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선 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이 인간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지를 연구했다. 특히 인간의 신체를 연구하는 의학에 반해 인간의 심리와 정신을 연구하는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인문학은 그만큼 인간을 이루고 있는 요소를 탐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나라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유학도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토론하던 주리론, 주기론 역시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심성을 논하던 학문이었다.
저자는 미셀 드 몽테뉴의 <수상록,Les Essais>을 꺼내서 읽다가 이번 세기에 대해 자신이 그와 비슷한 책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몽테뉴는 서른여덟의 나이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기 성(城)으로 돌아가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최고의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수필을 뜻하는 에세이의 어원도 바로 이 책에서 왔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생각으로 최대한 가식없이 진실되게 쓰기로 했고, 특히 그동안 학술서적만 저술했던 것에서 벗어나 각주가 없는 편안한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 책은 퇴근하고, 여유로운 저녁 시간에 읽는 것이 제일 좋다고.
와인 한 잔 또는 따뜻한 차 한 잔 옆에 두고 읽으면 좋다. 은퇴한 노 심리학자의 여러 생각을 담은 책으로 조금 더 아는 인생의 선배가 편안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솔직히 만만한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꽤 자세한 지식을 담고 있고, 분량 자체도 많고 많은 학술적 용어나 정의, 실험 등도 나와서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다만, 그만큼 가벼운 책은 아니다.
나의 지식 스펙트럼을 넓혀 줄 수 있는 양서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것은 몽테뉴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던 질문,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완하는 아주 중요한 주제다. 특히 인간에게는 이러한 주제가, 질문이 정말 중요하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단어, 수학적 개념, 추론을 덧붙이고, 감각의 산물에 논리적 연역을 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장 언어와 2장 지식에서는 인간의 지식이 사건의 물리적 특성의 표상(저자는 이것을 스키마schema라 부르고, 다른 학자들은 이미지image라 부른다)을 단어와 결합시켜 수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네트워크 연결 패턴은 아침부터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접촉 패턴이 수시로 변하듯 환경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 언어는 같은 "잘 지내요?"라고 해도 미국에서 풍요로운 삶을 즐기는 기업가와 중국의 일용노동자, 아프리카의 어느 시골의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모두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두 개의 실제(Reality)에서 작동하는 종은 인간밖에 없다. 동물과 우리가 공유하는 실재는 사물, 움직임, 장소, 냄새, 소리, 맛, 느낌 등 겉으로 드러나는 특성들에 대한 표상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표상들을 저자는 스키마라고 한다. 스키마는 전혀 애쓰지 않아도 만들어진다.
자주 접하는 사물과 사건은 각각의 현상에 흔히 동반되는 특성들을 담고 있는 원형(prototype) 스키마가 된다. 어떤 사물이나 행동이 특정환경이서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면 그 환경의 특성도 원형 스키마의 일부가 된다.
이를 테면 욕실에서는 양치질을 하고, 차에 앉으면 안전벨트를 매고, 부엌에서는 요리를 하는 등이 이런 사례에 속한다.
스키마 덕분에 우리는 익숙한 사건들을 빨리 알아보고, 익숙하지 않은 사건을 감지하고, 추상적 개념도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만 가지고 있는 두번째 실재는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단어들 중에 스키마가 표상하는 실재를 기술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의 언어는 크게 세가지 범주를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는 사람, 사물, 사건, 의도, 느낌 등이 좋은지, 즐거운지, 적절한지, 혹은 나쁜지 등을 평가할 때 사용한다.
두 번째는 관찰 가능한 사물, 사건, 혹은 그 물리적 특성에 붙여준 이름으로 구성된다.
세 번째는 지식, 진리, 복원력, 정의, 숫자, 시간 같이 특정한 물리적 특성을 갖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 들어간다.
숫자는 사물이나 사건의 개별적 특성에 포함되지 않는 속성을 가리킨다. 카드 두 벌을 바라보면서 카드가 104장 있다고 하든, 두 벌 있다고 하든, 한 무더기 있다고 하든 다 맞는 말이다.
전 세계에는 6,000가지 정도의 언어가 존재하는데 이 언어들은 여러 사건들을 서로 다른 의미론적 범주로 분류한다.
한 사건과 연관된 스키마의 단어와 집합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형태, 크기, 기능, 위치, 동작의 종류 등 다양한 특성을 공유하는 범주를 형성한다.
말에 관해서 다양한 특성과 시시콜콜할 정도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말은 우리를 깨우치고, 안심시키고,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지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처음 마주하는 경험적 실체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 불확실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의 과제는 일어났거나 일어날 만한 상당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기술하는 단어와 문장을 자연적 산물과 상상의 경계를 넘지 않는 의미론적 발명과 가려내는 일이다. ---p.81
이 언어를 바탕으로 우리가 밝혀내는 진리를 2장 지식에서 다룬다. 사실 나는 2장은 조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아서 빨리 넘겼다.
역사적 사건에 의해 형성된 맥락 때문에 사회이동(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계층의 수평적·수직적 변화)의 용이성, 행동의 주요 수혜자로서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 불행의 원천 등이 바뀌었다.
3~4장에서는 맥락이 사람의 행동, 감정, 신념에 미치는 영향, 특히 사회계층 범주를 특정짓는 배경의 영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예를 들면, 어떤 발명은 인간의 건강에 영향일 미친다. 이것이 바로 배경이다.
