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화가 네 쌍의 우정과 배신을 그린 『관계의 미술사』
이 책을 읽은 이유
무엇보다도 화가들의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들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는가, 그것을 어떻게 화폭에 그려내는가 하는 점이 알고 싶었다. 또한 그들이 어떻게 그들의 시각과 시야를 넓혀갔는가, 하는 점도 역시 관심사였다.
그래서 이런 구절은 나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지난 수년 동안 비애감과 미신 및 자기 연민에 젖은 작품들을 주로 창작했던 피카소는 이제 아폴리네르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순수한 감정과 형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55쪽)
예술의 측면에서 그는 새로운 성숙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자신에게로만 향해있던 감정의 방향을 외부로 확대해 간 그는 감상적 경향을 버리고 관심사를 보다 광범위하게 넓혀나갔다. (157쪽)
즉, 그는 본다는 행위를 외부가 아닌 내면을 보는 것으로 순전히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178쪽)
그렇게 시작한 이 책, 그런 나의 바람을 뛰어 넘어 훨씬 더 많은 기쁨을 안겨주었다. 화가들의 ‘사물 보는 법’만 알게 된 것뿐만 아니라, 나의 그림과 인생을 보는 시각도 더 넓어졌다고 할까.
이 책은
이 책 『관계의 미술사』의 저자는 서배스천 스미,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의 미술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이전에는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에서 미술 비평가로 일했으며, 같은 시기인 2011년에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 웰즐리 대학에서 논픽션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
이 책의 내용은
이 책 『관계의 미술사』는 원저의 제목을 생각하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The Art of Rivalry : Four Friendships, Betrayals, and Breakthroughs in Modern Art.
<현대 미술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네 쌍의 우정과 배신, 그리고 돌파(약진, 진보).>
여기에 해당하는 4쌍 그러니까 8명의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에두아르 마네와 에드가 드가 - 찢어진 초상화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 - 위험한 미치광이들의 전시실
잭슨 폴록과 윌렘 드쿠닝 - 같은 영혼을 가진 상상 속의 형제들
루치안 프로이트와 프래시스 베이컨 - 도난당한 초상화
저자가 매칭한 인물들은 일단 라이벌 관계라 할 수 있다. 처음 만날 때는 그러지 않았지만 그 후 둘은 서서히 라이벌 관계가 되어가며, 각각의 라이벌에게 우정과 경외, 질투와 욕망, 야망과 절망의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그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 또는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저자는 꼼꼼하게 한 명 한 명 그들의 삶과 예술을 살펴보고 그 둘이 만나는 순간을 기록하고, 그들의 관계를 마치 다큐멘터리를 카메라로 기록하듯이 보여주고 있다.
그 둘은 서로 어떻게 만났으며,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가
또한 저자가 의도한 두 명의 라이벌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보는 과정에 뜻밖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그 중 한 명 또는 두 명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네와 드가의 경우
에두아르 마네 (1832년 1월 23일~ 1883년 4월 30일) (51세)
에드가 드가 (1834년 7월 19일~ 1917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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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드가는 1861년 르부르에서 만난다.
어느 한 전시실에 자리잡은 드가는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를 그린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며 이젤에 세워둔 에칭판에 따라 그리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네는 루브르의 전시실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49쪽)
예전에 르부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전시실 또는 복도에서 이젤을 세워두고 벽에 걸린 그림을 열심히 따라 그리고 있는 수많은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중에 드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난 두사람, 마네로부터 드가는 영향을 받는다.
드가가 역사와 신화로부터 눈을 돌려 동시대적 주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 사람은 바로 마네였다. 마네가 본보기가 되어줌으로써 드가는 도시의 삶을 사랑하고, 삶뿐 아니라 예술 세계 내에서도 성실하고 근면하며 계획성 넘치기보단 태평하고 즉흥적이며 덧없은 것들의 매력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91쪽)
둘 사이에 서서히 갈등이 시작되고, 드디어 파국을 맞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건 다름아닌 드가가 마네와 그 부인의 초상화를 그려준 데서 시작되었다. 그 사건은? 그게 마네와 드가의 사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사건으로 삼은 것이니, 책을 참조!
