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한마디
[기욤 뮈소, 작가, 소설, 인생을 말하다] 현실과 소설을 넘나드는 기욤 뮈소 신작 소설. 성공한 상업 작가 로맹은 소설 속 주인공 플로라 콘웨이을 만나, 위기에 빠진 자신과 플로라의 인생을 바로잡으려 분투한다. 다양한 장르 변신을 시도해 온 기욤 뮈소. 여전한 반전과 스릴러의 재미에 그가 새로이 녹여낸 작가, 소설, 인생의 이야기. -소설MD 이주은
따끈따끈한 #기욤뮈소 의 신작, #인생은소설이다 (La vie est un roman) 를 읽었다.
나는 항상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 셀러나 신간 도서 목록을 확인하곤 하는데, 얼마전 이 책이 새로 등장한 것을 보고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뒀었다! 그러다가 yes24 리뷰어클럽에서 리뷰어를 모집하는 글을 보고, 뒤늦게 신청해서 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읽는 기욤 뮈소의 작품. 기욤 뮈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 역시 굉장히 많다. 한 때, 기욤 뮈소를 처음 알게 되고 <그 후에>, <7년 후>, <파리의 아파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구해줘>, <센트럴파크>를 읽었다. (나 생각보다 많이 읽었는데?ㅋㅋ) 가장 최근에 읽었던 작품은 파리의 아파트. (문제는 줄거리가 잘 기억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에 새로 만나게 된 <인생은 소설이다>의 경우, 어떤 느낌을 기대했냐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편한 스토리의 소설을 기대했다. 더불어 책 소개에 소설 속 작가가 재차 등장한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고, 내가 읽어보진 않은 이전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이런 특징이 나타났다고 했다. 단순히 '소설 속 주인공이 작가'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훨씬 더 복잡한 내용의 책이었다.
이 책은 액자형 구성, 격자 소설이다. 격자소설이란,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골격을 구조적 특징으로 하는 소설. 화자가 자신이 목격하였거나 연루된 사건 또는 남에게서 전해 들은 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형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국어사전 발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격자 소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인터스텔라를 읽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이 책의 첫 시작은 작가 플로라 콘웨이로 시작한다. 플로라 콘웨이는 프란츠 카프카 상을 거머쥔 세계적인 소설가이지만, 언론에 단 한번도 자신을 노출한 적이 없는 신비주의 작가이다. 그녀는 오로지 출판사를 통해서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며, 출판사 사장 팡틴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녀가 사람들에게 공포증을 느낀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대표 팡틴이 "플로라는 왜 자신을 노출하지 않냐는" 외부의 질문에 얼떨결에 대답한 내용이었을뿐, 플로라 콘웨이 자신은 단지 언론에 노출될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무튼! 그런 플로라에게는 사랑스러운 딸 캐리가 있다. 캐리는 엄마와 숨바꼭질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날과 다르게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캐리의 흔적은 없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모든 문이 안전하게 잠겨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숨을 곳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딸 캐리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리게 된 것이다. 그 충격으로 플로라는 작품활동을 더이상 하지 못하고, 6개월동안 캐리를 향한 수사는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 팡틴은 그런 플로라에게, 슬픔을 동력 삼아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해보는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가 매몰차게 거절 당한다.
그러다가 플로라는, 문득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기 시작한다. 바로, 자신은 6개월동안 사라진 캐리가 혹여나 집안에서 다시 뿅! 나타나지 않을까, 하며 집밖을 나가지도 못하고 집 안에만 있었다는 것.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강력한 느낌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내가 집 안에 유폐 중인 포로라는 느낌이었다.(중략)
그럼 다른 이유는 뭘까? 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중략)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나를 집 안에 가두고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통제하고 있는 거야."
