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신의학자이자 조현병 연구 전문가인 E. 풀러 토리의 '조현병의 모든 것'은 조현병을 아는 데 있어서 거의 교과서 같은 책으로 오랫동안 정평이 나 있던 책이다. 무려 35년에 걸친 조현병 연구의 결과를 담아놓았으니 그럴 많다고 하겠다. 그 책이 조금 뒤늦긴 했지만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발간되어 나왔다. 예전부터 조현병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이 책의 명성 또한 익히 들어왔기에 출간되자마자 바로 손에 들었다. 이 책은 그동안 세상이 가지고 있었던 조현병의 시각을 완전히 뒤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조현병은 특히나 프로이드 같은 정신분석학에 의해 개인의 어떤 트라우마에서 발병되거나 사회 환경의 영향으로 발현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이 책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오직 뇌질환에서 연유한다는 것으로 조현병이라는 것이 우리를 침범하는 거의 모든 질병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이라는 걸 설득력 있게 입증했다. '조현병의 모든 것'은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엔 그 내용만 있는 건 아니다. 제목 그대로 조현병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하여 조현병의 증상들은 어떻고 이런 조현병의 원인과 치료과정은 또 어떠하며 조현병 환자를 둔 가족은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등 조현병과 관련한 거의 모든 테마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이 책을 통해 조현병에 대해 새롭게 알게되는 사실이 많았다. 조현병을 한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울증도 조현병의 초기 증상이며 조현병은 주로 환청을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등의 정보들을 말이다. 거기다 담배나 커피가 조현병 환자들의 경우에 위험한데, 특히 흡연의 경우 조현병 환자의 64%가 흡연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담패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조현병에 걸리면 담배를 피우게 된다니 좀 놀라웠다. 아무튼 이렇게 조현병에 대해 알게 되는 사실들이 많다보니 저자가 예견했듯 조현병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저자는 강조한다. 조현병은 특별한 사람들이 걸리는 게 아니라 실은 모두가 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왜냐하면 조현병은 감각 정보들을 분류하고 해석하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결정하는 뇌의 시상이 잘못되어 일어나는 것인데 그런 일은 누구나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여기고 다가갈 필요가 있다. 미국 정신의학 저널은 1968년에 조현병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정신질환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인데도, 정신질환을 대하는 지배적 감정은 대부분의 질병에 대한 감정과 너무나 다르다. 그 병은 너무나 많은 능력을 앗아가고, 사람을 완전히 의존적으로 만들며, 한 사람이 시민으로서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너무나 극명한 영향을 미치는 데다, 많은 사람에게 염려와 두려움을 일으키므로 그 병에 대해 고찰할 때는 특히 병의 치료를 기대한다면 병 자체를 독특한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조현병의 모든 것'은 그런 방식으로 조현병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환자와 가족에게 가져다 주는 부담과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사회 전체가 나서서 얼른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아울러.
조현병을 다룬 영화들 가운데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과 편견을 벗겨낸 좋은 작품도 있지만, 정신병을 왜곡하고 낭만화한 나쁜 작품도 있다. 내가 감명 깊게 본 영화 두 편이 있는데, 199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포브스 내시 주니어의 인생을 다룬 「뷰티풀 마인드」는 전자에 속하고, 정신병원의 인권침해 문제를 다룬 켄 키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는 후자에 해당한다. 「뷰티풀 마인드」는 조현병 환자의 발병 전의 비사교성 및 망상과 환각, 행동이상 같은 전조 증상들을 명확하게 묘사하고, 환자의 아내, 아들, 어머니, 친구들에게 미친 파괴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잘 재현하고 있다. 반면에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는 정신과 의사들과 간호사를 사악한 존재로 묘사하고, 추장 브롬덴을 비롯한 조현병 환자들을 아픈 게 아니라 강압적인 의료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저항자로 그려낸다. 조현병의 세계적인 권위자 E. 풀러 토리는『조현병의 모든 것』(푸른숲, 2021)에서 조현병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진실을 말한 최고의 책과 허구와 신화를 만든 최악의 책을 구분하고 있는데, 최악의 책 목록에 놀랍게도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명저『수용소』가 포함된다.
조현병은 마음이 망가진 병이 아니라 뇌가 망가진 병이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에서 조현병은 종종 뇌의 병이 아닌 마음의 병으로 재현되고, 묻지마 범죄와 같은 스릴러물의 소재가 되거나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처럼 천재 예술가의 비운으로 낭만화되거나 한다. 또한 대중들은 조현병에 걸리면 마치 치매처럼 꾸준한 치료를 받아도 정상적인 회복은 불가능한 불치병으로 여기고 평생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조현병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이 걸리고,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심각한 병이다.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더 좋은 치료 결과가 예측되고, 친족 중 조현병 병력이 전혀 없는 이들의 경우 양호한 회복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편, 발병 연령이 낮고 조현병 가족력이 있을 경우는 예후가 좋지 않다.
