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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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리뷰 총점 9.7 (6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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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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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같이 읽어요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u*******9 | 2021.05.09 리뷰제목
저자 홍은전이 13년간 교사로서 몸담았던 노들 장애인 야학을 떠나 인권활동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한겨레 신문에 5년 간 연재한 '인권활동기록'을 모아 엮은 책이다. 봉준호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 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말이 퍼뜩 떠오른 건 이런 책이 바로 우리 사회에 드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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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은전이 13년간 교사로서 몸담았던 노들 장애인 야학을 떠나 인권활동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한겨레 신문에 5년 간 연재한 '인권활동기록'을 모아 엮은 책이다.
봉준호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 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말이 퍼뜩 떠오른 건 이런 책이 바로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소수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라는 1인치 장벽을 거두어 들이는 장치가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인치 뒤에 가려진 이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주어진 인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될 텐데. 우리 세대에서는 얼마큼 일구어 낼 수 있을까.
 





 

p.26~27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당연한 자연현상이 된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저항을 시작한다. 중략.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울 수 있게 만드는 일은, 말하자면 온 우주와 맞서는 일이다. 나는 그런 경이로운 존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 신문에서 자신의 비참을 드러내어도 좋다고 허락해준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의 거대한 비참과 불의에 저항하는 기적같은 존재들이다. 중략. 나는 그들이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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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그냥, 사람 리뷰 평점9점 | a****2 | 2020.12.03 리뷰제목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이 되면(1학년이던가..기억이 안나네) 다 같이 꽃동네에 갔다. 1박인지 2박인지 잠을 자고 왔던 것 같고, 그 중 하루는 각자 맡은 무언가를 반나절 정도 수행했다. 우리는 그 때 그 시간으로 꽃동네에 간 전교생 모두 봉사활동 시간을 획득했다. 그 시간은 충분하고 넉넉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내가 맡은 일은 기억이 정확히 나진 않는데, 남자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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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이 되면(1학년이던가..기억이 안나네) 다 같이 꽃동네에 갔다. 1박인지 2박인지 잠을 자고 왔던 것 같고, 그 중 하루는 각자 맡은 무언가를 반나절 정도 수행했다. 우리는 그 때 그 시간으로 꽃동네에 간 전교생 모두 봉사활동 시간을 획득했다. 그 시간은 충분하고 넉넉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내가 맡은 일은 기억이 정확히 나진 않는데, 남자 환자들이 있는 건물로 가서 문지방? 벽지 같은 것을 바르는 일을 하는 거였는데, 내가 했던 것은 풀질 정도 였고, 어떤 공간에서 그 일만 계속 했던 것 같다. 큰 창이 있어서 밖에서 그 안 공간을 들여다 볼수 있는 구조였고, 그 곳의 환자 (정신병동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들은 창에서 우리를 쳐다 봤다. 아기를 돌보는 팀도 있고 그랬는데 우리는 그런거 아니라고 툴툴 거렸던 기억도 난다. 괜히 오버하면서 무서웠다고 얘기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스스로 정상인(?) 이라는 범주에 갇혀서, 온갖 차별과 모욕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의 삶에 큰 관심이 없고, 가끔 그들의 시위나 살기위한 투쟁의 현장을 보면 혀를 끌끌 차던 어떤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이제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골목에 있는 가게들 입구를 찬찬히 보며, 내가 휠체어를 끌고 이동해야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턱은 넘을 수 없겠구나, 아 이 길은 너무 위험하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나의 시야는 너무 좁고 아는 것이 없어서 책을 읽는다.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버스에는 장애인을 위한 좌석이 있지만 장애인이 탄 걸 본적은 없다. 그냥 이 세상에 장애인이 별로 없나보다, 라고 눈과 귀를 닫아버렸고, 나의 생활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침해하면 날을 세우고 비난하고 조롱하기 바쁘다. 물론 나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나를 포함)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당연하듯 누리는 이 생활에서 또 너무나 당연하게 배제되어있는 그들의 삶을 꼭, 반드시 생각해야 하고 무언가를 실천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할지도, 아이를 낳을지도 모르는 인생이지만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기르는 부모가 된다면, 아이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차근차근히 하고 싶다.