p. 90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당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은, 또 다른 작가 로맹 오조르스키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알고보니 '로맹 오조르스키'가 쓰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이 '플로라 콘웨이'였고, 로맹은 자신의 소설을 써내려가면서도 갈피를 못잡고 결국 (어느 부분에서) 중단하게 된다. 로맹 역시 이혼한 아내와의 분쟁에 계속해서 시달리고 있으며, 자신의 아들 테오를 양육권 분쟁에서 이기지 못해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자식이 실종된 플로라와 비슷한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로맹에게도 재스퍼라는 출판 담당자가 있었다.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더이상 소설쓰기를 기피하는 로맹에게 재스퍼 역시 '네가 그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어떻겠냐'라고 조언을 한다. 그렇게 로맹은 현실세계와 픽션세계(플로라가 있는)를 왔다 갔다 하며 자신의 소설을 완성해나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본격! 인터스텔라 같은 느낌이 파바박 들면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ㅋㅋ '그래서 지금.. 어쨌든 플로라 이 사람은 작중인물이라는 맞지? 맞지?' 혼자 물어보면서, 머릿속에서 켭켭이 그려나가면서 읽었다. 그래서인지 로맹이 픽션세계에 들어가 있는 내용은(즉,파리에 살고 있는 로맹이 뉴욕에 있는 플로라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장면들 등) 실제론 로맹이 타자기 앞에서 쓰고 있는 내용이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 타이핑하는 한 남자 작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아,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이 소설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어렵다. 항상 수학 공식만이 이해가 되지 않고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글로도 충분히 이렇게 머리아파질 수 있다니! 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인터스텔라, 인셉션 같은 영화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뭘 읽고 있긴 하는데.. 이해가 되는 것도 같긴 한데... 다시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해보라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줘야할지 모르겠는 느낌? 이 책 표지 뒤에 추천사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아찔한 느낌 속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세계로 끌려들어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소설!
딱 이 문장이 맞는 것 같다.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전개로, 그리고 그 전개는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한다. 활자를 따라 읽어내려가면 자꾸만 어디론가 빠져드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이야기가 직선의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동심원의 형태로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혹은 나선형 계단처럼 자꾸만 어디론가 흘러간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무조건 어떠한 형태의 결말을 맞이하듯이, 이 소설도 읽어나가다 보면 결국엔 어떠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결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다.
(올해 1월, 바티칸 박물관 내부에서 찍은 원형 계단 사진)
이 책의 한국판 표지를 보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의미가 확 와닿는다. 플로라(Flora), 로맹(Romain), 알민(Almine), 팡틴(Fantine), 테오(Theo). 책 속 인물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이게 다이지만, 이 다섯 명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감히 3차원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전개의 스토리이다. 그래서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굉장히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참고로 앉은 자리에서 바로 완독할 수 있었던 책. 한 4시간 걸렸나? 쉽고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실 어제 읽은 책, <천 개의 파랑> 이후 나도 한번쯤은 멋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소설은 아무나 쓰는게 아닌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을 살짝 접었다.^^;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이다보니, 소설을 쓰는 과정들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어있는데, 그 과정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수많은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언급되는데 그런 구절들을 읽을 때마다 기욤 뮈소가 알고 있는 정보들은 어디까지일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정밀한 작업을 요하는 시계공처럼 우선 몇 달에 걸쳐 완벽에 가까운 집필 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자료 준비를 했다. 내가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수첩에 사건, 발단, 전개, 위기, 반전, 결말에 이르는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의 외모, 성격, 특징, 소설의 배경으로 정한 도시의 관련 자료, 사건이나 등장인물에 따른 전문 지식을 적어 두었다.
p. 100
나는 소설 집필을 시작하기에 앞서 항상 노트에 모든 등장인물들의 인생 이력과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노트에 적어둔 대부분의 자료들이 소설에서 실제로 쓰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하는 작업이었다.
p. 142
나는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특징을 수첩에 기록해두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일 년 후, 혹은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내 소설에서 시위대가 등장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 수첩에 기록해둔 자료들이 얼마나 긴요하게 쓰일지 잘 알고 있었다. 소설을 쓰려면 사소해 보일수도 있는 이런 준비들이 필요했다.
p. 162
주말에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격자 구조를 띄는 소설을 또 새롭게 읽어본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6월 10일 토요일 오전 9시 30분
소설을 끝냈다.
