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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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과학 탐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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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 과학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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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우리 과학, 뜨겁고 아픈 역사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n*****m | 2023.08.27 리뷰제목
1922년 가을, 아인슈타인은 일본을 방문한다. 아직 노벨상을 타기 전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수상 소식을 받았다. 일본은 세계적 과학 ‘스타’에 열광했다. 도쿄는 물론, 교토, 후쿠오카, 센다이, 심지어 삿포로까지 강연회가 이어졌고, 비싼 입장권은 모조리 팔려나갔다.   아인슈타인이 일본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식민지 조선에서는 ‘조선교육협회’의
리뷰제목

1922년 가을, 아인슈타인은 일본을 방문한다. 아직 노벨상을 타기 전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수상 소식을 받았다. 일본은 세계적 과학 스타에 열광했다. 도쿄는 물론, 교토, 후쿠오카, 센다이, 심지어 삿포로까지 강연회가 이어졌고, 비싼 입장권은 모조리 팔려나갔다.

 

아인슈타인이 일본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식민지 조선에서는 조선교육협회의 이름으로 몇 명의 일행이 일본으로 향했다. 조선교육협회는 민립대학 설립을 준비 중이었고, 아인슈타인을 조선으로 초청해 그 동력을 얻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아인슈타인 붐이 일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일정을 세세하게 보도하기도 했고,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을 소개하는 기사가 시리즈로 연재되기도 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조선 땅을 밟지 못했지만,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나아가 과학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듬해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전도유망한 학생들이 조선에 들어와 상대성이론 순회 강연회를 연 것이다. 역시 성황이었다. 과학으로 무엇을 해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이들이 있었다. 식민지 조선은 무기력하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에 아인슈타인을 맨 처음 소개한 인물은 황진남이다. 그는 함흥에서 태어나 하와이를 거쳐 캘리포니아대학을 다니다 3.1 운동 이후 대학을 그문두고, 안창호를 따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베를린대학과 파리의 소르본대학을 다니고 귀국한 후에는 여운형과 함께 좌우가 모두 참여하는 건국을 추진하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일본으로 갔고, 1970년 오키나와에서 쓸쓸히 사망했다.

 

최규남이라는 인물이 있다. 황진남이 아인슈타인을 소개하고 있던 그해에 연희전문 수물과(수학과+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야구선수로도 유명했던 그는, 졸업후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으로 유학간다. 그리고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물리학 박사다. 해방 이후 5대 서울대총장을 지냈고, 문교부 장관도 지냈다.

 

최윤식, 김영식, 한위건, 이춘호, 이태규, 도상록, 우장춘, 리승기, 이여성, ... 이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과학의 부흥을 꿈꾸던 이들이다. 판타 레이에서 유체역학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보였던 민태기가 이번에는 놀랍게도 우리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그속에서 고군분투했던 과학을. 비록 제목은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이라고 해서 아인슈타인을 부각시켰지만, 아인슈타인은 식민지 조선에 과학의 열정을 타오르게 했던 계기였을 뿐,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과학의 꿈을 조선에 펼치고자 했던 선구적인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민태기가 그리고 있는 이 역사는 단순한 과학사가 아니다. 모두 그 시대를 살아간 과학자였다. 시대의 좌절, 시대의 혼란이 고스란히 그들의 삶에 엉겨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서재필의 귀국에서부터 시작하고, 친일의 역사를 다루고, 변절의 역사,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 한글 운동, 해방 이후 좌우 대립 등등이 모두 등장한다. 그 시대를 살다간 과학자들의 삶이 과학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럼에도 과학을 모토로 살다간 이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시대의 우리 과학의 역사를 찬란하다, 위대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나라의, 한 사회의 과학 수준이라는 것은 어떤 한 명의 위대한 과학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과학 수준은 정말 별로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몇 명의 뛰어난 과학자, 과학에 관심을 가졌던 선각자만으로 우리의 과학 수준이 놀라웠다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한 그 한 움큼밖에 되지 않았던 우리의 과학자들도 여러 갈래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과 친일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고, 해방 이후에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과학이 그런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안된다. 누구나, 특히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는 이들은 모두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상처로 얼룩졌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로 황진남의 생애가 그걸 아프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과학이 있다. 어려운 시기에, 온갖 갈등에도 놓지 않았던 과학의 꿈이 100년이 세월이 지나 지금 우리의 과학이 되었다.

