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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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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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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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나는 단숨에 폴 오스터의 팬이 되었다 평점10점 | s*******1 | 2022.02.14 리뷰제목
제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소설입니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우선 재밌기 때문입니다. 재미라는 게 오락물만을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지적 자극을 주는 책도 좋아합니다. 다소 어려운 책을 읽을 때 느끼는 희열이 있습니다. 물론 모두 이해하는 건 아닙니다. 책과 씨름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책을 덮는 순간 보람 같은 게 느껴져서 좋습니다. 산을 오를 때는 힘들지
리뷰제목

제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소설입니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우선 재밌기 때문입니다. 재미라는 게 오락물만을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지적 자극을 주는 책도 좋아합니다. 다소 어려운 책을 읽을 때 느끼는 희열이 있습니다. 물론 모두 이해하는 건 아닙니다. 책과 씨름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책을 덮는 순간 보람 같은 게 느껴져서 좋습니다. 산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기분이 좋은 것과 비슷합니다.

<달의 궁전>은 많은 상징과 암시가 깔려있는 소설이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소설의 한 부분인 센트럴 파크의 부랑 생활을 그리는 데에도 생생한 현장감과 팽팽한 긴장감을 줍니다. 후반의 액자식 이야기들을 보며 오스터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임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수많은 암시와 상징을 해석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건 무얼 상징하는 거고 저건 이걸 상징하는 걸 거야' 추측하면서 읽었습니다. 무슨 추리 소설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 폴 오스터는 피츠제럴드와 샐린저에 버금가는 현존하는 미국 소설가입니다. 올해 나이가 75살입니다. 검색 사이트로 찾아보니 영화배우만큼 잘 생겼습니다. 눈빛이 강렬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는 다소 흐리멍덩한 눈을 상상했는데 반전입니다.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작가이지만, 국내에서는 수많은 책을 냈음에도 유명세만큼 많이 읽히지는 않은 작가입니다.

저는 소설의 문체도 좋았습니다. 오스터의 문체는 두 발을 땅에 딛고 대화하다 어느새 영혼이 점점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매력적입니다. 제 취향이기도 합니다. 간혹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둘 다 신비주의적인 문체를 씁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점도 보입니다. 하루키가 신비한 숲 속에서 헤매는 자아를 표현한다면 오스터는 도심을 헤매다 길을 잃은 주이공이 닿은 곳에 우연히 또 다른 문을 발견한 느낌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마르코 스탠리 포그'입니다. 마르코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인 에밀리 포그는 마르코가 11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어머니의 나이 겨우 29살이었습니다. 이후 포그(마르코)는 삼촌인 빅터 포그와 함께 삽니다. 빅터는 클라리넷 연주자입니다. 빅터는 포그 집안사람처럼 뚜렷한 목적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면서 공상에 잠기고 벼락같이 화를 내고 한참씩 무기력에 빠져드는 기질이 있습니다. 클리블랜드라는 훌륭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채용되지만 그 기질 때문에 곧 쫓겨나게 됩니다. '도라'라는 30대 과부와 결혼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습니다. 이내 곧 이혼을 합니다. 1966년 9월에 빅터는 자신이 속했던 그룹 '문라이트 무즈'를 해체하고 '문 멘'이라는 그룹을 결성합니다. 빅터는 음악이 잘 되지 않자, 친구의 권유로 희망을 안고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빅터는 그곳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생계를 위해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일하다 그만 심장마비(아마 마약을 한 것 같습니다)로 사망합니다. 빅터는 죽기 전에 그가 30년에 걸쳐 모은 1,492권의 책을 76박스에 담아 조카인 포그에게 남겨줍니다.