나는 삶으로 돌아간다.
-조르주 심농 [내가 늙었을 때] 중에서
<끝>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저 문구를 끝으로 그의 소설은 끝이 난다.
기욤 뮈소의 [안젤리크]를 읽고 나서
책장에서 찾은 그의 다른 책 [인생은 소설이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며
소설이 끝나고 난 후 잠시 멍을 때렸다.
베스트 셀러라는 타이틀이 붙는건 이유가 있군요.
매우 납득.
그의 다른 작품들을 너무너무 빨리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아직 읽지 않은 다른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흥분을 식히고 다시 만날때까지 기다려 봐야겠다.
일본에 한국 소설만 모아놓은 서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있을라나? 전에 찾아봐도 한국어 소설 코너가 작게 있는곳만 찾았는데...
다음에 한국가면 도서관 가야지가야지 하고 매번 못갔는데...
이번에는 진짜 가야겠다.
한국 여행 테마를 한국 도서관 탐방으로 해서 최소 일주일은 가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플로라 콘웨이는 그녀의 딸 캐리와 함께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중 딸을 잃어버리게 된다. 집 밖으로 나간 흔적은 전혀 없었지만 집안 어디에도 캐리는 없었다. 아이의 흔적이라곤 캐리가 신고 있었던 연분홍색 벨벳 실내화 한 짝뿐이었다.
집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중 아이를 잃어버리다니. 정말 기이한 사건이었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딸은 돌아오지 못했고, 플로라는 점점 심신이 피폐해져갔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출판사 대표 팡틴은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여러 작가들을 예로 들며 딸을 잃은 고통에 공감과 위로는커녕 글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거기다 팡틴이 다녀간 뒤로 플로라는 이상한 경험을 겪게 되고, 팡틴의 의심스러운 행적까지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플로라가 겪고 있던 끔찍한 일은 사실 누군가가 쓰고 있던 소설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플로라는 소설 속 주인공이었고, 그녀가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살아냈던 그녀의 삶은 사실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대로 흘러가는 것일 뿐이었다. 누군가의 창조물임을 깨달은 플로라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그녀는 잃어버린 딸 캐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소설을 읽으며 예전에 보았던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과 앞 부분만 잠깐 보다가 말았던 드라마 <w>가 떠올랐다. 비슷한 소재나 설정을 여러 번 접해보았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스토리임에는 분명했다. 흡입력 있는 소설이라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책을 펼쳐 읽었음에도 마치 한 번에 이어서 읽듯이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소설가와 그가 창조해낸 캐릭터 사이의 대화를 들려주는 장면에선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소설가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기욤 뮈소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소설에 녹여 들려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설정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과 자유의지를 빗대어 보여준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내가 누군가의 소설 속 인물이라면 어떨까 하는 공상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었다. 이러한 이야기구나 짐작하는 순간 스토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읽는 내내 새로움을 주었고 결국 전혀 생각지도 못한 종착지에 다다랐다. 흥미롭게 흘러가는 소설을 찾는 이에게 권해보고픈 책이다. 반전을 좋아한다면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이 작품은 제목만큼이나 특이했다. 소설 안에서 현실과 픽션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있고, 여러 작품과 작가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작품속에서 작가가 등장인물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기욤뮈소는 전통적인 작접에서 벗어나 마치 연극속의 배우가 관객과 대화를 시도하듯 그러한 얼개로써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워낙 작품이 몰입감이 강해서 읽는 동안에는 세상잡사에 초연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최애의 작가인 기욤뮈소.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지난 겨울에 나온 책이다. 작년 겨울에는 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바람에 책을 볼 여지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대개의 경우 글자와 가까운 과업을 처리하고 있는 만큼, 지난 가을부터 많은 책을 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보지 못했던 책을 보고 있으며, 작년에 출판된 책을 이제야 봤다. 문득 생각나서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었다.
