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열에 아홉 정도는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저게 뭐가 그리 예술적이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해가 안 된다.'
현대미술의 대표작 내지 인기작이라고 칭송받는 작품들의 상당수는 기술적으로 별로 어려워보이지도 않는 경우가 많고, 아예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리고 이럴 때 현대미술의 심오함을 잘 몰라서 이해하지 못한다 운운하는 말이 나올 때가 많다. 심지어 현대미술에 대해 모르겠다는 사람을 예술적 소양이 없는 것쯤으로 취급하거나, 훈계하는 어조로 말할 떄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그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러면 공부하겠다는 반응은 별로 없을 듯하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작품과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있다. 재미있는 것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인데, 뭐하러 이해되지도 않는데다 깔보듯이 공부하면 알 거라는 말이나 들려주는 걸 일부러 애써 공부하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과 품을 들여야 한단 말인가? 뭘 잘 모른다고 무시하는 말을 들으면,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공부하는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아예 통째로 무시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무시하는 듯한 훈계조로 일관하면, 절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느낌의 미술관>은 현대 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수업 강의를 하듯이 들려주고 풀어주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훈계조와는 거리가 멀다. 현대미술에 대해 무슨 의미인지, 어떤 목적으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이 책이 들려주는 대답은 모르면 공부하라고 면박 주는 것이 아니다. 이러저러한 답이 있으니 스스로 감상해보라고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미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테마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한 후, 독자들더러 스스로 감상하고 생각해보라고 손을 잡아끌고 있을 따름이다.
현대미술은 수학 공식의 답을 찾는 분야가 아니다. 답이 하나만 있는 곳이 아니다. 갖가지 발상을 바탕으로 갖가지 방향으로 뻗어나간 현대미술작품을 보면, 각자 자신만의 다양한 영감을 받을 수 있다. 그 중에는 작가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의도한 적 없는 답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감상자가 틀린 걸까?
고전미술의 세계에서는, 특히 도상해석학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용맹한 잔 다르크를 그렸는데 어느 규방 아가씨를 그린 그림이라고 짐작한다면, 단단히 틀린 것이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감상자가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것도 현대미술의 특징이며, 나아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해석을 이끌어내는 것은 오답이 아니라 작품의 중층적인 다양성으로 이해되는 세계인 것이다. 애초에 현대미술의 출발 자체가, 정해진 규정과 정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작품을 대하고 당신의 느낌이랄 수 있는 게 생기고 당신만의 정연한 느낌과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그게 답입니다. (중략) 자신만의 느낌을 갖는 일을 포기한다는 건 곧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는 겁니다.' -<느낌의 미술관> 17페이지-
'아는 나로만 나를 국한하면 그건 사실 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느끼는 "나"일 때에만 내가 있고, 아는 나도 있게 되죠.' -느낌의 미술관 <77페이지>-
이 책은 시종일관 현대미술에서 작가의 의도나 평론가가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스스로 알아보고 맞춰보라고 닦달하는 대신, 현대미술작품을 보고 본인만의 해석을 이끌어내고 감상하는 길을 터준다. 그리고 그 단계에 가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과 연습해야 할 것 등에 대해서 조곤조곤 대화하듯이 세세하게 알려준다. 이 와중에 삼각함수 개념 등 미술 이외의 영역의 테마도 다수 인용되는데, 자칫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기 쉬운 구성이지만, 이 책은 그것을 다채로운 풍부함으로 빚어내는 데 성공한다. 미술 외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며, 미술 영역 안에서 머물렀을 때에는 접할 수 없는 이야기와 감상을 보여주는 책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열네 번의 미술 수업을 끝내고 나면, 어느새 현대미술품을 보고 그 미술품을 계기로 다양한 감상과 생각을 펼쳐낼 수 있게 된다.
<느낌의 미술관>은 한국인 저자가 쓴 책이다. 그래서 외국 책을 번역했을 때에는 기대할 수 없을, 여러 특징과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한국 사회의 한국 정서 및 한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비유와 예시와 설명이 많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사전지식 없이 그냥 보면 기둥의 높이에 따라 지름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할 수 없으며, 그것을 미술의 표상 개념과 직결시키는 대목은 한국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이해할 수 있을 대목이자, 외국 번역서에서는 기대할 수 없을 친숙함이다.
그리고 현대 한국 작가의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현대미술책은 서양 현대미술에서 각광받고 인정받은 작품들을 위주로 다룰 때가 거의 대부분인데, 이 책은 다양한 한국 현대 미술가의 작품들도 수업 주제에 맞춰서 여럿 소개한다. 마치 책 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방금 제가 들려드린 수업 내용을 기억하지요? 그럼 이 작품을 봅시다. 어떤 생각이 드나요? 무슨 감상을 받았나요? 스스로 독창적인 생각을 이끌어냈다면, 그것이 바로 정답입니다.'
<느낌의 미술관>은 현대 미술품을 보고, 자신만의 해석을 이끌어내고 스스로 감상하며 만끽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준다. 동시에 한국인이 한국인 독자를 위해 쓴 책이 얼마나 소중하고 와닿을 수 있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현대 미술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내며 친절하게 안내하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