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논술 수업을 이유로 과학이나 수학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능하면 이런 책이 재미있기를 바라지만 내 입장에선 즐겁다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큰 아이는 나와 좀 다른 것 같다. 나는 어렵다고 생각한 과학관련 책을 읽으며 어떤 책은 중학교 수준이고 또 어떤 책은 초등학교 수준이고 또 어떤 책은 고등학교 이상의 수준이라 말해준다. 큰 아이가 화학 쪽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이와 관련된 책을 같이 읽고자 마음먹었다. 같이 대형서점에 나가면 제일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던 지라 이번엔 내가 아이에게 책을 추천하고 같이 읽기로 했다. 영화, 그림에서 화학을 발견하는 책을 읽었고 이번에는 화학 교과서와 관련된 재미있는 주제로 접근하는 책을 읽게 되었다. 영화와 그림과 관련된 화학보다 이번 편이 제일 어렵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화학교과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서 일까? 화Ⅰ과 화Ⅱ의 영역을 모두 다룬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분자들의 세계, 원소, 화학 반응, 다양한 물질들, 화학 평형, 화학 반응과 속도,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화학. 다양한 주제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를 끈다. 아나스타샤는 진짜 러시아 공주인지 (여기서 DNA 지문법을 설명하고), 신비한 나노기술을 설명하며 미인 만들기 프로젝트를 이야기 한다. 세기의 발명품답게 이름 짓는 것조차 어려웠던 나일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케미 돋는 사랑으로 원자와 분자의 세계를 설명하고, 주기율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서라 명명한다. 산업의 비타민인 희토류 원소를 이야기 하고 잉키 제국의 비극과 철에 대한 기술을 연결하며 금의 가치와 자동차, 맥주 원리가 같음을 이야기 한다. 김연아 선수가 얼음 위에서 넘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지방의 두 얼굴을 이야기 해주며 총알도 뚫지 못한 방탄복에 대한 설명과 스포츠 음료에서 삼투압의 원리를 설명한다. 악마와 천사가 함께 준 선물로 화약을 설명하고 예수의 시신을 덮은 수의에 대해서도 화학적으로 이야기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설명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처음 시작한 주제는 흥미를 끄는 것이었으나 깊이 들어간 설명은 내 입장에선 여전히 어려운 제2 외국어 같았다.
화학적 원리나 이론을 설명하는 것들은 내 입장에선 글자만 읽는, 이해할 수 없는 암호 같다고 느낀다. 큰 아이와 같이 읽었지만 아이는 재미있다는 반응이, 나는 뭔 말인지 글자만 읽은 기분이라는 반응이. 어찌나 이렇게 상반된 반응인지. 다만 이런 생각은 했다. 혹 아이가 화학 시험을 못보더라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나도 이렇게 어려운데 아이 역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다행히 아이는 화학을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한다. 화학이 주는 매력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는다고 화학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화학 곁으로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다음엔 같이 읽지 말고 아이 혼자서만 읽는 걸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
서른을 앞두고 있는 나이에 화학 공부에 빠져버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과학과는 담을 쌓고 지내왔었는데 뜻하지 않게 과학과 친해져야 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더 이상 등한시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중에서 화학과 먼저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정말 화학이라는 학문은 공부할 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됨을 알게 되었다. 물질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화학과 따로 생각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화학 제품들이 어떤 원리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채 그저 쓰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사용했던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화학의 더욱 놀라운 면모는 일상생활 뿐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으면 소화효소를 통해서 에너지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사랑'이라는 것 또한 뇌의 화학작용이다. 이 얼마나 낭만적이지 못한 현실인가! 그러나 화학을 모른채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눈에 마치 블라인드로 가린 채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랑이 화학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케미 돋는다'라는 말로써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화학작용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지 않나? 그렇기에 사랑은 인간을 인간적으로 만들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책에서 주로 다룬 부분은 신재생 에너지인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자원이 머지 않아 고갈될 위기에 놓이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현재 태양 및 수력 등의 풍부한 자원을 통하여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중인데 화학의 발전이 인류사를 통해서 급격히 발전된 것을 통해서 볼 때 바로 신재생 에너지의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가히 놀라운 업적이 될 것이다. 혹시 우리나라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석유 소비량은 10위권 안에 든다는 것을 아는가? 작은 국가가 짧은 기간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루면서 마이카 시대를 이루게 된 후 가져온 결과이다. 그렇기에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매년 조금씩 느껴지는 이상기후를 통해서도 절감할 수 있다.
문과에서는 '경제학'이 필수적인 교양 학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문,이과를 구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서 경제학 공부를 열심히 했던 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경제신문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세상의 경제를 볼 수 있어서 기뻤었다. 그런데 화학을 공부하게 된 후에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원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 같다. 배움의 기쁨은 다름 아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화학은 기쁨이라는 케미를 선물해주는 학문인 것이다.
참고로 '자신이 러시아의 마지막 공주, 아나스타샤라고 외치는 여인의 주장이 사실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제목부터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