다만 여기에 그 문제의 그림, 올려놓는다.
보들레르의 미학.
마네와 드가의 이야기를 읽던 중에, 보들레르를 만났다.
마네부더 열 살 많은 보들레르는 마네를 지지하는 비평을 많이 남겼는데, 그의 미학에 대한 언급이 몇 가지 보인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적 개념의 보편적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찰나적이고 불완전하며 즉흥적이기도 한 특정 아름다움의 중요성에 관한 주장을 폈다. (67쪽)
각 시대마다 아름다움의 형태가 있다. (68쪽)
마티스와 피카소의 경우
마티스 (1869년 12월 31일~ 1954년 11월 3일(85세)
피카소 ( 1881년 10월 25일~ 1973년 4월 8일 (9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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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와 피카소, 둘의 만남은 1906년 마티스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업실을 방문함으로 이루어졌다. 그날 방문에는 마티스 혼자만 간 것이 아니라. 마티스의 딸 마르그리트와 미국인 남매인 거트루드 스타인과 리오 스타인과 함께였다.
그렇게 4명이 피카소를 만나러 그의 작업실에 들른 것이다,
그로부터 그 4명과 피카소, 이렇게 5명의 관계에서 실로 복잡하고 복잡한 미술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그림보다도 그들의 이야기에 끌려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마티스와 피카소 두명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은 단연 스타인 남매다.
두 사람의 관계는 나중에 한 판 승부가 벌어지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이후 18개월에 걸쳐 일어난 일은 현대 미술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한 편의 흥미진진한 드라마였다. 똑같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나 감성과 기질면에서 완전히 달랐던 두 천재가 ‘누가 진정으로 근본적인 독창성을 성취할 것인가’를 놓고 겨루는 한 판 승부가 벌어진 것이다. (167쪽)
또한 피카소에게 영향을 미친 아폴리네르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수년 동안 비애감과 미신 및 자기 연민에 젖은 작품들을 주로 창작했던 피카소는 이제 아폴리네르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순수한 감정과 형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55쪽)
예술의 측면에서 그는 새로운 성숙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자신에게로만 향해있던 감정의 방향을 외부로 확대해 간 그는 감상적 경향을 버리고 관심사를 보다 광범위하게 넓혀나갔다. (157쪽)
폴록과 드쿠닝
잭슨 폴록 (1912년 1월 28일~1956년 8월 11일)
윌렘 드쿠닝(1904년 4월 24일~1997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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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스너는 폴록을 데리고 누군가의 집을 찾아갔다. 그 두 사람을 소개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네델란드에서 온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 드쿠닝이었다. (256쪽)
그렇게 해서 만난 드쿠닝과 폴록, 그 두사람의 관계는 미국 현대 미술사에서 빠지면 안되는 중요인물이었고 그들의 관계는 미술사에 있어 획을 그은 여러 사건과 맞물려 있는 것이니, 그 두사람을 빼고는 미국의 미술사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논쟁이 있는데, 바로 회화의 미래가 추상적인 이미지에만 있느냐 아니면 구상적인 이미지가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냐 하는 논쟁이었다. (310쪽)
평론가 그린버그와 로젠버그 사이에 벌어진 이 논쟁에 폴록과 드쿠닝은 본의아니게 끼어들어가, 혼란을 겪게 되고 사이도 틀어지게 된다.
여기서 화가의 시각에 대한 몇가지 언급, 만난다.
훗날 드쿠닝의 설명에 따르면, 아카데미가 그렇게 까다로운 접근방식을 취했던 이유는 “학생들로 하여금 전통적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버리고 오로지 자신이 직접 얻은 경험만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29쪽)
그는 자신이 가졌던 기법상의 장점을 해체하고 그것과 고투하면서, 직관적이고 자유롭지만 결코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새로운 방식을 찾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236쪽)
그 둘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미술사에 라이벌의 관계로 기억이 된다.
