 순진하게 사랑하는 법)

4부 질문이 담긴 과일 바구니 ? 8편의 질의응답 수록.

시인으로 태어나려는 사람(혹은 쓰는 사람)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편지, Q&A 형식으로 썼다.

부록으로 글쓰기 모임 작가들의 글모음 3편과 시인과의 대화가 있다. (임솔아 작가와 대화)

 

이야기가 펼쳐지고, 시가 나온다. 시가 나오고 생각들이 펼쳐진다. 설명하듯 이야기하듯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글쓰기에 도전하라고 속삭인다. 시를 쓰는 사람의 자세나 시를 쓰는 행위, 시작법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아 장마다 밑줄이 그어졌다.

 

, 촛불, , 비밀에서 시를 쓰는 사람은 문장을 믿는 사람입니다. 지우면 사라지고 마는 문장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달려 나가는 문장을. 넘어지는 문장, 피가 나는 문장, 괴물처럼 뭉개지는 문장을요. 시를 쓰는 사람은 문장에 진실을 올려두고 아슬아슬 서 있는 그것을, 바라보려는 사람입니다.” 이 문장 다음에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이라는 책에 실린 글을 인용했다. 어떤 시인이 촛불이 꺼지자 자기 고양이의 눈빛에 기대 시 쓰기를 계속했다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박연준 시인은 위의 문장 앞에서 얼어붙을 뻔했다고 적고 있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에서 시를 대하는 태도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시는 이해받고 싶어 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시를 앞에 두고 이해하고 싶어 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면, 아예 처음부터 다르게 접근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시를 앞에 놓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빵처럼 커피처럼 즐기라고 말하고 있다. 시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감각해야 한다고 알려 준다. 젊은 작가들의 시를 접할 때마다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한 문장, 한 단어들에 너무 마음 쓰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느낌을 받아들이며 읽는 연습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시를 읽는 방법에서 시의 언어도 들여다볼수록 눈과 귀가 뜨일 거예요. ‘다르게 말하기를 시도하는 게 시인들이기에 조금은 다르게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시의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가 아니니까요. 그보다 언어로 공중에 머물기, 말 뒤에 숨기, 말을 이용해 다른 몸으로 가기. 이런 쓸데없지만 아름다운 시도를 하는 게 시라는 장르이고, 시인들입니다.”라고 말하며 읽을 때, 이해에 초점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이고 있다.

 

칼처럼 빛나는 한 줄에서 시는 감정 탐구서이자 세상 이치를 새롭게 들여다본 관찰기록입니다. 탐구하고 관찰하며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은 시인의 특기이죠.”라고 적고 있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 정답이 없는 것에 골몰한다고도 썼다. 다르게 보는 연습을 통해 관찰하고 탐구한 내용을 다르게 보여주기의 방식으로 기존의 생각이나 방식에서 벗어나 낯설게 시 쓰기를 하라는 말로 이해되었다.

 

눈이 하는 일에서 누군가 시인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좋은 눈. 그게 시의 시작이자 전부일 수 있다고요. 좋은 눈이란 무얼 알아보는 눈,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냥 알아보는 눈 말고, 다르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적고 있으며 세심한 관찰과 상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쓸 수 없는 순간들에서 아름다운 문장은 독자를 감동하게 만들지만, 정확한 문장은 독자를 상처받게 한다. 살리기 위해 내는 상처다. ‘그 장면을 쓰려 할 때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동요, 허기, 절박함, 떨림, 슬픔의 이유를 알았다. 고발이 아니라, 표현 욕구가 아니라, 나는 떨어내고 싶어서 쓰고 싶은 거다. 쓴다는 건 벗어나는 일, 변태 후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프고 힘든 주제도 한 편의 글로 써내고 나면 내면의 아픔이 덜어지는 순간들을 경험하기에 공감이 많이 가는 대목이었다.

 