이제 유일한 핏줄마저 사라져 혼자 남은 포그는 빅터의 책을 한참이나 방치합니다. 포그는 포그 집안사람처럼 뚜렷한 목적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면서 공상에 잠기고 한참씩 무기력에 빠집니다. 공허함과 무기력이 그를 집어삼킨 것 같습니다. 그는 알바도 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갑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까지 몰립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다다르자 포그는 빅터가 물려준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책을 읽고 중고점에 책을 팔아 생계를 유지합니다. 빅터의 죽음이 포그의 삶을 얼마간 연장해 줍니다. 포그가 남긴 책 상자를 열어보니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책이 정돈된 방식이 독특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책을 분류할 때 분야나 작가 또는 출판사별로 정리합니다. 그러나 포그는 자신이 책을 사서 본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포그 역시 삼촌이 책을 정리한 순서대로 책을 읽습니다. 그렇게 해서 포그는 삼촌이 당시에 어떤 책을 읽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포그는 삼촌의 역사를 순서대로 읽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삼촌이 남긴 책의 권수는 1,492권입니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해입니다. 76박스는 미국이 독립한 해와 같습니다. 우연일까요? 소설로 보면 우연이지만, 작가의 의도된 우연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달의 궁전>은 일종의 성장 소설입니다. <데미안>과 같은 형식입니다. 오스터는 포그의 성장과 함께 역사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 것이 분명합니다. <데미안>도 당시의 역사를 반영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헤세의 역사는 정반합에 기반한 역사입니다. 역사는 일직선이며 언제나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논리입니다. 오스터의 해석은 다릅니다. 역사는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며 끝없이 반복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달의 궁전>은 일반 소설의 표준적인 작법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설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선과 암시를 통해 후반에 전개될 내용이 필연으로 귀결됩니다. <달의 궁전>은 우선 전개 방식이 일직선입니다. 암시와 복선은 없습니다. 마치 역사 교과서처럼 전개됩니다. 삼국 다음에 고려, 조선 다음에 현대로 나아가는 식입니다. 고려시대에는 광개토대왕과 김유신이 절대 나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달의 궁전> 전반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빅터 삼촌과 포그의 친구 짐머는 뒤에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뒤에 매우 중요한 인물인 노인 에핑과 중년의 솔로몬 역시 전반부에 언급이나 암시가 전혀 없습니다.

역사는 시간에 따라 그저 앞으로 나아갑니다. 포그 역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역사는 모든 시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만을 기록합니다. 포그 역시 자신이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건만 서술합니다. 이야기는 순전히 우연에 기대 전개됩니다. 그리고 역사처럼 반복됩니다. 우연이 반복되고 반복되다 보니 필연으로 향유됩니다. 반복을 들여다보는 독자들은 심지어 어떤 대단한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달의 궁전>은 3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개의 이야기는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완전히 별개로 작성되어 있어서 <뉴욕 3부작>처럼 3개의 작품으로 출판했어도 무방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삶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소진시키며 살아가는 젊은이 마르코 스탠리 포그의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이미 한 번의 삶을 말살하고 자신을 재창조한 노인 토머스 에핑.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숨기기 위해 점점 살을 찌워가는 슬픈 중년의 남자 솔로몬의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은 에핑의 사생아였고, 포그는 솔로몬의 사생아였습니다. 포그가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에핑이라는 늙은이는 알고 보니 포그의 친할아버지였습니다. 에핑의 부고를 알려주고 함께 에핑이 말한 동굴을 찾아간 중년의 솔로몬은 역시 포그의 친아버지였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아침드라마 못지않은 막장입니다. 온통 우연으로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포그가 여자 친구인 키티 우를 처음 만난 것도 순전히 우연 때문입니다. 키티는 뉴욕 매츠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포그도 그날따라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사실 포그는 시카고 컵스를 좋아했고 단지 금전 문제 때문에 뉴욕 매츠 티셔츠를 입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소설 전체를 이끄는 방식은 결국 우연과 반복입니다. 오스터가 역사를 인식한 방법대로 소설을 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스터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요? <달의 궁전>이 아무리 역사적 우연을 차용해 소설을 구성했다고 해도 그건 그저 소설의 형식입니다. 중심 내용은 아무리 그래도 포그가 성장하는 내용입니다. 오스터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의 방황하는 젊은이를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터에게는 추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그것도 인간 자체라기보다 그 인간이 지니고 삶을 살아가는 마음의 지도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추적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 그 젊은이는 무엇 때문에 혹은 어떤 명령에 의해 그런 삶을 사는가 하는 매우 실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스터 소설의 매력은 결국 인간 마음속 깊은 곳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포그는 센트럴 파크의 부랑자가 됩니다. 키티 우는 온 도시를 뒤져 사라진 포그를 찾아 헤맵니다. 키티 우가 사라진 포그를 찾는 과정은 결국 포그의 마음의 지도를 찾는 과정과 같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포그를 발견한 곳도 깊고 어두운 숲 속이었습니다. 키티 우는 이미 포그의 마음 깊은 곳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시절 포그는 왜 그렇게 자신을 소진시키며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까요? 돈 없으면 일을 하라는 집주인의 꼰데 같은 충고가 과연 포그에게 도움이 됐을까요?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건 또는 하지 않건 다른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오스터는 세계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분명해 보입니다. 운명이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에 몰두합니다. 그 기조는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르코는 실제 역사 속 인물입니다. 중국을 처음 찾아간 유럽인이죠. 마르코 포그가 사귄 여자 친구 키티 우는 중국인이었습니다. 포그라는 이름은 <80일간의 세계일주>의 필리어스 포그를 연상하게 합니다. 앞으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게 될 징표로 여기게 되는 것이죠. 토머스 에핑과 솔로몬 바버 모두 이름이 가진 운명을 이야기합니다. 토머스는 노력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화가로, 바버는 이발사라는 뜻이며 바버는 소설 속에서 대머리로 등장합니다. 운명 치고 너무 아이러니합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아이는 온 마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한 인간의 성장은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삶은 세계(모든 환경)의 투영이기도 합니다. 오스터는 가족의 영향을 넘어 사회와 국가의 영향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달의 궁전>의 첫 번째 문장입니다. 저는 책을 끝까지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오스터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저 문장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저 문장에 압도됐습니다. 엄청난 힘이 느껴졌습니다. 소설 속에서 달은 수없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모두 그저 지나가는 배경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소설 속 '달의 궁전'은 그저 중국 식당 이름일 뿐이며 그마저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저 문장은 주인공 포그와 1대 1로 병치되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포그의, 혹은 소설 전체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간혹 어떤 부분에서는 배경을 넘어 포그를 삼켜버리기까지 합니다. '달'이라는 배경이 포그에게, 독자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소설은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터는 한 인간의 삶의 지도가 '달'을 통해 어떻게 그려지는지 추적 하합니다.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고요. 이에 대한 대답은 오스터의 또 다른 소설 <뉴욕 3부작>을 읽으면 좀 더 명확해질 수도 있습니다(더 묘연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뉴욕 3부작>은 본격 사람 추적 소설이니까요. 여기서 다 설명을 할 수는 없고 읽어보시면 제 말을 이해하실 겁니다.

