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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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리뷰 총점 9.4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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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철학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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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죽음을 앞둔 철학자, 문화인류학자와 편지로 대화하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n*****m | 2022.12.17 리뷰제목
8년 전 앓았던 유방암이 다발성 전이가 되어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지도 모릅니다”란 말을 듣고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문화인류학자 이소노 마호에게 편지를 주고받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인연을 오래 이어온 사이도 아니었다. 미야노 마키코가 죽을 때까지 계산하더라도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직접 만난 것도 다섯 번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무언가 이끌렸고, 삶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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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앓았던 유방암이 다발성 전이가 되어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지도 모릅니다란 말을 듣고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문화인류학자 이소노 마호에게 편지를 주고받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인연을 오래 이어온 사이도 아니었다. 미야노 마키코가 죽을 때까지 계산하더라도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직접 만난 것도 다섯 번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무언가 이끌렸고, 삶과 죽음에 대해, 필연성과 우연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가 각각 10통의 편지 속에 담겼다.

 

그들은 미리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지 계획하지 않았다. 서로의 편지 속의 내용을 화두 삼아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을 뿐이다. 계획은 없었지만, 예상한 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편지는 예상대로 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예상대로 가지 않음이 그들이 나눈 주제와 더 관련이 있었다. 대화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듯 편지로 나눈 대화는 생각을 깊고 넓게 만들었고, 삶에 대한 애정과 다가오는 죽음을 용기 있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질병 앞에서 미야노 마키코는 의연했고, 이소노 마호는 그런 미야노 마키코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한 번도 스스로 철학자라고 말하지 못했던 미야노 마키코는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비로소 철학자가 된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자신이 평생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구키 슈조의 글(우연성의 철학)을 다시 해석하게 되고, 그 본뜻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성찰하게 되었고, 끝까지 삶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게 생각하고 글로 옮긴 삶에서 우연이 의미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어떤 잘못된 일을 당했을 때(그녀처럼 죽을병에 걸렸을 때와 같이) 흔히 그것을 운명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왜 내가?”의 반응을 보이다가, 분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다, 결국은 받아들이게 된다는데, 미야노 마키코는 그런 운명을 부정한다. 아니, 운명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 어떻게든 그렇게 되었을 거란 운명론을 거부한다. 우연이 반복되는 가운데, 우리는 늘 선택하는 상황에 놓이고, 그때 우리가 하게 되는 무수한 선택이 삶을 구성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므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거창하게 표현은 하지 않지만, 삶에서의 주체, 당사자로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고귀함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놓치 않았다.

 

미야노 마키코는 죽기 직전까지도 시작의 의미를 되새겼다: “저에게 아직 내일이라는 시간이 있다면, 저는 사람들과 지금 마주함으로써 새롭게 일어날 무언가를 믿고 싶습니다.” 삶을 완결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누군가가 이어주기를 바랐다. 그게 그녀에게 시작의 의미였다. 그렇게 늘 시작하는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쩜 이 세계란 이토록 경이로울까. 저는 시작을 앞에 두고 사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우연과 운명을 통해서 타자와 함께하는 시작으로 가득한 세계를 사랑합니다. 이것이 지금 제가 도달한 결론입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죽음은 보편적이지만 유일한 경험이다.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누구나 단 한 번만 겪는 일이다(겪는다는 표현도 어색하다. 그 일이 끝난 후엔 이미 아무 것도 없으니. 그걸 인식할 주체가 사라지는데). 그러므로 누구는 담대해질 수도 있으며, 또 누구는 그 앞에서 비겁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두려울 수도 있으며,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 죽음을 미야노 마키코는 경이로운 세계를 감탄하고, ‘우연과 운명에 불평하지 않고, ‘시작으로 가득한 세계를 사랑하면서 맞이했다. 그랬기에 이소노 마호 역시 의연하게 그녀를 보낼 수 있었고, 또 그 후엔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찾아나설 수 있었다.

 