순진하게 사랑하는 법에서 시를 매일 쓰면, 내면의 코어가 강해져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겨도 그것을 시의 세계로 데려와 해부하고 언어와 상상을 버무려 문자로 바꿔놓으면, 잠시 동안 세상이 종이 한 장만큼 작아지는 기분이 들지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아름답게 비틀린 사건들, 불행들, 아픔들, 그것들이 내 두 팔 아래에서 사그라들고, 다른 모양으로 숨을 쉬지요.” 매일 쓴다면, 미친 듯이 시를 사랑하고 미친 듯이 쓴다면 이미 시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임솔아 시인과의 대화에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것, 창작 열정을 잃지 않는 것, 문학을 낭만에 기대게 하지 않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자기답게 내는 것, 더 더 프로페셔널해지는 것이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삶이에요.”라고 작가로서의 자신이 원하는 삶의 자세를 밝히고 있다. 시와 산문을 주로 쓰는 작가가 글쓰기에 대해 깊이있는 생각하고, 펼치는 사유가 얼마나 자유롭고 분명한지를 보여 주는 보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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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시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당신은 자신할 수 있나요?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h*****9 | 2021.08.19 리뷰제목
1. 띠지에 있는 문장, "나는 읽을 때 묶여있다가 쓸 때 해방된다."에 강렬하게 끌려 이 책을 받아들었는데, 막상 나를 오랫동안 흔든 것은 띠지에 있던 또 다른 문장, "시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당신은 자신할 수 있나요?"였다. 그 문장을 마주한 이래로 나는 이따금씩 시와 나의 거리를 가늠해보려고 애썼다. 대개의 순간 나는 시와 가깝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감성과 이성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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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띠지에 있는 문장, "나는 읽을 때 묶여있다가 쓸 때 해방된다."에 강렬하게 끌려 이 책을 받아들었는데, 막상 나를 오랫동안 흔든 것은 띠지에 있던 또 다른 문장, "시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당신은 자신할 수 있나요?"였다. 그 문장을 마주한 이래로 나는 이따금씩 시와 나의 거리를 가늠해보려고 애썼다. 대개의 순간 나는 시와 가깝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감성과 이성이라는 두 개의 영역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언제나 이성과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시를 필사하거나, 소설을 읽을 때, 어느 날 눈이 마주친 그림 한 점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때면 말랑하면서도 물컹거리는 무엇이 내 안에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도 됐다. ... 시와 나의 거리라는 게, 애초에 구할 수 없는 값이라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골몰하는 것도 그랬다. 아, 이렇게 나는 또 뭔가를 '구하려고' 하고 있구나. 수학과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만 꼭.


2. 박연준 시인을 좋아한다. <소란>의 따뜻함은 지인에게 여럿 선물하기도 했다. <모월모일>은 제주의 작은 책방에서 사 왔다. 덕분에 제주의 풍경이 한 뼘쯤 더 예뻐 보였더랬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이 책 <쓰는 기분>이 제일 좋다. 읽는 시간이면 늘 플래그와 함께하지만, 플래그 붙이는 데 야박한 편인 나도- 이번만큼은 '졌다!'고 생각하며 플래그를 마구 붙였다. (앞 장과 뒷장에 연이어 플래그를 붙이기도 했다. 이럴 거면 플래그가 다 무슨 소용이람! 하고 스스로를 탓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둘 다 놓칠 수 없는데, 어쩌라고ㅠㅠ!) 이 책이 유독 좋았던 것은, '쓰는 일'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실컷 들을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여기에 더해 '시'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생각들에 '오해'가 잔뜩 끼어있다는 것도 발견하고 슥슥 먼지를 털어낼 수도 있었다. 두루뭉술하게 한 칸에 섞여있던 개념들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세상에! 이 모든 것들이 단 몇 페이지로 해결되었다니) 그랬더니- 상당히 개운해졌다. 말개진 기분은 아무런 편견 없이, 구속 없이 무엇인가를 그것, 아니 그 이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3. 시인은 '시 쓰는 방법을 가르칠 방법은 없다'고 했지만, 시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다정한 선생님이셨다) 동시에, 시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많은 이들에게도 이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 시를 써보는 것은 고사하고- 한 편 읽어보는 일도 버거운 우리에게 이 책은 '시'가 얼마나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지, '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시'가 우리 삶에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그러니까 어떻게 가까워지면 좋을지를 이야기한다.


각설하고, 비밀을 말씀드릴게요. 시는 '소리 내어' 읽을 때 자기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이 혼자 방에 앉아, 소리 내어 읽을 때, 시는 얼굴을 보여줄 겁니다. 시인 로르카 역시 이렇게 말한 적 있어요. "시는 입으로 읊는 것, 책 속의 시는 죽은 것." 그러니 여러분이 들고 있는 시집 속 글자들, 책 속에 못 박혀있는 글자들은 잠자거나, 죽은 척하는 말들입니다. 시인이 시를 쓰던 당시엔 펄펄 살아 날뛰던 글자들이었겠지요. 종이에 인쇄된 후 납작하게 눌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 글자들을, 소리들을, 아니 음악을 깨워보세요. 깨우려면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입술, 목소리, 숨결로 글자들을 데려가보세요.(본문 중에서, 56-57쪽)


