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우리 집에 가장 큰 식문화(?)의 변화가 있다면
배달음식의 일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어른들은 점점 나이들어가고, 나는 너무 바빴고,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
삼식이가 아빠 한 명 뿐이라면 모르겠지만, 한참 먹성 좋은 고등학생 둘을 매끼 해먹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레토르트, 냉동식품, 배달음식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먹게 되었는데,
예전에 일주일에 한번 먹을까말까 하던 배달음식의 횟수가 2회 정도로 고정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늘 먹던 중국음식, 치킨, 피자 등으로 한정되었지만
메뉴는 점점 다양해져 요즘은 "안매운 마라탕"을 시켜먹기에 이르렀다.
이게 무슨 소리가 할텐데, 여튼 그렇다. 매운 음식을 전혀 못먹는 어른 때문에 이런 희한한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담백(?)한 맛이 괜찮다며 좋아하신다.
다양한 음식의 세계를 접하며 그렇지 않아도 풍부하던 뱃살은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무릎에 무리를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젠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다이어트 타임!
그런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먹는 얘기가 가득한 책. 그것도 좋아하는 작가들이 쓴.
백인백색. 그들의 먹고사는 모습은 꽤 다양했다.
열 두명의 작가가 다섯 편씩 먹고 사는 이야기를 썼다.
많은 공감을 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를 볼 때 마냥 신기했다. 어떻게 아무도 초대하지도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식혜를 만들고 빵을 구울 수 있을까. 재료를 다듬고 밥을 짓는 저 지루한 시간을 견디면서 어찌 저토록 느긋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는 보지 않았고 김태리, 진기주, 류준열, 문소리가 출연하는 한국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 TV에 다시 해 줄때마다 또 보면서 어찌 저리 음식을 맛나게 할까, 4계절을 잘 담았네 감탄하며 봤는데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 그런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엄마에게 음식 만드는 법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배운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대충 떼우기가 쉽다. 그릇 씻기도 귀찮아 조리한 그릇 그대로 먹기도 하고, 서서 먹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가.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다들 왜 그렇게 먹는 것일까? 오히려 그 부분을 궁금해해야 하지 않나 싶다.
맥도날드에서의 두 끼를 선택할 때 포기해야 하는 다른 음식을 생각하면 나 역시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맥도날드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맥도날드에도 오직 그 나라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고유한 메뉴를 팔기 때문이고, 나는 이걸 확인하는 게 무척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는 세계적이 체인에서 특별한 자국민의 보편적인 입맛에 맞춰 내놓은 이런 상품이야말로 역으로 현지인들의 어떤 특성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도 일부러 찾아오는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과 일반적인 백반집, 패스트푸드점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면 저 세 개의 공간을 적당히 섞어서 가보는 것도 여행자가 추구하는 '유사 현지인 일상'적 접근으로 괜찮은 방식인 것 같다(아니면 또 어떤가). 게다가 한때 해피밀 굿즈 콜렉터였던 나에게는 타이밍이 맞으면 생각지도 못한 이국적인 장난감을 얻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오무라이스 잼잼을 보면 현지화된 패스트푸드 상품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아무래도 작가가 그 나라에 살았기 때문에 소개할 수 있는 제품들이 아닌가 싶었는데 이렇게 여행을 가서 맥도날드에서 두끼를 먹는 사람도 있다니 신기했다.
불고기버거를 먹으면서 이걸 다른 나라에서도 팔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그걸 직접 확인해보려는 시도를 하다니 멋진 생각 아닌가.
코로나 19가 끝나고 다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면 나도 이런 시도를 해보고 싶다.
1인 가구 비율이 높아진 요즘, 누구나 밥상머리에 사이버 밥 동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각종 0튜브 채널이 수많은 사람들의 식사 시간을 조금이나마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과학적 근거나 통계에 입각한 생각은 아니지만, '크으으- 저녁 반찬으로 못 참지', '오늘도 한 끼 뚝딱' 등 각종 동영상에 달린 이런 댓글들을 보면 그저 뇌피셜만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요즘 나의 식사시간은 꽤 고요한 편이다. 일어나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아침도 혼자 먹을 때가 많고, 점심시간은 대화를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적힌 아크릴 가림막 속에서 식사를하고,
제때 퇴근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저녁도 혼자 해결하기 일쑤이다.
대화를 하며 밥을 먹는 시간은 토요일, 일요일 해서 많아봐야 서너끼 정도.