포그에게 빅터 삼촌의 죽음을 알린 사람은 닐 암스트롱이라는 경찰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같은 이름의 우주 비행사가 달에 발을 딛습니다. 포그에게 닐 암스트롱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포그는 분명 우리와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아이러니입니다. 그 작은 틈새가 어마어마한 삶의 간극을 만들지도 모릅니다.

인류가 달에 발을 딛는 순간 달은 또 어떨까요? 어제와 같을까요? 달은 같은 달이지만 이제 인류에게 달은 다른 의미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어제의 달은 미래였다면 오늘의 달은 현실이 됩니다. 물론 달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구는 희망으로 보이겠지만, 우리는 지구를 희망이 아닌 현실로 인식합니다. 우리가 달을 정복하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 또한 어쩌면 핸드폰 앱으로 짜장면을 시키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달에 도착하는 순간 '배고픔'이라는 인간의 가장 현실적인 본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달의 궁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역시 많은 것들이 반복되고 변주된다는 것입니다. <달의 궁전>에서 반복과 변주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연출할 뿐만 아니라 핵심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오스터는 그런 암시들을 소설 여기저기에 숨겨 두었습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네 아빠는 오래전에 죽었어.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아버지를 검은 머리칼의 빅 로저스, 4차원 세계로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한 우주 비행사로 상상하곤 했다.


포그의 상상은 아버지 솔로몬의 상상과 일치합니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을 어떤 식으로든 채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태양은 과거고, 지구는 현재이고 달은 미래이다.