이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장애인, 보호시설, 세월호, 육식, 동물 너무나 많은 주제가 있고, 누군가는 불쾌하고 불편한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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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보이지 않는 사람들, 동네 '바보형' 평점6점 | l****h | 2021.09.07 리뷰제목
어린 시절에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공터나, 놀이터, 뒷산 같은 곳에서 놀았다. 몸으로 부대껴 가며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함께 노는 무리 중 꼭 바보형이 있었다. 놀다가 다른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 그 무리에도 꼭 바보형이 있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만 바보형이라 불렀을 뿐, 같이 놀 때는 이름을 불렀다. 바보형이라고 놀리거나 무시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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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공터나, 놀이터, 뒷산 같은 곳에서 놀았다. 몸으로 부대껴 가며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함께 노는 무리 중 꼭 바보형이 있었다. 놀다가 다른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 그 무리에도 꼭 바보형이 있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만 바보형이라 불렀을 뿐, 같이 놀 때는 이름을 불렀다. 바보형이라고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그냥 같이 놀았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 시절 ‘바보형’은 자폐성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졌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런 용어도 몰랐을뿐더러 같이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른들도 꼭 “OO하고도 친하게 잘 지내야 해.”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네 ‘바보형’이 사라졌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히 동네에서 어울려 놀 시간도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 한 후에도 동네에서 ‘바보형’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가 아니라 코호트가, 바이러스가 아니라 대책 없는 거리두기가 누군가에겐 더 큰 재난임을 알린 것 말이다.” (p.251)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가 있는 분들의 입장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TV에서도 본 적이 없다. 오늘 몇 명이 추가로 확진되었는지, 백신 접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런 것들에만 집중되어 있다. 중증장애인의 백신 접종은 어떻게 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검색을 해봤다. 이 독후감을 작성하는 8월 28일 현재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한다.

 

 

“특수안경을 쓰면 보이는 가상현실처럼 자녀가 장애를 입는 순간 그녀들 앞에 놀라운 지옥도가 펼쳐진다. 도처에서 엄마의 무릎을 꿇린다.”

“장애인 다 싫어하잖아. 왜 우리한테만 그래!” (p.109)

 

 

 TV를 통해 본 낯뜨거운 장면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라 뇌리에 박혀 있었다. 2017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집값 떨어진다.’라는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그들의 야만과 무자비함보다 더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자각을 한순간이었다. 경제는 발전하고 국가와 정부의 복지는 개선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와 뒹굴던 동네 ‘바보형’들을 주변부로 내몰고 있었다. 장애를 격리하고 분리하며 특별한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하여 정책을 펼쳤을 때, 딱 지금과 같은 한국의 현실에 직면하는 것이다. 지금도 장애인은 숨어야 하는 존재다. 특수학교·복지기관·요양병원 등으로 내몰린 것이다.

 

 

“‘손 벌리는 자’이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p.124)

 

 

 물론, 나의 어린 시절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과 복지 정책 자체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평생을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증진을 위해 살아 온 저자의 고백 앞에서는 한낱 공수표에 불과하다.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p.216)

 

 

 성인이 된 후 사고로 장애인이 된 경석 씨의 고백은 함축적이다. ‘불쌍한 장애인들’이라는 인식이 ‘그냥 사람’이 되려면, 같은 장애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허투루 손을 내밀거나 금방 말라버릴 동정심을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동네 ‘바보형’도 우리에겐 ‘그냥 사람’이었다.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밀어내지 않았다. 함께 노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돈을 모으고 있어. 시설 나온 지 10년 되는 날까지 2천만 원을 모으는 게 목표야. 그걸 야학에 줄게. 시설에 있는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나와.” (p.242)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 꽃님씨가 저자의 야학에 기부했다. 그녀가 바라는 건 자신처럼 시설에 있는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달라.’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과 서비스가 미비하지만, 갇힌 채로 밀려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사회 주요 이슈로 만들어 내기 위해 서울 광화문역 지하 보도에서 이어가는 노숙 농성, 최저생계비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한겨울에 길바닥으로 나온 뇌성마비 장애 여성, 2017년 현재, 전국의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통틀어 휠체어 승강설비를 갖춘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던 현실 등.

