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상황들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시간들이,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과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은 좋아 보이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 그 빛이 바랠수도 있고, 또 반대로 내가 무던히도 피하고 싶었던 것들이 나를 단단하게 하고 이제껏 보지 못했던 시야를 만나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니 하나, 하나의 일들에 좋다, 나쁘다 마냥 좋아할 필요도, 우울해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제목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이 책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아침시간 업무를 시작하기 전, 오후를 시작하기전 점심시간에 그리고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펼쳐들어 하나, 둘 야금야금 읽어내려갔다. 그중 몇몇 이야기는 블로그에 나의 생각과 함께 올려두기도 했다.
내 마음에 남은 이야기들을 모두 소개하려면 책의 절반을 옮겨적어야 하니, 오늘은 그 중 내가 일상에서 잊지 않고 싶은, 지켜가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볼까 한다.
# 말하는 대로
마음 속에서 하는 말을 조심하라는 격언이 있다.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해도 자기 자신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는 무의식 속에서 정신을 부패시키고, 어떤 단어는 기도처럼 마음의 이랑에 떨어져 희망과 의지를 발효시킨다. p.36
입 밖으로 꺼내는 말 만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하는 말을 조심하라는 글을 읽으며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솔직히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불평을 하고, 또 때로는 더욱 심한 말(상상에 맡깁니다^^;)을 속으로 삼켰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스스로 잘 참았다 뿌듯해하지는 않았던가. 그런데 그 말을 내가 듣고 있다는, 당연하지만 이제껏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상황을 마주하니, 이제는 나에게도 좋은 말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가 의식을 바꾸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모국어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세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가, 무엇을 듣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듣는가,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p.75
작가가 힌디어를 배울 때, 그에게 언어를 가르쳐준 지인은 하루에 한 문장씩만 알려주었다고 한다. 연습을 해야 하니, 계속해서 그 말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다보니 언어가 의식을 바꾸고 또 보이는 것들마저 바꾸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인은 행복, 아름다움과 같은 말들을 작가에게 가르쳐주었다.
‘아즈 함 바훗 쿠시 헤!’ (나는 오늘 무척 행복하다) p.72
‘순다르 하와 찰 라히 헤! (아름다운 바람이 불어오네) p.73
# 서로에게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여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p.48
언젠가 책을 읽다가 만난 플라톤의 문장과 닮은 글이었다.
친절하라.
네가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힘들게 싸우고 있으니까. -플라톤
그 글을 읽고 다들 힘들게 싸우고 있다는 말에, 그러니 친절하라는 말에 울컥했더랬다.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 그들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또 나의 방식으로 여행하기를 고집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저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어린 인사를 전하며 친절히 대해야 한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들은 그것으로 많은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판단보다는 온 마음을 담아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어떤 사상과 지식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p.101
# 마음은 게스트하우스
마음은 게스트하우스와 같아서 여러 감정들이 번갈아가며 찾아온다. 반가운 투숙객도 있지만 어떤 감정들은 불청객이다. 마음의 방을 어지럽히고, 소란을 피우고, 불평하고, 문을 발로 차서 일과를 망친다. 잠들 때까지 영혼을 괴롭히는 감정들도 있다. 무의식에 난 틈새로 등장하기 때문에 쫓아내기도 어렵고 잠금장치를 해 둘 수도 없다. p.155
다양한 감정들이 찾아오는 마음을 게스트하우스로 설명한 이 글은 그 비유가 절묘해서 감탄이 나기도 했다. 반가운 투숙객, 불청객 게다가 어떤 손님들은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고정적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블랙리스트에 올려 쫓아낼수도 없으니 그저 소란을 피우지 않고 잘 머무르다가 떠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이 감정들에게 이름을 불러 주라고 권한다. 슬픈 감정이 오면, “슬픔, 너구나. 어서 와.” 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중략)..그것으로 충분하다. 손님들에게 자신의 집을 영원히 내줄 필요까지는 없다. pp.155-156
다행인 것은 말 그대로 감정들은 게스트하우스에 잠시 머물다 떠난다는 것이고 내 마음을 완전히 슬픔에게, 우울함에게, 조급함에게 내어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저 오랜만에 왔구나, 잘 머무르며 그 감정을 추슬러서 돌아가도록 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들이 떠난 방을 깔끔히 정리하며, 평온함을 되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나는 잠시 화가 났을 뿐이지 화가 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잠시 두려울 뿐이지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며, 잠시 슬플 뿐이지 슬픈 사람이 아니다. 나는 맑고 고요한 존재이다. 우리는 어떤 감정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pp.158-159
이밖에도 많은 글들이 마음에 남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책의 절반 이상을 옮겨적을 수 없으니 아쉽지만 지금 내 마음속에 떠오른 글들을 소개해본다. 어쩌면 내일 아침이 되면, 또 다른 글들이 떠올라 다시 글을 올려야 하나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전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p.59