해마다 저자의 책을 보곤 했으나 지난 2019년에 봤던 책이 다소 재미가 없었던 탓도 있었다. 책을 제대로 보지 못한 이유도 있었으나 이전처럼 책에 빠져들지 못한 이유도 있다. 이번 서적도 어찌 보면 이전처럼 이곳저곳을 오가면서도 독파하는데 의문이 많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보면서 마주한 작은 반전과 끝무렵에 생각하게 만드는 측면에서 해당 서적은 근래 나온 전작과 달리 책을 보는 느낌이 있었다. 이번에도 책을 속도감 있게 본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비해 나아진 마음가짐으로 책을 볼 수 있어 충분히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이번 서적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저자의 자전적 수필을 소설로 써내려간 느낌이었다. 이전 작도 작가에 대한 이야기였던 만큼, 근래 나온 책에서 소설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봐서는 이전에 많았던 환상적인 이야기를 쓰기 쉽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이야기를 전했던 만큼, 구상이 고갈되는 것은 당연하다. 충전하고 새로운 경험을 더하는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와 같은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저자가 자신의 업에 대해 좀 더 고찰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재 고갈과 작가로서의 성장이 잘 버무려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글쓴이는 예술가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가 여유로워야 한다. 그 옛날 방송에서 음악인은 슬퍼야 한다는 아주 시줍잖은 소리를 여러 차례 들어보긴 했으나,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마음의 여유 이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많아야 많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일상의 생활 영위도 중요한 만큼, 현실과 타협이 필요하다. 즉, 고정적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가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직장인도 하나의 범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창출해야 하는 일정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쉬면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건강 문제가 동반되기도 한다.
책을 보고 나서 저술가를 포함한 예술가, 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책의 기준 중에 끝에 여운을 남기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포함이 될 만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소설로 인해 다양한 생각에 빠져들 수 있었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본인에 대해 어렴풋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blog.naver.com/seung4610
안녕하세요!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깡꿈월드입니다 ~
2004년에 발표한 "그 후에" 이후 모든 소설이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기욤 뮈소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입니다.
현실과 소설을 넘나드는 기욤 뮈소 신작 소설
773. " 인생은 소설이다 " 을 소개합니다.
" 캐리, 꼭꼭 숨지 않으면 엄마가 금세 찾아낼 거야!"
딸과 숨박꼭질 놀이를 하는 이 사람은
세 권의 소설로 프란츠 카프카 상을 수상한
플로라 콘웨이이다.
지금 그녀에겐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는 것보다
딸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아이는 어디로 숨었는지 이쯤되면 찾을만도 한데
아주 작은 소리하나 들리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분은 꺼림칙해지고
왠지모르게 자꾸만 불안해진다.
집안 출입문과 창문은 굳게 잠겨있고,
누군가의 침입 흔적도 없고,
더이상 숨어 있을 곳도 없는데
아이는 어디로 사라져버린걸까?
그렇게 플로라 콘웨이는 집안에서 딸을 잃어버렸다.
누가 아이의 존재를 지운 것처럼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아이만 사라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플로라 콘웨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그녀는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있는듯한 느낌을 떨칠수 없었다.
너무 막연한 느낌이라 구체적으로 예시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젠 그 느낌을 좀 더 명확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그녀는 누구에게 조종당하고 있는걸까?
플로라는 눈을 감고 권총의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다댔다.
그제서야 자욱한 안개속에 숨어 있던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이름은 "로맹 오조르스키".
플로라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 작가였다.
그럼 플로라의 아이를 데리간 것도 다 로맹의 짓인걸까?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가 그녀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플로라와 딸의 소중한 기억의 시간을 지워버린다니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그 무렵 로맹 오조르스키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아내와는 이혼을 했고 아들의 양육권까지 빼앗길 처지에 놓여있다.
사랑이 변하는 것은 탓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자간의 연마저 끊으려하는 아내를 보며
로맹은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로맹은 어쩌면 플로라를 통해 위로를 받고 있었는지 모른다.
성공한 작가로 살며 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그녀를 통해 잠시나마 자신도 아들과의 장미빛 미래를 그렸을 것이다.