모든 책에 죽음이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죽음자체를 다룬 책을 따로 정리해보곤 한다. 지금까지 가장 감동적인 책을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를 들었었다. 이제 한 권을 더 보태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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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단 하나의 필연 평점9점 | 이달의 사락 s*****l | 2021.07.04 리뷰제목
결국 우리가 마주해야 할 필연적 현실은 '죽음'이다. 다만 우리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들 모두는 자신의 미래 역시 '죽음'과 '사라짐'으로부터 결코 예외일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암과 같은 중대한 질병에 걸린 당사자와 이를 지켜보는 주변인들 사이에는 분명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치명적인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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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마주해야 할 필연적 현실은 '죽음'이다. 다만 우리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들 모두는 자신의 미래 역시 '죽음'과 '사라짐'으로부터 결코 예외일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암과 같은 중대한 질병에 걸린 당사자와 이를 지켜보는 주변인들 사이에는 분명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당사자에 대하여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러한 판단은 곧 닥칠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신의 사라짐에 대하여, 당신과의 영원한 별리에 대하여 애석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며 그러한 결말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와 같은 판단이 전적으로 죽음을 앞둔 당사자가 아닌, 그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주변인들에 의해 내려진 판단이라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 일해온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부족한 현대 사회의 맹점을 지적하면서 미야노 마키코와의 편지 교류를 시작한다. 말하자면 '이 약을 먹으면 몇 퍼센트의 확률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라는 말에서 풍기는 공포로 인해 한 개인의 일상과 미래의 가능성이 완전히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앓았던 유방암이 다발성 전이가 되어 언제 병세가 악화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이에 대한 답장으로 '환자는 위험성을 근거로 좋지 않은 길을 피해 '평범한 인생'으로 향하는 길을 신중히 나아간다'라고 말한다.

 

"어느 역학자가 만든 수식에 대입하여 계산한 '일어날지도 모를' 확률은 한 개인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서 미래의 가능성을 봉쇄해버립니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되는 오늘날, 개인의 사소한 인생에 일어나는 변화는 계산 결과인 숫자 앞에서 간단히 사라져버립니다. 숫자는 압도적일 정도로 분명하고 객관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도요코 씨의 일화를 떠올릴 때마다 확률의 강력한 힘을 깨닫는 동시에 확률에 얼마나 죄가 많은지를 절감합니다."  (p.21)

 

2019년 4월에 쓴 이소노 마호의 편지에서 시작된 교류는 2019년 7월에 쓴 미야노 마키코의 답장으로 끝을 맺는다. 각자가 쓴 열 통의 편지는 도합 스무 통에 불과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과 세계를 진심으로 사랑하다 떠난 젊은 철학자의 편지는 읽는 이로 하여금 숙연한 느낌과 함께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한다. 말기 암이라는 현실이 그저 '불운'할 뿐, 절대 '불행'하지 않다고 강조했던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이 책의 서문을 쓰고 몇 시간 뒤 의식을 잃었고, 보름 뒤 그녀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무섭습니다. '지금과 다를 수 있었다'는 가능성 따위가 아니라 무無 속으로 제가 빨려들 것만 같습니다. 그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저는 생각하고 글을 씁니다. 그럼으로써 저는 간신히 삶의 세계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고통과 죽음 속에서 나를 되찾고, 계속 나로서 있기 위해 글을 씁니다. 이를 철학하는 이의 업이 아닌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p.201)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받게 되는 인상처럼 두 여성 학자가 글을 통해 주고받는 묵직하고 진지한 대화는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인문학적 사고를 열어둔 채 끝을 맺지만 우리의 삶이 어떤 과학적 근거나 확률론적 숫자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오롯이 그 자신으로 죽을 수 있는 길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운명을 살아간다는 것은 세계를 향해 뛰어드는 것입니다. 뛰어드는 순간 우리는 이 세계가 온갖 우연이라는 만남에서 '나'를 발견해내어 새로운 '시작'이 태어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쩜 이 세계란 이토록 경이로울까, 저는 '시작'을 앞에 두고 사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우연과 운명을 통해서 타자와 함께 하는 시작으로 가득한 세계를 사랑합니다. 이것이 지금 제가 도달한 결론입니다."  (p.265)

 

우연처럼 시작된 장마는 또 우연처럼 슬몃 꼬리를 감춘 느낌이다. 장맛비의 예보는 그저 확률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연에 우연을 더하는 일상이 마치 주어진 일과처럼 흘러가는 주말의 시간들이 조금씩 저물고 있다. 다채로운 우연의 결합들을 경험하는 대가로 우리는 단 하나의 필연을 묵묵히 견뎌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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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살아있는 순간엔 살아가기를 평점10점 | q*****2 | 2022.09.09 리뷰제목
심각해지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질병 그리고 죽음이라는 묵직한 단어가 제목에 쓰인 책을 골랐다. 심지어 저자 중 한 명은 죽음을 앞뒀다고 적혀 있었다. 대체 내가 책을 고를 무렵 원했던 건 무어였을까. 살면서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부모로부터 태어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혹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스스로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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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해지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질병 그리고 죽음이라는 묵직한 단어가 제목에 쓰인 책을 골랐다. 심지어 저자 중 한 명은 죽음을 앞뒀다고 적혀 있었다. 대체 내가 책을 고를 무렵 원했던 건 무어였을까. 살면서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부모로부터 태어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혹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스스로 택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던데, 영생을 꿈꾼다 하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는 건 모두가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다. 유한한 존재로서의 나, 내가 속한 세상까지는 아나가지 못하겠으나 나 한 명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그라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위압박은 얼마나 거대한지. 내 뿌리깊은 우울의 일부는 이로부터 비롯됐지 싶다. 아직 직접적으로 죽음에 다가서는 경험을 했다거나 당장 숨이 넘어갈 정도의 고통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님에도 그랬다. 상황이 달라진다면 이 막연한 감정들이 마치 눈 앞의 파도처럼 일렁이며 나를 집어 삼킬 것이다.

