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에 가장 먼저 책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그 책의 제목이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진병관이 쓴 도서 '위로의 미술관'은 시작부터 눈길을 끌었다. 제목 옆에 붙은 부제가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술관이 나만을 위해 문을 여는 건 프랑스 스톡 출판사에서 기획했던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프로젝트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통상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진병관은 독자에게 위로를 전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진 미술관을 책으로나마 전달하고 싶었던 듯하다. 아름다운 책 제목과 저자의 사려 깊은 의도에 내 손은 자연스레 '위로의 미술관'을 집어들기 바빴다. 아름다운 명화들을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가 풀어 써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그 위로가 사실 지금의 나에게 너무나 절실했다는 점이다. 사실은 내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펴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책 소개 >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가 병 때문에 화가가 될 수 있었다고? 밝고 화려한 순간을 그려온 르누아르가 말년에는 손가락이 뒤틀려 붓을 쥐기도 어려워했다고? 미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며 1,6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긴 그랜마 모지스가 실은 75세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밝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아온 화가들의 삶도 정말 그들의 그림만큼이나 아름다웠을까? 베스트셀러 《기묘한 미술관》의 저자이자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 진병관은 신작 《위로의 미술관》을 통해 모든 좌절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25명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을 따라 130여 점의 명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뿐 아니라, 위로의 그림들이 전하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위로의 미술관》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로, 누가 봐도 늦은 나이에 두려움 없이 도전했고, 무엇보다 다른 이의 시선과 평가에 휘둘리지 않았던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다뤘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한계 짓고, 지레 안 될 거라 여기지 않는다면 늦은 시점이라는 것은 결코 없음을 깨닫게 된다. 2장은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로, 타고난 결핍, 정신적·육체적 고통, 폭력적인 시대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산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3장은 ‘외로운 날의 그림들’로, 홀로, 고독과 외로움 가운데서 오히려 새로움을 창조해낸 예술가들을 만난다. 마지막으로 4장은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로, 일상의 쉼과 행복이 되어주는 존재들을 다룬 작품과 그 자체가 위로와 치유가 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75세부터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해서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을 수 있을까? 보편적으로 그런 질문을 한다면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해낸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 미술 분야에서는 바로 그랜마 모지스가 그런 인물이었다. 75세라는 황혼의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그는 평범한 삶의 행복한 순간들을 그렸을 뿐이었다. 이를 통해서 뭔가 대단한 성취를 이루고자 한 것도 아니었고 미술교육을 따로 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끝내 사람들에게 자신의 예술을 각인시켰다. 나이브 아트라고도 불리고 아웃사이더 아트라고도 불리는 이 영역이 개척되었기에, 후세대 미술가들도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랜마 모지스의 삶과 예술은 도전하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너무나 고무적이었다. 1장의 제목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인데, 그랜마 모지스와 완벽하게 부합하는 제목이 아닌가. 내가 나 스스로를 한계짓지만 않는다면 도전은 언제나 가치있는 일이고 멈출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1장에서 있었던 예술가들 중에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인물이 한 명 더 있다면 개인적으로 앙리 마티스를 꼽고 싶다. 앙리 마티스가 야수파의 효시라는 점은 알고 있고 그의 작품들을 본 기억도 있지만 왜인지 그의 삶은 내 기억 속에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위로의 미술관'에서 그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랐다는 것은 상당히 생경하게 와닿았다. 앙리 마티스에 대한 사전적인 지식과 얄팍한 경험만이 내게 있었을 뿐, 그가 생동감 넘치게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나에게 아득하게 빛이 바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그의 작품을 읽어가다가,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침 '위로의 미술관'을 가지고 나갔던 방이동의 한 카페에서 그의 작품이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아름다운 예술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게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티스의 작품을 카페에서 발견한 순간, 그가 바랐던 것처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진병관은 2장을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여기서 첫 번째로 이반 아이바좁스키를 소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반 아이바좁스키는 '위로의 미술관'을 통해 처음 접하는 작가였다. 그런데 이제 안 것이 통탄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작가였다.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바다는 인생의 항해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저자 진병관이 이반 아이바좁스키를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 중 첫 번째로 소개했는지 알 것 같았다. 풍랑이 난무하는 내 일상을 그린 것 같은 이 작품에, 지쳐있던 내 마음이 한순간에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아홉 번째 파도>는 이 거대한 파도 속에 마치 난파된 것 같은 상황에서, 나도 작품 속 인물들처럼 내가 처한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지를 불어넣어주었다. 무기력해지고 마는 매일의 삶 가운데, 나도 이 난관의 파도를 헤쳐나가겠다는 새로운 마음이 든 것이다.