드쿠닝은 폴록에 대해 너무나 많은 부채의식을 가졌고, 동시에 동경심과 경쟁심에서 헤어나지 못했기에 단 한 순간도 폴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폴록을 향한 드쿠닝의 감정은 대체로 애증에 찬 복합적인 것이었다. (327쪽)
프로이트와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 (1922년 12월 8일~2011년 7월 20일)
프란시스 베이컨 (1909년 10월 28일~1992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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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안 프로이트는 생소한 인물이라, 위키 백과의 정보를 옮겨본다.
Lucian Michael Freud는 독일에서 태어난 영국의 사실주의 화가.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다.
유대인으로, 1922년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아버지인 건축가 에른스트 루트비히 프로이트(Ernst Ludwig Freud)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1933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이사하며 1939년 영국 국적을 취득한다. 그는 데번의 다팅턴 홀 학교에 재학했으며 나중에는 브리앤스턴 학교에 재학했다. 그 이후 그는 런던에 있는 샌트럴 미술학교와 골드스미스 컬리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보통 나는 사람들 얼굴의 감정을 담고자 노력한다. 나는 사람들의 몸을 통해서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얼굴만 그렸었는데 마치 얼굴에 집착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그것들의 팔다리가 되고 싶은 것처럼..." - 루치안 프로이트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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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베이컨의 관계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베이컨의 초상화 도난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인 1988년 4월 29일, 베를린에서는 프로이트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전시회가 한달 정도 지났을 때, 분명 그림 한 점이 놓여있을 법한 자리가 비어있는 게 발견되었다. 어떤 관람객이 그런 사실을 주최측에 신고한 것이다.
사라진 그림은 바로 프로이트가 그린 베이컨의 초상화였다. (339쪽)
그 그림은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문고판 크기였다. 그 그림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주최측은 즉시 전시회를 중단하고, 그 그림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그 그림의 행방은 오리무중,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문제의 그림은 어떤 것일까? 흥미롭게도 주최측은 그 그림을 찾기 위해 현상을 걸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포스터를 만들어 베를린 전역에 뿌렸다.
그래도 찾지 못한 그림, 여기 그 포스터를 올려놓는다. 어떤 것인지, 잘 살펴보시라, 그리고 혹시 누가 갖고 있는 것을 보거든, 신고하시라, 현상금이 삼십만 도이치 마르크다.
다시 한번, ‘사물을 바라보는 법’
이런 구절은 나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피카소 =
지난 수년 동안 비애감과 미신 및 자기 연민에 젖은 작품들을 주로 창작했던 피카소는 이제 아폴리네르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순수한 감정과 형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55쪽)
예술의 측면에서 그는 새로운 성숙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자신에게로만 향해있던 감정의 방향을 외부로 확대해 간 그는 감상적 경향을 버리고 관심사를 보다 광범위하게 넓혀나갔다. (157쪽)
즉, 그는 본다는 행위를 외부가 아닌 내면을 보는 것으로 순전히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178쪽)
‘본다’는 행위의 불안을 예술에 내재한 마술적인 힘, 그리고 무언가를 변형시킬 수 있는 힘과 결부시키는 탁월한 깨달음을 그는 트로카데로 박물관에서 얻을 수 있었다. (195쪽)
드쿠닝 =
훗날 드쿠닝의 설명에 따르면, 아카데미가 그렇게 까다로운 접근방식을 취했던 이유는 “학생들로 하여금 전통적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버리고 오로지 자신이 직접 얻은 경험만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29쪽)
그는 자신이 가졌던 기법상의 장점을 해체하고 그것과 고투하면서, 직관적이고 자유롭지만 결코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새로운 방식을 찾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236쪽)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