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적 몇몇 친구들과 소설(이라고 생각한다)을 써서 돌려보며 서로의 작품(!)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나누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 나름 진지했던 우리는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이 자연스러운지, 상황에 개연성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다. 물론 서로 “기대가 되는 작품”이라 추켜세워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아, 적다보니 조금 민망하긴 하다).
이후에도 나의 글쓰기는 소설, 시, 에세이를 거쳐 몇 년에 한번씩 올해는 꼭 무언가(!) 써보겠다 다짐을 하고 끄적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제대로 마무리 짓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만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일까? 다른 취미는 내게 맞지 않는다 생각하면 과감히 접기도 하면서 이 질척거림(?)은 무어란 말인가.
여기에 저자는 명쾌한 답을 준다. ‘본능’이라고, 그러니 빨리 책 쓰기를 시작하라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자. 공들여서 하자. 빨리 시작하자. 당신은 본능을 채우지 못해 굶주려 있는 상태다.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책 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는 당장 착수하라고 권하고 싶다. p.40
* 목차
1 책 쓰기는 혁명이다!ㆍ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
2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장을 쓰라ㆍ작가가 된다는 것, 책을 쓴다는 것
3 그 욕망은 별난 게 아니다, 본능이다ㆍ쓰기, 재능 없어도 됩니다
4 “나 같은 게 책은 무슨……”이라고요 ㆍ글재주 잠재력은 가늠하기 어렵다
5 “이런 책, 나도 쓰겠다” 분노하시는 분들께ㆍ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6 첫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고 ㆍ작법서 너무 믿지 마세요
7 책 쓰기, 권투, 색소폰, 수영의 공통점은 ㆍ초보 작가의 마음가짐
8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써먹는다ㆍ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
9 신파로 안 보여요, 살아 숨 쉬는 인간이라면ㆍ에세이 쓰기①무엇을 쓸 것인가
10 욕먹을 각오 하고, 인용 욕심과 감동에 대한 집착 버리세요ㆍ에세이 쓰기②왜 솔직해지지 못하는가
11 튀려고 할수록 사라지는 개성, 그 얄궂음에 대하여ㆍ에세이 쓰기③내 마음의 모양 알아차리기
12 구체적 단상이 추상적 사고로 발전하려는 간질간질한 순간ㆍ에세이 쓰기④삶을 사랑하는 태도와 나만의 철학
13 본명을 써야만 떳떳할까 ㆍ에세이 쓰기⑤감추기의 기술들
14 스티븐 킹은 새빨간 거짓말쟁이야 ㆍ소설 쓰기①개요를 짜야 할까
15 강자는 욕망만, 약자는 두려움만? 문학이 프로파간다가 되지 않으려면ㆍ소설 쓰기②입체적인 인물이란 무엇인가
16 라면 먹고 싶다, 그런데 먹으면 죽을 수 있다ㆍ소설 쓰기③긴장을 어떻게 조성하고 해소해야 할까
17 심청이 아버지는 잔치가 끝날 때쯤 와야 한다ㆍ소설 쓰기④같은 스토리, 다른 스토리텔링
18 ‘듣긴 했지만 알아낸 게 없는’ 질문만 하는 당신에게ㆍ소설 쓰기⑤소설 쓰기를 위한 취재
19 논픽션의 생명, 문제의식 가다듬는 법ㆍ논픽션 쓰기①논픽션 기획과 문제의식
20 논픽션의 주인공, 현장을 가졌거나 질문을 가졌거나ㆍ논픽션 쓰기②주인공과 스토리텔링 구조
21 납작한 활자를 입체 카드로…… 생생한 논픽션 만드는 여섯 가지 비결ㆍ논픽션 쓰기③문제의식과 현장을 연결하는 기술
22 욕먹어야 한다면, 정확한 욕을 먹기 위해 애쓰자ㆍ퇴고하기, 피드백받기
23 “내 글 읽어주세요” 하기 전에ㆍ투고 요령과 독서 공동체
24 첫 책이 안 팔려도, 꾸준히 쓰면 ‘역주행 효과’ㆍ첫 책과 그 이후
이 책은 저자는 소설가 장강명이다.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저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 조금은 수줍은 듯, 하지만 조곤조곤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던 모습이 전부이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저자는 전문가라기보다는 동네형을 자처하며, 유쾌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책 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책의 목표도 고도로 전문적인 레이싱 기술을 전수하는 데 있지는 않다. 내가 이 책에서 하려는 일은 우선 ‘자전거를 타는 일은 정말 재미있다, 당신도 탈 수 있다’고 부추기고, 독자들이 창고에 있는 자전거를 끌고 공원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중략)..사실 그런 역할은 전문 레이서보다 동네 형이 더 잘할지도 모르겠다. p.18