조현병은 치료와 약물을 필요로 하는 뇌질환으로 100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 조현병의 임상 증상은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긴장증적 행동 같은 양성 증상과 위축, 냉담, 사고 빈곤, 정서적 둔감 같은 음성 증상이 있다. 주로 발병하는 특정 연령대가 있는데 대다수가 17세에서 25세 사이에 발병하고, 14세 이전이나 30세 이후에 최초로 발병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조현병의 발병 시기는 10대 후반 청소년기와 20대 초반 청년기 때다. 조기에 꾸준한 약물치료를 받으면 어느 정도 호전될 수 있는데, 특히 노화가 조현병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이로운 작용을 하기에, 일반적으로 세월이 지날수록 예후도 그만큼 더 좋아진다. 평균적인 조현병 환자들에게는 30년 경과가 10년 경과보다 더 양호하다.
조현병은 주로 뇌의 구조적, 신경심리학적, 신경학적, 전기적 이상들에 기인하지만, 이외에도 대마초나 성적 학대처럼 조현병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기타 위험요인들도 있다. 흥미롭게도 조현병이 있는 사람은 류머티즘성관절염에 거의 걸리지 않고, 류머티즘성관절염이 있는 사람은 조현병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백세시대를 맞이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치매와 암의 관계처럼 서로 상쇄하는 경우다.
◆ 소개
▷ 조현병의 모든 것
▷ E. 풀러 토리
▷ 심심(푸른숲)
▷ 2021년 05월 12일
▷ 760쪽 ∥ 962g ∥ 152*225*40mm
▷ 정신분석학
◆ 후기
▷내용《上》 편집《中》 추천《上》
정신병(精神病, psychosis) 정신기능에 이상을 나타내어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 지장을 초래하는 질환을 의미한다. 대부분 정신병은 감기보다 약한 증상임에도, 모든 정신병은 ‘조현병’이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뿌리박혀있다. 주변에 우울증이나, 불면증으로 신경정신과에 진료받고 약을 먹는다고 하면 마치 대단하게 위험한 사람으로 비친다. 그래서, 신경정신과에 다니는 일들은 대부분 비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조현병(調絃病, Schizophrenia)은 환각·망상·행동 이상 등이 6개월 이상 나타나는 만성 사고장애이다. 인간은 2%밖에 되지 않는 뇌로 30% 가까운 에너지를 소모할 만큼 뇌를 진화시켜온 생물이다. 진화에는 항상 반대급부의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고 뇌로 인해 형이상학적인 사고가 가능한 생물이 되었으나, 그로 인해 형이상학적 망상을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유전질환이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정신질환이 없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누구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데, 그 정도의 차이가 범위를 넘어설 때 조현병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조금씩은 조현병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믿기 어려워할 만한 기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장면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같은 질문을 지역사회에 시행했다. 유럽 인구의 18%가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영화 속 조현병,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래 광인 캐릭터는 늘 존재했지만, 상투적 묘사에 지나지 않았고 유머나 공포를 위한 소재로만 사용되었다. 20세기 이후 할리우드가 프로이트주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면서 광인 캐릭터는 지혜로운 정신과 의사들의 재능을 드러내기 위한 소품처럼 사용되었다. 창조성과 조현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토론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탁월한 지력의 소유자들은 광인들과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 300년 전 시인 존 드라이든이 쓴 이 말에는 많은 사람의 견해가 반영되어있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결정적 대답에 아주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섰을 뿐이다.”
데자뷰(deja vu) 처음 해 보는 일이나, 처음 보는 대상·장소 따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현상. 뇌가 저장된 기억의 자취를 더듬는 과정에서 기억의 착각이나 신경 세포의 혼란으로 정보 전달이 잘못되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지자는 신의 뜻을 해석하는 신의 대변인을 가리킨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모세·사무엘·엘리야 등 신의 음성이나 모습을 본 자들을 말한다. 신과 직접 대면하는 인간은 1000년에 1명 등장할까 말까 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거나, 기적을 받았거나 행하는 자들은 선지자라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자신을 이런 선지자라고 말하는 인간들이 100명 중의 1명은 된다. 일생 100명 중 1명이 누구나 한 번쯤은 걸리는 감기보다 흔한 질병이 조현병이라고 한다. 살아오면서 환청 한번 안 들어본 사람 있을까
칼은 사냥·요리 등을 위한 훌륭한 도구이자 인간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지구에서 가장 많이 차치하는 원소가 철(Fe)이다. 철로 만들어진 이 칼은 훌륭한 도구이자 한편으로는 살인의 도구이며, 전쟁의 도구였다. 그래서 칼은 인간의 양면성을 매우 잘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누구의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 이기와 흉기로 바뀐다. 엄마가 잡은 칼을 보면 안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만, 낯선 자가 잡은 칼을 보면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 뇌를 바라보는 것 또한 이러하다. 뇌가 보이는 천재성을 동경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광기에 대해서는 외면하려 한다. 자신이 조현병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