몇 주 전 관람했던 전시의 어느 작품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책 속에 가만 누워있는 글은 쓰이던 때- 쓰는 사람의 생생한 목소리였다고. 책이든, 신문이든, 잡지든 무엇이든- 매체를 타고 전해져 온 텍스트가 독자에게 와서 또 하나의 생명을 얻을 때는 독자가 텍스트의 주인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러니 그 위에서 실컷 뛰어놀고, 밟아도 보고, 가만히 누워 쉬기도 하면서- 그것들을 느끼고, 대화하고, 사유하는 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4. 그러고 보면 시는- 눈으로 읽는 것과, 필사하며 읽는 것과, 낭독하며 읽을 때 달랐다. 눈으로 읽을 때 잡지의 가십거리 같았던 시도 손끝으로 읽으면 달리 보였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낭독하며 읽으면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냈다. 시인이 경험에 이스트를 넣고 기다린 뒤,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다면- 시를 읽는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태도가 필요한 것 아닐까. 시가 끝날 때까지는 시인도 이 시가 어떻게 끝날지, 어디로 갈지, 어떤 힘을 담을지 알 수 없다는데- 그 시가 내게 닿아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지, 어떤 위로를 안길지, 어떤 에너지를 던져줄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할 테다. 다만, '쓰는 기분'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의 '읽는 기분'에도 그것이 조금은 반영되지 않을까. 반죽이 건강하게 발효되기를 바라는 마음, 정성스레 빚는 마음, 오븐에 넣고 기다리는 마음을 더해 서문의 문장들을 다시 읽는다.


쓸 때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내가 아니면서 온통 나인 것, 온통 나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나인 것.

쓸 때 나는 기분이 전부인 상태가 된다.

현실에서 만질 수 없는 '나'들을 모아 종이 위에 심어두는 기분.

심어둔 '나'는 공기와 흙, 당신의 눈길을 받고 자랄 것이다.

내가 나 아닌 곳에서 자라다니!


쓸 때 나는 나를 사용한다.

나를 사용해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

그건 나를 분사해, 허공에서 입자로 날아가는 기분.


나를 당신에게 뒤집어씌우러 가는 기분.

나를 비처럼 맞은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살피러 가는 기분.

입자로 떠돌며 세상을 구경하는 기분.

그게 다가 아니지.

당신이 쓴다면, 서서 내 쪽으로 보내온다면 나는 당신을 뒤집어써야 할 게다.

그건 읽을 때의 기분.

당신을 뒤집어쓸 때의 기분.

시를 쓸 땐,

날개를 떨구면서 날아오르는 기분이 든다.

날개를 버려도 내가 나일 수 있다니, 내가 날 수 있다니!

('서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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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시는 압축팩 같다 평점9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l***h | 2023.07.31 리뷰제목
강제로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음악도, 글도 편식이 심하다. 읽고, 써야만 하는 환경에 놓인 지금. 제목을 보고 매일 고장난 나침판을 들고 걷지 않아도 될까 희망에 차 올랐다. 결론은, 글쎄. 시는 글이 아니라 이불만치 큰 마음을 작은 내 가방에 넣을 수 있게 만든 압축팩 같은거라 나는 더 녹슨 나침판을 들고 다닐 판이다. 손수건만한 압축팩이 실은 가방에 넣을 수도 없는 거대한
리뷰제목

강제로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음악도, 글도 편식이 심하다. 읽고, 써야만 하는 환경에 놓인 지금. 제목을 보고 매일 고장난 나침판을 들고 걷지 않아도 될까 희망에 차 올랐다.

결론은, 글쎄. 시는 글이 아니라 이불만치 큰 마음을 작은 내 가방에 넣을 수 있게 만든 압축팩 같은거라 나는 더 녹슨 나침판을 들고 다닐 판이다. 손수건만한 압축팩이 실은 가방에 넣을 수도 없는 거대한 마음이였다는 걸, 시를 읽기만 하는 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책에 나오는 다양한 시가 그저 너무 반가웠다. 고등학교 이래로 이렇게 다양한 시는 처음이였다.

읽으면서 그은 많은 밑줄 말고
내가 좋아하는 글로 짧은 감상문을 끝내야겠다.

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
And therefore winged cupid is painted blind.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게 사랑인 것 같아
그래서 사랑의 신은 눈이 멀었다고들 하잖아

Nor hath love’s mind of any judgment taste.
Wings and no eyes figure unheedy haste.
게다가 사랑의 신은 판단력도 없단 말이지
앞이 보이지 않고 날개는 있으니 무턱대고 사랑에 빠지는거야

And therefore is Love said to be a child,
because in choice he is so oft beguiled.
그래서 사랑을 어린 아이에 비유하나봐
시도때도 없이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하니까

As waggish boys in game themselves forswear,
So the boy Love is perjured everywhere.
약속을 쉽게 어기는 소년들과 같이
사랑의 신도 마찬가지야

