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여름은 그 어떤 계절보다 더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봄과 가을의 따스함과 은은한 선선함은 어쩐지 계속 이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고, 겨울은 '드디어 끝났다!'라는 개운한 것에 반해, 여름은 그 강렬한 태양빛조차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더 손에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랄까. 강렬하게 빛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사그러지는 것에 대한 애절함, 허무함. 그렇게 여름 한낮의 태양처럼 쨍하고 빛나지만 아련하게 가슴 한 구석에 남아버린 단편집을 만났다.
미스터리하면서도 강렬한 일곱 편의 러브 스토리. 러브 스토리라고 하면 떠오르는, 핑크빛으로 묘사되기 일쑤인 그런 사랑이 아니다. 인간의 민낯이 철저히 까발려지고, 사랑함으로써 약해지는 인간의 내면, 사랑하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잔혹한 계획과 고통까지 남김없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 실린 단편들이 사랑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할 때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것들 또한 담겨 있어 얼음송곳처럼 가슴을 찌른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느냐에 따라 공감할 수도, 고개를 저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독특한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 중 내 눈물샘을 자극한 작품은 사마란 작가의 <망자의 함>이었다. 처음에는 생각지 못했지만 진행되는 전개에, '어디선가 본듯한 구성이군!'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결말이라니! 이 작품에 내가 강타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아이가 아닌, 내가 잃어버린 아이.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 아이를 잃어버린 이유가 나에게 있는 것만 같아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샘을 고장나게 만들어버린 아이. 그 아이가 다시 찾아와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그 마음 때문에 울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다. 그러고보면 소설에 공감하고 하지 않고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다.
서늘하고 오싹하면서 아스라하고 안타까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그 모든 고통과 폭력과 이질적인 것들을 몰래 들여다본 듯한 기분이다. 이런 사랑이라면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침을 꼴깍 삼키면서 쉬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왜냐. 재미있었으니까! 다음 이야기, 또 그 다음 이야기가 계속 궁금해서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조금만 짬이 나도 책을 손에 들었다. 더 아껴 읽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출판사 <나비클럽>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사랑이 무엇일까. 좋은 것, 행복한 것, 설레는 것. 마냥 핑크할 것 같은 설렘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이내 사랑의 심연으로 걸어 들어간다. 분명 좋았는데, 그래서 행복했는데 그 시간은 온데간데없고 사랑하기 때문에 시기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집착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차마 알지 못했던 수많은 나와 비로소 마주한다.
책에 실린 7개의 단편은 이러한 사랑의 이면을 담아낸다. 일곱 색의 이야기가 어쩌면 무섭고 섬찟했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는 않았다. 그리고 보면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그 끝이 좋았던 경험이 내겐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굳이 사랑의 끝까지 않더라도 그 사랑이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던 그놈의 사랑 때문에 참 많이 우울하고 또 어두웠다. 다시는 상처받기 위해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하고, 마음의 안식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 사이를 방황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이용당하고 상처받고선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이내 새로운 사람에게 설레기도 했다.
사랑이 뭘까. 많은 이들이 물었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해줄 수 없는 이 질문에 책은 또 하나의 질문을 더 한다. 그런데도 또 다시 사랑할 것인가. 일곱 개의 이야기의 답은 각자 다르다. 서늘한데 아름답고, 오싹하면서도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