2장의 인물, 귀스타브 쿠르베를 소개하면서 저자 진병관은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10년 전 켈리 클락슨이 자신의 노래 Stronger의 코러스 부분에서 시작하는 가사가 생각나는 말이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를 그대로 보여주는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 회화 인생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나폴레옹 3세에게 배격당하고, 나폴레옹 3세 시대가 잠시 막을 내렸던 동안 코뮌에서 활동했던 이유로 정부군에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기까지 했던 그의 삶이 어찌 평탄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꾸준히 자신만의 화풍으로 작품을 그렸고, 기성 전시회에서 거부당하자 자신만의 독립 전시회를 열면서까지 쿠르베 자신의 예술세계를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위기에 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매순간 강해졌다는 것을 진병관의 해설로 접하면서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도 훗날 돌이켰을 때에는 내가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자양분이 되리라고 생각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실제로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역경을 극복했을 때 성장했던 것을 삶으로 증명한 사람이 있기에 나도 조금 더 힘을 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3장 외로운 날들의 그림에서 저자 진병관이 다루는 인물 중 유일하게 처음으로 접하는 화가가 바로 케테 콜비츠였다. 낮은 자들과 함께 하며 시대정신을 담았던 그의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여성이 사회적인 입지를 누리지 못했던 19세기 중후반의 독일에서, 진보적인 아버지 덕분에 미술교육도 받고 집안 자체도 여유로웠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고 나서 빈민촌에서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돌봤던 케테 콜비츠의 이력이 상당히 비범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전쟁으로 인해 처음엔 자신의 아들을 잃고, 그 후엔 자신의 손자까지도 잃었던 그의 심경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것을 알고 나니 코끝이 찡해졌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 작품들도 마음을 후벼팠지만 특히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남긴 피에타다. 종교적인 의미를 다 떠나서, 그저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비통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 가슴이 아팠다. 그 외로움 속에서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며 세상에 전쟁의 부조리를 밝히고자 했던 그의 의지가 얼마나 경이롭게 느껴지던지.
마지막 4장,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스웨덴의 화가 칼 라르손이었다. 처음에 칼 라르손을 봤을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가 파리에서 유학하고, 그뢰즈에서 카린을 만나 결혼했다는 이력을 보았을 때까지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런데 그가 점차 전 유럽에서 명성을 얻게 되면서 부인 카린과 함께 고국으로 귀국해 선드본(Sundborn)에 정착하기로 했다는 걸 본 순간 깨달았다. 10년 전 스웨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에 달라나(Darlana) 지방의 수도 팔룬(Falun)에 갔을 때 스웨덴 친구의 소개로 선드본으로 가서 칼 라르손의 생가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칼 라르손의 생가는 내부 촬영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단촐했던 코티지가 가족이 늘어나면서 점차 확장되고, 그 내부를 아기자기하게 꾸민 칼과 카린의 솜씨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사진으로 남길 수 없어 글로만 남겼던 그 때의 장면이, '위로의 미술관'을 보며 다시금 오색빛깔로 떠올랐다. 북유럽 인테리어의 기준이 되는 아름다운 집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거기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일상 속의 행복이었다. 대단한 무언가가 없더라도, 매일의 삶 속에 행복은 늘 숨어있다는 것을 칼 라르손을 보며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인생은 마치 등산 같아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오르막을 힘겹게 걷다보면 어느 순간 높은 곳에 도달해 있고, 거기서부터 수월하게 내려가는 길을 만난다. 동시에 그렇게 내려가다가도 다시금 온 힘을 다해 올라야 하는 오르막을 다시 맞부닥뜨리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치고 힘들 지라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고단한 인생길을 부던히 걸어갈 수밖에 없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나를 위할 수 있는 것은 세상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 자신의 외부에서,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기제로 아름다운 명화와 그 작가의 삶을 소개하는 '위로의 미술관'은 진정으로 독자에게 위로와 평안을 전하는 책이었다. 저자 진병관의 세심한 안배가 담겨있는, 오직 나만을 위한 이 미술관은 오래도록 내 책장에서 삶에 지치는 순간마다 나를 위로하고 북돋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