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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 하고 싶은 면서기 >
나는 팀장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니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이번 독서후담은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어서.
내가 일하는 지자체의 공무원 조직은 시청의 경우 ‘주무관(9~7급) > 팀장(6급) > 과장(5급) > 국장(4급) > 부시장(도청 4급) > 시장’으로, 면 동은 ‘주무관(9~7급) > 팀장(6급) > 부면장 사무장(6급) > 면장 동장(5급)’으로 계급화 되어있다.
당연하게도 내 공직생활의 꽃은 9급 병아리 시절이었다. 스물 넷, 아무것도 몰라도 ‘응, 괜찮아’ 소리를 듣던 시절, 막내특권을 독점했던 시절. 먼 세기의 기억인 것도 같고 바로 얼마 전의 일인 것도 같은 그 때.
이제야 그 때, 나만 홀로 명랑했을 그 때의 선배들의 난감을 짐작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막내특권을 누리는 애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어디부터 가르쳐야 하지? 무슨 일을 얼마나 줘야하지? 얘가 어느 선까지 해줄 수 있을까? 내 얘기를 알아듣긴 한 걸까?
이 책, 『일을 잘 맡긴다는 것』은 남편의 권유로 읽었다. 책을 추천받을 때 어째 기분이 애매해질 때가 있는데 (너 지금 형편없는데 대놓고 말은 못하겠으니까 이 책 제목이라도 좀 읽어볼래?) 독서취향이 확연히 달라 책 추천은 서로 하지 않는데도 “이거 읽어봐.” “읽었어?” “왜 안 읽어?” 이틀에 걸친 강권과 이러니저러니 해도 12년을 같이 살았고 무엇보다 같은 직장에 있다보니 업무 스타일을 잘 아는 사람이 권하는 책인지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맞다. 나는 일을 잘 못 맡기는 사람이다.
- 내가 하는 게 빨라 행정력을 크게 아낄 수 있고(9급 때 하루 걸려 했던 일을 지금은 한 두 시간이면 끝내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 직원이 바빠 보여 미안하기도 하고,
- 일 안 하는 팀장은 정말이지 질색이고,
- 맡겨 놓은 일의 과정이나 결과를 손보고 싶어도 말 꺼내는 게 어려워 그렇다. ‘이건 이런 식이 좋을 거 같아’ 하면 ‘그럼 직접 하지 왜 나한테 하라 그래?’ 생각할 것 같아 조심스럽다. 올라오는 기안을 슬쩍 수정하면서도 혹시 자존심 상해하지 않을까 싶어 울상이 되어 고쳤다 말았다 반복한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그렇게 소심해서 뭔 일을 할래?’ 꾸중하지 말아 달라. 나도 점점 용기를 내는 중이다.
용기를 내야하는 이유 또한 잘 알고 있다. 일을 맡기지 않고 내가 다 해버리면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직원은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뭔가를 해냈을 때의 만족감, 유익하든 무익(때론 유해)하든 선배, 동료의 코멘트와 내 생각을 비교할 때의 골똘함, 내가 지금은 아랫것이니 하라는 대로 하지만 내 기필코 당신 같은 윗것은 되지 않으리 분연했던 마음 같은 것들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
더구나 내가 완벽하게 옳고 정확한 게 아닌 데다 아무리 보수적 성향이 강한 공공행정이라 해도 다양한 각도의 생각과 시도가 무조건 필요하다고 믿기에 내 마음에 아주 딱 차지 않아도, 더딘 속도가 답답해도, 일이 어떻게 진척되는지 불안해도 일단은 맡겨보려고 한다.