그가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는 곳은,
그의 소설 속 뿐이었기 때문이다.
양육권을 가지려는 아내의 모함은 나날이 심해져갔다.
로맹의 명예 실추를 위해선 무슨 일이라도 할 것 같았고,
그를 향해 쏟아붓는 말들은 칼날보다 더 예리했다.
이제껏 신앙을 가져본 적이 없는 로맹은
자신이 유일한 신이라 믿었다.
자신이 만든 소설 속에서 마치 신이 되듯이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고,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기쁨으로 살았다.
한 때 신처럼 살았던 로맹은 지금 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들을 되찾을수 있다면
유다처럼 예수를 부인할 수도 있었고,
그 무엇이든 다 양보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아들을 빼앗긴 이후로 멎어버렸고
미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 같았다.
성당에 홀로 남겨진 로맹 위로
공허한 외침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 소설을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있을까?
기욤뮈소의 작품을 구매한지도 벌써 15권을 훌쩍 넘겼다. 이번에는 '인생은 소설이다'라는 작품으로 서점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기욤뮈소를 좋아하게 된 시점은 '구해줘'를 읽고 나서였다. 프랑스에서 이렇게 소설을 쉽게 쓰는 작가가 있었다는게 놀라웠다. 그의 소설에는 어려운 내용 없이 쉬운 단어와 이해하기 쉬운 전개로 기막힌 반전으로 독자들이 뒤통수를 휘갈기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덧 시간이 지날수록 억지스러운 전개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반전으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나는 드라마는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처럼 빠른 사건 전개가 아니라 너무 시간을 끌면서 상상력이 중간에 끊기기 때문이다.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면 짧은건 5~6시간에 끝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이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보통 두시간 내에 이야기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더이상의 감정소모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시간이면 어떤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어렵지 않나 생각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충분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윌라오디오북을 통해 소설을 듣게(윌라에서는 들을 수 밖에 없다;;)됐고, 소설에 대해서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번에 밀리의 서재를 통해 소설을 다시 읽게 됐다.
솔직히 제목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유명작가의 소설이라고 해서 읽기 시작했다.
언제 발표한 책인지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내 빠져들었다. 내용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빠져들었다. 중간에 나를 잠시 실망시키는듯 했으나 그 역시 작가가 만든 반전을 위한 도구였다.
여튼 굉장히 치밀하면서도 결말도 전혀 생각하지못한 반전을 만들었다.
정말 기욤뮈소의 다른 소설도 전부 읽고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고등학교때가 기억났다.
고등학교시절 한참 공부 해야할 시기에 소설의 다음부분이 궁금해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책을 보던 기억을 몇십년동안 잊고 지내고 있었던거다.
최근에 읽은 책이라고는 전부 자기계발서들인데, 이것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이제 대충 내용이 뻔해진다. 너무 많이 읽어서일까? 결말이 뻔해보인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었다.
소설은 영화와 드라마와 달리 읽는 사람이 머리속에 글을 통해 읽은 부분을 상상하면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든다. 그런데, 내가 그리는 나만의 영화가 너무 재밋게 느껴진다. 그런 상상력을 자극하는게 이런 활자라는 것도 너무 신기하기도 하다.
이후로 영화를 전혀 안보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틈틈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 상상력을 계속 자극하고 싶다.
그런 계기를 만들어준 기욤뮈소의 '인생은 소설이다'를 강추한다.
ps. 나는 전자책을 좋아한다. 책을 읽을때 책장을 넘기지 않게 하기 위해 손으로 책을 양손으로 잡아야 하는게 너무 귀찮다.
밀리의 서재에서 더 많은 책들이 전자책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오디오북도 완본만 나왔으면 좋겠다
기욤 뮈소의 소설을 진작 읽고 싶었는데 이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신간이 나오자 당연한 것 마냥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름을 이번에도 올렸더라는. 더 이상 미루지 말자, 책 표지 색깔이 이쁘네. 기욤 뮈소 소설들은 하나같이 가독성이 뛰어나고 몰입하게 만든다는데 일단 초반부터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점은 인정, 과연 끝까지 멱살 잡고 하드캐리 할 수 있을까? 제목에서 주인공의 직업을 이미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는데 플로라 콘웨이라는 인기작가가 주인공으로 먼저 나선다.
