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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리뷰 총점 9.7 (6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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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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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변방을 찾아서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s*****8 | 2015.05.26 리뷰제목
신영복의 책을 처음 만난 건 [강의]다. 동양 고전에 대한 책이었는데 어려운 내용이 편하게 읽혔다. 글로 쓴게 아니라 강의 내용을 책으로 낸 덕분이겠다.   그 다음에 만난 책이 최근에 나온 [담론].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이것 또한 이전의 [강의]처럼 강의한 내용을 옮겨 놓은 글이다. 책의 전반부는 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이고 후반부는 20년 수형생활에서 얻은
리뷰제목

신영복의 책을 처음 만난 건 [강의]다. 동양 고전에 대한 책이었는데 어려운 내용이 편하게 읽혔다. 글로 쓴게 아니라 강의 내용을 책으로 낸 덕분이겠다.

 

그 다음에 만난 책이 최근에 나온 [담론].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이것 또한 이전의 [강의]처럼 강의한 내용을 옮겨 놓은 글이다. 책의 전반부는 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이고 후반부는 20년 수형생활에서 얻은 삶의 통찰인데 책의 저변에 흐르는 큰 주제는 '관계'다. 존재란 개별자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개별자간의 관계로 존재하고 인식된다고 한다. 우리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내 이름 석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내로 또는 선배나 후배로, 선생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나와의 관계, 또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로 존재한다. 그러한 관계망을 인식하게 되면 삶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번엔 [변방을 찾아서]를 만났다. 더 널리 알려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여러 군데에서 인용된 것이 많아 좀 더 낯선 이 책을 먼저 접했다. 경향신문에 8차례에 걸쳐 연재한 글을 모은 소책자다. 150페이지가 채 되지 않은데다가 사진도 많아 금방 읽힌다. 저자가 써 놓은 현판 글씨가 있는 '변방'을 찾아 다니며 쓴 기행문들이다. 상당히 많은 곳, 많은 분들에게 글씨를 남겨 두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변방의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적 지형적 개념의 변방을 말함이 아니다. 지리적으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주체와 중심 사상으로부터 소외된 곳, 변화와 변혁으로부터 무관심한 곳, 그런 생각들이 변방으로 읽힌다. 주류 담론이 아닌 비판 담론, 대안 담론으로의 변화를 갈망한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위해서는 변방이 중심부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는 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은 쇠퇴해가고 변방이 다시 중심이 되어가는 것이 역사의 역동성이다. 이 역동성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국가나 조직은 망하거나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그 역동성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변방은 중심을 향해 끊임없이 진격하고 반면에 중심부는 견고하게 성을 쌓아 변방으로 부터의 유입을 차단한다. 한 번 중심이 된 후에는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역설적이게도 그 지키고자 하는 힘이 절대적으로 커지는 지점에서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와 현실 모두에서 목격한다.

 

몇일 전 한 지인이 폰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십 수년 전에 붓글씨를 써 준 일이 있는데 그걸 찍어 보내온 것이다. 지금 다시 보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끝내 사양할 것을 그러지 못했던 것이 후회 막급이다. 그래도 그걸 집안 거실에 지금껏 걸어두고 계시다고 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5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50 댓글 0
종이책 구매 담론 - '가장 먼 여행' 평점10점 | a*******5 | 2020.02.10 리뷰제목
지난번 저자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를 읽고 뜻밖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으레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리라 예상했는데 고전을 어떠한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어느 책 못지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저자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담론>을 읽으니 왜 공부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첫장부터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은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과 2
리뷰제목

지난번 저자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를 읽고 뜻밖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으레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리라 예상했는데 고전을 어떠한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어느 책 못지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저자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담론>을 읽으니 왜 공부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첫장부터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은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과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나뉘어 있다. 1부의 첫 강의 제목은 [가장 먼 여행]이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인가 했는데 뜻밖에도 공부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저자는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강의에 대한 경험을 말한다. 강의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가르침을 통해 깨우침이 일어나는 대칭적 관계라는 점과 설득과 주입이 아니라 공감이 이루어지는 장이라고 한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이란 '음모'라고 합니다. 음모라는 수사가 다소 불온하게 들리지만 근본은 공감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작 불온한 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소외시키는 소외구조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음모는 든든한 공감의 진지입니다. 소외 구조에 저항하는 인간적 소통입니다. 글자 그대로 소외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실이 공감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p)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은 신선한 충격이자 깨달음이다.

