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도서라기 보다는 복수에 관한 여러 일화들을 묶은 인문학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초반에 비비원숭이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고 신기하다. 인간만이 복수와 응징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복수와 앙심을 기본 반응으로 장착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과잉통제형 가학적 부모의 영행이 크다고 하는데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가정환경을 톺아봤을 때, 양육의 중요성을 또한번 깨닫게 해준다.
종교에서도 복수에 대한 교리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개인의 복수는 상황을 악화시키기 마련이다. 이슬람교의 성법 샤리아에서는 키사스라는 응징 제도가 있다고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받은대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앙금에 대해 서로 주고 받다보니 더욱 폭력적인 위협에 노출되는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저지른 일에는 반드시 죄가 따른다고 봐야할 것이다. 복수 문학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다. 사람들이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을 즐겨보는 이유도 이런 응징에 대한 흥분이 서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복수를 둘러싼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라 이런 소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복수는 절대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떤 복수는 해도 된다고, 아니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스티븐 파인먼은 영국 배스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다. 런던대학교에서 직업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셰필드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복수의 뿌리와 정치, 종교, 전쟁, 문학 등에서 복수를 대하는 자세,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복수의 양상, 사이버 테러와 리벤지 포르노 등 최근 이슈가 된 복수 문제 등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복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다. 우리의 생물사회적 기질에 섞여 있는 강력한 욕구다. 인류의 조상은 사유물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복수를 아무런 제재 없이 해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사회가 팽창하고 도시화되면서 사적 복수가 공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고, 이에 사적 복수를 국가가 대신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종교가 적에게 복수하는 대신 용서하라고 가르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같은 이유다.
그렇다고 지상에서 모든 형태의 복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형태의 복수가 사라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성차별, 인종차별 등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복수를 택한 사람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여성 혐오가 만연한 문화권에서 직접 보복을 감행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건 대개 이판사판으로 몰릴 때까지 몰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대량 학살, 전쟁, 독재 등의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에 대한 처벌도 다시 봐야 한다. 이들은 반드시 응분의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며, 이들이 사면을 받거나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는 경우 생존 피해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더욱 커진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직장 내 보복 행위 사례가 나온다. 대개의 직장 내 보복 행위는 미묘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내가 쓴 보고서를 자기 공으로 가로채는 것이 습관인 상사가 중요한 보고를 하는 날 아무 예고도 없이 결근을 하거나, 진상 손님에게 막말을 들은 승무원이 손님의 짐가방을 엉뚱한 곳으로 부쳐버리는 식이다.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불쾌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더 큰 사고나 재난이 일어날 수 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아마 사직서를 상사의 면전에 던지고 비리를 폭로하며 복수하는 통쾌한 상상을 할때가 있을 것이다. 나역시 이상한 상사들을 많이 만났었고 매번 분노하고 ‘내가 회사 그만둘때 두고보자’라며 울분을 삭히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복수를 하며 그만둔 적은 없다. 그 순간이 지나면 그냥 흐지부지 잊혀지기도 하고 저 불쌍한 인생 내가 한번 구제해 준다며 넓은 아량을 베풀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힘든 순간에 상상하는 복수는 달콤하기만 하다.
하지만 복수를 정당화하기도, 무조건 나쁘다고하기도 힘들다. 복수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기에 종교,정치,문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역에서 복수의 사례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복수는 항상 매력적이고 사람들을 흥분하게 한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복수가 주된 소재로 쓰이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대리만족으로라도 악당이, 누군가에게 잘못을 한 사람이 똑같이 앙갚음을 당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 걸까?
