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gratitude)에 대한 과학 연구라고 하면 매우 어색하다. 감사라는 게 과학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부터 의아스럽고, 그걸 대상으로 과학 연구를 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UC 버클리의 대처 켈트너 교수가 중심이 되어 만든 그레이터 굿 사이언스 센터가 바로 그런 연구를 하고 있다. 2014년 존 템플턴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감사 과학과 실천의 확장’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지원금액이 4백만 달러라니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만큼 가치가 있는 연구(나아가 실천)이라는 얘기다. 그럼 무엇을 연구하고, 어떤 실천을 주도했을까
그레이터 굿 사이언스 센터가 중심이 된 연구자들은 감사가 사람 사이의 관계(이를테면, 연인, 가족, 직장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감사가 사람에게 어떤 신체적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 감사와 신경 과학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도 이뤄진 모양이다(아직은 시작 단계인 듯). 그리고 ‘감사 일기’라는 실천 활동을 벌였다.
사실 그들의 연구 활동과 실천 활동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연계된 것이었다. 그저 감사는 좋은 것이라는 모호한 인식에서 나아가 감사가 가지는 유익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감사의 마음, 감사의 표현이 퍼져나갈 수 있는 실제 근거를 세우려 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감사 일기를 쓰거나, 감사해야 할 일을 떠올리고, 말을 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심혈관계 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학업 성과가 올라가고, 부부나 연인 사이의 관계가 좋아지는 결과를 얻었다. 감사는 정말 좋은 것이었다. 다방면에.
《감사의 재발견》. 이 책은 그 연구 성과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고, 감사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토로한 감상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저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형식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모두 감사가 가지는 실제적인 효용성을 강조하고 있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감사를 일상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감사 일기 같은 것.
내가 누구에게 감사하다, 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를 가만 생각해보니 좀 부끄럽단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부모님에게, 동료 교수들에게, 내 실험실의 대학원생들에게... 최근 들어 거의 감사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 책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듯이 표현되지 않는 감사는 효과가 없다 하니 내 감사의 마음은 누구도 감사로 여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감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에 대한 반복적인 내용보다 더 다가온 것은 바로 그런 감사의 방법이다.
“자신이 어떤 유익을 받았는지 언급하는 것과 파트너의 행동을 칭찬하는 것은 둘 다 긍정적인 감사 표현이지만 독립적이다. (중략) 상대방을 칭찬하는 것이 자기 유익을 언급하는 것보다 감사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47쪽)
“감사 인사가 사물이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낸다. 우리 모두 아침 커피 한 잔에 감사하지만 감사 인사는 매일 아침 커피를 준비한 행정 직원 메리에게 돌아가야 한다.” (196쪽)
내일 아침 아내에게 어떤 감사를 해야 할지 벌써 분명해진다.
감사의 재발견
뇌과학이 들려주는 놀라운 감사의 쓸모
제러미 애덤 스미스, 키라 튜먼, 제이슨 마시, 대처 켈트너 편저 | 손현선 옮김 | 현대지성
감사하라... 많이 들은 말이다. 그래서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궁금함이 생겼다. 과연 시궁창같은 삶을 살면서도 감사할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많이 가진 자는 더 감사하기가 쉬워야하는데 사회가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꼭 그것이 정답은 아닌 것같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잃은 것이 많다는 생각에서인지 가질수록 인색한 자들도 많다. 예전에 보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아 배우가 극중 이런 말을 했다. 가진 자는 착한 사람이 되기 쉽다고 말이다. 부자는 누가 뭐라해도 가난한 자보다 기회도 많고 여건만 된다면 남을 도와서 스스로를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 떠나서...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가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할 이유가 이 책에 있다. 뇌과학이라니...이것이 바로 과학이라니...