... 책은 2~3년 전의 생각이고, 강의는 어제 저녁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 자연히 오래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계몽주의 프레임을 허물어야 합니다. 계몽주의는 상상력을 봉쇄하는 노인 권력입니다. 생생불식生生不息,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溫故온고보다 창신創新이 여러분의 본령입니다. 그리고 강의라는 프레임도 허물어야 합니다. ... 개념과 논리 중심의 선형적 지식은 지식이라기보다 지식의 파편입니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연이 모여서 운명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리고 인연들이 모여 면이 되고 장場이 됩니다. 들뢰즈는 장을 배치(agencement)라고 합니다. ... 계몽주의의 모범과 강의 프레임은 이 모든 자유와 가능성을 봉쇄합니다. ... (15-16p)

 

  공부에 대한 이야기에서 공부 工夫의 한자어를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으로 풀이한 후 그래서 공부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고,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공부를 구도라 했고, 구도에 따르는 고행의 총화가 공부라고 한다. 인류가 쌓아온 지적 유산인 '고전 공부의 목적은 과거, 현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고전 공부는 고전 지식을 습득하는 교양학이 아니라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고전 공부는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는 삼독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텍스트를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는 '탈문맥'이어야 합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이든 공부는 당대의 문맥을 뛰어넘는 탈문맥이 창조적 실천입니다. (19p)

 

 저자는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한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고 오래된 인식틀을 바꾸는 것이 공부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또 만난다. 생각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전두엽의 변연계에서 형성되는 이미지를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생각입니다.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하면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20p)

 

 앞에서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는데 공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남아 있다. 발은 삶의 현장을 뜻한다.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공부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20p)

 

  마지막으로 강의에서 진행하는 모든 담론의 중심에 '관계'를 둔다는 것과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이진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강의는 가슴의 공존과 관용을 넘어 변화와 탈주로 이어질 것입니다. 존재로부터 관계로 나아가는 탈근대 담론에 관하여 논의할 것입니다. 당연히 '관계'가 강의의 중심 개념이 될 것입니다. 이 '관계'를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담론의 중심에 두고 나와 세계, 아픔과 기쁨, 사실과 진실,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천, 자기 개조와 연대, 그리고 변화와 창조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21p)

 

  그리고 변방이 창조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아니 기존의 콤플렉스를 하나씩 벗어버리는 일이 변화와 창조의 장으로 가는 과정일 것이다. 이 책의 첫 장 '가장 먼 여행'만 소개하는 나의 부족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전체 내용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리뷰는 다음 언젠가로 넘긴다.

1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4 댓글 6
종이책 머리에서 가슴, 그리고 발까지의 여행.. 평점9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1 | 2015.05.14 리뷰제목
동양고전은 아무리 읽어도 늘 새롭기만 하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내용들이 전혀 다른 내용처럼 다가온다. 동양고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책이 바로 신영복 교수의 전작 [강의]이다. [강의]가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해왔던 강의를 정리한 것이라면, 이 책 [담론]은 작
리뷰제목

동양고전은 아무리 읽어도 늘 새롭기만 하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내용들이 전혀 다른 내용처럼 다가온다. 동양고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책이 바로 신영복 교수의 전작 [강의]이다. [강의]가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해왔던 강의를 정리한 것이라면, 이 책 [담론]은 작년 말 더 이상 강의를 할 수가 없어 강의 대신 펴낸 책이라고 한다. 이미 출간된 책과 발표된 글을 교재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인 셈이다.

 

