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고 있는 키키 키린은 2018년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에서 할머니로 분했던 모습이 전부입니다.
이번에 책을 읽게 된 계기로 키키 키린이 출현한 영화들을 찾아보니 거의 맡은 배역이 할머니 역할이었습니다. 70살이 넘은 키키 키린의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한 것 같지만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이라는 주제로 출간 된 키키 키린을 읽어보니 작은 키에 두드러지지 않은 미모 덕분에 젊었을 때부터 이미 할머니 역할을 맡아 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동년배 여배우들은 아직 곱기 때문에(40대 역할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계속 할머니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가지 알게 된 것은 인자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강한 성격으로 인해 배우에 길에 들어와서는 연예계에서 쫓겨 날까봐 부동산을 겸업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만의 뚜렷한 개성을 가진 키키 키린이 결혼 초부터 죽기 직전까지 TV나 잡지 인터뷰, 영화 시사회 등에서 남긴 120가지 말을 책 속에 담아 놓은 게 출판사 항해에서 출간한 키키 키린 입니다.
키키 키린의 구성은 총 8장에 걸쳐 삶에서 죽음까지를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1장 삶 ------------- 인생과 행복에 대해
제2장 병 ------------- 암과 질병에 대해
제3장 늙음 ------------- 나이 듦과 성숙에 대해
제4장 사람 ------------- 인간과 세상에 대해
제5장 인연 ------------- 부부에 대해
제6장 집 ------------- 가족과 육아에 대해
제7장 직업 ------------- 일과 책임에 대해
제8장 죽음 ------------- 생과 사에 대해
제1장 삶 1. 행복이란 늘 존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것!
행복이란 늘 존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것!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나 시시해 보이는 인생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거기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P.13
▶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지루하고 시시한 인생이라 생각하는 우리에게 키키 키린은 그 일상에서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행복이라는 게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일 아침에는 출근을 늦추더라도 오랜만에 아이들 머리도 감겨주고 옷도 입히며 등교 준비를 도와주어야겠습니다.
제2장 병 33. 암에 안 걸렸다면, 별 볼 일 없이 살다가 별 볼 일 없이 죽었을 거에요.
암에 안 결렸다면, 별 볼 일 없이 살다가 별 볼 일 없이 죽었을거에요. 그저 그런 인생으로 끝났겠죠.
(중략)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인생은 끝납니다. 늘 눈앞에 죽음이 있음을 알려주는 암이, 나는 고마워요. 동일본 대지진이나 쓰나미, 중국의 고속철도 사고 같은 일이 생겨도 사람들은 내게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암에 걸리면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P.79
▶ 우리는 죽음은 남의 일이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박연선의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에서 주인공 강무순은 할머니 홍간난 여사를 보고 "아주 운이 좋아야 맞이할 수 있는 미래라고 했습니다. 온갖 불행한 사건사고를 피해 무사히 늙어야 맞이할 수 있는 미래!" 죽음을 인지해야 인생을 소중히 여기며 살게 됩니다.
제3장 늙음 42. 결국 좋지 않은 일까지 모두 자양분이 되더군요.
이제 나이를 먹고 여러 곳이 고장 나서 인간적으로 자꾸 헐거워지는 느낌이에요.
쉬지 않고 55년 배우 생활을 하면서, 좋은 일도 그렇지 못한 일도 있었죠. 그런데 나쁜 일이 단지 나쁜 일은 아니더라고요. 결국 좋지 않은 일까지 모두 자양분이 되더라군요. -P.99
▶ 나쁜 일을 경험한 후 왜 나에게 나쁜 일이 생겼는지 자책하고 하늘을 원망하며 계속 마음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쁜 일이 모두 인생의 자양분이 된다는 걸 유방암으로 유방 한쪽을 제거했고 전신암이 걸려 계속 치료를 받으면서도 배우생활을 계속했던 키키 키린에게 배우게 됩니다.
제4장 사람 51. 부부의 연을 맺은 이상, 상대의 단점이 내 안에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걸 알게 되면, 결혼이란 것에 대한 이해가 생기지 않을까요?