A Midsummer Night’s Dream by William Shakespeare
한여름밤의 꿈, 윌리엄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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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시인이 크게 용기내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시를... 박연준, 쓰는 기분 평점9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 2021.08.16 리뷰제목
읽는 기분에 사로잡혀서 ‘쓰는 기분’을 잊을 때는 아주 많았다. 나는 요즘 걷는 기분에 흠뻑 빠져서 ‘쓰는 기분’을 잊고 있다. 걷는 동안에는 많은 것들이 저절로 비워진다. 나는 그 비워짐이 좋다. 아주 좋다. 그 비워짐이 채워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걸음들만큼 뚜렷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비워짐과 채워짐 사이에는 시간의 여력이 존재한다. 내가 미처 몰랐던 어떤
리뷰제목

  읽는 기분에 사로잡혀서 ‘쓰는 기분’을 잊을 때는 아주 많았다. 나는 요즘 걷는 기분에 흠뻑 빠져서 ‘쓰는 기분’을 잊고 있다. 걷는 동안에는 많은 것들이 저절로 비워진다. 나는 그 비워짐이 좋다. 아주 좋다. 그 비워짐이 채워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걸음들만큼 뚜렷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비워짐과 채워짐 사이에는 시간의 여력이 존재한다. 내가 미처 몰랐던 어떤 힘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바꿔야 한다. 완전히 탁해지기 전에. 종이의 색을 파랑에서 초록으로 바꿔야 하는 사람처럼 마법을 부려야 한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움직이는 장면의 합으로 이루어진 영상을 오래 보면 책을 읽기 어렵다. 책은 움직이지 않는 장면(무대)에서 느리게 걸어다니는 언어를 좇아, 독자가 움직여야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움직이느냐, 네가 움직이느냐. 이 차이가 크다. 시는 스스로 움직이는 자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p.128)


  조바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렇게 뚫어져라 앉아 있는 이유다. 나는 입을 앙다물고 집을 나서고 길의 여정 곳곳에 무언가를 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설 때와 돌아왔을 때의 낙차를 느낀다. 거기에서 어떤 에너지가 생겼다고 여기지만 그 실체를 아직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였다. 잠시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고, 잠자코 머물러 있는 것처럼 나는 걷고 있다. 조바심을 내지 않으려고 한다.


  “쓸 때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내가 아니면서 온통 나인 것, 온통 나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나인 것.
  쓸 때 나는 기분이 전부인 상태가 된다.
  현실에서 만질 수 없는 ‘나’들을 모아 종이 위에 심어두는 기분.
  심어둔 ‘나’는 공기와 흙, 당신의 눈길을 받고 자랄 것이다.
  내가 나 아닌 곳에서 자라다니!” (p.8)


  책을 읽고 있자니, 시를 쓰는 사람의 ‘쓰는 기분’이 눈에 선하다. 쓰는 일, 특히나 시를 쓰는 일을 이리도 뚜렷하게 적어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잡으려 하면 빠져 나가고 보려 하면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들으려 하면 굉음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몸체의 한 귀퉁이만 보여주거나 작은 귀퉁이를 거대하게 확대하여 보여주기 때문이다.


  “메타포는 시의 뼈대이자 피입니다. 인생에 드리운 커튼이기도 하지요. 고양이가 마음을 표현할 때 언제나 망토처럼 두르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세우는 집의 기둥과 서까래입니다. 이런! 저 역시 메타포가 무엇인지 메타포를 사용해 말하고 있네요. 이건 습관입니다.” (p.29)


  어쩌면 시인이 이처럼 크게 용기를 낼 수 있는 데에는 ‘메타포’가 한몫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에게는 ‘메타포’라는 무기가 있고, 심지어 그 무기를 습관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독자들은 시인이 무기를 휘두르는 모양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 모양을 흉내 내기도 하는데,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타포’라는 무기를 제것인 양 사용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속엔 시가 들어있다.
  좋아하는 사람의 눈동자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멜론, 호박, 두부, 우유, 시금치, 뮤즐리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책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바람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나무엔 시가 있다. 어젯밤 전화해서 울던, 좋아하는 친구의 눈물엔 시가 있다. 책상 위 좋아하는 모래시계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커피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음악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무용수의 몸짓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도서관 창문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가을밤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죽은) 아버지의 굽은 등엔 시가 있다. 좋아하는, 좋아하는, 좋아하는 모든 것들. 그 속엔 하나도 빠짐없이 시가 들어있다.” (p.85)


  느닷없이 걷는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읽는 것을 사랑하고 쓰는 것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 나는 요즘 낮에도 걷고 싶고 밤에도 걷고 싶다. 해가 있어도 구름이 있어도 걷고 싶고 비가 와도 걷고 싶다. 오늘 보다 내일 더 많이 걷고 싶은데 그것이 내 사랑의 방식이 될까 살짝 두렵기도 하다. 나는 조바심을 내면서 조바심을 감추고자 한다. 다음 길의 여정 곳곳에 떨구고 올 것이 떠올랐다.

 

박연준 / 쓰는 기분 / 현암사 / 263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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