책에는 제러미 애덤 스미스 뿐만 아니라 여러 저자들이 각각의 장을 할애해서 감사의 과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총 6부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은 감사의 정의부터 뇌의 반응까지 다뤘으며, 2부는 감사가 우리에게 유익한 이유를 말해준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 중 누가 감사를 잘하는지, 나라마다 다른 감사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3부는 감사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4부는 감사하는 가족이 되는 법을 말해준다. 5부는 우리가 가장 감사하기 힘든 직장과 학교에서 감사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마지막 6부는 감사와 사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많은 챕터 가운데 감사하는 아이로 양육하는 법에 대한 챕터가 흥미로웠는데, 감사는 일상 속에서 즉, 범사에 감사해야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감사란 시간이 지날수록 발달한다고 한다. 어릴 적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감사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그 결과 감사하는 어른이 되기위해서는 어릴 적 교육이 중요하다. 감사하는 태도는 부모가 손수 보여야하고 훈련되어야한다. 저녁 식사나 혹은 취침 전 가족이 돌아가며 그날 하루에 일어난 일 중 좋은 일, 감사했던 일을 세가지씩 나눈다면 혹은 명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아마 아이의 하루는 나날이 충만할 것이다.
순간 오늘 하루 나의 일을 생각해본다. 배우자의 차를 타고 급하게 어디로 가는 중이었다. 차가 잠깐 멈춘 건데 나보고 내리라고 멈춘 줄 알았다. 차 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한 발을 딛고 내리려할때... 글쎄, 차가 바로 출발하지 않는가? 얼마나 놀랐던지... 운전자는 더 놀랐지만 말이다.
아...감사한다. 다칠 뻔했는데, 약간 복숭아뼈가 멍든 정도로 그쳤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삶에서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번 설에 아이들과 시골집에 갔는데, 둘째가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약간 긁힌 상처로 끝났지만 말이다. 아.. 감사하다. 일상에서 감사의 순간들이 이렇게 많다니... 또 또 찾아보고 싶다. 내가 꽤 행운아로 여겨진다.
참고로 감사하면 투표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냉소가 아닌 감사로 이 사회가 나아간다면 앞으로 더 나아질 대한민국을 좀 더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그레이터 굿 사이언스 센터에서 실시한 ‘감사 과학과 실천의 확장’이라는 프로젝트는 감사의 유익은 성별이나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는 감사에 관해 연구할 때 성별이나 문화를 고려하여 더욱 세심하게 접근해야 함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미 감사 수준이 높은 여성보다 남성들에게서 감사 일기 쓰기 등 감사 실천의 유익이 더 크게 나타났다고 한다.
《감사의 재발견》은 이런 유익을 독자가 실생활에서 바로 꺼내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책은 감사에 관한 에세이와 특별히 주목할 만한 과학적 발견을 드러내는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고, 그리 평범하지 않은 사상가들의 대담도 접할 수 있다.
막연하게 ‘감사는 유익하다’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와 다양한 맥락에서 감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타인이 당신 삶에 기여한 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자아상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자기 가치에 대한 이 새로운 인식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열쇠다,
감사는 의존성을 부추기거나 부채 의식과 의무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 그런 것은 기우일뿐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감사에 대한 많은 편견들은 감사가 단순무식한 정서라는 뿌리 깊은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뿐, 연구자들이 수십 년도 넘게 감사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감사의 세계가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연구자들은 매년 감사에 또 다른 뉘앙스나 새로운 층이 생겨나고 있음도 발견한다. 따라서 다년간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정리된 감사의 복합성을 인식한다면, 감사의 장점과 유익을 더 잘 누릴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윈이 최초로 했던 감사가 여러 종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정서일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흥미로웠다. 공격성과 경쟁심 등 인간이 가진 가장 나쁜 성향뿐만 아니라 감사와 같은 ‘선’의 뿌리 역시 깊다는 점이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감사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감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행하기’에만 취중 된 감사가 아닌 ‘알아채기-생각하기-느끼기’ 항목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이라 새로웠고, 습관적인 행동이 아닌 감사하는 사고를 학습시켜야 한다는 설명에 공감했다.
감사는 정말 좋은 것이고,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그냥 아는 것과, 이렇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는 감사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많은 차이가 난다.
막연하게 좋다니까 해야지 하면 실천하는 것이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감사가 실질적으로 나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지 알게 된다면 확실히 실천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감사를 실천해서 그런 유익을 얻는데 나만 뒤처지기 싫어서라도 실천하고 싶어질 것이다.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어떨까? 아마도 기를 쓰고 감사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면 감사 학원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감사를 실천해서 감사의 유익을 누리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