동네형이 들려준 이야기 중 내 관심을 끌었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쓰고 싶으면 쓰면 된다
무엇보다 ‘쓰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쓰면 된다’는 것이다. ‘감히’ 글쓰기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으니, 그저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글쓰는 것이 좋다면 주변의 시선이나 엄격한 자기검열에 빠지지 말고 그냥 쓰면 된다. 내가 혼자서 끄적이며 글을 쓴다고 주변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뭔가를 창작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에 대해 현대사회는 나쁘게 본다기보다는 신기하게 본다. 남다른 예술혼과 번뜩이는 재능이 있어야 감히 도전할 수 있는 일로 여긴다. 그래서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몰래 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글쓰기 자체를 그냥 포기해버린다. p.36
그런데 왜 유독 책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그거 써서 뭐 하려고?” 하고 스스로 묻고 “내가 그런다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라며 자기검열에 빠지는 걸까. 그냥 내가 좋아서 쓴다는 이유로는 부족한 걸까. 책 쓰기의 목적이 나 자신이어서는 안 되는 걸까. p.48
‘자격 있는 사람만 책을 낼 수 있다’는 은근한 분위기는 이미 책을 낸 기성작가들과, 작가를 선망할 뿐 글을 쓰지는 않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허구다. p.48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주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몇 년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써야 하는 사람이다. p.59
저자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누군가처럼 작가의 꿈은 버렸으나 그 꿈까지 떨치지는 못한, 버린 것과 버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서 떠돌기 싫다면 뭐라도 써야 할 것 같다.
“아이고, 저 같은 게 무슨...... 책은 장 작가님 같은 분이 쓰셔야 하는 거예요.” 그는 작가의 꿈을 버렸다. 그러나 그 꿈은 버려지지 않았다. 그도, 나도 안다. 앞으로도 그에게 작가의 꿈은 버린 것과 버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상태로 살 것이다. p.53
# 글 쓰기와 책 쓰기
일단 글을 쓰기로 했다면 내가 쓰는 이 글이 단순히 ‘글 쓰기’ 인지 아니면 ‘책 쓰기’ 인지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뭐가 다른건가, 어차피 글쓰기를 하고 그 글들을 엮어서 책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차이에 대해 공감이 간다.
책을 쓰는 과정은 사람의 사고를 성장시킨다. 페이스북에 올릴 게시물을 쓰는 일과 책 집필은 다르다. 한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쓰려면 집중력과 인내력이 필요하고, 다방면에서 검토해야 할 사항들이 생긴다. 저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이 말하려는 주제를 종합적으로 살피게 되며, 자기가 던지려는 메시지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비판할지를 예상하고, 그에 대한 재반박을 준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처음의 주장이나 자기 자신 역시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런 성장과 변화를 의미한다. pp.27-28
물론 요즘에는 블로그나 인스타 그램의 글(과 그림, 사진)들이 책으로 엮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책 한 권을 관통하는 주제와 흐름이 있으니 단편적으로 올리는 게시물과는 차별점이 있다. 게다가 책으로 엮으려면 어느 정도 분량도 확보되어야 하는데, 저자는 산문을 예로 들어 얇은 단행본 한 권에 필요한 원고 분량을 알려준다.
산문작가를 꿈꾸는 분들께 내가 제안하는 목표는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매 쓰기’다. 200자 원고지 600매는 얇은 단행본 한 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이다. pp.21-22
그렇게 한 주제로 600매 분량의 원고를 쓴 뒤 지인에게 보여주자. 원고지 100매 분량의 단편소설이라면 여섯편을, 원고지 30매 분량의 에세이라면 스무 편을 쓰라는 말이다. 하나의 제목 아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글들이어야 한다. p.22
참고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책 한번 써봅시다> 원고는 200자 원고지로 710매 분량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 두었다.