 

정말 모르던 얘기들이 많다. 인물들부터 낯선 이름에 헉헉거렸다. 조금 부끄럽다 생각했고, 그래서 정말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인물들의 관계는 더더욱 놀라웠다. 이것들을 어떻게 다 알아냈을까 싶을 정도다. 많은 자료가 뒷받침되었겠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은 도전 정신과 함께, 역사와 과학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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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암흑의 시대에도 우리 선조들은 과학의 꿈을 키웠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e*****u | 2024.06.16 리뷰제목
1890년대 조선은 이미 그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 고조은 어떻게라도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꿔서라도 다시 그 길을 밝히고자 했지만 이미 임계점을 지나 기울어진 나라의 운명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갑신정변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고, 동학농민운동은 청일전쟁으로 이어져 이미 일본의 마수가 조선을 덮치고 있었다. 일본의 간섭을 견제하고자 러시아에 의탁하기도 하였고(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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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0년대 조선은 이미 그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 고조은 어떻게라도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꿔서라도 다시 그 길을 밝히고자 했지만 이미 임계점을 지나 기울어진 나라의 운명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갑신정변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고, 동학농민운동은 청일전쟁으로 이어져 이미 일본의 마수가 조선을 덮치고 있었다. 일본의 간섭을 견제하고자 러시아에 의탁하기도 하였고(아관파천),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조선이 모르는 사이에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맺어 서로가 조선과 필리핀에 대한 식민 지배를 정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우리가 국사시간에 들은 적이 있는 서재필, 안창호, 민영환, 윤치호 등의 이름들이 거론된다. 반면 수업 시간에 들은 적이 없는 황진남, 최규남과 같은 과학도의 이름도 나온다. 1920년대 일제하의 조선에 알려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과학 사상이었을 것이다. 또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도 건립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자기 민족의 교육을 위한 대학을 설립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민족에게도 과학 교육을 통해 조국의 근대화와 자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상대성 이론에 대해 신문에 글을 싣기도 했을 것이고, 전국을 돌며 강연회도 주최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양자역학의 시대가 왔을 때에도 이것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부단하게 노력했을 것이다. 조선이 과학을 중시하지 않았기에 발전하지 못했고, 그랬기에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박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 시대의 과학도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최초의 이학박사였던 이원철, 최초의 물리학 박하 최규남, 이태규와 리승기, 그리고 우장춘까지 일본에서 공부했던 이들은 언젠가 일제는 패망할 것이며, 우리 조선은 반드시 독립을 쟁취해 다시금 이 땅에 과학의 꽃을 피우려 노렸했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조선의 해방은 좌우의 이념으로 갈라져, 과학도들에게도 어느 한 쪽의 사상을 강요하게 되었다. 게다가 1950년에 닥친 한국전쟁은 더욱 해방된 공간에서 어느 한 쪽으로의 선택을 강요하게 되었다. 하나로 합쳐도 간신히 먼저 간 선진국을 따라가기도 벅찬 입장에 과학자들도 남북으로 갈려 각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우범선의 아들인 우장춘 박사는 선친의 오명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종의 탄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새로운 배추와 제주도의 밀감 재배, 새로운 씨감자의 발견 등 우리나라의 종자 주숸을 세우는 것에 일조한다. 우장춘만이 아니라 선친의 전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인 사람들은 연좌제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우장춘은 임종의 직전에서야 간신히 훈장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일제새대에도 조선의 과학자들은 조국의 과학 발전과 조선 인민에게 과학을 보급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만주와 연해주, 식민 공간의 조선 반도와 일본 열도 곳곳에서 항일 독립 운동은 계속 이어져 왔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일본과 미국, 독일과 조선 등 세계 각지에서 조국의 근대화와 과학의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했다. 지금은 우리에게 잘 기억되지 않는 이름들도 많았지만 그 끊임없는 노력은 계속 지속되었다. 그랬었기에 해방된 공간에서 세계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게 과학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정규 수업 시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수많은 과학도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과학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그런 분들의 꿈이 지금의 우리에게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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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j******4 | 2023.09.01 리뷰제목
이 책은 제목도 눈길을 끌었지만 역사와 과학의 만남이 특이해서 손이 간 것 같다. 과학자로 친근한 김상욱씨과 역사강의사 최태성씨의 추천인 책이라 더 눈에 띄었는지 모른다. 암울한 일제강정기의 배경으로 한 숨어있는 과학자 이야기 이론이 함께 만나 풀어나가는 이야기 독립운동의 기반에 상대성이론이 있었다? 전국에서 물리학 교양 강연이 열리고 달 탐사와 로켓, 드론이 언
리뷰제목