1인 가구가 아니더라도 이제 밥상머리 친구가 하나쯤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아침은 뉴스를 틀어놓고, 점심은 인터넷 뉴스를 보며, 저녁은 TV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먹는 나의 경우가 크게 이상한 사례는 아니리라. 어쩌다 이런 시대가 되어버렸나 모르겠다.
"정민이가 입이 터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래된 일이다. TV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서 박정민 배우를 봤던 건.
피곤해서였던가 그는 말이 없고 먹지도 않고 잠만 내리 잤다.
스튜디오의 출연자들이 답답해하며 언제 먹냐고 걱정을 했던 그 때,
밥친구라며 동네에 사는 친구를 불러내 뭔가를 시켜서 절반 정도밖에 못먹고 헤어지는 장면을 봤었다.
한참 먹을 나이인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못 먹나, 뭐가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그가 1년 반 전 쯤 "입이 터졌다"고 한다.
많이 먹고 살이 쪘단다. 다행이다 싶지만 그의 직업은 배우.
주위 사람들은 뒤늦게 먹는데 재미를 붙인 그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았겠지.
분장실장님은 저렇게 탄식을 했지만 박정민 배우는 매우 행복하단다. 그럼 해피엔딩~
마치 채식주의자 라이센스라도 있다는 듯, 그런 건 진정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누군가 조롱하거나 비난하더라도 조금도 신경 쓰지 말기를 바란다. 이 일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먹는 끼니라는 것을 통해 조금 더 지구에 이로운 선택을 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당신 자신에게만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주인공은 당신뿐이다.
요조의 글은 늘 좋다. 이번 책에서도 요조의 글이 제일 좋았다.
"묽은 채식주의자"가 무슨 말인가 했는데 치팅데이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어야하는 상황이 생기면 감사하게 고기를 먹는, 그런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채식주의를 시작한 뜻은 좋지만 그걸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보여주기 위해 무리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자신에게 솔직하면 될 일이다. 채식주의를 지킬 수 없을 땐 과감히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남이 뭐라고 할까봐 속이고, 억지로 지키는 것은 이미 그 원래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당신의 주인공은 당신뿐.
요즘은 요리책을 보면서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보고 있다. 기회가 되면 또 두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 그리고 또 그만큼 초대받고 싶다. 진짜 음식과 진짜 시간과 진짜 공간 속에서 계속 실감하고 싶다. 우리가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고 있다고 우리가 대화하고 있다고.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고.
친구가 컴퓨터를 켜놓고 맥주모임을 한다고 했다. 나는 술을 먹지 않기 때문에 그게 무슨 소린가 싶지만 사람들을 직접 만나 술을 마실 기회가 없어 힘든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한잔할 친구"들을 만나곤 한단다. 코로나가 쏘아올린 새로운 문화의 장이라고 해야할지.
하지만 요조는 "진짜 음식, 진짜 시간, 진짜 공간에서 실감하고 싶다"고 썼다.
제대로된 친구와의 만남이 또 몇달이 되어간다.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늘 이렇게 한발 물러선다.
매일 확진자 최대를 찍는 요즘. 이게 끝을 향해 가는 것이라 믿고 싶다.
그리고 나도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친구들과.
여느 때처럼 아빠와 외식을 한 뒤 빵집에 들러 밤식빵을 사서 돌아가던 날, 언니와 나는 손에 밤식빵을 든 채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우리 큰일 났다. 우리 늙어서도 밤식빵만 보면 아빠 생각나서 울겠다."
특정 사람이 생각나는 음식은 이래서 언제나 무섭지만, 그래도 그때쯤에는 의연하게 밤식빵에 든 밤을 콕콕 빼먹으며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붕어빵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찹쌀떡도 좋아하고, 팥이 든 음식이라면 다 좋아하신다.
겨울이 시작되어 붕어빵을 파는 곳을 지나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고, 뭔가 팥이 들어있는 음식을 주섬주섬 사들고 오게 되다보니 우리 아이들도 그 식성을 똑닮았다.
아마 나도 그럴 것이다. 따로 제사를 지낼 것 같지는 않고 엄마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차려놓고 추모식 같은걸 지낼 것 같은데, 팥든 음식을 볼때마다 엄마가 기억나지 않을까
그런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슬프지만, 행복한 때를 떠올릴 수 있도록 좀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요즘 어떤 사는 맛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떠올려보게 된 책,
<요즘 사는 맛>이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