포그가 중국 식당 '달의 궁전'에서 식사를 하고 포춘쿠키 속에서 나온 점괘입니다. 그리고 이 문구는 에핑이 중요하게 여긴 '테슬라'의 자서전 <나의 발명들>의 본문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주인공이 두 번이나 접함으로써 우리는 저 문장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우리는 서쪽으로 길을 떠나 황야로 들어서게 될 거다. 카우보이와 인디언들의 땅에 가 있는 한 무리의 매끈한 도시 사람들. 하지만 나는 그 탁 트인 공간, 사막의 하늘 아래서 내 음악을 연주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어. 혹시 거기에서 내게 어떤 새로운 진실이 드러날지 누가 알겠니?


또한 빅터가 서쪽으로 길을 떠나면서 '혹시 거기에서 내게 어떤 새로운 진실이 드러날지 누가 알겠니?'라고 하는데, 이는 이야기 후반으로 가게 되면 포그, 에핑, 솔로몬 세 사람 모두에게 반복됩니다.

 

왼쪽으로 나 있는 창문과 비스듬한 각을 이룬 곳에 서 있다가 그 창문으로 눈길을 돌렸고, 바로 그 순간 앞쪽의 두 건물 사이로 난 틈새를 볼 수 있었다. 그 부분 전체가 <달의 궁전>이라는 글자가 적힌 분홍색과 파란색의 선명한 네온사인 불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달의 궁전>이라는 네온사인을 지켜보면서 이 조그만 아파트가 정말로 내 살 곳임을 알아차렸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다시 반복됩니다.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 여기가 내 삶이 시작되는 곳이야. 내가 해안의 굴곡을 바라보고 있을 동안 한 집 두 집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다음에는 언덕 뒤에서 달이 떠올랐다. 달아오른 돌처럼 노랗고 둥근 보름달이었다.


달은 차오르고 비워지고 다시 차오르기를 반복합니다. 삶 역시 나아가고 멈추고 다시 나아갑니다. 우리는 소설 마지막에 포그가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희망만을 느끼지 않습니다. 포그의 아파트에서 그랬듯이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며, 앞으로 포그의 인생이 순탄하리라 전망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오스터에게 역사는 다양한 조건들이 엉켜 돌아간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먼 이야기와 바로 내 옆의 이야기가 함께 물리고, 그리고 반복과 우연에 의해서 역사는 만들어진다는 것을. 필연과 복선과 운명은 소설에서는 가능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그저 우연과 우연이 겹쳐 반복을 통해 필연처럼 향유될 뿐이라는 것을 작가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면 풍경도 바뀌고 만나는 사람도 바뀝니다. 그리고 반복됩니다. 반복되지만 변주는 일어납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스터는 그것은 바로 희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희망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니며 죽는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 속에서 달은 희망입니다. 인간에게 희망은 삶의 전부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마음속에 달이 떠오르면 인간은 살아갈 수 있지만, 달이 사라지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에핑에게 마지막 달은 찢어진 우산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옛 연인이었던 에밀리의 무덤 앞에서 달을 맞이합니다. 두 사람 모두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육신의 죽음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떠오르는 달이었습니다.

<달의 궁전>은 한번 잡으면 좀처럼 놓기 어려울 정도로 재밌습니다. 작가 오스터는 사실적인 문체로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를 만듭니다. 인간의 고뇌와 방황, 무엇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지에 대해, 그 명령을 추적하는 작가, 오스터. 저는 <달의 궁전>을 읽고 오스터의 매력에 푹 빠진 나머지 단숨에 그의 팬이 되었습니다.



#달의궁전 #폴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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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그 해 여름,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평점10점 | g******1 | 2015.11.20 리뷰제목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 해 여름이었다. 인간이 달 위를 걸을 때, 그의 달은 몰락하고 있었다. 박스로 이루어진 집을 상상해본다. 그 박스에는 이 세상 자신을 사랑하는 마지막 혈육이 사랑했던 책이 한 가득 들어있다. 그 박스를 남기고 조금씩 조금씩 몰락해가던 외삼촌 빅터는 기어이 완전히 몰락했고, 세상을 등졌다. 이 넓디 넓은 세상에, 거칠고 험한 세상에  아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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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 해 여름이었다. 인간이 달 위를 걸을 때, 그의 달은 몰락하고 있었다. 박스로 이루어진 집을 상상해본다. 그 박스에는 이 세상 자신을 사랑하는 마지막 혈육이 사랑했던 책이 한 가득 들어있다. 그 박스를 남기고 조금씩 조금씩 몰락해가던 외삼촌 빅터는 기어이 완전히 몰락했고, 세상을 등졌다. 이 넓디 넓은 세상에, 거칠고 험한 세상에  아무 피붙이 없이 혼자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복수로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것, 스스로 몰락해가는 것. 완전하게 무기력해지는 것. 맨 끝까지 그렇게 가보는 것. 그것 말고는 없다. 그가 몰락해가는 과정은 일반적인 눈으로 본다면 정말이지  도통 이해가 안되는 과정이지만, 독자는 너무나도 깊이 주인공 포그에게로 감정이입을 한다. 그리고 더욱 더 처절하게 자신을 몰락의 끝으로 몰아부치고 극기야는 추락을 결심하는 것같은 행동을 이해할 것 같다. 혼자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리라.