지금 당장 책을 내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막상 스무 편의 이야기를 하나의 제목으로 엮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막막하다. 어떤 주제가 좋을지, 어떤 흐름이 좋을지 그 이야기들은 어떻게 연결될까 괜히 혼자 고민에 빠졌다.
물론 책 한 권을 몇 달 만에 써서 출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 한 권 쓰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도 않는다. 요즘 단행본 한 권이 300쪽 남짓이네, 하루 한쪽씩 느긋한 속도로 쓴다면 1년이면 365쪽 분량의 책 한 권 초고를 마칠 수 있다는 얘기다. 구상하고 헤매고 퇴고하는 시간까지 합쳐도 넉넉잡아 3년이면 한 권 쓸 수 있지 않을까. 3년이면 그리 먼 미래도 아니지 않은가. 올림픽도 월드컵도 4년 뒤를 기약하고 준비하는데. p.55
역시, 동네형은 설명을 쉽게 해준다. 그러게. 몇 달 만에 책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 쓸 것도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 월드컵을 준비하는 기간이면 뭐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하루 한쪽씩이라도 뭔가를 쓴다는 내 의지가 전제가 되어야 할테지만 말이다.
# 왜 에세이인가
저자는 에세이, 소설, 논픽션에 대한 글쓰기를 하나, 하나 설명해 주는데, 그 중 에세이에 대한 대목이 가장 관심을 끌었다. 에세이가 쉬울 것 같아서는 아니지만 솔직히 다른 장르와 구분하면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런 내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 듯한 저자의 글에 괜히 얼굴이 화끈해진다.
에세이는 수필이고,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중략)..붓 가는 대로 쓰면 대개는 남이 읽을 가치가 없는 낙서가 된다. p.97
특별한 형식이 없다는 말이 주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결코 아닐 터다. 오히려 형식이 자유로운 만큼 ‘무엇을 쓸 것인가’의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pp.97-98
그러기에 나만의 주제를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글을 읽으니, 나 역시 책을 고를 때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바로 ‘세상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에세이의 전부는 아니지만, 출발점을 제대로 잡으면 좋은 에세이를 쓸 가능성이 확 높아진다. p.98
저자는 '에세이의 핵심은 저자의 개성이며,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고 키워야 에세이를 잘 쓸 수 있다(p.113)'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물다 말하며 이를 도와줄 예시를 드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당신이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 이다.
처음부터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같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지는 말자. 쉬운 질문, 오래 생각하면 누구나 답을 발견할 수 있는 질문부터 던져보자. 예를 들어, 당신이 이 세상에서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p.116
이제껏, 좋아하는 영화는 뭐야? 라든가 좋아하는 장르는 어떤거야? 아니면 이제껏 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뭐야? 와 같은 질문은 받아봤지만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라니, 아니 이 질문에 답하려면 최소한 다섯 편의 영화는 떠올려야 하는 거잖아!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를 대려면 첫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 두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도 알아야 한다.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를 네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보다는 조금 덜 좋아하고 여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보다는 조금 더 좋아하는 이유도 알아야 한다. 내년에는 또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올해의 순위가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그 순위와 이유가 지금 당신의 개성이다. 고작 영화 다섯 편과 그에 대한 설명이지만, 그게 당신과 똑같은 사람은 없다.
