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자주 만났어요, 이재 씨. 돌아가신 할머니는 흰나비가, 할아버지는 노란나비가 되셨다고 믿거든요.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옆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 꼭 인사를 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반갑게 손을 흔들고 모처럼 웃음을 지어요. 할머니가 나를 보러 왔어, 할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셨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거든요. (두 분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세요. 아빠의 부모는 ‘친’이고 엄마의 부모는 ‘외’인 게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바깥 외’라뇨.)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언급이 늘면서 이재 씨 책을 알게 됐어요. 청년의 가정 돌봄노동?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취업이 안 돼서 그랬겠지 했어요. 미안해요. 한창 나이의 청년이 집안에서 노인을 맡아 돌본다는 게 낯설어 못난 짐작을 했어요. 육아건 봉양이건 거의 모든 돌봄노동은 청년은 아닌 여성의 몫이니까요. 이재 씨 말처럼 그 노동의 현장에서 아빠, 남편, 아들, 사위, 할아버지는 안타까워는 하지만 몫을 하지는 않는 방관자가 되고 엄마, 아내, 며느리, 딸, 할머니는 독박의 신세가 되죠. 경제적 신분 이동을 위한 계층 사다리도 중요하지만 가정노동, 돌봄노동의 폭력성이 오르내리는 사다리를 어깨에서 어깨로 대물림해 온 여성들의 고난도 분석의 대상이 되고 사회발전의 지표가 되어야 해요. 애도의 본질은 제쳐두고 남성만을 기본값으로 치는 장례 산업계의 퇴보도 함께요. 그들이 말하는 ‘원래’는 이제 유물로 남겨두고, 고인과 유가족이 맺어온 ‘원래’의 특별함과 애틋함으로 이별해야죠, 이제는 정말.
떠나실 때가 다 된 할머니에게 친구 할머니께서 하셨다는 말씀, “어여 가. 그동안 고생했어.”를 읽으며 우리 할머니의 마지막을 오래 생각했어요. 돌아가실 때가 가까워지자 할머니는 무척 괴로워하셨어요. 고통에 몸을 뒤트는 할머니의 얼굴을 만지며 “나 할머니 사랑해. 많이 사랑해. 그런데 할머니가 너무 아프면, 그래서 그만 끝내고 싶다면 내가 하느님한테 기도할게. 할머니 그만 아프고 돌아가실 수 있게 해달라고.” 속삭였던 기억. 아프네요.
1928년에 태어나 백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내셨지만 기록되지는 못할 할머니를 역사에 새겨두려 했다는 이재 씨의 마음, 초면에 정말 죄송하지만 기특하고 신통하고 장해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 몸으로 성실히 일해 가족을 먹이겠다는 할머니의 철학과 그런 할머니에 대한 이재 씨의 사랑과 존경은 이렇게 책으로 세상에 실재하게 되었어요. 돌아가신지 십년이 된 지금도 추억과 그리움으로만 할머니를 만날 수밖에 없는 저로서는 너무나 부러운 일이에요. 기후위기로 나비가 사라지면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아픈 몸과 마음이 처음이었던 이재 씨의 할머니는 아픈 당신을 돌보는 게 처음이었지만 잘 해낸 가족들 덕에 분명 덜 외롭고 덜 두려우셨을 거예요. 하늘나라에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랑 친구 맺으시면 좋겠다.
각성의 언어로 변화하고 싶다는 이재 씨를 응원할게요. 건강히 잘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