빅터삼촌이 남기고 간 책 상자들은 의자가 되고, 침대가 되고 테이블이 되고, 그리고 밑둥까지 내어주는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는 단 하나의 의지가 된다. 책이 담긴 박스들은 그에게 삼촌이 남긴 사랑이었다. 아버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일찍 사고로 죽었지만, 엄마가 남긴 유산과 뭔가 그와 통하는 듯한 천재 외삼촌은 그런대로 그를 바르게 성장시키고 대학 교육에까지 이르게 했다. 작정하고 잉여인간이 된 포그는 책을 팔아 생활을 유지한다. 책이 없어진다는 것은 외삼촌의 흔적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 흔적이 없어지면서 그가 살던 아파트의 책상자 가구들 역시 점점 없어져간다. 헌책방 주인은 교묘하게 책값을 낮게 쳐주고, 마지막 책을 모두 팔아치운 후 그의 거처는 센트럴 파크로 옮겨진다.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고 비를 맞으며 한데서 자는 중에도, 가끔 친절한 청년들을 만나면 먹을 것을 얻어먹기도 하는 노숙자의 생활에 인이 박힐 무렵에 다 죽어가는 그를 찾아낸 사람이 있었다. 포그는 단 한번의 인연으로 그를 잊지 못하고 세상을 뒤져 자신을 찾아내고 후에 연인이 된 키티 리를 만난다.


이제 노숙자 생활을 접고 충만한 사랑으로 새 삶을 살아가는 포그, 그의 철없던 방황은 끝난 것일까.  여기서부터 또다른 비극과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나는 에핑이라는 괴팍한 노인의 집에 돌보미로 들어가서 생기는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이야기, 또 하나는 아름다운 청춘에 새긴 키티 리와의 사랑과 열정과 이별 이야기. 키티 리의 등장으로 로맨틱한 스토리가 전개되나 기대했던 독자에게, 열병같은 사랑은 만남 그 자체보다 헤어짐의 방식을 더욱 애닯게 한다. 사랑하는데 함께 같은 곳을 볼 수 없는 두 사람. 둘은 너무 달랐던 것이다. 외롭고 고독하게 자란 포그에게 새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슴 벅찬 설레임이다. 이제 막 날개를 펴기 시작한 댄서 키티 우에게 새 생명은 인생의 파멸을 의미한다. 뜨겁게 사랑했던 남녀는 조금도 여자 몸 속에 자라나기 시작한 생명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다. 잉태된 생명은 어미의 뱃속에 있고, 포그는 한줄기 빛도 못본채 지워버린 생명에 대한 집착으로 키티 리를 용서하지 못한다. 심리 모사가 어찌나 탁월했던지...


에핑과의 우연은 결국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필연으로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데, 출생의 비밀에 맞닥뜨린 이 가엾은 젊은 청춘은 또다시 자신을 고립시키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처음의 고립과 두번째의 고립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제 그는 더이상 숨쉬기 운동과 굶기 작전으로 시간을 때우지 않는다. 그를 처음부터 힘겹게 했던 출생의  근원지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우연적인 요소를 우리는 크고 작은 우연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라고 이야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연은 우주를 창조했고, 지구상의 생명을 창조했고, 오늘날의 인간을 만들어냈다. 부자가 눈멀고 괴팍한 노인의 죽음을 통해 만나는 것 쯤은 사소하다. 