 

 애써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겨우 알게 된 사실이다. 죄다 몰랐던 터라 부끄러워할 겨를조차 없었다.

 유튜브를 검색하다 보면 사회실험을 하는 채널들이 있다. 장애인을 돕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이라는 것을 밝히고 왜 도왔냐는 인터뷰를 하면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그냥요.”, “당연하니까요.”, “제가 가까이 있어서요.”, “도와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그냥 사람”이라서 돕는 것이다. 그냥 같이 노는 ‘동네 형’이니까. 동네 ‘바보형’이라 부르며 놀아도 그것이 전혀 차별이나 따돌림이 아닌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라 생각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냥, 어울려 같이 사는 사회. 너무 먼 미래인 것 같아 아득하기는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홍은전님과 같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연구하고 부딪히며 사는 분들 말이다.

 

 

온 마음을 담아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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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냥, 사람-홍은전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m | 2023.08.22 리뷰제목
세상을 아는 가장 안전한 방식은 독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방식은 현장으로 들어가는 일. 박종필은 그것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전자의 앎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라면 박종필의 앎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일 것이다. 전자의 앎이 폭넓음을 지향한다면 박종필의 앎은 정확함을 지향할 것이다.  (홍은전, 『그냥, 사람』中에서)   아름다움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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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아는 가장 안전한 방식은 독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방식은 현장으로 들어가는 일. 박종필은 그것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전자의 앎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라면 박종필의 앎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일 것이다. 전자의 앎이 폭넓음을 지향한다면 박종필의 앎은 정확함을 지향할 것이다. 

(홍은전, 『그냥, 사람』中에서)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앎'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다시 앎은 '앎음'이라고. 홍은전의 산문집 『그냥, 사람』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알고 앓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거꾸로 말하면 알지 못하고 아프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은 일이 된다. 아름다운 일이 되려면 알아야 할 것도 그로 인해 아플 일도 많아야 하는데 모르는 채로 건강하게 살고 싶기만 하다. 이기적인 생각이다.

 

내가 책을 왜 읽을까에 대한 답을 『그냥, 사람』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안전한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싶어서. 독서는 그게 된다. 현장의 일로 사람의 일로 뛰어들지 않아도 책을 펼치면 세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비겁하다고 하지 않는다. 이해하고 싶고 폭넓음을 지향하고 싶은 거라고 말해준다. 노들야학에서 오랜 시간 교사로 일한 홍은전은 자신이 겪은 세계를 섬세하고 정확한 언어로 세상에 내보인다. 

 

『그냥, 사람』을 읽으면서 여러 번 마음이 먹먹해졌다. 내가 아는 것이란 얼마나 빈약하고 허약한 것이었던가. 반성과 슬픔이 몰려왔다. 대체 내가 무얼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물 안 개구리. 홍은전은 노들야학 교사를 그만두고 도서관에서 특강을 듣는다. 그동안 자신이 알던 세계의 지식과는 다른 현실의 이야기와 마주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물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개구리라는 걸 받아들인다. 따듯하고 건강한 시선이었다. 

 

다름에 분노하지 않는다. 홍은전은. 『그냥, 사람』에 쓰인 글들은 그래서 아프고 활기찼다. 언뜻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읽어보면 안다. 아프지만 왜 활기찰 수밖에 없는지. 모르고 있었던 현실에 그렇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분명 한국 사회는 이상하다. 잘못되었다. 바로잡아야 함에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외면한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며 한 달에 이십만 원을 모아 이천만 원을 만들어 노들야학에 기부한 사람.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애 등급을 받지 못해 홀로 죽어간 사람. 노숙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시설에 들어갔지만 이내 술 냄새가 난다고 쫓겨난 사람. 그런 그이가 걱정 되어 기다린 사람. 추모 공원을 짓기 위해 이웃집 사람들에게 떡을 돌리는 사람. 살아 있는 어머니에게 임대 아파트를 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떠난 사람. 

 

그들은 그냥, 사람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건 뭉특한 셈법이다. 정교하지도 분석적이지도 않다. 빈자와 부자. 임차인과 임대인. 정상과 비정상. 생존자와 희생자. 철거민과 용역 깡패. 서로를 반대편에 세워 놓고 싸워야 하는 이곳에서 『그냥, 사람』은 깨닫게 해준다. 우리 모두는 그냥, 사람이라는 것을. 일을 하다가 힘이 들면 이런 생각을 했다. 너나 나나 그냥, 사람, 똑같은 인간 아니냐. 