이 책은 제목도 눈길을 끌었지만 역사와 과학의 만남이 특이해서

손이 간 것 같다.

과학자로 친근한 김상욱씨과 역사강의사 최태성씨의 추천인 책이라

더 눈에 띄었는지 모른다.

암울한 일제강정기의 배경으로 한 숨어있는 과학자 이야기 이론이 함께 만나 풀어나가는 이야기

독립운동의 기반에 상대성이론이 있었다? 전국에서 물리학 교양 강연이 열리고 달 탐사와 로켓, 드론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던 시대, ‘과학의 나라’ 조선을 읽는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가 전 세계 과학계를 뒤흔들던 그때 우리 과학자들 역시 폭넓은 국제적 행보를 보이며 당대와 흐름을 같이했다. 이 책은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과학으로 극복하려 했던 이들의 잊혀서는 안 될 이야기다. 전작 『판타 레이』로 교양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우리의 숨은 과학사다. 과학, 공학, 예술, 철학을 아우르는 민태기의 손끝에서 역사가 다시 조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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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j*******6 | 2023.09.02 리뷰제목
이 책은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과학 탐사기로,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과학으로 극복하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1920년,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기 전부터 조선에서는 이미 상대성이론이 화제가 됐고 대중을 위한 해설 강연이 신문에 연재됐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서양 과학 흐름에 무지했다는 인식을 바로잡아 주고 있습니다.
리뷰제목
이 책은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과학 탐사기로,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과학으로 극복하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1920년,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기 전부터 조선에서는 이미 상대성이론이 화제가 됐고 대중을 위한 해설 강연이 신문에 연재됐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서양 과학 흐름에 무지했다는 인식을 바로잡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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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조선의 뜨거운 과학사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p******5 | 2024.06.01 리뷰제목
왜 괴학을 알리려던 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가슴 아픈 우리 역사에 있다.과학이 역사의 산물이듯  그들 역시 자신이 발 딛고 있던시대와 분리되지 않았다. 개화기의 혼란이 그랬고, 일제 강점기갗그랬으며, 좌우  분열과 남북 분단이 그러 했다. 중간은 허용되지 않았고, 선택이 강요되었다. 그렇게 양쪽에서 공격받고, 친일 논란에  사상과 이념까지 얽히며
리뷰제목
왜 괴학을 알리려던 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가슴 아픈 우리 역사에 있다.
과학이 역사의 산물이듯  그들 역시 자신이 발 딛고 있던시대와 분리되지 않았다. 개화기의 혼란이 그랬고, 일제 강점기갗그랬으며, 좌우  분열과 남북 분단이 그러 했다. 중간은 허용되지 않았고, 선택이 강요되었다. 그렇게 양쪽에서 공격받고, 친일 논란에  사상과 이념까지 얽히며 하나씩 잊힌 것이다.
최선을 다해 그 시절을  견뎌낸 당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후속 세대에게 전달하여,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고, 어떠한 평가를  받든, 이 땅의  모든 기록은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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