복수는 인간의 끈질기고 강력한 욕구다. 우리의 생물사회적 기질에 붙박이로 섞여서 전수되고, 슬픔, 비탄, 굴욕감, 분노 같은 격한 감정으로 촉발되는 원초적 본능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조직 행동 분야에서 탁월한 명성을 쌓아왔으며 노동과 사회정의에 관한 책과 논문을 꾸준히 써왔다. 그렇기에 사회 여러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복수의 문화사에 대해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오래된 복수의 사례들과 소설과 같은 문학에서의 복수, 그리고 가장 최근의 정치적 사례까지 복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접하는 놀라운 실제 복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설보다 더 소설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소심한 복수에서부터 한사람의 생명, 한 나라의 존폐 여부를 결정짓는 것까지 우리 삶과 인간의 역사에서 복수가 이렇게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우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죄 지은 이를 용서하라고 이야기하는 종교에서도 복수를 정당화하기도 하고, 전쟁으로 인해 끝없이 이어지는 보복행위로인해 피해를 입는 많은 사람들과 특히 대부분의 타깃이 여성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 아팠다. 일본의 난징학살이나 혼전 성교나 중매결혼 거부 등으로 본인과 가족에게 수치를 준 딸을 축출이나 죽음만이 치욕을 만회하는, 죄를 씻는 방법으로 여기며 자행되는 명예살인은 과연 복수라는 감정으로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복수를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는다. 복수는 개인의 안녕,영토,긍지,명예,자존감,신분,역할을 위협하는 것들을 억제하고 앙갚음은 부당 행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복수는 이지러진 평형과 서열을 재설정한다. 복수는 개인 간 암투, 집단의 내분, 노사 분쟁, 내전과 국제전에 존재하는 암묵적 관습법이며 자아와 공동체의 궁극적 자기 진술이다. 타인의 침범을 막는 방어 수단이자 경고 조치로 날것 그대로의 정의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주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직장 내 작은 복수들은 약간의 사기 진작, 피할 수 없는 울분과 불의에 대한 해독과 같은 상당한 효과를 낸다고도 한다. 또한 정치에서도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흠집내는 네거티브 전략이 항상 대중들에게 먹혀든 사례가 많기에 수많은 정치인들이 누군가 자신을 비난하면 똑같이 상대방을 비난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복수는 인간의 끈질기고 강력한 욕구인 것이다.
고통을 고통으로 되갚고 싶은 격렬한 욕망이 끓어오른다. 응징 욕구는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고, 도덕과 이성이 만든 제약들을 우회하는 길을 끝없이 찾는다.
분노, 박탈감, 불평등/불공평/불공정한 느낌, 배신감, 착취당한/이용당한 느낌, 좌절감, 수치심, 시기/질투... 이 모든 것이 유발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 책의 제목에 쓰인 '복수'이다. 이 책에서는 종교, 영화, 문학, 정치인 같은 소위 셀럽들과 국가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복수라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고 사용되고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영화나 문학작품이 아무래도 저자가 영미권이다보니 그쪽 작품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는데 이 파트만 우리나라 작품으로 바꿔넣는다면 훨씬 더 재밌게 읽혔을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류의 책을 볼때보다 간혹 느끼지만 저자와의 협의를 통해 국내버전으로 필요한 부분을 대체해준다면 훨씬 좋을텐데 아쉽다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같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같은 것도 있고 '테이큰' 같은 서양영화에 대비해서 우리나라의 '아저씨'같은 것도 있으니
페이백이라는 영화로 대표되는 안티히어로가 왜 주목받는가에 대한 부분에서는 요즘 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즐기진 않지만 그 스파이더맨 말고 빨간 유니폼입고 엄청나게 까부는 히어로물이 주인공인 영화가 생각나는데 도대체가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 또 자서전으로 복수하는 이야기가 앞부분에 등장하는데 책 말미에 모든 정치인의 회고록은 '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는지에 대한 10만단어짜리 변명'이라고 비유한 부분을 보며 빵터졌다는.
헤밍웨이가 헤어진 부인에게 사적인 감정을 담아 악랄한 표현이 담긴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헤밍웨이라는 대작가에게 이런면이 있었나 싶어 흥미로웠는데 어쩌면 잘 알려지진 않았더라도 우리나라 소설가의 많은 작품속에서 알게모르게 픽션속에 이런식으로 사심을 담은 복수가 녹아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러다이트 운동의 시초가된 사보타주라는 단어의 기원도 흥미로웠는데 사보가 프랑스 공장노동자들이 신던 나막신이었고 이걸 기계 속에 던져넣어 고장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고.
얼마전에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다시 들춰볼일이 있었는데 거기에 복수심이라는 챕터가 있었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혹시 있다면 거기서는 어떤 작품을 다뤘을지 궁금해진다. 라고쓰고 찾아보니 '토요일'의 이언 매큐언과 '빙점'의 미우라 아야코라는 작품이 거론되어 있는듯. 둘다 안본 작품이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