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블로그에도 올렸다시피 분명 출장길에 챙겨간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수고양이의 비밀>이었는데, 정작 그곳에서 틈틈이 읽은 책은 <아무튼 하루키>이다. 노트북과 서류들로 묵직해진 가방에서 가장 먼저 내쫓긴 것이 다름 아닌 책이었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기도 하고 이것이 종이책의 한계(?)인가 한탄(!)하면서 말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은 당시의 나에게 ‘쿨한 대학생’ 그 자체로 보였다. 눈을 감으면 언제 어디서나 고베의 미지근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는 소설이었다. 청춘의 한복판에 서보기도 전에 청춘을 한바탕 겪은 듯한 느낌을 맛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그 습하고 나른한, 떠올리면 조금은 슬퍼지는 세계를 나는 사랑했다.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자신의 과거처럼 그리워했다. 그렇게 나는 이 책과 함께 십대의 한 시기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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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함께 십대의 한 시기를 통과했다면 나는 <상실의 시대>의 서걱거리는 감정과 함께 이십대의 혼란스러움을 지나칠 수 있었다..라고 쓰면 멋지겠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작가가 느낀 만큼의 애착은 없는 듯 하다.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몇 권을 읽었고,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는 나름의 기준도 있으니 아예 문외한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아무튼’ 시리즈를 읽을때면 과연 이 다양한 소재(때로는 엉뚱하다싶은 소재들도 있다)로 어떻게 책 한 권을 가득 채울까 궁금해지는데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13편과 작가의 이야기를 엮어두어 어찌보면 도서 리뷰같기도 하고 또 달리보면 일상의 한순간 떠오른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적어둔 에세이로 읽히기도 한다.
작가가 언급한 책 중 내가 읽은 책이 <노르웨이의 숲> 한 권 밖에 없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덕분에 작가가 달달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특히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이미 달달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은 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함에 손발이 광속으로 오그라들지만, 술자리에서 (책에 등장하는 무거운 금시계를 목에 건 염소 이야기를 하며) “근데 내 생각엔 니가 그 염소 같아” 따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대사로 이성의 환심을 사려 했던 때도 있었고(그딴 대사로 환심이 사졌다는 것이 또 미스터리다), 리포트가 잘 안 써지면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이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달랬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고 들어와도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반드시 컴퓨터를 켜고 싸이월드에 접속해서 일기를 끼적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시절에는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요양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을 위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을 곧잘 떠올렸다. 물론 맥주를 마시고 화장실에 갈 때는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야, 전부 오줌으로 변해서 나와버린다는 거지. 원 아웃 1루 더블 플레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야”***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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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 중에 ‘전작주의 독서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소위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는 방법이라는데 꼭 그런 독서법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그의 모든 책을 다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새롭게 만날 때마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너무 좋아진다면 독서가로서 그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으리라(내게도 그런 작가가 있고 또 있기도 했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한 번 써보고 싶다).
팬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책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안 살 수가 없는 책. 그런 책을 나의 최애 작가가 또다시 쓸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팬이 작가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성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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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내가 읽지 못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읽고 그 이야기에 흠뻑 빠지고 싶어졌다.
그렇게 책과 만나며 나의 시간을 돌아보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면, 아니 그저 많은 책들과 함께 지금 이 시간을 통과할 수 있다면 멋있지 않을까, 어느날 <아무튼 책>이라는 글을 혼자 끄적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생각의 나래를 펼쳐본다.
여하튼 이 작품을 계기로 나도 인생의 반환점을 언제쯤으로 잡으면 좋을지 종종 상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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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illie
*나에게 적용하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읽기 (적용기한 : 2023년이 가기전에)
*기억에 남는 문장
어떤 책을 하도 많이 읽은 나머지 삶의 곳곳에서 그 책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 될 때가 있으신지
쪼그려 앉아 한 모금 들이마신 88라이트인지 디스인지의 연기는 더럽게 맛이 없고 매워서 도무지 폐 안으로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수학여행 때 친구들과 함께 장난삼아 마셔본 맥주 역시, 이걸 마시는 게 어른의 낙이라면 평생 어른은 안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상한 맛이었다.
하나도 재미없었다. 과거가 대체 무슨 소용인가. 즐거웠던 추억담만 대충 늘어놓고 헤어질 뿐인 만남은 없는 편이 낫다. 동창회에 온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나는 대체 이 애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인가.
나의 이삼십대는 하루키의 문장에서 출발하여 예상치 못한 경로를 거쳐 예기치 못한 변화를 겪은 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 느낌이다.
이렇게 열거하다 보니 나조차 어떻게 이런 종이 다른 생명체와 연애가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세 달 동안 서로에게 조바심 내지 않고 물같이 만나다가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던 것 같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행성이었다면 누구 하나는 (혹은 둘 다) 산산이 부서져서 우주의 먼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너무 멀지 않은 거리에서 각자의 궤도로 적당히 우주를 돌아다녔고 그러다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다. 정말이지 인도의 숲은커녕 길가의 풀조차 태우지 못할 평화로운 연애결혼이었다.
슬픈데 웃겼고 웃기다는 게 슬펐다. 디가 없는데 나는 친구와 밥을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다. 디가 없는데 열차도 가고 비행기도 뜬다. 디가 없는데 아침과 저녁이 번갈아 찾아온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양,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는 게 당연하다는 양, 디가 없는 세상이 전과 다름없이 태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남이 나한테 끈적하게 굴어주는 건 대체로 좋았지만 내가 그러기는 싫었다. 자존심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어린 시절 끈적하게 굴었다가 거부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