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
<아무튼, 스릴러>를 읽고
스릴러(thriller)
【명사】
1. 관객이나 독자에게 공포감이나 흥취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만든 연극ㆍ영화나 소설 따위.
누군가에게 "스릴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마이클 잭슨의 노래 「Thriller」라고 답하고 싶으나) 콕 찝어 무엇이라고 설명할 자신이 없다. 학창시절 아르센 뤼팽과 셜록 홈즈가 나오는 추리소설을 탐독했음에도 그 장르를 스릴러라고 부른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스릴러>를 쓴 이다혜 기자가 치밀한 범죄와 그것을 반드시 해결하는 스릴러 장르를 애정하는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겁이 많아서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공공연한 비밀에 부쳐 두기로 하자. 스릴러를 정의하는 게 쉽지 않지만, 어떤 소설이나 영화가 스릴러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있다는 저자는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에 총이 등장했다면 그 총은 발사되어야 한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말이 하나의 규칙이라면, 스릴러는 변칙적으로, 다시 말해 모두의 관심을 총으로 쏠리게 한 뒤 누군가 뽑아든 칼이 당신의 등을 찌르는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치밀한 연구 조사와 정확한 세부 묘사를 바탕으로 한 속도감 넘치는 스릴러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유의미한 인물들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뜨도록 도와준다"는 소설가 제임스 패터슨의 말을 인용해 독자를 스릴러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데려다 준다.
책장을 열면 바로 끓기 시작하는 스릴러나(첫 장 혹은 첫 문장에서 이미 긴장이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이 나오면 끓기 시작하는 로맨스(1500페이지를 넘기는 경우가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30페이지 이내에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첫 '밀실살인'이 벌어지면 냅다 부글거리는 본격 미스터리(현장에 탐정이 함께 있다면 금상첨화)에 비해 판타지의 진입 장벽은 너무 높아만 보이는 것이다.
(36~37쪽, 베이비, 세 권만 참고 읽어봐 -스릴러의 끓는점)
물질에 따라 '끓는점'이 다른 것처럼 스릴러는 로맨스나 판타지에 비해 끓는점이 낮다. 추리물은 살인사건이, 시리즈물은 탐정이 나타나면 끓기 시작한다. 물이 수증기가 되는 반전처럼 서서히 끓기 시작한 이야기도 반전(反轉)을 향해 나아가는데, 스릴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반전이다. 신작 영화나 소설이 나오면 팬들은 반전의 극적 효과가 반감되는 걸 막기 위해 스포일러 방지에 총력을 기울인다.
스포일러라는 단어는 반전 영화라는 말과 함께 널리 알려졌고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는 반전 영화의 대명사로, "ㅇㅇㅇㅇ가 범인이다!"와 "ㅇㅇㅇ ㅇㅇㅇ가 귀신이다!"라는 말은 스포일러의 대명사로 굳어졌다.
(45쪽, 꼬마가 귀신을 본다 한들 -반전 강박증과 스포일러 포비아)
그런데 언제부턴가 작품이라는 숲보다는 반전과 스포일러라는 나무에 시선을 집중시키다 보니 이른바 반전 강박증과 스포일러 포비아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반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작품을 보면서 누가 범인일지 모든 등장인물을 의심하게 됨으로써 이야기의 감정선과는 멀어지며, 몰입도를 낮추고 피로도는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반전이 있어야 재미있다거나 스포일러를 당한 작품은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기면서 정작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의 안녕을 있는 힘껏 빌어주어도, 일간지 사회면에는 범죄가 넘쳐나리라. 잊지 말아야 하는 한 가지. 사건 뒤에 사람 있어요.
(117쪽, 사건 뒤에 사람 있어요 -흉악범죄와 추리소설 애호가의 동거)
사람을 죽이는 사건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사람의 심리가 궁금하기 때문에 범죄물을 좋아한다는 저자는 점점 소설이나 영화 속 세계가 현실의 그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일테면, 어떤 범죄사건을 다룬 기사에서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앞으로 사회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기보다는 댓글 등을 통해 소설 혹은 영화 같은 실제 사건에 감탄하고 누가 더 범인을 잘 맞히는지 마치 경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스릴러 팬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작품 속 주인공의 탁월한 추리력과 수사력이 필요치 않는 세상이 온다면, 즉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인간의 악의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범죄도 없고, 이를 반영한 범죄물도 존재하지 않을 텐데, 스릴러 팬들은 과연 그곳을 낙원이라 부를 수 있을까?
현실이 잔인하다고 잔인한 설정을 한껏 이용하는 창작물을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의 문제를 픽션의 연장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픽션'과 '픽션 같은'은 전혀 다른 말이다. 픽션을 픽션으로 즐기려면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138쪽, 픽션은 하고 논픽션은 하지 않는 것 -당신은 결국 논픽션을 읽게 되리라)
리뷰를 쓰는 내내 글로 적은 모든 게 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리뷰를 쓰는 까닭은 이 책, 나아가 스릴러물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스릴러물을 통해 속도감과 긴장감을 느끼며 작품을 즐기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나아가 작품에 투영된 현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세상을 향한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아무튼, 스릴러>와 스릴러물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반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