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은 믿지 않는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다." - 몽크 (p.013)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한참, 재미있게 읽읽었지만, 뒷맛이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책은 더더욱 그러한 외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방구석 미술관』은 다시 읽고 싶은, 몇 안 되는 책 중의 하나다. 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고 딱 며칠만에 한번을 완독했다. 그냥, 재미로!
시대적 분위기가 읽혀질 때도 있고, 화가의 개인적인 역동 상황이 느껴지기도 했다.
오직 원시와 야생만을 그리기로 한 고갱. 이제 가야 할 길이 명료해졌습니다. 지구에 원시와 야생이 살아 있는, 아직 문명의 때가 끼지 않은 곳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자신이 느낀 태초의 순수함을 그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릴 적 5년의 항해 이후 기억 속에 먼지처럼 쌓여 있던 떠돌이 본능이 다시 깨어납니다. 그때는 목적 없는 방황이었다면, 이제는 그림을 그릴 목적으로 떠납니다. 원시와 야생을 간직한 곳으로!
- p.161
개인사, 시대적 분위기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개인적인 신념, 철학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도 하는 사람들. 『방구석 미술관』에는 14가지의 인생이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읽고 싶다. 처음에는 그냥 흥미진진, 재미로만 읽었다면, 두번 째는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개인사적 인생에서 배우는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명화들을 다시 한번 감상하기 위해서. 아..이렇게 말하니...자꾸 다시 보고 싶어지잖아..나, 지금 리뷰 쓰는 중이란다, 머리야, 자제 좀!
2.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1905
우리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을 쓰지 않았습니다. 모델의 얼굴 피부색을 보세요. 우리가 아는 피부색이 아니군요. 마치 몇 대 맞은 것같이 파랗고, 노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요? 때때로 '자연에서 본 색'과 다른 색을 썼던 세잔, 고갱, 반 고흐의 작품에서 마티스는 힌티를 얻었습니다. <모자를 쓴 여인>은 그 힌트를 극단적으로 작품 전체에 적용한 것입니다. 자연에서 본 색이 아닌 자신이 느낀 색을 표현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당시 그림을 본 어느 비평가는 '야수'를 그려놓았다며 비웃었는데요(이것이 야수주의라는 명칭의 기원입니다). 그만큼 당시 마티스는 자신의 예술 인생을 건 배팅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 용기 있는 시도는 성공적이었고요. 20세기 좇, 그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도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됩니다.
- pp. 247~248
이렇게 그림에 대한 설명도 붙임으로서 나처럼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알려주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재미있다는 책읽는엄마곰님께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ㅎㅎ...한줄평 보시면...재미없으면 엄마곰 책임이라는 농담한 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농담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결정했다. 가끔은 시대를 통해 바뀌는 인생들 들여다볼 수 있어서, 확장적 책읽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샤갈의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그의 예술 활동에 급제동이 걸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간 이념 갈등이 심해지면서 예술은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마는데요. 이 과정에서 국가는 샤갈의 구상회화가 아닌, 말레비의 추상회화를 '국가대표 회화'로 채택합니다. 말레비치는 러시아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사조인 '절대주의'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샤갈처럼 무언가를 묘사하길 완전 거부하고, 흰 바탕 위에 검은 사각형만 그려 넣은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선보이죠. 사회주의를 채택하며 유럽 국가들과 이념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든 러시아는 미술도 유럽과 전혀 다르길 원했습니다.
결국, 러시아는 유럽 국가의 영향을 받은 샤갈의 그림이 아닌 러시아에서 주체적으로 탄생한 절대주의를 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분위기에서 샤갈의 그림은 정치적으로 쓸모없어졌고요. 국가대표 화가로 올라선 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국가가 천시하는 화가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조국에서 더 이상 작품을 팔 길이 없어져 궁핍한 생활에 허덕이게 됩니다.
- P.280
3.
『방구석 미술관』은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열네명의 화가들의 인생과 그림을 다룬다. 때로는, 그 화가들과 관련한 다른 화가가 추가로 소개되기도 한다. 각 장의 앞에는 그에 해당하는 화가인 듯한 사진이 실려 있고, 거기에 말풍선이 하나씩 달려 있따. 그 중 폴 세잔의 말풍선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얼마나 힘세게요?" "맨땅에 헤딩은 껌이야!" 이게 대체 뭔소리여? 나도 모른다. 책을 일어보시길! 화가 혼자 얘기하고 혼자서 대답하는 식이다. 이 대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각 장의 맨 끝에는 "더 알아보기"라고 해서, 화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지식인에 들어갈 만한 소개글이 나온다.
이외에도 뒤샹이 미술에 미친 영향은 무척 큽니다. 그는 원작의 유일성을 거부하며 <샘>을 다량 복제해 판매했는데요. 심지어 대표작 수십 점을 귀여운 미니어처로 만들어 가방에 넣어 <가방형 상자>를 만들었고, 이를 일반형/고급형 한정판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런 행위는 1960년대 팝아트 탄생에 영감을....
- p.335
그리고, 이 각각의 끝장에 화가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에 대한 토크를 들을 수 있는 QR코드가 찍혀 있다. 14개의 QR코드가 각각의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보통 한시간 전후인 것 같으니까, 최소 14시간 동안은 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관심 있는 화가가 있다면, 토크를 통해 더 자세히 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4.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책들이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고, 별로 인기 없었던 책들이 역주행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방구석 미술관』은 어떠한 경우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방구석 미술관』은 베스트셀러다. 잘 몰랐던 화가들의 생, 그리고 화가들의 그림, 그리고 눈이 즐거운 화가들의 명화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즐거운 한판이었다.
'안티 미술' 뒤샹은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술가는 죽을 때까지 평생 예술만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조차 깨부숩니다. 도서관 사서? 예술가? 체스키기사? 자신의 삶을 유일무이한 'Dunchamp Life'로 만들며 삶 자체로 행위예술을 하죠. 삶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남자. 미술을 떠나 삶에 무한한 영감을 주는 마르셀 뒤샹. 변기를 떡받으로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물은 몰카 장인. 이번에는 체스를 떡밥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Life란 무엇인가?'
- p.334
『방구석 미술관』을 세번쯤 읽으면, 인생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될 것 같은 이 갑작스런 느낌은 또 뭘까. 지금의 나에게 물어본다. 나의 과거는 어떤 것이었으며, 나의 현재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으며, 나의 미래는 어떠한 것이 오기를 원하는가? 한마디로, Life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