1999년, 2000년 대학 졸업. 대강의 나이를 가늠해 본다. 두 인물이 처음부터 절친하지 않았음에도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철학자와 의료인류학자니 얼마나 심오했을까 싶다만, 채겡 적힌 게 전부는 아닌지 두 인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말을 놓았으며 내 눈으로 접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깊은 마음을 나눴지 싶다. 잔인하게도 첫 만남이 있을 무렵 이미 마지막은 예고된 상태였다. 미야노 마키고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 가능성에 대해 의사로부터 언질을 들은 상태에서 고민했다. 그간 별여 놓은 많은 일들을 수습하고, 마치 죽음을 예견한 사자처럼 무리를 떠나는 상상을 실천으로 옮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걸었다. 굳이 나서서 신변을 정리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연을 맺기까지 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이소노 마호는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다. 짧은 시간만이 우리의 눈 앞에 놓여 있다. 상실의 감정은 내 모든 걸 뒤흔들 정도로 클 것이다. 용기가 모든 걸 잊게 만들어 주었다. 당시엔 몰랐다는 말은 진정 몰랐음을 뜻하진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이 쓰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꼭 너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우리는 영영 서로를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게 됐다. 조금 더 어렸을 때도 아닌 지금 이 순간, 내가 아파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아니한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는 무수히 뻗어 나갔다. 상대가 중증 환자임을 인식한 순간 나의 태도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 음식은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피해야 하고, 언제 의료진이 필요할지 모르므로 여행은 꿈꾸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 왠지 상대에게 어울릴 듯하다. 조금이라도 가방이 무거워 보인다면 상대를 대신해 들어주어야만 할 거 같은 압박. 특별히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왠지 그러해야만 할 거 같아 행한 일들이 상대를 오히려 환자로 만들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일침이 나를 때렸다. 몸이 괜찮아지면 무엇을 하겠다는 다짐은 다음의 기약이 가능한 경우에나 성립할 수 있지만, 그 다음을 확신하는 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몫이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면서 최대한 나의 영역을 확장하는 거, 그리하여 한낱 점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나를 하나의 선으로 연장하는 거. 아무리 생이 마지막 순간에 도달했다 하여도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찾기는 쉽잖을 것이다.

마지막 편지가 쓰인 게 2019년 7월 1일이다. 연명에 든 게 7월 22일이니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어떠한 진통제로도 다스릴 수 없었을 통증과 함께하며 외로웠을 생을 남은 저자는 상상한다. 괴롭다. 그래도 아름다운 완주였다. 떠난 이도 그리 생각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닥칠 그 일, 그가 잘 해냈듯 나 또한 완성할 수 있을 듯하다.

그칠 듯 이어지는 글의 마지막에 이윽고 닿았다. 우연과 필연. 무엇이 우연이었으며, 무엇은 필연이었던 걸까.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영원히 꾸게 될 꿈이 조금 더 촘촘하게 영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생을 지켜내야겠다. 비록 나에게는 편지를, 마음을, 그 어떠한 것도 주고받을 인연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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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숨결...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 2021.07.01 리뷰제목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부고 알림이 연거푸 올라왔다. 죽음이 멀지 않다. 그중 하나의 알림은 동창의 아들로부터 받은 문자를 대신하여 올린 글이었다. 동창일 뿐 일면식이 있지 않은 이가 떠났다는 소식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에는 초보자일 뿐이다. 여든이 넘은 부모님도 여태 초보이고, 이제 오십을 넘은 나와 아내도 아직 초보이다. 죽음의 유경험자를 우리는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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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부고 알림이 연거푸 올라왔다. 죽음이 멀지 않다. 그중 하나의 알림은 동창의 아들로부터 받은 문자를 대신하여 올린 글이었다. 동창일 뿐 일면식이 있지 않은 이가 떠났다는 소식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에는 초보자일 뿐이다. 여든이 넘은 부모님도 여태 초보이고, 이제 오십을 넘은 나와 아내도 아직 초보이다. 죽음의 유경험자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애초에 우리는 ‘죽음’을 ‘지금’ 경험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죽음’은 미래의 일일 뿐입니다. (하이데거 역시 그 점을 지적했지요.) 미래에 죽음이 오리란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왜 그 미래의 죽음을 기준으로 지금을 생각해야만 할까요? 마치 미래를 위해 지금을 보내는 것 같지 않은가요? ‘언제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저는 이 말에서 기만을 느낍니다.” (p.28, 미야노 마키코)