폴 오스터는 외롭고 고독한, 방황하는 20대 청춘의 정서적 등가물로 달을 선택하였다. 달... 달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 해 방황하는 은둔자 포그가 노숙자로 전락하던 시기에 미국을 환히 비추던 달은 미국의 미래였다. 그 달 아래에서 포그는 유일한 혈육을 잃었으며, 방황했다. 달빛은 세상 구석구석까지 스미지 못했다. 방황이 끝나고 사랑이 끝나고 인생의 비밀이 벗겨지고, 또다시 충격 가운데 서게 된 포그. 달의 궁전은 그가 그렇게 어두운 달빛 아래 발견된 자아일까.





1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0 댓글 19
종이책 뭘 말하고자 하는지 잘 몰랐다... 평점5점 | k**t | 2004.08.16 리뷰제목
읽고 싶은 책이 선정되었을 때, 그것도 좀 분량이 나가는 책은, 잡기 며칠 전부터 숨고르기가 들어간다. 회사의 일이 어떤 상태인지, 개인적으로 시급하거나 복잡한 일은 주변에 없는지를 판단하고, 달리기 출발선에 서는 심정으로 마음을 준비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읽는 도중에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바쁜 일이 생겨 책을 중단했을 경우, 귀한 책에 대한 결례를 할 수 있다는 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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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이 선정되었을 때, 그것도 좀 분량이 나가는 책은, 잡기 며칠 전부터 숨고르기가 들어간다. 회사의 일이 어떤 상태인지, 개인적으로 시급하거나 복잡한 일은 주변에 없는지를 판단하고, 달리기 출발선에 서는 심정으로 마음을 준비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읽는 도중에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바쁜 일이 생겨 책을 중단했을 경우, 귀한 책에 대한 결례를 할 수 있다는 나만의 문화이기도 하다. 마침 회사 일을 삼사일은 뒤로 미룰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바쁜 일을 막 끝내고 좀 여유가 생겨, 가벼운 책들만 매일 보다가 이 책을 들었다. 워낙 유명해진 책이고 추천인들이 많은 탓에 기대가 컸다. 몇 장 읽어나가자 작가의 치밀하고 살아있는 듯한 심리묘사에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 곳곳에서 나타나는 지나치게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은 흥미를 줄이기 시작했다. 지루해 지기도 하고.... 결국 나흘 만에 완독을 하기까지 지루한 감이 많았고, 이건 유명한 작품이니 감동을 받아야 하는 데 하는 상투적 감정이 엄습하여 불쾌감마저 일어났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지고 능력이 부족한 탓에 명품을 구분 못하는 것이겠지 하는 적절한 핑계로 책을 덮으며, 기회되면 다시 읽자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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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달이라는 구멍으로 보는 세계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k********2 | 2014.09.11 리뷰제목
폴오스터 삶을 쓰다.   최근에 인간사랑에서 출판된 <글쓰기를 말하다>를 읽다가 인터뷰와 글쓰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달의궁전>을 읽어야 했다. 다행이도 블로그 이웃이셨던 dean님이 선물해주신 책이 서재에 꽂혀 있어 읽기 시작했다. (참 ! 요즘 Dean님은 잘 지내시는가? 불충한 이웃 이제서야 님이 선물해주신 책을 읽사옵니다 ! ~)     우리의 삶은 사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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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오스터 삶을 쓰다.

 

최근에 인간사랑에서 출판된 글쓰기를 말하다를 읽다가 인터뷰와 글쓰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달의궁전을 읽어야 했다. 다행이도 블로그 이웃이셨던 dean님이 선물해주신 책이 서재에 꽂혀 있어 읽기 시작했다. (참 ! 요즘 Dean님은 잘 지내시는가? 불충한 이웃 이제서야 님이 선물해주신 책을 읽사옵니다 ! ~)  

 