*나에게 적용하기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갖기를. 친절하기를. 판단하지 않기를. 해를 끼치지 않기를(적용기한 : 지속)
“내가 가능한 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갖기를. 만약 내가 이 순간에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친절하기를. 만약 내가 친절할 수 없다면 판단하지 않기를. 만약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면 해를 끼치지 않기를. 그리고 만약 내가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최소한의 해를 끼치기를.” p.173
*내가 포스팅한 글들
구불구불한 글씨로 적은 : http://blog.yes24.com/document/13174740
과정을 거쳐야만 : http://blog.yes24.com/document/13193908
멋진 사람 : http://blog.yes24.com/document/13220497
*기억에 남는 문장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력을 갖게 된 사람은 남을 의심하거나 절망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섣부른 충고나 설익은 지혜로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다. p.22
외부 상황에 대한 지나친 해석으로 내면의 전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은 인간 심리의 흔한 측면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때 노랑 앵무새를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눈을 감자마자 노랑 앵무새를 떠올릴 것이다. 그 생각은 차츰 강박적이 되어 밥을 먹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심지어 꿈속에도 노랑 앵무새가 나타날 것이다. 그 새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p.27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치료하는지도 모른다. 상처는 우리가 자신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키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준다. p.41
작자 미상의 누군가가 말했듯이,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하는 것이다. p.42
만약 우리가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전체 이야기를 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 그것이 삶의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지나간 길이 아니라 지금 다가오는 길이다. p.57
우리는 신에게, 삶에게 묻곤 한다. ‘왜 나에게 이것밖에 주지 않는 거지?’ 그러나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답한다. ‘이것만이 너를 네가 원하는 것에게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중략)..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p.64
당신과 나, 우리는 어차피 천재가 아니다. 따라서 하고 또 하고 끝까지 해서 마법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p.70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 I like me best when I'm with you.”
두 사람의 관계가 부러운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살아온 과정과 삶의 방식이 달라도 나의 존재 전체를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그런 관계가.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관계. p.99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p.105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
나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가는 감추거나 꾸미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드러내며, 내가 주장하는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에 대해 가장 잘 말해 준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가장 진실된 나의 모습에 가깝다. p.105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라 무력감이었다. 우리를 쓰러뜨리는 것은 이 무력감이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바로잡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존재가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p.108
생각은 언어만큼이나 쉽게 전염된다. 마음이라는 공간 안에 담겨 있는 ‘나의 고유의 생각’들은 수많은 ‘타인의 생각’들과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내가 어떤 생각들과 나를 동일시하면서 ‘이것은 나야’라거나 ‘이것은 내가 아냐’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 참일까? p.144
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훌륭한 정원사는 어느 가지가 나무에 유익하고, 어느 가지가 단지 자양분을 빼앗을 뿐인지 구분할 줄 안다. 가지치기가 안 된 나무가 과수원을 망가뜨리듯 정리되지 않는 관계는 인생을 고갈시키고 불만족과 고통의 원인이 된다. 고통은 우리를 떠나는 것들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을 떠나 보내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p.163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p.176
“나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무와 사람은 모든 계절을 겪은 후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계절만으로 인생을 판단해선 안 된다. 한 계절의 고통으로 나머지 계절들이 가져다줄 기쁨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만 겪어 보고 포기하면 봄의 약속도, 여름의 아름다움도, 가을의 결실도 놓칠 것이다.” p.184
인내는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인내는 앞을 내다볼 줄 알고 살아가는 일이다. 가시를 보고 피어날 장미를 아는 것이고, 어둠을 보고 떠오르는 보름달을 아는 것이다. p.187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얼마만큼 아는 것을 의미할까? ‘안다’처럼 정반대의 말과 같은 의미인 단어가 또 있을까? 가까운 관계라 해도 어떤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에 가깝다..(중략)..관계가 공허해지는 것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