  내가 목격한 가장 최근의 가장 접근하였던 경험은 우리 고양이 용이의 죽음이었다. 이십 개월 동안 용이를 담당하였던 의사 선생님이 몇 개의 주사약을 투입하는 동안 나는 용이의 살갗에 올려둔 손길을 거두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주말이었고 선생님은 문을 걸어 잠궜고, 조명을 낮추어 놓은 상내쳤다. 나는 어떻게든 견디고자 하였고 용이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숨결까지 지켜보았다. 


  “지난 주말은 여름처럼 무더웠는데, 이번 연휴는 첫날부터 비가 내리네요. 심지어 쌀쌀하고요. 그래도 저희 집 고양이 냐아(옅은 갈색 줄무늬, 7세)는 여전히 복슬복슬합니다. 방금 전까지 뭐라 뭐라 하며 밀크티 색 오른쪽 앞발로 제 허벅지를 두드렸습니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냐아가 놀아달라고 조르는 시간입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지 불러도 돌아보지 않지만요.” (p.13, 이소노 마호)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철학자인 미야노 마키코와 의료인류학자인 이소노 마호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미야노 마키코는 ‘우연’에 천착하여 연구를 진행해온 철학자이다. 미야노 마키코는 지금 암으로 투병 중인 상태이고 몇몇 사람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미야노 마키코와 이소노 마호는 그리 오래된 관계는 아니지만 이소노 마호는 그녀의 병을 알고 있다.


  “예컨대 의사가 제시한 위험성을 마주한 제 앞에는 암을 적당히 억제하면서 지금처럼 살아가는 인생, 부작용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생, 매우 무거운 부작용을 앓으며 간신히 연명하는 인생이라는 세 갈래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보이는 것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 가능성과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지요.” (pp.28~29,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는 의료인류학자이다. 의료인류학은 ‘인류학(人類學, anthropology)의 한 분야로서, 인류학의 방법과 이론적 성취에 기대어 인간의 질병과 건강, 의료체계 및 치유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우연‘을 연구한 철학자와 ’의료인류학‘을 연구한 인류학자의 만남은 ’우연‘에 기대어 찾아온 질병과 그 질병이 향하게 되는 죽음이라는 ’필연‘의 행보에 대한 섬세한 기록으로 마무리된다.


  “불운은 점, 불행은 선. 소화시킬 수 없는 점인 불운과 마주하는 것, 그리고 불행한 스토리의 선으로 휘감기는 것. 이 두 가지는 분명히 서로 다르지만, 과연 두 가지를 분명히 잘라 나눌 수 있냐고 저에게 물으면 그렇게 깔끔하게 나누지는 못한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p.150, 미야노 마키코)


  책은 두 사람이 각각 작성한 열 편의 편지로 만들어졌다. 오래되지 않은 관계여서 조심스럽지만 또 그래서 섬세하고 예민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산발적이지 않고 ’우연의 질병‘과 ’필연의 죽음‘으로 진득하니 수렴하고 있다. 책이 출간되기 이전에 미야노 마키코는 결국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가끔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나에게 남겨진 것은 삶인가, 죽음인가.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 김영현 역 /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다다서재 / 283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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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죽음을 바라보게 되는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j*****6 | 2024.03.02 리뷰제목
가끔 여행을 갈 때면 그 여행지와 어울릴 것 같은 책을 한 두권 챙겨서 간다. 두 권 정도의 여유를 두는 이유는 두 권을 모두 읽겠다는 욕심보다 실패를 대비하는 나의 방법이다. 여름 일본 여행을 가며 챙겨 갔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여행에서 사색의 깊이를 더했던 책이었다. 우리의 인생의 어떤 것도 필연이랄 수 있는 것은 죽음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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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여행을 갈 때면 그 여행지와 어울릴 것 같은 책을 한 두권 챙겨서 간다. 두 권 정도의 여유를 두는 이유는 두 권을 모두 읽겠다는 욕심보다 실패를 대비하는 나의 방법이다. 여름 일본 여행을 가며 챙겨 갔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여행에서 사색의 깊이를 더했던 책이었다. 우리의 인생의 어떤 것도 필연이랄 수 있는 것은 죽음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과 죽음은 우리의 살과 뼈처럼 분리할 수 없는 것이 겠구나 생각이 든다. 언제든 삶에 안녕하며 돌아설 수 있는 자세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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