우리의 삶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에 속해 있는 거죠.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 본들, 세계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줄곧 이런 미스터리들과 부딪칩니다. 그결과는 실로 끔찍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코믹할 수도 있겠죠.-<폴오스터의 글쓰기중에서.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우선은 폴 오스터가 말하는 삶은, 우연의 연속성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우연의 연속이 곧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  어쩌면 이 우연이라는 것이 조각 조각 따로 떨어져 있는 타인의 삶과 이어주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쉬운 방법이 아닐까. 폴 오스터가 말하는 세계는 거대한 입면체로써 그 세계를 이어주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면 바로 달이다. 달이라는 구멍으로 보는 세계,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즐거운 상상인가.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로 시작되는 첫 구절이 인상깊은 이 소설은 주인공 포지가 달과 인간세계를 연결하는 삶의 첫 출발점이다. 이때의 달은 그저 분홍색과 파란색의 네온사인으로 휘황한 달의 궁전이라는 간판에 MOON에서 O가 하나님의 눈동자처럼 보이던 그 순간에 포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상의 세계와 현실이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포그의 삶은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삶은 어땠냐고? 그 이전의 삶은 무기력의 최고봉이었으며, 상실과 고통과 절망의 나날이었으며, 체제의 실패자였으며, 사보타주의 도구이자, 낙오자였다.

 

사생아로 태어나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남겨진 포그는 클라리넷 연주자이며 독신이었던 빅터삼촌과 함께 살게 된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지독하게 게으르지만 낭만적인 예술가였던 빅터 삼촌으로부터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었던 상상의 마법을 배웠던 그는 자신의 이름자가 지닌 '똘마니, 바보멍청이' 라는 의미를  원고라는 뜻 ‘ manuscript’을 줄여서 'M.S포그라는 서명을 만들어 낸다. 빅터삼촌의 이런 상상의 마법 덕에 포그는 그래도 행복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나가는 작가야. 네가 쓰고 있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건 원고인 셈이지. p14

 

그러나,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은 삼촌 빅터가 죽으면서 사라져 버렸다. 포그에게 남은 것은 삼촌이 남긴 천권의 책과 얼마간의 빚, 약간의 유산이 전부였다. 삼촌의 책을 팔아 근근히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더이상 팔 책도 남아있지 않게 되자 아파트에서도 쫓겨난다. 배고픔과 무기력증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외로움에 떠밀려 간 곳은 '센트럴파크' 공원이었다. 음식이 넘쳐나고 가끔은 일반인처럼 보여지기도 하는 그곳에서 포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 달의 궁전에서 우연히 뽑은 그러나 운명같은 이 글귀처럼 태양아래 죽어가던 포그는 단 한번의 만남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 키티와  대학교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짐머에게 구원된다.  짐머와 키티의 간호로 극적으로 살아난 포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자신이 빠져있던 상상의 세계와 자신의 슬픈 운명과 과도한 자기연민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학교 취업상담실을 통해 휠체어를 타고 눈이 먼 화가 에핑의 비서업무를 소개받으며 새 삶을 시작하는 포그.  '한편으로는 몹시 고약하지만 한편으로는 존경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선량한 사람'인 화가 에핑은 또다른 우연의 시작이다. 우연의 연속은 포그에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고 그 세계는 또 다른 세계를 연결해준다. 아무도 없었던, 이 세상에 오로지 혼자라 생각했던 포그에게 에핑과 바버는 태생에서부터 미완일 수밖에 없었던 포그의 달을 보름달처럼 꽉차게 만드는 운명적 필연이자, 잃어버린 조각이다. 

 

 

   그것은 모두 놓쳐 버린 관계, 잘못된 시간에 옳은 곳에, 옳은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 언제나 서로를 놓쳤고,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전체적인 일을 알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는 결국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의 연속이 되고 말았다. 그 이야기의 조각들은 처음부터 모두 거기에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할지 몰랐다.

 

우연의 연속으로 포그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죽었다던 아버지를 만난다. 과거와 현재를 ,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며 '삶'은 계속된다. 실제로 이런 우연의 연속성은 '삶'을 이루는 역사이기도 하다. 아무리 찬란했던 순간이었더라도 과거는 지나가면 그뿐이고 달의 몰락에 슬퍼하지 말며 현실을 충실히 살아낼때 비로소 삶의 문을 열린다. 그래서 언제나 뜨는 태양은 과거이고 현재는 언제나 드라마틱하며 (세상이고).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우연이라는 달은 미래이지만, 그 미지의 세계와 조우하게 하는 일은 폴오스터와 같은 작가가 있기에 가능하다. 달처럼 은은하고 평화로운 세계에 잠시 다녀온 기분이다. 상상은 곧 현실이다. 달이라는 구멍으로 보는 세계는 그래서 더욱 판타스틱하다.