전구는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깨어 있을 수 있게 해서 인체의 일주기 리듬에 변화를 주었다. 이렇게 낮과 밤의 자연스러운 리듬이 깨지는 것은 우울증과 비만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전기 제품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태어났던 세대들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다림이 필요했고, 그 즐거움을 개인이 항상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대의 젊은이와 성인들은 필요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치를 갖고 있다. 필요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쾌락을 맛보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이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지는 것은 이런 즉시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p.151
5장과 6장에서는 자연과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람의 심리적 속성을 섦여할 때 유전자와 뇌는 강조하면서 생각은 배제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게 된 것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자연과학자들은 생각이 인간의 행동에 자율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하기를 주저하게 됐다.
유전자나 뇌 회로와 달리 생각은 실체가 없고, 시각화할 수도 없고, 주된 연구 대상인 쥐에는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뇌의 활동에서 등장하는 생각이 뇌와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부분적 자율성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과학자들은 동물 모형을 이용해 인간이 욕구와 걱정을 밝히는 관행에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은 물질적 존재들이야말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근본 기원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각을 언젠가는 신경세포, 회로, 분자의 활동 패턴으로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는 부대현상으로 취급하기 쉽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는 물리학자, 화학자, 생물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즉, 창발적 과정(emergent process)이 자신의 기반 사건으로 부터는 예측 불가능한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를 한 사람이 해석할 때, 그 안에 심박동수 증가를 야기한 뇌의 프로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속성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5~6장에서는 과학자들이 이 물질적 존재들에 대해 알아낸 수많은 흥미진진한 사실들을 위주로 여약하고 있다. 또한 대다수의 특성들은 삶의 역사와, 현재까지 경험한 유전자와 뇌의 패턴을 결합해야 이해할 수 있다.
책의 후반부는 사람의 사회적 특성에 초점을 맞춰서 설명하고 있다. 가족, 경험, 교육, 예측, 감정, 도덕을 1장씩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다.
가족의 역할, 어린 시절 특성과 경험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존되는 정도, 교육의 기능, 예측(expectation)의 중요성, 신체적 느낌의 해석, 그리고 도덕성(morality)의 의미 등을 다루고 있다. 생각이 인과적 힘을 갖고 있다는 개념을 신경과학자들이 묵살해 버리는 바람에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가족, 계층, 민족 집단, 종교,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동반되는 대리 감정(vicarious emotion)을 연구하는 일에 소원해지게 됐다.
가족, 민족, 종교, 집단, 국가와의 동일시 강도는 항상 해당 집단의 특성이 얼마나 독특한가에 달려 있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은 다수 민족 집단에 해당한다. 후자의 경우 전자보다 자신의 민족 집단에 대한 동일시가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환경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독특한 특성에 해당하기 때문이다.---p.318
모든 사실은 언제라도 틀린 것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무시하고, 어떤 사실을 기존의 구조 속으로 포함시킬지 결정할 수 있게 도와줄 전제들을 갖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증거가 요구하면 기존의 신념을 새로운 신념으로 대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교육기관은 다음 세대에게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알려주는 것 외로 적어도 다섯개의 추가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자기네 문화와 다른 문화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돕고,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글쓰기와 말하기를 조리있게 하고, 대다수의 사람이 합의하는 윤리적 가치관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이 마지막 항목은 미국과 유럽에서 논란이 많다. 낙태, 종교, 우주의 기원, 성적 취향, 성역할, 개인주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 등과 관련해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p.369
마지막 12장은 도덕성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아무래도 노학자로 결국 인간의 도덕성 회복이 가장 절실하다고 느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승리하는 것을 찬양하는 분위기 때문에 정말 존중받아야 할 윤리적 당위가 무엇인지를 두고 혼란이 일어났다. 정직, 공정, 충성심에 관한 전통적 기준을 위반한 수많은 사람들이 부자이거나, 권력을 잡거나, 언론의 찬양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난처해하고 있다. ---p.486
이러한 1등에 대한 강박, 현대사회의 무한 경쟁에 대해서 저자는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적어도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산업화된 민주사화의 교육 수준 높은 성인들 중 상당수는 땅, 바다, 강, 대기를 오염시키고, 숲을 파괴하고,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착취했던 이전 세대 사람들에 대해 미약하나마 책임감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고 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불평등에 대한 공정한 대우를 주장하는 일종의 역사적 흐름을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산업화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일상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음에도 지속적인 불안속에서 살아간다. 대중 소설 속 영웅들이 걱정하는 건 사람들이 더 깊고 신뢰할 만한 인간관계를 갈망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 할 때 상황에 좌우되지 않게 해줄 도덕적 당위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좌절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적법한 경쟁자로 받아들이는 당위에 헌신하는 것은 그런 불안감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p.500
"공부를 해서 얻는 것은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는 몽테뉴의 말처럼 이 책은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고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하는지를 12가지 요소로 풀어서 해박한 지식과 함께 담아 설명하고 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부피만큼이나 인류가 생각해 보아야 할 다양한 지식과 생각에 대해 60년간 인간을 연구한 노학자가 들려주는 편안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가 하루하루 때론 평범하게 가끔은 드라마틱한, 또는 기쁜, 힘든 삶을 살아간다. '어떤 일상을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더 중요하다.
왜냐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도덕성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경험의 가장 강렬한 여러 측면을 이 책은 다루고 있다.
현대 심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 중 한명인 제롬 케이건 특유의 지혜와 솔직함으로 인지와 감정의 토대에 대해 기본적인 질문들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는 책이다.
* 예스 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