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보려고 했다. 구독 중인 채널의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기에. 그러지 않아도 씻고 나면 자이언트 춘식이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유튜브를 본다. 갓생. 그게 뭐냐. 이러면서. 지난달에는 자격증을 새로 딸 거라는 원대한 꿈을 꾸면서 책도 샀는데 책장에 얌전히 꽂혀 있다. 사천 원을 더 주고 제본서비스까지 신청해서 받은 책인데. 몇 장 넘겨 보고 무료 강의가 있나 살펴보고. 다시 책장으로.
영상을 틀었을 때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영상의 내용이 끔찍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려 내렸다. 눈을 뜨고 있으면 다시 감기고. 눈이 시려서 화면을 볼 수 없다니. 왜 이러나. 죽을 때가 된 건가. 방정맞은 생각 끝에 사무실 천장에 전등이 너무 많구나. 눈에 안 좋다는 청색광 전등이 알알이 박혀 있구나 원인을 찾았다.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 방법은… ….
그건 좀 곤란하다는 결론. 아직 적금 기간이 30개월이나 남았거든. 그날 저녁에는 눈을 감고 소리만을 들었다. 그러고 있으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그저 호들갑을 떠는지. 이다혜의 『퇴근길의 마음』을 읽으면 그러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퇴근부터 잘해야 하는데. 요즘의 나는.
정시 퇴근을 한 게 몇 번 되지 않는다. 어떤 주에는 내내 야근. 어떤 주에는 한 번 정도의 정시 퇴근. 내가 이러려고 힘들게 학원 다니고 자격증 따고 그랬나는 자괴감이. 『퇴근길의 마음』에서 강조하는 건 나를 잃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일을 할 때의 마음 실수했을 때의 대처 인간관계의 원칙. 내가 있어야 일이 있지 일이 있어야 내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메모를 하는 방법, 업무 메일을 쓰는 요령 실무적인 부분에서부터 일이 끝나고 난 뒤의 마음 챙김 지침까지 알려준다.
갓생은 개뿔 현생조차 사는 게 쉽지 않다. 아침에 눈 뜨는 게 미라클 모닝. 대신 갓생 사는 이들이 부지런히 찍어서 올린 브이로그를 본다. 그마저도 보다가 빈정이 상해서 끈다. 사람이 어려우면 모든 걸 자기식대로 받아들인다. 책의 어느 문장이 자신의 상황에 부합하면 힘을 얻어 그대로 실천한다. 『퇴근길의 마음』에서는 '나를 해치면서까지 해야 할 일은 없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예전에는 버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버틴 게 아니었다. 버틸만해서 버틴 거다. 지금의 나는 퇴근부터 잘하자라고 계속 말해주어야 한다. 손이 포동포동한 친구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올라 달달한 음료를 마시며 동네 핵인싸 강아지를 부르는 퇴근길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퇴근길의 내 마음은 눈을 뜨고 좋아하는 채널의 영상을 보고 싶다는 마음. 눈이 시린 청색광 밑에서는 여섯시까지.
그의 책을 두 권 읽었다. 그의 말, 아니 글 솜씨에 반했던 책들. 그래서 그의 퇴근길의 마음도 궁금했으리라. 또 내 마음은 어떠한지 가늠하고 싶기도 하고.
일의 성패는 요령이라 생각 했는데, 결국 진심이라는 그의 글이 이해는 되지만 공감은 덜 하다. 그도 말했지만 일이 많은 건 견딘다. 근데 사람 힘든 건 견디셔가 안 된다. 그래서 진심을 다한다는 건 되돌아 오는 상처가 핵폭탄이나 쓰나미급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견디라는 말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잘 알려진 사람은 알려진 대로 선입견의 대상이 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은 알려지지 않은 대로 편견의 대상이 된다." 40쪽, 이번엔 거절, 다음엔 승낙
선입견과 편견의 대상이 되는 건 그 어느 쪽이든 별로지만 어쨌든 그런 입장을 갖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하겠다, 란 생각이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기사 몇 줄이나 영상 몇 개로 맹신하거나 저주를 내려 꽂는 일이 너무 허다한 세상이 아닌가.
직장인의 자세쯤으로 읽히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중에 이메일의 선명도에 대한 글은 따로 뽑아 메모해 놓을 정도로 유익했다. 요즘 이런저런 업무들이 메일로 주고 받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가 일러준 방법이 도움이 될 듯하다.