나는 저자에게서 고전을 읽는 독법 두 가지를 배웠다. 고전공부는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온 지적 유산을 물려 받는 것으로 역사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거, 현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고전공부는 텍스트를 읽고, 저자를 읽고, 최종적으로 자신을 읽는 삼독(三讀)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한가지이다. 또한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한다. 따라서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서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필자는 죽지만 독자는 세월을 따라서 꾸준히 탄생하기 때문에 우리시대의 과제를 조명하는 독법이 먼저인 것이다. 이렇듯 고전을 재조명하는 일은 오늘날처럼 속도를 요구하는 환경에서 너무 한가로운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동양고전은 천민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구조에 대한 해법을 우리에게 제시하기에, 그 독법을 항상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강의]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양고전에 대한 독법이다. 저자는 각각의 동양고전을 현재의 관점에서, 현재의 문제와 연결해서 읽는다. 시경, 초사, 주역, 공자,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 등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통하여 오늘날 천민자본주의가 내뿜는 여러가지 문제점이나 현상들을 재구성해보고 있다. 그는 먼저 시경과 초사를 대비하며 인식틀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문사철(文史哲)이라는 완고한 인식틀에 갇혀 있으며, 따라서 공부의 시작은 이러한 인식틀을 깨뜨릴 수 있는 서화악(書畵樂)으로서 시경과 초사를 읽는다.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때, 즉 시적인 틀에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다며, 시경과 초사를 통한 시적 관점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런가 하면 주역의 독법은 괘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이지만 그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사계(四季)의 변화가 뚜렷한 농본사회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 및 귀납적 사고가 바로 주역이라고 말하는 그는 위(), (), (), ()의 개념에 대한 바른 이해 속에서 관계론적으로 읽으라고 말한다.

 

특히 저자는 동양사상 중에서도 노자, 장자, 묵자 등 흔히 비주류로 알려져 있는 사상가들에 주목하고 있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유가가 대표하듯 인본, 문화, 성장의 패러다임으로 인류문명사의 보편적 구조를 띠고 있다. 그러나 노장은 이와 반대로 자연중심이다. ()가 아니라 무위(無爲), 문화가 아니라 반문화, 앞으로 나아가는 진()이 아니라 근본으로 돌아가는 귀()의 사상인 셈이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사상은 노장을 한편으로 하고 나머지 모든 제자백가들을 다른 한편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노자가 도()를 모든 유()의 근원적 존재로 상정하고 도()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면,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그 도()와 함께 소요(逍遙)할 것을 주장했다. 장자의 핵심사상은 탈정(脫井), 즉 갇혀있는 우물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생각에 갇혀서,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다른 것들을 판단한다. 탈정이야말로 우리시대에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묵자는 무감어수(無鑑於水), 즉 물에 비추어보지 말고 감어인(鑑於人), 즉 사람에 비추어 보라고 한다. 물은 동경(銅鏡)이 나오기 전까지 거울역할을 하였다. 거울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외모만 보게 되지만, 다른 사람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인간적 품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인문학이란 결국 인간의 문제, 인간의 삶의 문제를 중심에 놓는 것이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하는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부는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변화가 담보될 때 비로소 끝나기 때문에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여행이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이지만, 그 종착지는 자기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실천이 배제된 책 읽기 보다는 차라리 사유(思惟)가 더 낫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책만 탐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 요즘은 그나마도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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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거쳐 발에 닿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는 공부(파블 16기 8-3) 평점10점 | n*****9 | 2019.08.09 리뷰제목
연일 폭염 경보 안내 문자를 받으며 외출을 삼가고 그동안 읽고 싶은 책들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앎의 연속은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준다. 가시적인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지키며 살고 싶은 믿음을 견지하며 살아가려는 의지를 돋운다. 2016년 1월 신영복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 통절한 상심으로 평정심을 찾기 힘들었다. 독방에 수감되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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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폭염 경보 안내 문자를 받으며 외출을 삼가고 그동안 읽고 싶은 책들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앎의 연속은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준다. 가시적인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지키며 살고 싶은 믿음을 견지하며 살아가려는 의지를 돋운다. 20161월 신영복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 통절한 상심으로 평정심을 찾기 힘들었다. 독방에 수감되었을 때 쪽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있어 자살하지 않고 생을 이을 수 있었다는 대목에서 뭉클해졌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햇볕의 고마움을 잊고 지내왔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생의 절정을 연상하며 하루하루의 깨달음을 찾아 공부한다.

 

 

   마지막 하나 남은 씨 과실은 남겨둔다는 말,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저자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임을 알아차린다. 절망적인 시간과 역경 속에서도 사람을 키워내는 것으로 시련을 극복하여 가는 여정을 새기며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출간한 <<담론>>을 만났다.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실천의 장인 공부(工夫)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워 자기 성찰로 갈무리할 필요가 있다. 여러 사람들과 세계와 교유한 경험의 총체로 형성된 생각의 틀을 벗어나는 일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거쳐 발에 닿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는 공부다.