플로라는 데뷔작 <미로 속의 소녀>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나게 되며 그녀는 하나의 아이콘이자 신드롬의 중심이 되었다. 후속작들도 연이어 성공하며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작가를 언론들은 인터뷰 하고 싶어 했으나 출판사 대표이자 친구인 팡틴은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포장해 노출을 거부하게 한다.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글 써서 먹고 사는 직업군이 자주 대중 앞에 드러내면 곧 닥친 싫증에 인기가 떨어지다 못해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서 밀려 잊혀 지게 될지도 모르니까. 가늘고 길게 가야.
그런 인기작가에게도 피할 수 없는 엄마란 숙명이 있었으니 플로라는 딸 캐리의 양육을 위하여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된다. 새 아파트는 원래 장난감 회사였다가 방치된 후 리모델하여 입주자를 모집했다는데 플로라는 선불 조건으로 성급히 입주한 것이었다. 소설가로서의 창작은 잠시 미뤄둔 채 딸을 통학시켰다가 다시 데려와서 돌보던 일상, 어느 날 캐리와 숨바꼭질을 하던 중에 딸이 깜쪽 같이 사라진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문은 잠겨있었는데도 도저히 캐리가 발견되지 않았다.
신발 한 짝만 남기고 연기처럼 증발한 딸을 찾기 위해 집안 구석을 뒤졌으나 끝내 없었다. 경찰에 실종 신고하고도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되면서 그녀는 미쳐 버릴 것만 같았고 기자들은 하이에나처럼 특종거리를 물기 위해 아파트 입구에 진을 치고 팡틴은 이 상황에서 소설을 쓰라며 염장을 지른다. 그렇게 딸을 잃어버린 엄마의 슬픔에 공감하기도 전에 급격한 전환을 맞게 되는데 놀랍다. 소설 속의 소설. 플로라도 소설가, 로맹이란 남자도 소설가. 두 작가가 만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 건가.
로맹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 플로라라니, 기욤 뮈소는 이전에도 연달아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걸로 알고 있는데 이젠 이런 단계까지 나아간다. 플로라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임을 자각하는 순간도 갑작스럽지만 두 사람이 만난다는 설정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디까지를 믿어야하나 혼란에 빠뜨린다. 두 사람에겐 자식을 찾고 싶어하는 모성애와 부성애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로맹의 경우엔 소설 <세상의 마지막 밤>을 연상케 하는 어떤 장면도 있어 이채롭다. 그리고 소설이라는 허구세계의 창조주와 자유의지를 피력하는 피조물 사이의 의견대립은 독자로 하여금 어느 편에서 중재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재미난 상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끝을 향해 달려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진실은 현실이란 고통의 쓰디 쓴 맛을 잠시라도 잊기 위함이었다. 창작이라는 작업을 통해 현실도피처를 제공하는 게 아닌가 싶다. 창작은 안주하거나 나태하게 되면 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그 점을 플로라를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지만 그래서 비극적이었고(좌절과 절망에 잔인하기도) 로맹은 로맹대로 현실에서 희망을 찾기 위한 수순으로 택한 시도가 결말에 드러난다. 그래서 소설은 사람들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작가적 소망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우와 끝내준다 라고 하기엔 그렇긴 해도.
기욤 뮈소의 책은 오랫만이었다.
가독성이 좋은 책이라는 것, 로맨틱한 스토리를 많이 다뤘다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
플로라 콘웨이는 작가다. 3권의 소설을 발표했지만, 인터뷰와 외부 활동을 꺼려하는 작가다. 프란츠 카프카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었다. 그는 홀로 3살짜리 딸 캐리를 키운다. 캐리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다 숨바꼭질을 했는데 딸이 없어졌다!!
가장 초반의 이야기다.