106쪽, 업무 메일의 선명도를 위하여
또 그가 일에서 글과 말, 두 가지 다 해서인지 글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말에 대한 내용도 주목하게 된다. 특히 <정교한 못된 말과 자기반성의 적>에서 안 해도 되는 말이나, 악의적인 말을 악의 적이지 않은 어휘를 동원해서 하고 그걸 사이다로 포장하는 것에 대한 지적은 내가 그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얼굴이 화끈하다. 역시 다언삭궁은 일상이 되어야 한다.
읽다 보면 눈을 잡아 끄는 주옥같은 글들이 참 많다. 직장에서 헤맨 순간조차 역사의 일부가 되어 있으려면 살아 남아 있어야 하고, 그래야 어디든 도달해 있을 수 있다, 는 말은 비단 직장뿐만 아니라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아무튼 이런 통찰은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까. 어디 학원이라도 있나?
나같이 출근길을 나서자 마자 퇴근길을 바라는 마음으로는 분명 되는 일이 아니겠지만 입만 열면 삶의 통찰이 철철 넘치는 저런 멘트를 날리고픈 욕심은 있는지라 그의 마음을 예사롭지 않게 읽는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만 읽는다고 얻어지는 건 분명 아니라는 건 나를 봐서 안다.
그리고 딱 내 심경이 담겨 심란한 문장도 더러 있기도 했다.
160쪽, 기존의 관계가 전복될 때
"그의 장점이 단점으로 보이는 순간 그 관계는 끝이다." 179쪽, 장점이 단점이 되었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그랬다. 관계란 한번 맺으면 언제까지고 좋으면 좋으련만 살다 보면 그러지 않을 때가 많은데, 거기에 맺고 끊는 일이 좀 수월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 관계는 스트레스로 작동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좋았던 기억도 흐릿해져 서먹해진 이유도 모른 채 허덕이는 경우도 태반이다.
<경험이 많은 것이 오히려 나의 발목을 잡을 때>는 목울대가 오르내렸다. 나는 그가 말한 상황과 정반대지만 어쨌거나 경력이 발목을 잡은 건 맞으니까. 내 처지가 읽혔다.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지금 하는 일을 지긋한 나이라 불릴 때 시작했다. 이직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건 좀 예외적인 사정이 있는지라, 어쨌거나 이직할 때 면접 자리에서 관리자들 나이가 훨씬 어린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내가 늦게 시작한 일이니 그건 당연하고 내가 성격이 좋으니 나이와 관계없이 잘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땐 진짜 그랬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나이가 뭔 상관이랴 싶었다. 그리고 10년 차가 되고 쉰이 넘은지 몇 해가 지났는데 난 여전히 평직원이고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동료들은 어느새 자식뻘이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자괴감이 많이 든다. 그렇다고 은퇴를 앞당기고 싶어도 아직 학령기인 아이들이 있으니 자괴감 좀 든다고 자리를 박찰 수도 어렵고. 그저 불면의 밤이 길어지기만 한다.
이 책은 혼자 일하기를 꿈꾸지만 누군가에게 등을 내주며 함께 일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슬기로운 직장 생활에 대한 그의 경험담이다. 그리고 어떤 것이 잘 하는 퇴근인지 진심 고민하게 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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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기한이 정해진 출근을 합니다.
이번에는 7개월입니다. 9월 30일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있습니다.
며칠만 출근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저는 휴직, 미발령 등의 누군가의 공백이 생겼을 때 일하는 대체인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계약이 끝나가는 지금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이제 50을 앞두고 있어 대체인력으로 일하기에 적은 나이는 아니라 다음에 또 출근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퇴근길에 생각이 많아지고 감상적이었는데 이 책의 한마디 한마디가 직장선배가 들려주는 위로 같습니다.
1시간 20분의 출근시간이 필요했던 직장을 다닐때 위로가 되었던 '출근길의 주문'에 이어 이다혜 작가님의 퇴근길의 인사말을 들려드립니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꾸준히 일하는 법.
특히, 1장의 ‘오늘’을 산다 편은 계약직으로 일하는 저에게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사회초년생은 어쩌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여러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해 온 저에게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10년 전 쯤 이런 얘기를 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4장의 나를 잃기 전에, 지치기 전에 편은 모든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내용입니다.
10년 전 쯤 남편의 번아웃으로 생활이 많이 바뀌었기에 ‘나를 해치면서까지 해야 할 일은 없다’는 말은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지금 직장의 동료들에게도 적어주고 싶습니다.
5장의 ‘커리어의 다음을 준비하는 법’은 다음에 다시 면접을 보러 가게 된다면 한번 적용해 보고 싶은 ‘자기 PR의 도’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책은 서평단 리뷰 보다는 후기에 가까운 편이지만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에게도 직장을 구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직장의 의미와 직장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귀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혼자 잘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요 몇 년 새 나는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고 싶다.
저자 서문에서...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