(중략) 저는 때때로 남편이나 부인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이 사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네'하고 생각합니다. - P.119
▶ 연애 할 때는 성격이 다른 아내에 끌려 결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혼 초기에는 그 다른 성격 때문에 몹시 힘들었습니다. 왜 제 성격을 못 맞춰 주는지 고민도 하고 힘들어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저도 아내 성격을 이해 못하고 잘 못 맞춰준 것 같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그런데로 이해하며 잘 살지만요.(정도 들고 포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5장 인연 74. 다음 생에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서 여기서 잘 맞춰가고 있습니다(웃음).
사랑이기보다, 저한테 남편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게 그쪽한테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고요. 여전히 "아무튼 고마웠어요. 힘들었죠?"라고 말을 걸면 "전혀..."라고 답하지만(웃음). 다음 생에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서, 여기서 잘 맞춰가고 있습니다(웃음). -P.167
▶ 키키 키린의 남편은 우치다 유야라는 록 가수로 성격이 괴팍하고 결혼 초 폭력성도 있었다고 합니다. 둘은 50일만에 결혼해 3년만 같이 살고 50년간 별거를 했지만, 별거 후에 더 부부로서 감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키키 키린은 자기의 강한 성격을 더 강한 성격의 남편을 만났기에 별거를 했지만 잘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웃는 이야기로 다음 생애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서 잘 맞춰가고 있다고 하지만 둘은 천생연분이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제6장 집 90. 우리 집에서는 자기 속옷 정도는 당연히 자기가 빠는 거에요.
아이는 응석쟁이로 키우면 안 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하게 해야죠. 집안일도 부모가 할 때 같이 시켜야 한다고 보고요.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어깨너머로 보고 크는 법입니다. 우리 집에서는 자기 속옷 정도는 당연히 자기가 빠는 거에요. 우리 애도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 거지 하고 어리둥절했지만, 한번 시범을 보여주니 혼자 알아서 잘 하더라고요. - P.201
▶ 우리 아이들을 응석쟁이로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좀 더 독립적으로 키웠어야 하는데 딸이라 좀 너그럽게 대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키키 키린의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속옷은 아니더라도 양말이라도 빨 수 있도록 이번 주말에 시켜봐야겠습니다.
제7장 직업 105.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죠. 그러니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먹고살고 싶다고 바라는 건 정말 건방진 일입니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먹고살자는 말은 건방진 소리"라던 화가 아키노 후쿠의 말도 있지만,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요. 세상 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먹고살려고 온갖 일을 다 하는데,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죠. 그러나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먹고살고 싶다고 바라는 건 정말 건방진 일입니다. -P.233
▶ 직장 생활에 100% 만족하면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아파트 대출에,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 등을 위해 다니고 있을 뿐. 기회가 되면 작은 책방을 하고 싶거나 다른 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키키 키린 말대로 하고 싶은 거와 먹고사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제8 죽음 113. 나이 들어 죽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다.
(중략)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은 끝이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네요. 나이 들어 죽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는데, 그걸 두고 남은 사람들이 뭐든 더 해서 살리려고 한다는 게.... 만일 내 자식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그건 너희 욕심이 과한 것'이라고 이럴줄 겁니다. -P.251
▶ 의학의 발달로 100세 시대라는 요즘 과연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저 생명만 연장하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작년에 1년간 투병하며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가족 앞에서 평온히 삶을 마감한 LG 구본무 회장처럼 그저 나이 들어 죽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키키 키린은 어린 나이에 2번의 결혼, 괴팍한 남편을 만나 3년의 결혼생활 후 50년간 별거를 하는 등 결코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를, 자유분방하게 삶을 관조하는 자의 여유를 보이면서 75세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은 진정한 인생의 행복의 의미를 모르고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가는 우리에게 작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삶의 고난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삶을 당당히 살아간 키키 키린의 마지막 말로 리뷰를 마칩니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 항해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