 

나로서 살아가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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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그냥, 사람 - 홍은전 평점9점 | c****s | 2022.05.09 리뷰제목
<시사인>에서 인상 깊은 글을 접하고 저자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일정 비율의 장애인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장애인 출현율'이라고 하던데, 2020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애인은 5.4%로 OECD 평균인 24.5%보다 현저히 낮다. 이는 의학적 장애 판정 체계 탓이라고 한다. 산업재해 사고 비율로는 오랫동안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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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에서 인상 깊은 글을 접하고 저자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일정 비율의 장애인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장애인 출현율'이라고 하던데, 2020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애인은 5.4%로 OECD 평균인 24.5%보다 현저히 낮다. 이는 의학적 장애 판정 체계 탓이라고 한다. 산업재해 사고 비율로는 오랫동안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불명예스러운 숫자는 죄다 1위인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장애인 숫자는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인구는 22년 기준으로 5,160만이 조금 넘는다. 장애인 비율을 넣어 계산해 보면, 280만 명 정도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중 지체장애인이 50% 정도 되므로 한국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이 140만 명 정도 되는 셈이다. 수원이나 울산의 인구가 110만 명 조금 넘으니 그보다 많고 광주시가 144만 정도 되니 한 도시에 모여 있다면 그 크기쯤의 시민 전체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내가 일하는 회사 본사에는 약 1,400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휠체어를 타거나 신체가 불편해서 보조적 수단을 이용하는 동료를 본 기억이 없다. 근무인원 1,400에 지체 장애인 비율을 대입하면, 약 40명의 숫자가 나오지만, 나는 단 4명의 지체 장애인도 보지 못했다. 회사가 사무실이 많이 위치한 도심에 자리 잡고 있으니, 주변에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을 보고, 만나고, 스쳐 지나가지만 장애인은 거의 찾을 수 없다.

 

그 많은 장애인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는 것이 굉장히 흔한 일이라고 한다. 어느 외국인은 우리나라 거리에 장애인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장애가 모두 완치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장애인을 거리에서 보기 힘든 나라들이 있긴 하다. 장애인의 출현이 체제의 선전에 불리하다고 여기는 전체주의 국가들. 자유가 탄압받는 국가들 말이다.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들은 대개 시설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부모도 자식을 시설에 맡기고 싶지는 않다. 생활의 여력이 되지 않거나, 부모가 연로하여 자녀를 돌볼 형편이 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시설 말고는 대안이 없다. 발달장애인의 자녀를 둔 어떤 부모의 소원이 자식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란 말에 절절함을 느낀다.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도 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런 기본적인 권리가 철저히 무시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 아닌가?

 

홍은전의 <그냥, 사람>에서는 소외받는 이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장애인들의 이동권, 그리고 시설에서 살지 않을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는 장애인이 독립해서 살거나 이동하기 위한 제도와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써 여러 명이 지하철에서 장애인용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숨졌지만, 지하철역에는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곳들이 있다.

 

지하에 최첨단 레일을 깔고 초고속으로 달리는 고급진 교통수단을 건설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손톱만큼만 떼어내면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다. 설사 그 비용의 두 배가 들어간다고 해도 해야 하지 않나? 적어도 장애인의 비율로 저상버스를 만들고 건물의 턱을 낮추고 엘리베이터 버튼 높이를 조절해야 하지 않겠나?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배려하느냐를 보면 그 사회와 국가와 시민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배려이기 전에 권리 아닐까?

 

자신이 중증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악착같이 모은 돈 2천만 원을 탈시설 운동에 써달라며 기부한 꽃님 씨의 모습을 보면 숙연해지기까지 하다. 물론, 중증 장애인이 독립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24시간 장애 보조를 해줘야 할 수도 있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종 특성 중 가장 빛나 보이는 이성을 좀 사용해 보자. 우리가 어떻게 태어날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면, 그러면 어떤 사회에서 태어나길 꿈꾸는가? 모든 사람이 바라는 평균만큼 세상은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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