 

※폴오스터가 말하는 달은 많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모든 것의 시금석이 되는 상징적 의미의 달이다. 신화로서의 달, 찬란한 다이애나, 우리 내부의 어두운 모든 것들의 이미지로서의 달은 상상, 사랑, 광기이다. 동시에 물체로서의 달, 천체로서의 달, 하늘을 부유하는 생명 없는 돌로서의 달이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며 초월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달은 역사, 특히 미국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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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달의 궁전 -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관계 이야기 평점9점 | d******4 | 2013.02.18 리뷰제목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일까? 성인이라면 당연히 스스로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의 구성원으로, 문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맹목적으로 흡수할 수 밖에 없는 유년기, 독자적인 가치관을 정립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청소년/청년기, 마음대로 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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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일까? 성인이라면 당연히 스스로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의 구성원으로, 문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맹목적으로 흡수할 수 밖에 없는 유년기, 독자적인 가치관을 정립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청소년/청년기,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의 무게에 짖눌려 살게 되는 장년기를 떠올려 봤을 때, 과연 자유의지로 살아갈 수 있는 시기가 얼마나 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인간의 삶이란 불확실성을 근원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 발생하는 사건들, 그 속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변이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만들어 낸다. 맞닥뜨리는 삶의 문턱들이 우연인지 운명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때로는 뛰어넘고, 회피하고, 부수어 가면서 자신만의 삶을 만든다.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 에서는 이런 우연과 운명에 얽혀 삶의 롤러코스터를 타야만 했던 세 남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머니와 외삼촌의 죽음으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스탠리 포그'는 경제적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노숙자의 삶을 살게 된다. 기아 상태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그는 극적으로 친구에게 구출되고, '키티'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후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눈 먼 노인 '에핑'의 말벗이 되어 주는 일을 하게 된 포그는 그의 신뢰를 얻으면서 에핑의 자서전을 남기는 일을 돕게 된다. 에핑은 자서전을 자신의 아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또 한명의 남자. '솔로몬 바버'. 포그는 에핑의 사후에 자서전을 전해주기 위해 그를 만나게 되고 세 남자 간에 얽혀 있던 운명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 나가기 시작하는데...


포그처럼 세상에 홀로 남겨져서 극한의 밑바닥 인생을 살아본 적도 없고, 바버처럼 사회도덕적인 문제로 주저앉은 적도 없으며, 다리를 못 쓰게 되고 눈이 멀어버린 에핑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본 적도 없기에 그들의 심리나 행동들에 백프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뚜렷이 내게 전달되었다.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었던 인생사에서 행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스러움. 회복을 원하며 노력을 해 보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서전을 남기며 죽을 날을 맞춰 죽음을 맞이했던 에핑과 자발적 노숙자의 삶을 선택하고 운명의 시작점을 찾아 떠나게 되는 포그. 어그러진 인연의 조각들을 맞추고자 포그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목숨을 잃게 된 바버의 모습에서 처해진 상황 내에서 각자의 삶을 만들어 가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책 속 세 남자의 이야기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것은 운명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관계를 맺게 되고 생의 나무에 가지를 치게 됨은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있기 때문일거다. 누구나 원치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어쩌면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크고 작은 굴국의 반복인지라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밑바닥인지 최상단인지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상황일지라도 자그만한 요소하나가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인생임에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그려나가야 한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인연의 끈으로 엮여 있을지 모르니까....


워낙 많은 리뷰가 작성이 되어 있고, 그 안에 내용의 대부분이 담겨 있기에 굳이 감춰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그들 각자가 겪은 장대한 인생사와 그 안에서 느꼈던 삶의 고뇌와 심리묘사, 세 사람의 관계와 결말에 있기 때문에 이 리뷰를 통해 드러내면 재미가 반감될 것 같다. 세 남자의 인생사와 내면의 변화과정을 기가 막히게 풀어낸 이 소설에 깊이 빠져들었다.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행동들에 의아함도 들었지만, 내 심경의 변화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데 아무렴 어떤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맺어가는 우연을 가장한 운명 이야기. 나의 삶과 인연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태양은 과거이고, 세계는 현재이며 달은 미래다.>

나의 달은 어떤 모양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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