결과가 나오면 예전부터 이어지던 구태의연하고 비효율적인 방식, 불필요한 절차, 과도한 방어 같은 것들은 바꾸어 보자고 말한다. 어려운 행정용어 대신 쉬운 말을 쓰고,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증명을 다시 요구하지 말고, 무겁게 다루어야 할 사항이 아니면 민원인이 더 짧은 시간에 편리하게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방법을 바꾸자고 말이다. 대신 “이건 내가 하는 방식이야. 내 방식이 최선은 아니야.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정도만 참고해서 확장하고 삭제하고 변경해서 네 방식을 만들어야 해.”를 꼭 덧붙인다. 진심이다. 이 많은 공무원들이 그런 고민을 해준다면 우리 행정이 나아지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공무원들의 말을 믿지 않는 시민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깊이 새겨야 하는 게 맞다.
저자 아사노 스스무는 리더와 직원의 유형을 이렇게 나눈다.
■ 리더의 유형
- 플레이어형 : 실무 쥐고 있어야 안심
- 소심 걱정형 : 보고받지 않으면 불안
- 방임형 : 각자 일은 각자 알아서
- 속수무책형 : 만약의 상황엔 멘붕
- 부적재 부적소형 : 적임자가 누군지 모름
■ 직원의 유형
- 철부지형 : 무모 또는 소심
- 초성실 터널 시야형 : 나는 내 일만
- 배째라형 : 툭하면 “그만둘래”
- 트러블메이커형 : 일 맡겼다 하면 사고
- 귀차니스트형 : 모든 게 귀찮다
- 무념무상형 : 의욕도 생각도 없음
- 업무 당당 거부형 :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 언행불일치형 : 대답은 하지만 행동은 안 함
물론 문제 발생을 막자는 취지여서 그렇겠지만 긍정적인 유형들도 함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최악의 경우가 되더라도 방임형과 속수무책형 리더만은, 저 모든 유형의 직원만은 되지 말자는 다짐도 했다.
저자가 이렇게까지 유형을 나누고 각 유형마다의 처세를 강조하는 이유는 경영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직원들의 인종, 성별, 성향 등이 다양해지고, 기업의 시장이 전 세계로 확대되고, 개성과 주장이 뚜렷한 90년대 생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으니 다양한 유형의 직원들에게 각 상황에 맞추어 ‘일을 잘 맡기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명확히 말한다. 인종, 성별, 연령, 학력, 성격, 가치관 등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폭넓게 인재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다이버시티 매니지먼트(다양성 관리 경영, diversity management)는 따로 적어두기도 했다.
또 상부에서 수립한 방침에 따라 업무를 계획하고, 조직화하며, 할당하고, 지시하고, 통제하고, 조정하는(계획 plan > 실행 do > 확인 check > 개선 action) 능력이 리더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도 새겨두었다.
언젠가 후배직원이 “시키실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하기에 “시키실 것 아니고 부탁할 것”으로 정정해준 적이 있다. 조직의 특성 상 보다 높은 직제에서 정한 일이 순차적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이 진행되는 시스템일 뿐 일은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고 나누어 맡는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이 일을 잘 맡기고 생산성을 높이는 보증은 아니다. 세상 그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사연과 맥락으로 공동체에 속하고 조직을 운영하고 사회를 이루는데 책 한 권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원작이 그렇게 쓰였는지 번역을 그리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부하 직원’이라는 명사가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부하라니…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자신을 객관화 하고 앞으로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독서였다는 후담을 기록한다.
덧붙임) 2021년 업무계획을 다시 제출하라 그래서… 내가… 했다. 잠깐만 변명할 수 있게 해달라. 우리 팀은 나를 빼고 직원이 둘 뿐인데 직원들은 온종일 민원창구에 앉아 등·초본과 인감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따위를 수억 장 발급하고 전입신고를 받고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열 지문을 찍고 면사무소에 컨테이너를 놓고 살겠다는 거소불명자 말소인의 고함을 청취해야 한다. 점심은커녕 커피 한 잔도 느긋하게 못 마신다. 퇴근 때까지 면사무소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떼고 해님 한 번 못 보는 날이 계속이다. 그래서 내가 했다. 내가 해서 직원들에게 검토해 달라고 했다. 반성을 조금 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음에도 그럴 것 같다. 더 반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