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란 다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대규모로 죽을 쑤는 원인은 바로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성,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바로 그 특성 때문인 경우가 많다. 즉, 인간은 세상에서 패턴을 읽어낸다. 그리고 알아낸 것을 다른 인간에게 전할 수 있다. 또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줄 알아서, ‘이걸 이렇게 바꾸면, 저게 저렇게 돼서, 살기가 좀 더 편해지겠지?’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문제는 그중 어느 하나도 그리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패턴이 없는 곳에서도 패턴을 읽는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부족할 때가 많다고만 해두자. 우리는 이걸 이렇게 바꾸면, 이상한게 덩달아 바뀌고, 또 다른 게 이상해지다가, 결국 이게 뭐야, 살려주세요······ 하게 된다는 예상을 하지 못한다. 이는 과거의 화려한 실적으로 증명된다. 인류가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하고 아무리 많은 난관을 극복했다 해도 파국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p.11)
인간의 머리는 어떻게 세상을 주름잡고 기상천외한 일들을 해내면서도 동시에 누가 봐도 어이없는 최악의 결정을 날마다 내릴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우리는 어떻게 달나라에 사람을 보내면서, 옛날 애인에게 그런 한심한 문자를 보내는 것일까? 모든 것은 우리 뇌가 진화한 방식에 기인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진화라는 과정은 영리함과 거리가 멀다. 멍청할 뿐 아니라 아주 고집스럽게 멍청하다. 진화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래저래 죽을 수 있는 수천 가지 시나리오를 피하고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잘 넘어갈 때까지만 죽지 않고 사는 것, 그것뿐이다. 그렇게만 되면 성공이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다시 말해 진화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p.25)
아마 인류 최고의 역작은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가 아닐까 싶다. 바다 한가운데에 우리가 버린 쓰레기 더미가 광대한 섬을 이루어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는 언뜻 시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면적이 텍사스주 정도에 이르는 이 쓰레기 섬은 북태평양 환류에 갇혀 대양을 끝없이 순환하고 있다. 대부분이 미세 플라스틱 입자와 어로 장비 파편으로 이루어져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해양 생물들에게는 막심한 피해를 주고 있다. 과학자들의 최근 추산에 따르면 인류는 플라스틱을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83억 톤이 넘는 플라스틱을 생산했다고 한다. 그중 63억 톤을 버렸고, 그것이 지구 표면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위엄이다. (p.55)
우리는 끔찍한 사건의 배후에는 뭔가 치밀한 고도의 기획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아니, 그렇게 엄청난 비극이, 무슨 천재 악당이 사주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벌어질 수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천재 악당이 눈에 띄지만 않으면 별일 없겠구나, 하고 안심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는 이것이 오판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거듭 저지르는 실수다.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인재들은 대개 천재 악당의 소행이 아니다. 오히려 바보와 광인들이 줄지어 등장해 이랬다저랬다 아무렇게나 일을 벌인 결과다. 그리고 그 공범은 그들의 뜻대로 부릴 수 있으리라고 착각한, 자신감이 넘쳤던 사람들이다. (p.125)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필치로 써내려간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역사 강의 <인간의 역사>. 인류, 그 화려한 바보짓의 역사. 가장 지적인 존재이자 가장 바보 같은 존재, 호모 사피엔스. 시도 때도 없이 사고 치는 우리에게 역사가 묻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인간?" 3센트 더 벌자고 유연 휘발유를 개발해 전 세계에 납중독을 일으킨 미즐리, 재미로 영국산 토끼를 몇 마리 들여왔다가 호주의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뜨린 오스틴, 벼를 먹는 참새를 박멸하려다 메뚜기 떼 창궐로 대기근을 부른 마오쩌둥, 칭기스칸의 편지를 잘못 이해해 지도에서 영영 사라진 호라즘 제국 등 잘난 체하고, 아는 체하고, 있는 체하다가 결국 일을 그르치고 마는 인간의 역사. 이제 그만 망해도 되지 않을까? 책에는 인간이 저지른 헛짓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객관적인 시선으로 써내려간 인류의 대실패 기록. 때론 코미디, 때론 스릴러, 때론 집단 시트콤 같은 장면들······. 인간 종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저자는 지금까지 역사책에서 볼 수 없었던 신랄함과 유머, 충실한 연구로 우리를 다그치고, 독려하고, 때로는 응원한다. 그가 기록한 역사는 말 그대로 흑역사의 연속이다. 진시황, 히틀러, 마오쩌둥, 콜럼버스 등 우리가 아는 헛짓거리의 대명사들부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개개인의 치명적인 흑역사까지 총망라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일을 말아먹는 재주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책이다. 우리가 저지른, 말 그대로 화려한 실패의 역사가 빼곡히 담겨 있다. 물론 우리가 이룩한 위대한 역사들도 있다. 우리 머리는 교향곡을 만들고, 달에 사람을 보내고, 블랙홀을 생각한다. 하지만 포테이토칩 하나를 살 때에도 5분은 족히 고민해야 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인류가 지나온 그 화려한 바보짓의 역사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인간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후회한다. 금세 까먹는 것 또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어찌된 것이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그야말로 시간순삭! 역사책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버리자.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역사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오늘의 뉴스를 보며, 혹은 우리 일상에서 도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럴까 궁금할 때가 있다면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자. 역사 속 인간들은 그 답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