 

   기존의 프레임을 뛰어넘는 탈근대를 모색하는 메타 지향은 자기 변화와 혁신을 통한 창조로 이어지는 공부는 변방에서부터 이뤄짐을 일깨운다. 핵심을 요약하고 추출할 수 있는 추상력을 키우기 위한 문··철 공부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 기능을 수행한다. 책의 1부는 동양의 고전이라 불리는 사상가들의 삶과 생각을 담은 글들에서 관계론의 실천적 흐름인 연대로 귀결되는 서사적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비효용이고 고통인 때, 더 많은 소유와 소비를 위해 속도를 내는 집단적 행태를 벗어나려는 반기계적인 연대를 장자의 사상에서 찾는다.

 

   14년 동안의 망명과 유랑 생활로 거침없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혁주의자인 공자는 백성이 경제력이고 군사력이었던 시대에 인간 중심의 사고를 실천했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논어>>는 인간 중심의 인문학적 사유로 고루한 세계를 혁신하는 탈 문맥으로 귀결된다. 군자는 원래 궁하다는 믿음 아래 천둥이 울고 번개 치는 와중에도 묵묵히 앉아 묵상할 정도로 인간 존엄에 대한 성인 의 고결한 자부심은 컸다. 맹자 곡속장의 이양역지(以羊易之)’를 통해 본 것과 못 본 것의 차이가 엄청남을 되새긴다. 도시의 과밀로 왜소한 만남을 주를 이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남과 관계의 소중함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틀을 마련한다.

 

    책의 2부는 20년 남짓의 수감생활에서 얻은 삶의 통찰을 잔잔히 담아냈다. 험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온 수감자들의 참혹한 실패 경험을 통해 깊은 사유에 이른 저자는 인간 이해에 있어 교도소는 대학이라고 명명했다. 목수로 잔뼈가 굵어진 노인의 이야기는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고 건강한 노동 품성을 키워 가리라는 결심을 굳힌다. 연마한 기술로 언어와 사고를 바꿔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까지 변화시키는 현장을 만들어 가는 일의 실천이 소중함을 깨닫는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이웃하고 있는 것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알아차리며, 개별성을 띠는 존재의 입장이 동일함을 이해하고 이를 뛰어넘어 서로를 키워주는 관계를 지향하며 동반 성장하는 삶을 그린다.

 

   개인의 내재적 가치와는 상관없이 한 사람을 형성하는 외재적인 조건에 따라 우열을 나누고, 교환가치가 지배적인 세상에서 진정한 관계는 이뤄질 수 없다. 화폐 중심으로 치닫는 자본주의는 물질적 낭비와 인간적 낭비를 가속화하여 관계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

   물건의 단선적인 쓰임을 벗어나 여럿에게 도움을 주고 우리 사는 환경에도 이로운지 살피는 노력은 좋은 관계 형성에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생계가 막막해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청년은 물을 마시고 헌혈한 탓에 자신의피가 묽어져 환자에게 안 좋을 것 같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소리에 숙연해진다. 자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으로 전해지는 연대의 정서는 피로 사회를 사는 우리를 위로해준다.

 