좋아하는 영화 1~5위와 이유를 딱 두 줄씩이라도 써보라. 공동 1위나 공동 2위 같은 것이 없게, 분명하게 순서를 매겨보라. 자신이 어디에 가치를 부여하는지,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전보다 더 잘 알게 된다. p.118
저자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공감이 가면서도 이런 어려운 질문을 던진 저자가 조금 얄미워진다. 덕분에 지금 내 머릿속은 내가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를 찾기위해 분주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난감한(?) 질문을 던진 저자는 과연 이에 대한 답이 있을까 싶었는데,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인지 저자는 자신의 답을 적어두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내가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는 커티스 핸슨 감독의 <엘에시(LA) 컨피엔셜>이고, 네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다. p.119
다섯 번째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오늘 읽은 책’의 포스팅으로 올렸던 글이기도 한데 솔직히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내가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적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제껏 내가 봤던 영화 중 좋았던 것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책 한번 써보자는 동네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습관처럼 반복되는 나의 끄적임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계절도 봄이니, 뭔가를 다시 시작해보기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까? 다만 이 꿈틀거림이 한철로 끝나지 않기를, 올림픽을 준비하듯 진득하게 이어지기를 그래서 어릴적 끄적이던 글과는 달리 결말까지 내 손끝에서 마무리 지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다시 말해 ‘작가’가 아니라 ‘저자’를 목표로 삼으라는 게 내 조언이다. 저자를 목표로 삼으면 무엇을 연습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p.23
여기까지 책 한 권 분량의 이런저런 조언을 읽으셨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책 쓰기는 쓰는 사람의 삶을 충만하게 해주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건필을 빕니다. p.256
*나에게 적용하기
하나. 내가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 찾아내기(적용기한 : 3월 중)
*진짜 나도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 )
두울. 200자 원고지 600매 분량의 글 쓰기(적용기한 : 2024년 봄까지)
*기억에 남는 문장
미래는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우리가 선택하고 만드는 것이다. p.11
태권도를 좋아하는 아이가 검은띠를 부러워하는 건 흉잡힐 일이 조금도 아니다. 그러나 아이가 검은띠를 몰래 허리에 두른다고 해서 저절로 검은띠가 되는 것은 아니다. p.27
피겨스케이팅을 감상하는 능력과 피겨스케이트를 잘 타는 능력은 별개다. 글도 마찬가지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좋은 글을 판별할 수 있다고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초보 작가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는 처음부터 원고를 준수하게 잘 쓸 거라고 터무니없이 착각한다. 그랬다가 아이코, 이게 아니네, 하고 놀란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p.73
악기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같은 구간을 수십 번 되풀이해서 연습하는 데 번번이 같은 곳에서 틀리면 저절로 욕이 나온다. 그래도 참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p.76
내가 맷집이 센지 아닌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맞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를. 그렇게 분투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깨닫는 거다. p.78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알수록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그냥요” 같은 대답을 점점 안 하게 된다. p.12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대상을 자세히, 오래 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p.125
여러 추상명사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의해보자. ‘맛있게 먹었다’에서 멈추지 말고 미식의 요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쓰고, ‘행복했다’에서 그치지 말고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써보자. 그러려면 인생의 풍미와 즐거움의 의미에 대해 잠시 고민해야 할 거시다. 국어사전의 정의에 얽매이지 말자. 어차피 사전의 설명은 편의적이고 임시적이다. 단어의 뜻은 계속 변한다. pp.129-130
불필요한 디테일은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전문용어, 업계은어 같은 것들이 그렇다. 취재를 하는 목적은 위에 적은 대로 독자에게 생생함과 설득력을 주기 위해서이지,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칭찬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pp.192-193
염치가 없어야 한다. 신문기자와 소설가로 일하면서 취재원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딱 하나 꼽아본다면 이거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인터뷰이의 말을 멈추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묻는게 이외로 쉽지 않다. 상대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하는 내용을 못 알아들었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상대를 의심하고 따지는 것처럼 비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pp.193-194
가끔 나는 퇴고를 잘하는 작가는 인생도 현명하게 잘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중략)..퇴고를 잘하려면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고 냉정해져야 한다. 참을성도 있어야 하고, 자신과 자신의 작업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뭔지 파악해야 한다. 타인의 조언과 비판에도 귀를 열 수 있어야 한다. pp.225-226
당연한 말이지만 원고를 묵혔다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펼치고 검토하는 게 도움이 된다. 글을 썼던 과거의 나를 잊고, 내가 아닌 남이 쓴 글이라 여기고 살필 수 있어야 한다. 227-p.228
글은 날카롭게 깎되 마음은 온유하게 먹자. 욕을 먹어야 한다면 정확한 욕을 들어먹기 위해 애쓰자. 비판에 익숙해지자. p.233
플랫폼이 어떻든 기본은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한 권 펴내는 데 수백에서 수천만 원이 든다. 그 돈을 나에게 투자해달라고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p.238
글솜씨가 뛰어나고 성실한 학생들이 오히려 칼럼 쓰기 과제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봤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기 때문이다. p.260
긴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가 발전한다. 이해와 성찰의 총량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뜻이므로. 반대로 사람들이 한줄짜리 댓글에 몰두하는 사회는 얕고 비참하다.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