그 뒤는 책을 읽어보시는 게 본인한테 좋으실 겁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뒤섞여있다. 스릴러 같은 느낌도 있고, 로맨틱(아주 로맨틱은 아니고)한 느낌도 있고, 자전적인 면도 있다. 자전적이라고 했는데, 주인공이 작가다 보니 소설작가가 갖고 있는 내면을 그리고 외부적인 환경과의 갈등을 드러낸 점이 흥미롭다.
혹시 기욤 뮈소가 이런 마음과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가 아는 여러 소설가의 글들과 특징을 다루는 장면도 재미나다.
등장인물이 되어보는 것 뿐 아니라 그를 창조한 작가는 인물이 어떤 생각을 따라 행동하는지 그것을 지켜본다. 억지로 인물들을 변형하거나 이동시킬 수 없다. 그저 바라보고 그들의 행위를 글로 적어낸다.
작가는 그저 어떤 이야기를 꾸며낸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보니 작가란 직업은 내가 생각한 상상력보다 더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특히 스토리 작가는 타고나야만 할 것 같다.
집중력. 상상력.....
창조자와 피조물관계가 작가와 (등장)인물의 관계와 흡사하다는 점에 나는 놀랐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물론 그들에게 기적이나 불행을 줄 수는 있지만,어디까지나 선택은 인간이 한다. 작가와 인물의 관계도 이 책에서 보면 신과 인간의 관계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물은 작가에게 당당히 따지고 요구하려든다. 이렇게 두 관계의 유사성을 이 책은 한번쯤 생각하게 한다. 글을 써보거나 소설을 쓸 사람이라면 이런 관계를 이해하거나 흥미롭게 보리라.
그리고 플로라 콘웨이와 딸, 그리고 로맹과 테오(아들)의 관계도 재밌다. 아이의 상실과 좌절 그리고 사랑, 그리고 콘웨이나 로맹이나 작가였다는 점을 견주어 볼 만하다. 상대는 어떠던 말던 작품을 재촉하느라 바쁜 편집자들마저 비슷하다.
글쓰기 방법을 다룬 책이 아닌데 이 책은 읽고나니 글을 쓰는 이의 마음과 자세를 살짝 엿본 기분이다. 여기서는 성공한 작가들의 이야기인지라 모든 작가들의 상황을 보여준 듯 보편적이지는 않겠다. 작가들이 글을 쓰고, 작품을 대하고, 타작가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들의 모습을 배우려는지를 읽는데 신선하고 재밌었다.
그와 더불어 부수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개인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는 없고, 한 사람의 명성이나 재능을 갖고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출판, 여론과 매체에 대한 냉소와 비판도 담겨있다. 인간의 욕망과 모순적인 모습들이 역시나 현재 주위에 벌어지는 일들과 다르지 않겠다.
가독성도 좋고, 책을 좋아한다면 즐겁게 읽기 좋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읽기 잘 한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작가는 왜 이렇게 글이 살아숨쉬는 것처럼 잘 쓰는거니...
기욤뮈소의 글은 술술 잘 읽히는 매력이 있지만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건 어쩔수 없는 특징인 듯 하다. 한동안은 어릴적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에 꽂혀있전 던 저자가 최근 몇년간은 액자구조 스토리에 꽂힌듯... 이번 작품은 설정 자체는 창의적이고 흥미로웠지만 그다지 재미를 느끼진 못했고 결말도 다소 허무했다. 그렇지만 크게 생각 안하고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는 추천. 술술 잘 읽히기는 하니까.
eBook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켜서 까먹었다가 나중에 찾아보니 ebook으로 나왔길래 읽었음. ㅎ
이번엔 또 무슨 이야기로 내 뒤통수를 치려나(?)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또 하루동안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가 책을 썼는데 그 책의 주인공이 작가이고, 그 작가가 만든 소설에 들어가고 나오고...
아주그냥... 복잡하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장자의 '호접지몽'이 생각나는 책 ㅎ
매번 챕터에 시작할 때 마다 한줄씩 올라오는 글귀들이 참 인상적인 기욤뮈소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