   물질적 성공을 욕망하며 실용성을 띤 기능적 학문을 추구하는 현실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 회복을 증진하여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길잡이로 자리하는 인문학적 성찰은 필요하다. 내가 만난 사람, 들은 강의, 읽은 책, 낯선 공간으로 향하던 걸음을 익숙한 공간으로 돌리는 여행 등의 경험이 내 속에 들어와 나를 구성한다.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을 용기를 내어 당당한 자신으로 살아갈 힘을 주는 지식인들의 사상에 공감하며 반듯하게 살아갈 날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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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 평점9점 | s*************k | 2016.09.18 리뷰제목
어제 저녁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십중팔구 자기소개서 첨삭해달라는 3학년 녀석들의 부탁 전화거나 학교에 이래저래 건의사항 있다는 학부모의 전화일 것 같아서 받지 않았다. 시간도 밤 열시쯤 된지라 그 시간에 남의 하소연을 들어줄 만한 체력도 없기는 했다. 그렇게 울리던 전화가 부재중 전화로 바뀌고 몇 분 안 있어 그 전화를 건 주인공의 딸, 그러니까 우리반 녀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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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십중팔구 자기소개서 첨삭해달라는 3학년 녀석들의 부탁 전화거나 학교에 이래저래 건의사항 있다는 학부모의 전화일 것 같아서 받지 않았다. 시간도 밤 열시쯤 된지라 그 시간에 남의 하소연을 들어줄 만한 체력도 없기는 했다. 그렇게 울리던 전화가 부재중 전화로 바뀌고 몇 분 안 있어 그 전화를 건 주인공의 딸, 그러니까 우리반 녀석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가 술 드시고 전화하신 거니까 받지 말고 내일 사연을 말씀드리겠다고. 오늘 낮에 통화한즉, 추석 전에 창업 관련 경진대회가 있는데 이 녀석이 나갈 상황이 안되니까 한 선생님이 나 몰래 그앨 불러다가 1학년 후배에게 자기 아이템을 양보하라고 했던 모양이다. 연휴 전에 나도 그 말을 듣고 그 선생님(미친년이다. 자기가 그 대회 담당자도 아니고, 1, 2학년 공히 담임도 아니다. 그런데 그 아이템을 양보해 주는 것이 마치 학교를 위한 일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아이의 행동을 '잘못'이라고 표현하며 앞으로 그 아이와의 관계 자체에 관해서도 '이제 너의 어떤 부탁이나 말도 들어주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한다. 역시 가지가지하는 미친년이다.)의 주제넘은 행동에 화가 났는데 부모는 오죽할까 싶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피곤했다. 아직 술이 덜 깬듯한 이 아저씨는 성질 같으면 학교에 찾아와서 그 사람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각색 아님. 들은 그대로.)했는데 그냥 뭐 '마음대로 한 번 해보세요.'라고 말해버릴까 하다가- 그럴 용기도 없지만- 좋은 말로 위로해드리고 말았다.

 

심란한 마음에 책상에 앉았다가 아껴 읽다가 마지막 한 꼭지 남겨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꺼냈다. 제목이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감나무 끝에 매달린 까치밥은 먹지 않고 남겨서 씨로 받아 심어야 된다는 말인데, 이게 우리에게 지시하는 소임은 세 가지다. 첫 번쨰는 엽락(葉落). 환상과 거품의 잎사귀를 청산하는 것. 두 번째는 체로(體露). 구조와 뼈대를 인식하는 일. 여기서의 구조와 뼈대는 정치적 자주성, 경제적 자립성, 문화적 자부심이다. 여기까지는 좀 거시적이고 추상적이라 확 와닿지 않는다. 세 번째 소임을 두어 번 되풀이해 읽었다. 세 번째는 분본(糞本)이다. 뿌리를 거름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신영복 선생님의 인본주의적 사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뿌리가 곧 '사람'이라는 것, 사람이 그 자체로 최고의 가치라는 것이다. 즉 열매 하나 남아 죽을까 말까 하는 위기에서도 해야할 일이 뿌리를 덮어 거름하는 일 즉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내 몸을 썩여 다른 사람을 키우는 일에 대해 올해는 유난히 많이 고민하는 듯하다. 내가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있는건지, 좋은 모범이 되어주고 있는건지, 작으나마 위로를 전하고 있는 건지. 때로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결국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이 사회 속에 별 의미없는 것으로 스러지는 것 아닌가 하는 허무감에 모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장을 읽으며 인간에 대한 믿음 그것에 다시 한 번 희망을 갖게 되고 내 일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것은 거름하고 키우고 기다리는 일을 불필요하고 불편하게 여기는 우리들이 정작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을 거름하기는 커녕 도리어 '사람으로' 거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해고와 구조 조정 그리고 비정규직이 바로 사람으로 사람을 거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광우병의 발병 원인은 소에게 소를 먹여서 키웠기 때문입니다. 광우병에 걸린 다우너 소의 처참한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거름으로 사용하여 사람을 키운다면 어떤 병에 걸리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없습니다. 나는 그것이 광우병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소름끼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연휴도 다 끝나고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한다. 해외 교류활동, 축제, 학생회 선거, 그리고 학교폭력 사안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있고 아이들의 고민도 다시 함께해주어야 한다. 출근 전날밤 사람을 키우는 일이란 게 속이 썩어도 이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최고의 인문학적인 일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래도 좀 힘이 난다. 이 책의 마지막 글귀도 참 인상적이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책을 읽으며 스스로 한 언약도, 가족과의 언약도, 아이들과 만나 나눈 수많은 언약들도 또 내일부터 어떤 꽃으로든 피어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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